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다락, Other Fiction

Extra Form
장르 하이큐

* 어제 카게히나 전력을 놓친 게 아쉬워서 하루 늦게 저 홀로 전력 60분...
* 주제어는 벚꽃. 오이카와상 특별출연 (?)
* 8시부터 8시 57분에 걸쳐 썼습니다.
* 별 내용은 없어요 (mm...




봄, 벚꽃전설

@ruka_tea





붉은 벚꽃나무 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이 화창한 봄날에 그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카게야마 토비오의 가슴 속에 찔러넣었던 장본인은, 그러니까,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오이카와와 마주쳤던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춘고가 끝났고, 3학년 선배들은 대부분 졸업을 했으며 2학년에 진학하기 전에 맞는 마지막 주말이었다. 카게야마는 그날도 익숙한 길을 따라 달리면서 학교로 향했다. 주말을 맘 편히 쉬지 못 했던 것은 아마 자신과 이제는 제법 호흡 맞추는 흉내를 낼 수 있게 된 그 멍청이, 그러니까, 히나타 쇼요 때문이었다. 춘고가 끝났다고 배구가 끝나는 건 아니잖아? 라면서 히나타는 어제, 그러니까, 토요일에 배구공을 퉁퉁 체육관 바닥에다 손바닥으로 튕겨대면서 어깨를 으쓱거렸었다. 더불어 녀석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 미라클 히나타 썬더볼트 매직 원더 스파이크를 마음껏 꽂아줄 때가 왔단 소리지.
그 이름 참 촌스럽다든가, 네 놈이나 나나 이제 2학년이 되었을 뿐인데 뭘 3학년이라도 된 것처럼 구느냐는 소리를 하려다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었었다. 맞는 말이라서 그랬다. 배구가 끝난 것이 아니란 소리가 오래도록 잊고 있던 경쟁심을 부추겼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이 밝기가 무섭게 카게야마는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는 학교로 냅다 내달렸다. 혹시라도 어디에서 귤 같은 머리가 툭 튀어나와 승부를 걸어올까봐 기웃거려봤지만 교문 근처까지 다 오는 동안에도 히나타와는 마주치지 않았다. 학교 앞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올릴 때 오른쪽 골목길에서 크고 마른 그림자와 작은 그림자 하나가 사이좋게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면 작은 쪽과 제대로 박치기를 하고 우당탕 자빠졌을 것이다. 걸음을 급하게 멈춘 후에야 카게야마가 자기보다 작은 꼬마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합니다. 그러다 그 꼬마의 얼굴이 어째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느닷없이 이름이 불렸다. 토비오쨩이라는 목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카게야마가 홱 눈을 돌렸다. 꼬마의 손을 잡고 서 있던 크고 마른 남자 쪽이었다. 오이카와였다.
연습? 조카와 손을 꼭 마주 잡은 채로 오이카와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카게야마는 이내 눈길을 피하면서 아니라고 말을 흐렸다. 맞는 말이라고, 그렇다고 즉답을 하자니 왠지 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흐음. 오이카와가 옅게 콧소리를 끌면서 잠시 카게야마를 옆눈으로 바라봤다. 딱 이렇게 쓰여 있는 얼굴이었다. 거짓말. 카게야마가 질끈 주먹을 움켜쥐었다. 오이카와가 싱글싱글 웃었다. 이 사람은 졸업을 해도 변한 것이 없었다.

“아아, 이 좋은 봄날에 실내에서 공이나 쳐대는 배구 바보들이라니.”

역시나 놀리는 게 분명했다. 카게야마가 울컥 눈썹을 좁혔다. 그래도 덩달아 밉살스러운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은 우선 이 사람에게 빚이 있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는 이 사람의 진심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담장 위로 배끔 고개를 들이민 나무들마다 하얗고 노란 꽃송이들이 소담히 앉아 있었다. 꽃은 대체 언제 피었지. 전혀 몰랐다. 벌써 봄이라니.
오이카와가 푹 한숨을 쉬었다. 웃고 있는 눈이 딱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이런 재미없는 녀석아.

“이렇게 날씨 좋을 때 연습하면 벌 받는 거야, 토비오쨩. 이런 날엔 좋아하는 소녀랑 사이좋게 꽃길을 거닐면서 꽃구경을 하는 거라구. 나는 조카랑 꽃놀이 가는데- 부럽지? 엄청 부럽지? 부럽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토비오쨩.”

