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다락, Other Fiction

Extra Form
장르 위장자

* 왜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아성명대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
* 아성명대 또는 명성명대, 이름 모를 어떤 모브 여인의 시점
* 비엔나에서 보낸 명대 나이 17세의 겨울을 멋대로 상상

* 별 내용은 없습니다(mm








“모차르트를 더욱… 좋아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처럼 웃으면서 당신은 덧붙였지요. 동생이,
“동생이 모차르트를 좋아하거든요.”






La Puerta

@trickste_r


BGM / 진선 <La Puerta>






당신과 나는 그 밤, 빈에 있었어요. 나는 당신의 모습을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답니다. 검정 벨벳의 칼라, 더블로 여민 체스터필드 코트. 마치 검은 사제복처럼 단단한 금욕으로 스스로를 에워싼 남자였지요. 문을 열고 들어온 당신의 어깨는 흠뻑 젖었어요. 나뿐 아니라 로컬*local,주점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아마 당신을 보고 날씨를 알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날 밤, 당신을 눈여겨보았던 것은 비단 젖은 코트 탓은 아니었겠지요.
무심한 당신. 당신은 몰랐겠지만 그날, 로컬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움직임을 따라 곁눈질을 했더랍니다. 당신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죠. 비엔나의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이 로컬에는 특별한 즐거움도 새로움도 없어요. 어느 카페, 어느 로컬에 가더라도 모두 빤한 얼굴들뿐이죠. 노랗거나 붉거나 혹은 가을의 낙엽 같은 머리칼, 하얀 피부, 깎은 듯한 골격. 회색과 파란색의 눈동자들 틈에서 당신은 어느 깊은 바다 속에 파묻힌 진주처럼 반짝거렸습니다. 까만 얼굴, 까만 눈동자. 사랑을 얻지 못해 투신해버린 젊은 처녀가 가라앉은 밤의 바다처럼 당신의 눈은 깊고 아름다웠지요. 나는 그런 눈을 처음 보았어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답니다. 이 대륙의 동쪽 끝자락에서 멀고 먼 하늘을 날아 극서의 오스트리아까지 찾아온 당신은 먼 손님이었고 이방인이었지요. 그럼에도 당신은 체스터필드 백작처럼 그 우아한 롱코트를 제 몸인 듯 소화해리는 그런 이였답니다.
당신이 바에 앉을 때, 로컬의 수많은 여인들이 동석한 연인의 눈치를 보았지요. 나는 운이 좋았어요. 그날 아침에 나는 이제 첫 번째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남자를 내 약지에 끼워져 있던 반지와 함께 내 저택에서 쫓아냈으니까요. 당신이 마이스터에게 맥주를 주문할 때 나는 요령 좋게 당신의 곁에 앉았지요. 덕분에 당신의 그 검고 깊은 눈망울을 마주 보며 인사를 했답니다. 당신은 퍽 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입고 있던 코트처럼 당신은 노골적으로 어깨를 흠칫 뒤로 물렸었죠. 그래도 당신은 내가 권한 잔을 거절하지는 않았었답니다. 기본적인 예의가 몸처럼 배어있던 사람이었죠.
빈이 처음이냐고 나는 물었습니다. 당신은 고개를 흔들었지요. 아뇨. 생김처럼 낮고 근사한 목소리였어요. 들창의 틈을 비집는 겨울바람과 같았죠. 어디에서 왔어요? 내 말에 당신은 또 한 번 짧게 대꾸했습니다. 중국. 나는 그때 잠시 아득해졌답니다. 중국이란… 그 얼마나 먼가요. 푸치니의 오페라 속에서나 만났던 그 이름에 나는 퍽 흥미가 생겼지요. 여행? 당신은 말이 없었습니다. 말수가 참 적었지요. 이른 첫눈에 젖어버린 낙엽처럼 당신은 급히 맥주를 들이켰습니다. 이런 남자들을 나는 이제껏 몇 번이고 만났답니다. 그제야 나는 당신의 눈이 왜 그토록 깊었는지 알아차렸는지 몰라요. 참으로 사연이 많은 눈이었답니다. 어떤 아득한 슬픔과 비극으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친, 그럼에도 그 수렁에서 헤어 나오는 법을 몰라 끝을 모르고 침전되어가는 그런 이들의 눈이죠. 마음과 감정에 익사해버릴 것만 같은 그런 눈이었지요. 나는 그런 남자들을 보면 으레 슈베르트의 곡들을 떠올린답니다. 그날 내가 당신에게 말했던 것처럼요.
당신은 모차르트를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동생 때문이라고 했지요. 동생을 많이 좋아하나봐요? 반은 농담처럼 나는 물었습니다. 영원한 겨울처럼 외롭던 얼굴이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오랜 눈보라가 지난 후에 비치는 햇살처럼요. 선잠에 뒤척이던 곰들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봄의 빛줄기처럼 말이죠.

