R의다락, Other Fiction

Extra Form
장르 하이큐

* 진작 쓰고 싶었던 쿠로츠키를 이제야 슥삭슥삭
* 사이타마에서 합숙하던 그 언젠가, 제 3체육관에서 쿠로오랑 츠키시마랑_.txt
* 언제나 그렇듯 별 내용은 없습니다 (mm






Roll-over

黑月


@ruka_tea







겁이 없다. 쿠로오 테츠로는 그런 성격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그랬다. 저돌적으로 들이대는 타입도, 어느 학교의 대장 부엉이처럼 텐션이 오르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는 폭탄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겁은 없었다. 아니, 적어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테츠는 신중함이 부족하다던 소꿉친구의 지적에도 쿠로오는 늘 가볍게 받고 말았다.
항상 그랬다. 성인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인생은 언제나 가벼운 농담 같았다. 어떤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연연하는 데에 쿠로오 테츠로는 재능이 없었다. 재미있어서 한다. 배구도, 연애도 그랬다. 재미있었다. 또 기분이 좋았다. 키스도, 그 다음 진도도 늘 그렇게 이어졌다. 가볍게 만났고, 가볍게 헤어졌고, 그 탓에 어디에도 뒤끝은 없었다. 차이는 건 죽기보다 싫고, 지는 건 그것보다 딱 2배쯤 더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그뿐이었다. 지면 또 이기면 된다. 차이면 또 만나면 되지. 덕분에 뭔가를 저지르는 데에도 쿠로오는 겁이 없었고, 더불어 후회하지 않았다.


그랬었다.
그랬는데.


쿠로오가 제 몸 밑으로 소리없이 눈길을 떨어뜨렸다. 목의 울대가 느리게 울렁거렸다. 양팔 아래에 깔려있던 노란 머리가 눈을 들어올렸다. 눈이 마주쳤다. 쿠로오가 볼 안쪽을 소리없이 힘껏 깨물었다. 하마터면 쓸데없는 말을 할 뻔 했던 탓이었다.
무섭다. 쿠로오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혀밑으로 쑤셔넣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까지 겁을 먹은 건.
해도 될까.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물었는지 모르겠다. 또 한 번 습관처럼 생각을 혀밑으로 짓씹고 욱여넣으면서 쿠로오는 제 밑에 깔린 몸을 찬찬히 눈으로 훑었다. 키에 비해 늘씬한 몸이다. 얽혀 있는 다리의 뼈대가 생각보다 너무 가늘어서, 반쯤 밀려올라간 연습 셔츠 밑으로 하얗게 드러난 피부에 점도 하나 보이지 않아서 쿠로오는 어쩐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항상 쓰던 안경은 녀석이 등을 대고 누운 코트 바닥 저만치로 굴러간 지 오래다. 언제, 왜 그랬었지. 안경이 사라진 눈을 얼핏 바라보면서 쿠로오는 생각을 되짚었다. 아, 그렇다. 키스를 했었다.
합숙소의 제3체육관에는 본래 셋이 있었다. 대장부엉이, 나, 그리고 너. 녀석을 불러세운 건 쿠로오였다. 블로킹을 해주던 같은 학교의 후배가 퍼져 버리지 않았다면 쿠로오는 애당초 녀석을 부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밤은 아직 한참이 남았고, 일찍 잠드는 새나라의 청소년이 되기에는 연습의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었다. 이대로라면 찬물로 샤워를 해봐도 피가 끓어서 자는 중에 이불을 박차고 체육관으로 달려나올지도 몰랐다. 그럼 딴 녀석 불러서 도와달라고 하지, 뭐. 어느 학교의 대장 부엉이, 그러니까 보쿠토가 던진 말에 쿠로오는 자연스럽게 열려 있던 체육관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걸린 게 하필 너였다.
츠키시마 케이. 밤 어둠 속에 서 있던 얼굴을 보면서 쿠로오는 그 이름을 몇 번이고 소리없이 반복했다. 표정 없던 소년의 얼굴 위로 달이 둥그렇게 떠 있었다. 가슴이 뛰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열이 가라앉지 않았던 것도 그 탓이었다. 보쿠토가 먼저 떠난 코트에서 네 하얀 목덜미를 움켜쥐었던 것도, 너를 놀래키겠다고 입술을 들이댔던 것도 모두 그 탓이었다. 하필 입술이 닿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장난에서 멈추지 못한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네게 두 번 연달아 키스했던 것도, 키스가 깊어졌던 것도, 어쩐지 멈출 수 없었던 것도, 그래서 결국 이렇게 빈 코트에서 오도카니 널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달 때문이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노란 눈을 내려다보면서 쿠로오는 생각했다. 예뻐서 그래. 달이 너무 예뻐서 그랬던 거라고.