아뇨, 전혀. 대답하고 싶었던 말을 카게야마는 묵묵히 혀 밑으로 삼켜 넣었다. 조카가 손을 흔들면서 채근을 했다. 얼른 꽃놀이를 가자고 손을 흔들며 채근하는 조카에게 틱틱 거리면서도 오이카와는 슥 손을 뻗어 조카의 작은 머리를 헤집어주었다. 그래, 가자, 가. 인사도 없이 홱 돌아서는 오이카와를 향해 카게야마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 그러고 보니. 오이카와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눈꼬리가 유난히 긴 눈이 카게야마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했다.

“붉은 벛꽃나무 밑에는 말이야. 시체가 묻혀있대.”
“……”
“조심하는 게 좋을걸?”

검은 눈이 당황한 듯 되물었다. 예? 오이카와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휘 흔들고 돌아서는 옛 선배의 뒷모습을 카게야마는 한참 황당한 듯 쳐다봤던가. 붉은 벚꽃나무라니, 시체라니.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뭘 조심하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이카와 토오루의 말이라서 허투루 들을 수는 없었다. 명심해야지. 생각하며 카게야마는 다시 학교를 향해 달렸다. 그러다 문득 귀 끝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저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떠올라서 그랬을 것이다.

“…소녀라니.”

그때 그 녀석이 생각났었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그래도 할 땐 확실히 하는, 자신이 던진 공의 궤적을 향해 풀쩍 뛰어오르는 그 오렌지색 멍청이 녀석.
가면 있겠지. 그래도 오늘은 내가 좀 더 일찍 도착한 거면 좋겠는데. 교문을 넘어 체육관을 향해 달리면서 카게야마는 괜히 고개를 푹 수그렸다. 자꾸 볼이 뜨거웠다. 자꾸 픽픽 웃음이 났다. 머리 위로 벚꽃이 하얗게 흩날렸다. 날이 따뜻해져서 그런 거라고, 그뿐이라고 카게야마는 생각했다.





*    *    *


오늘도 연습은 길었다. 흔한 패턴이었다. 예상대로 체육관에는 히나타가 먼저 도착해 있었고, 녀석은 텅 빈 체육관에서 퉁퉁 배구공을 튕기면서 카게야마를 놀렸다. 늦었느니, 굼벵이라느니, 오늘도 내가 이겼다느니 놀려오는 말에 카게야마는 본능적으로 울컥 열이 올랐다. 요새 나한테 너무 안 되시는 거 아니야, 카게야마씨? 실실 놀린 말에 카게야마는 기어이 뚜껑을 열었고, 멱살을 잡고 투닥거리다 배구공을 집어 던졌고, 던진 공에 녀석이 스파이크를 때리면서 자연스럽게 연습으로 이어졌다. 이것조차 일상적인 습관이었다. 하다 보니 열중하게 됐고, 열중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히나타의 도약이 서서히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난 후에야 카게야마는 자기 토스가 시작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슬슬 방전될 타이밍이었다. 바구니에 남아있던 마지막 공을 토스했고, 혼신의 힘을 다 해 뛰어오른 히나타가 스파이크를 때려넣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벌렁 체육관 바닥 위로 자빠졌다. 누워서 한참동안 숨을 가다듬었다. 카게야마가 두 발 옆에 누워있던 히나타의 발끝을 툭툭 건드렸고, 너 한 번 죽어보라며 히나타가 달려들면서 또 둘은 기운 좋게 한참 코트 위를 구르며 장난을 쳤다. 얼핏 돌아본 창문 너머는 이미 컴컴했다. 그제야 히나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엄마가 일찍 들어오라고 했는데!
흩어진 공을 주섬주섬 바구니에 쓸어담고 빈 물통을 챙긴 후에야 둘은 체육관을 나섰다. 건물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교정에는 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점점이 떠오른 가로등 빛을 따라 나란히 걸었다. 바람은 제법 따뜻했다. 이제 정말 봄인 듯 했다. 나란히 걷던 히나타가 걸음을 우뚝 멈췄다. 카게야마가 습관적으로 히나타를 흘깃 돌아봤다. 히나타는 열 걸음 정도 떨어진 담벼락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난히 둥그런 눈매가 어둠결에 반짝거렸다.

“꽃이다.”