“똑똑하고 귀여운 녀석입니다. 올해로 열일 곱 살인데 제 앞가림을 퍽 잘 하거든요. 얼마나 똑똑한지 모릅니다. 물론 저나 형님, 누님 눈에는 아직도 철부지지만요.”

그날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반절은 아마 당신의 동생에 대한 것들이었겠지요. 여섯 살 터울의 막내 동생이라고 했습니다. 술을 마신 탓인지, 아니면 당신의 그 아끼는 동생 탓이었는지 당신은 퍽 말이 많았지요. 겨울처럼 과묵하고 말이 없던 당신은 종종 웃었습니다. 당신이 비엔나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 황량한 계절에 오랜 시간을 날고 날아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도 당신의 동생이 겨울의 비엔나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지요. 나는 그 녀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주고 싶어요. 당신이 크고 검은 눈을 둥그렇게 접으며 웃었습니다. 모두 다요, 내가 줄 수 있는 건 전부 다… 뭐든지. 검고 깊던 눈이 밤바다처럼 일렁거렸지요. 왜냐면 나는…. 당신의 뺨이 천천히 젖었습니다. 왜냐면 나는,

“가질 수가 없거든요.”

그날, 우리는 새벽이 하얗게 저물도록 함께 있었어요. 당신은 기억하고 있을까요. 불꽃처럼 급히 술을 들이키면서도 웃던 당신, 웃으며 울던 당신. 당신은 참으로 서러웠답니다. 불구와도 같은 사랑이라고 했었지요. 그 사랑에 당신은 다리가 잘린 것처럼 마음을 절었습니다. 가슴에 불길이 일어도 끄는 법을 알 수 없어서,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른 이 푸른 물길을 스스로 헤어 나오지를 못해서 당신은 그렇게 서럽고 외로웠답니다.
날이 밝을 무렵에야 우리는 헤어졌어요. 두 대의 택시가 왔고, 당신은 앞서 도착한 택시를 내게 양보했습니다. 택시에 오르며 나는 이곳에 오래 계실 거냐 물었었지요. 당신은 사흘 후에 중국으로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어제보다 잠겨 있었고, 얼굴은 어제보다 파리했었지요. 그래도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동생이 싫증을 잘 느껴서요. 검고 깊은 눈이 둥그렇게 웃었습니다.

“명대… 명대라고 합니다, 그 녀석.”
“……”
“참 좋은 이름 아닙니까.”

택시가 출발한 후에야 나는 당신이 내게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그래서 당신의 명함이 내 손 안에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기로 했답니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그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요. 무심한 당신, 당신 마음 안에 피어오르는 그 불꽃처럼요. 그럼에도 끝내 놓을 수 없을 그 이름처럼요.