“……”

소년은, 츠키시마는 말이 없었다. 입술이 겹치던 순간에 잠시 동요했던 노란 눈엔 이젠 아무런 말도 떠 있지 않았다. 말라버린 우물 같았다. 비 내리던 날을 오래 전에 잊어버린 사막 같았다. 그 건조함이 바람처럼 자꾸 마음의 잔가지를 흔들었다. 혼란스러워서, 복잡해서 쿠로오는 자꾸만 안달이 났다. 조급해졌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을 삼키면서 쿠로오는 다시 그 얼굴을 잠잠이 들여다봤다. 처음 봤을 땐 몸의 선이나 비율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코트에서 봤을 땐 팔이 날씬하고 참 곧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까이에서 보게 됐을 땐 잘 생겼다고, 인기가 참 많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내려다보는 입장이 되어서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하얗다. 예쁘다. 미인이다. 무엇보다 눈이 참 예뻤다. 촘촘한 속눈썹, 색소가 옅어 달처럼 반짝이는 눈은 어쩐지 깊고 아득한 우물 같았다.
사막으로 나가면 네 눈을 꼭 닮은 우물이 있을 거야. 해가 저물고 밤이 깊으면 그 우물엔 노란 달이 그림처럼 일렁이겠지. 하지만 물이 없다. 잔뜩 말라버렸다. 쿠로오가 제 입술 끝을 꽉 짓씹었다. 그 말라버린 우물의 바닥에 닿고 싶었다. 그 아득한 깊이를 몰라서, 알고 싶어서 자꾸만 목이 탔다. 갈증이 났다. 다시 울대가 느리게 울렁거렸다. 마른침이 넘어갔다.
안경. 쿠로오가 입을 열었다. 낮고 탁한 목소리였다. 츠키시마가 눈을 들다, 옅게 웃었다. 달에게 목소리가 있다면 이렇게 웃지 않을까. 쿠로오는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무슨 생각하냐.”
“어느 고교 배구부의 주장이 연습을 핑계 삼아 타교 후배생에게 입술을 맞추고 몸으로 깔고 있는 게 추행일까, 아닐까. 신고를 한다면 어떤 기관 단체를 거치면 좋을까, 뭐 그런 생각요.”
“……”
“하하. 농담이에요.”

아니, 농담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소리를 우물거려보다 쿠로오는 입을 다물었다. 또 생각이 많아지는 탓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습관처럼 입술 끝을 질근거리면서 쿠로오는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늘 겁은 없었다. 후회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앞을 치고 나가는 일에 대해서 망설여본 적은, 단언컨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무섭다. 겁이 나고 떨린다. 어쩌면 왜 이러고 있는지를 스스로 잘 알고 있는 탓인지도 몰랐다.
해도 될까. 그렇게 묻는 것은 하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랬었다. 몸선이 예뻐서 자꾸 봤었고, 경기를 하면서도 계속 눈으로 좇았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다른 녀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말수가 적고 표정도 없던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그러다 제 말에 딱 한 번, 노란 눈이 당황한 듯 흔들렸을 때 쿠로오는 숨이 멎는 기분을 느꼈었다. 마치 누군가의 오랜 비밀을 엿본 것만 같은 쾌감이었다. 어떻게든 저 속을 열어젖혀 그 비밀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었다.
저런 녀석도 당황을 하기는 할까. 당황하게 한 번 해주고 싶다. 장난을 쳐보고 싶다. 처음엔 딱 그 정도였다. 코즈메는, 그러니까 그 오랜 소꿉친구는, 쿠로오에게 짓궂다는 말을 즐겨 했었다. 상대가 거리를 둘수록 더 집요하고 악착 같이 쫓아가는 점이 특히 짓궂고 악질이라며, 코즈메는 담담히 소회했다. 그런 소릴 해도 쿠로오가 낄낄 웃고 말았던 건 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카라스노의 기다란 신입생 안경군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는 걸 코즈메는 몰랐겠지만, 안다고 해도 아마 별 신경은 쓰지 않을 게 분명했다. 또 장난기가 돋았겠거니 하고 마려나. 쿠로오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귀찮게 하고 싶다. 그래서 지나가던 녀석을 붙잡고 귀찮게 했다. 츠키시마는 쿠로오와 눈높이가 똑같았고, 같은 코트에 서서 블로킹을 하자니 자꾸만 몸이 닿았다. 몸이 닿으니 그 몸이 궁금했다. 셔츠 밑도 얼굴처럼 그렇게 하얄까. 하얗겠지. 감촉은 어떨까. 온도는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니 자꾸 몸이 닿았다. 반쯤은 일부러 그랬다. 대외적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스킨십이 많은 타입이라는 것은 이럴 때 큰 도움이 됐다. 은근슬쩍 어깨를 감으면서 등을 쓸거나 견갑골 위를 슥 더듬었다. 티셔츠 위로 만져지는 뼈대는 생각보다 더 곧고 늘씬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뜨거웠다.
그때 쿠로오는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깊은 너는,
어떤 온도를 가지고 있을까.