담벼락을 따라 가지런히 심어져 있던 나무마다 꽃망울이 탐스럽게 피어올랐다. 하얗고, 붉었다. 실바람이 간간이 가지를 흔들 때마다 꽃잎이 춤을 추듯 밤의 어둠 속으로 날아올랐다. 우와. 히나타가 꽃의 움직임을 좇으며 눈을 둥그렇게 열었다. 예쁘다. 연신 감탄하는 작은 얼굴을 카게야마가 소리 없이 곁눈으로 훔쳐봤다. 바람결을 날아온 꽃잎 하나가 히나타의 뺨에 사뿐히 앉았다. 어. 히나타가 선 채로 얼음이 됐다. 카게야마가 짧게 쯧, 혀를 찼다. 하여튼 멍청이가. 모양새 좋은 손가락이 히나타의 뺨을 가볍게 스쳤다. 둥그렇게 열려있던 눈동자가 움찔 옅게 떨었다. 그 채로 카게야마가 뺨에 붙어 있던 꽃잎을 스르륵 떼어냈다. 바람결에 실린 붉은 꽃잎이 어둠 속으로 날아올랐다. 어. 히나타가 입을 일자로 꼭 다물었다. 이상했다.
우리 지금, 눈이 엄청나게 마주치고 있는데.

“……”

어색하다. 생각을 삼키며 카게야마는 가만히 히나타를 내려다봤다. 둥그런 눈은 그 잠깐 새에도 주인처럼 정신이 없었다. 움찔 떨다, 굳다가, 사정없이 일렁거렸다. 당황했다. 귀엽다.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어색한지 안절부절하다 히나타는 끝내 스르륵 눈길을 피했다. 이제 딴전을 피우겠지. 이 녀석은 늘 그렇다. 곤란하면 말을 돌린다. 그리고 딴전을 피우는 척 한다. 그런 소소한 습관들을 카게야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싶어 안 건 아니다. 그냥, 알게 됐다. 왜냐면 나는 계속 너를 보고 있었으니까.
지난 1년동안 보고 있었다. 그래서 알게 됐다. 이 녀석이 어떨 때 화를 내는지, 어떨 때 기뻐하는지, 또 어떨 때 좌절하고, 어떨 때 분한 기분을 느끼는지. 솔직히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는 못하겠다. 그 점에 대해서는 카게야마도 자신이 없었다. 너만큼 단순한 놈이 없어. 동시에 너만큼 복잡한 존재도 없다고, 나한테는.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 그래도 너무 많은 것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너에 대해서만큼은.
그래서 가끔 궁금했다. 너는 어떤 얼굴을 할까.
내가 너에게 지금, 키스하고 싶다고 하면.

“아, 맞다! 나 집! 일찍 가야한다니까, 오늘은… 그러니까, 어…”
“……”
“…카게야마?”

둥그런 눈이 크게 열리다 이내 천천히 일렁였다. 당황한 얼굴이었다. 걸음을 당겼을 때 좁은 어깨가 움찔 떨었다. 그게 히나타 쇼요 답지 않아서, 그게 귀여워서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녀석의 팔을 움켜잡았다. 히나타가 당황한 듯 버끔거렸다. 저기, 저기요? 저기, 카게야마씨? 카게야마가 울컥 눈썹을 좁혔다. 아, 어떡하지. 천천히 턱을 당겼다. 이게 왜 이렇게, 귀여워.
그때 녀석의 등 뒤로 그게 보였다. 동시에 그 말이 떠올랐다.
붉은 벚꽃나무 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 뭐야, 갑자기 사람 무섭… 카게야마? 야, 갑자기 손은 왜 잡…”
“……”
“카게야마? 저기. 저기요, 카게야마씨.”
“……”
“…??? 기절했어!?”




그날, 카라스노에 또 하나의 학교 전설이 탄생했다. 사랑에 빠진 소년과 소녀들이여, 담벼락 붉은 벚꽃나무 앞에서는 절대 키스하지 말 것. (*)







-
나홀로 전력이라지만 60분 맞춘다고 뒤를 막 썼더니 아주 엉망진창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전력 너무 오랜만이네요... 정말 2년만에 써본 ㅠㅠㅠㅠㅠㅠㅠ 무튼.
본래 전력 날짜는 어제였지만 어제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자는 바람에ㅠㅠㅠㅠㅠㅠㅠ 다른 일 좀 하다가 잠시 손도 풀 겸 뒤늦게 스스슥 써봅니다.... 어쨌건 카게히나 결혼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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