#

명성이라는 이름이었지요. 하지만 당신을 퍽 아끼는 이들은 모두 당신을 아성이라 불렀습니다.
그때 당신의 나이가 열 살이었다지요. 당신을 구출해 이 집에서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당신들 가족의 별장을 돌보던 관리인이었답니다. 모두가 당신을 아꼈고, 당신 역시 그들을 아꼈다구요. 나는 중국에 대해서는 잘 모른답니다. 오페라에서는 당신의 이름이 왜 달리 불리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당신들 가족의 관리인은 인근 주민 행세를 하던 나에게 몹시 친절했답니다. 그는 당신은 죽어도 가족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말했었지요. 왜냐면, 그 분에게 막내 도련님은 특히 각별하거든요. 명대, 명대 도련님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분은 배신할 수 없을 거예요. 명대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분이시니까.”

무심한 당신, 나는 신뢰와 맹세를 믿지 않는답니다. 가족의 유대라든가 사랑조차 나는 믿지 않아요. 그런 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왼손 약지의 반지와 같은 것이죠. 나는 그걸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날 당신 별장의 담장 안쪽을 서성거렸던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죠. 다른 의미는 없었답니다. 나는 잃을 것도, 더 가지고 싶은 것도 없어요. 당신들의 정치적인 상황에도 관심이 없답니다. 왜냐면, 그런 시대니까요. 어떤 것을 가져도 쉬이 잃어버리는 그런 세상이랍니다. 그러니까 오해도 착각도 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것들뿐이니까요.
그래요. 그날 이야기를 다시 해볼까요. 그날, 당신은 자정이 다 되고난 후에야 별장으로 돌아왔었지요. 우리가 아침을 함께 보냈던 바로 그날이었답니다. 별장의 관리인도, 식사를 담당하는 요리사도, 당신의 가족들도 모두 잠든 깊은 밤이었어요. 당신이 오기 전까지 별장은 고요했고, 택시에서 내린 당신은 조용히 정원을 가로 질러 걸었습니다. 당신의 옷차림이 어젯밤과 다름없었던 것으로 보아 당신은 나와 헤어진 후에도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당신은 현관 앞에 선 채로 잠깐 주변을 살펴보았었지요. 혹시 누가 깨어있지는 않을까 걱정 되고 염려 되어 당신은 그렇게 했을 거예요. 무심한 당신, 그만큼 다정하고 상냥한 당신. 당신은 조용히 문을 열었지요. 이윽고 천천히 문이 닫혔을 때 나는 그만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 보았답니다. 계속 어두웠던 발코니에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지요. 당신이 켠 불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쉽게 알아차렸습니다.
발코니 안쪽에서 문이 열렸습니다. 앳된 미성이 잔뜩 화가 나 있었지요. 공기가 매섭게 날을 세웠습니다.

“…형은 종일 뭐하는 거야? 왜 이제 들어와!”

그러니까, 일부러 엿들었던 것은 아니었답니다. 하필 내가 숨은 그림자가 당신과 너무 가까웠던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집에 숨어들었던 것처럼 발코니 밑에서 숨을 죽인 것도 내겐 그저 우연이었을 뿐이지요. 발코니 안쪽에서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잔뜩 낮은 당신의 목소리는 아침보다 더 지쳐 있었지요.
목소리 낮춰, 다들 주무신다. 당신이 말했습니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헛웃었지요. 기분이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 목소리가 어쩐지 당신을 닮았다고 생각했었어요. 지난 밤 술에 취해 흔들리던 당신처럼요. 슈베르트를 닮았으면서 모차르트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당신처럼요.