“혹시 그쪽이에요?”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들이 우뚝 멈췄다. 츠키시마 때문이었다. 녀석이 쿠로오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안경이 사라진 노란 눈이 옅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하. 쿠로오가 마른세수를 했다. 너 그 눈 진짜, 반칙이라고. 그리고는 반쯤 오른손으로 덮은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전혀.
근데요? 츠키시마가 물었다. 웃고 있던 눈 끝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키스 왜 했어.”

쿠로오가 코끝으로 웃었다. 이 자식 봐라, 은근슬쩍 말이 짧아진다? 츠키시마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예뻐서 봐준다, 이 자식아. 그런, 하지도 못할 소리를 쿠로오는 이번에도 잠자코 혀 밑으로 쑤셔 넣었다. 답 없이 츠키시마는 누운 채로 옆을 향해 슥 시선을 피했다. 네트 쪽으로 반쯤 돌아간 하얀 얼굴이 밤 어둠처럼 우물거렸다. 이것 봐.

“당신도 결국 똑같잖아.”

쿠로오의 입 꼬리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스위치를 끈 것처럼 웃음이 소리 없이 가라앉았다. 그 얼굴을 츠키시마는 보지 못했다. 어둠이 어리던 순간을 달은 끝내 보지 못했다.

“게이가 TV에 나오는 세상에 남자끼리 하는 게 뭐가 대단한 일이라고, 촌스럽게.”
“……”
“뭐… 하고 싶으면 해요. 대신 일찍 끝내요. 난 지금도 좀 졸립거든요. 당신처럼 체력이 끓어 넘치는 바보… 아, 실례. 저는 그렇게, 에너지가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라서.”

노란 눈이 부슬부슬 웃었다. 녀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그런 생각을 했겠지. 질렸을 거야. 이만하면 나가떨어지겠지. 적당히 받아치면 그만이야. 적당히, 선을 그으면 그만이야. 쿠로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을 삼킨 순간, 슬퍼졌다. 동시에 화가 났다.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니라, 너를.

“이 이상 안할 거면 전 들어… 읍,!?”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코트를 넘어오는 스파이크의 속도보다 입을 틀어막는 손의 속도가 몇 갑절은 빨랐다. 일순 틀어막힌 호흡에 츠키시마가 눈을 크게 열었다. 허리가 크게 들썩였다. 한 손으론 츠키시마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남아있던 한 손이 반쯤 밀려있던 셔츠의 틈을 비집었다. 아냐, 침착해. 막힌 입술을 꽉 깨물면서 츠키시마는 생각했다. 체격차는 있어도 신장의 차이는 거의 없다. 이기지 못할 리가 없어. 하지만 이길 수가 없었다. 버둥거려도 어쩐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츕, 하얀 귓불을 물었다 놓으면서 쿠로오가 낮게 속삭였다. 저런, 꼬마야.
까만 눈이 차갑게 웃었다. 너는 못 이겨.

“어른을 너―무 놀리면 못써. 내가 그래도 너보다 선배잖니.”
“읍, 으웁, 윽,”
“어디, 벌써부터 사람을 갖고 놀아.”
“으, 후흡, 웁, … 잠, 잠깐, 그, …읏,!”

셔츠를 쑤신 손이 가슴을 문지를 때 츠키시마는 크게 떨었다. 틀어 막혀 있던 손이 떨어졌다. 왜. 눈끝을 일그러뜨리며 츠키시마는 물었다. 대체 왜.

“화났어요?”
“어.”
“왜.”
“……”
“왜 화를 내는, … 흡,”

쿠로오는 답하지 않았다. 답 대신 크게 펼친 손이 다시 한 번 츠키시마의 입을 틀어막았다. 막힌 호흡이 잘게 떨었다. 그때마다 들썩이던 판판한 가슴을, 곧은 허리를 내려다보다 쿠로오는 단숨에 녀석의 시선을 뒤집었다. 목까지 밀려올라간 하얀 등에 질근 이를 세웠을 때 츠키시마는 제 입을 틀어막고 있던 쿠로오의 손을 힘껏 물었다. 그래도 그뿐이었다.
열린 창에는 여전히 달이 둥그렇게 걸려 있었다. 예쁘다. 하얗게 떨던 허벅지의 틈을 파고 들면서도 쿠로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은 달이 참 예뻤다.
그래서, 슬펐다. (*)











제가 드디어 쿠로츠키를..... 엉엉... 쿠로츠키를... 썼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처녀작이 이런 꼴이라 테츠랑 츳키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흑흑 ㅠㅠㅠㅠㅠㅠㅠ 나중에 제 안에서 둘이 좀 더 무르익으면 그때 더 좋은 글 써주는 걸로 하고, 우선은 처음에 의의를 두렵니다... 저는 참, 못되고 나쁜 오른쪽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ㅠㅠㅠㅠㅠ 그리고 그에 상반된, 사실 알고 보면 다정하고 스윗한 왼쪽이 좋습니다ㅠ
이런 소리와 함께 망작을 찌끄려놓고 저는 이제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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