“오늘 같이 스키 타러 가준다고 했었잖아.”
“일이 있었어. 너는 왜 따라 안 갔어. 누님도, 형님도 계셨잖아.”
“갈 기분이 아니었으니까. 형 때문이잖아.”
“내일 가자. 오늘은 그만하고 자…”
“여자 만났지?”
“……”
“비엔나까지 와서 연애라니, 안하던 짓 한다고 명루 형한테 이를…”

짝, 공기가 매섭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발코니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짧고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지요. 그 어색의 간극을 깬 것은 당신이었습니다.
미안. 당신은 사과를 했지요. 해도 되지 않을 사과를 한 이유에 대해 알기에 그 소년은 너무 어렸을 거예요. 소년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때려, 어떻게 형이 나를 때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형이 나한테 이래!”
“목소리 낮추라고 말했다.”
“영원히 내 편이라고 말했던 게 누군데, 나만 좋으면 다 좋다고 말한 게 누군데!”
“……”
“변한 거야? 귀찮은 거야? 여자 생겨서 이제 애보는 거 귀찮아? 아, 그래. 여기 여자야? 그럼 결혼하면 형도 비엔나에서 사나? 그러게? 그걸 명루 형이 이해해줄 것 같아? 나는? 나는!”
“……”
“또 애가 성질낸다고 생각하지. 어려서 지 성격대로 한다고,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언제 그런 소릴 했…”
“떠나려고 그러잖아.”
“……”
“떠날 거잖아.”

소년은 참 바빴지요. 제 멋대로 성질을 부리다, 철없이 굴다, 소리를 높이다, 금세 풀이 죽더니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어떻게 보아도 어린 아이의 생떼처럼 들렸었지요. 당신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가지마. 소년이 말했지요. 그 목소리가 어쩐지 젖어 있었습니다. 아침나절의 이슬처럼요. 겨울에 섧게 쏟아지는 늦은 비처럼요. 당신이 물었습니다. 왜. 소년이 말했지요.
몰라.

“……”

당신은 대답 하지 않았습니다. 발코니 위는 조용했지요. 소년은 인내가 퍽 짧았습니다. 아직 그만큼 상처 받지 못한 탓이겠지요. 아직 뭔가를 잃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형? 소년이 당신을 불렀습니다. 답 없는 당신을 재차 불렀지요. 목소리가 전과 달리 허둥거렸습니다. 급하고 불안한 목소리였었지요. 아마 소년의 그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던 건 당신뿐이었을 거라고, 나는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더랍니다. 비엔나의 겨울을 좋아할 수 있는 당신, 모차르트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당신.
그때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아성 형?”
“……”
“왜 아무 말이 없… 형?”
“……”
“잠, 형, 지금 뭐하는… 웁,!”

발코니가 소란했습니다. 뭔가가 우당탕 넘어졌고, 깨졌고, 찢겼고, 구르며 부서졌었지요. 간헐적인 호흡이 몇 번이고 같은 단어를 다급하게 더듬었습니다, 형, 형, 혀엉! 소리는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했었지요. 주파수가 잡히지 않는 라디오와 비슷했어요. 그때 나는 처음으로 머리를 들어 위를 올려다봤습니다. 들키면 곤란할지 모른다는 걱정보다 나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본능적 두려움 탓이었을 거예요. 하얀 천이 크게 펄럭이며 가라앉았지요. 그 너머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그 사제복 같은 코트를 입고 있던 당신을요. 침대에 앉아 아래에 놓인 것이 달아날새라 양팔로 꽉 움켜 누르고 있던 당신을요. 등빛에 반쯤 얼굴을 드러내고 있던 당신을요.
왜? 팔을 잡혀 있던 소년이 물었지요. 검고 깊은 눈이 외롭게 웃었습니다.

“네가… 몰라서.”

툭 등빛이 꺼졌습니다. 빛이 사라진 발코니에 어둠이 내렸지요. 나는 도무지 그 깊고 짙은 어둠을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날 참 오랫동안 달을 보았어요. 누군가 예리한 칼로 잘라낸 것만 같은 반달이었었지요. 달이 정수리를 지나쳐 천천히 기울었습니다. 방은 내도록 조용했더랍니다. 달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려야 할 즈음이 되었을 무렵에야 발코니에 누군가 나타났지요. 소년이었답니다. 당신이 아꼈던, 당신이 사랑했던, 그러나 차마 당신이 사랑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소년이었지요.

“……”

그 밤을, 그리고 그 얼굴을 나는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눈구름이 걷혀 있던 말간 밤하늘과 영롱하게 반짝이던 별빛, 둥그런 달무리에 평화롭게 싸여 있던 반쪽짜리 달. 달과 별을 잠잠히 올려보고 있던 한 소년의 얼굴을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답니다. 맨 살결을 겨울 밤바람에 드러내고도 물러서는 법도, 부끄러운 법도 몰랐답니다. 어린 태를 갓 벗기 시작한 맵시 좋은 뼈대를 하얗게 빛나던 얇은 살갗이 틈 없이 감싸고 있었죠. 발코니에 기댄 채 반쯤 바깥으로 내민 상체 곳곳엔 붉은 상흔들이 꽃처럼 피었답니다. 마치 붉은 오피움과 같았어요. 잠잠히 닫은 입술의 맵시와 빚은 듯 놓여있던 콧날이 도자기처럼 보드라워 보여서 저도 모르게 허공을 향해 손을 뻔 했다는 사실까지 고해할 필요는 없는 거겠죠. 아름다웠고, 근사했습니다. 눈가가 발갛게 부어 있었지만 그 눈은 곧고 맑았지요. 별처럼 아른거리던 눈이 천천히 웃었을 때, 나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 했답니다. 그제야 나는 알았어요. 영원히 이길 수 없는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을, 그리하여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을.
발코니 뒤편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소년에게 다가왔지요. 그보다 더 웃자란 팔이 소년의 어깨에 가만히 코트를 덮어 주었습니다. 소년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 팔을 밀어내거나 쳐내지도 않았었지요. 나는 발코니 아래의 눅눅한 어둠 속에서 자꾸만 떨었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랑이 있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소녀처럼요. 세상 모든 사랑이 밝고 화사할 수는 없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 여인처럼요. 달빛이 하얗게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졌지요.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두 팔이 소년을 단단히 끌어안았습니다. 소년은 그럼에도 너무나 태연했고, 담담했습니다. 그 간극에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슬퍼져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지요.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이 기분을 나는 다시 느낄 수 있을까요.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살며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을까요. 어쩐지 자신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금에도 말이지요.



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랍니다. 이 편지가 과연 상해까지 닿을는가는 모르겠어요. 당신은 아마 깜짝 놀라겠지요. 왜냐면 당신은 이미 나를 잊어 버렸을 테니까요. 딱히 당신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사람들은 본래 그렇게 쉽게 잊어버리죠. 그래야 남아있는 이름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요. 마음이란 그런 것이죠. 문을 여는 것과 같아요. 이 문을 열고, 저 문을 열어보다 보면 한 번쯤은 잊고 싶지 않은 이름과 마주치는 법이지요. 그렇게 불필요한 이름들을 잊고 지우면서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상대를 찾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서툴고 외로운 것이 아닐까요.
나는 내일 세 번째 남편과 결혼을 한답니다. 축하를 해줄 필요는 없어요. 내 남편은 예식이 끝난 후에 다시 군대로 돌아갈 테고, 세상은 너무 변했으니까요. 그래도 나는 그날 내가 보았던 것들이 영원히 변하지 않기를 바라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랍니다.
행복하세요.
오래, 아주 오래.



- 1939년, 어느 여름, 빈에서

명성에게










역시 뭔가를 충동적으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오늘도 절실하게 배웠습니다 ^_ㅠ.... 하지만 아성명대는 소중한 것.....
사실 중화티비 본방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아직 위장자를 3화까지 밖에 보질 못 했어요ㅠ_ㅜ 차후 전개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우선 이 글이 현 시점에서 제가 느끼는 아성명대...... 흑흑 위장자 너무 좋아요ㅠ... 너무 취향이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밍나 위장자 보세요ㅠ.. 중화티비.. 11시.....


+ 제목인 라푸에르타(La Puerta)는 문(門)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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