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다락, Other Fiction

Extra Form
장르 랑야방

*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모티프 삼아 끼적인 토막입니다.
* 정매, 정왕종주, 경염임수
* 다소간 원작 날조 주의, 엔딩 스포일러 주의
* 우선 상편부터(mm







옛날, 먼 옛날에 너른 남방을 두루 다스리던 나라가 있었다. 나라는 평화로웠다. 오랜 혼란을 지나 나라는 부국 했고 강성했으며 황제의 성품은 어질고 덕이 많았다. 허나 황제는 좀처럼 웃는 법이 없었다. 귀공인 듯 준수한 황제의 얼굴에는 언제고 깊고 짙은 시름이 어둠처럼 따라 다녔다. 백성들은 황제가 그토록 항시 수심이 가득한 연유를 알지 못 했다. 웃지 않는 병에 든 것이라는 농마저 떠돌았다. 악방의 악사들은 금을 뜯으며 황제에 대해 이처럼 노래했다. 오래도록 함께 큰 정든 매화여, 나에게 천하를 주기 위해 너는 성급히 꽃을 피웠다, 설중에 핀 고운 매화여, 죽음이 너를 탐하여 봄이 오기 전에 천하를 주고 대신 너를 거두었으니, 천하의 주인은 영영 웃음을 잃고 말았네.
태후는 늘 황제인 아들에 대해 염려가 많았다. 의녀 출신으로 학식이 높고 세상사에 밝았던 태후는 아들이 웃음을 잃은 것이 마음의 병환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어느 날, 태후는 황제의 침소에 들어 고개를 조아리며 고하였다.
「폐하, 끈을 잃은 말(馬)은 제 아무리 푸른 들을 달려도 즐거움을 모르고, 써주는 이 없는 검(劍)은 그 아무리 좋아도 이름을 얻을 수 없는 법입니다. 수신(修身)하고 제가(齊家)하여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한 것인데 폐하의 마음에 이리 시름이 깊으시니 어미는 혹여 그 몸을 해치실까 염려가 깊습니다.」
하여 눈물을 보이니 효심 깊은 황제가 그 앞에 나아와 태후의 손을 말없이 움켜잡았다.
「어머니, 저의 괴로움은 사사로운 것이니 염려치 마십시오.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염려하게 두었으니 저는 불효한 자식입니다.」
태후는 자식의 손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천하의 주인이라 하여 어찌 아픔이 없겠는가, 어찌 괴로움이 없겠는가. 제 태로 열 달을 품어 세상에 낸 자식의 아픔을 어찌 부모가 모르는 체 하겠는가. 하여 태후는 다시 황제에게 고개를 숙이며 고하였다. 묘책이 있다 하였다.
「오래 전, 이 어미가 아직은 신분이 자유로워 각지를 떠돌며 의술을 공부하던 시절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폐하, 저 깊고 험준한 매령의 골짜기에는 이름 없는 협곡이 하나 있사온데…」








도하渡河




루카 씀








~ 上 ~






*

죽음이 어둠 중에 속삭였다. 경염아. 경염의 반듯한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굴러 떨어졌다. 죽음이 꿈 너머로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재차 말했다. 네 곁에 누운 자는 본래 내 것이다.
경염이 몽중(夢中)에 이불 속에서 마주 얽은 손을 꽈악 움켜잡았다. 잡혀있던 마른 손은 기척도 없이 잠에 빠져 있었다.

「내 그를 한 번은 놓쳐주었지. 삼도천의 문턱에서 흠뻑 젖은 그 자를 내 모르는 척 외면해주었다. 운명의 물길이 그를 다시 이승으로 떠밀었지. 허나 경염아. 내 언젠가 다시 내 것을 취하러 올 것이다.」

경염이 부르르 고개를 떨었다. 아니, 아니 된다. 그리는 두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낮게 웃으며 먼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경염은 희번득 눈을 열며 화급히 몸을 일으켰다. 침상(寢牀)의 이불은 흠뻑 젖어 있었다. 또 그 꿈이다. 벌써 수일을 반복해 꾸었던 꿈을 되씹으며 경염은 제 얼굴을 쓸었다. 이미 반절은 타오른 등불이 밀실의 허공에 꽃처럼 일렁거렸다. 경염이 제게 꾹 잡힌 손을 따라 손의 주인을 잠잠히 내려 보았다. 이 편을 향해 잠자코 고개를 돌려놓은 채로 매장소는 잠에 빠져 있었다. 경염이 베개 위로 흩어진 검은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수아야. 손결을 따라 옅게 떨던 얼굴은 금세 다시 꿈속으로 가라앉았다. 등의 불꽃을 따라 병색이 완연한 얼굴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밀려오며 다시 쓸려 나갔다. 잠깐 어둠이 드리우는 것조차 아쉬워 경염은 제 손을 거두지 못했다. 행여 어둠에 묻힐까 마음을 졸이며 경염은 다시금 그 얼굴을 눈 안에 새겨 넣었다.
이제는 퍽 나이를 먹었다. 얼굴의 생김조차 전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그 귀하고 영롱한 빛은 어린 날과 다름없이 여전했다. 청아하고 맑으며 섬세했다. 경염이 하얀 뺨을 찬찬히 쓸어내렸다. 아귀에 힘을 주면 부서질까 싶었다. 이 손 틈을 빠져 나갈 물처럼 너는 그리 고요하고 맑았다. 수아야. 같은 이름을 더듬으며 경염은 울컥 입술 끝을 짓씹었다. 그 이름을 다시 부를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경염은 종종 아득해졌다. 그 이름을 부르노라면 무시로 숨이 막혔다.
오래도록 그 이름을 부르지 못 했었다. 너는 내 오랜 망령이었다. 나는 너로 인해 살았었고, 또 너로 인해 죽었었다. 살아도 나는 죽었었다. 매령의 골짜기에서 함께 죽지 못한 내가 미웠었다. 강산이 바뀔만큼의 시간이 흐르고도 나는 매순간 너로 인해 괴로웠고, 너로 인해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다 한 사내가 내 삶을 향해 흘러 들어올 때까지 나는 그랬을 것이다. 사내는 내가 잃은 모든 것들을 내게 떠밀었다. 떠밀린 왕관, 내 어머니의 자리, 내 형님의 자리, 그리고 임수의 자리. 그 사내가 모두 내게 주었다.
헌데 내가 너를 어찌 놓을까. 경염이 매장소의 어깨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한참 달게 꾸는 꿈을 깨울까, 행여 부서질까 하여 힘조차 주지 못 했다. 소리 없이 쓸며 하얀 목에 경염은 입술을 묻었다. 차마 이를 세우진 못하였다. 수아야. 네가 부서질까봐, 기껏 다시 찾은 너를 나는 다시 잃을까 염려되고 괴로워서.
수아야. 거푸 부르며 경염은 굳게 호흡을 악다물었다. 커단 어깨가 빈 울음처럼 떨었다.

“내가 죽어도 너를 다시 꺾이게는 두지 않을 것이다.”

임수는, 매장소는 답하지 않았다. 눈을 열어 그 떨리던 얼굴을 내려 보는 법도, 잠자코 그 너른 등을 쓸어주는 법도 없었다. 잠은 진즉 깼을 것이다. 해도 눈을 감고 자는 체를 하는 것은 너를 위해 그리하는 거야. 너를 위해 나는 어떤 것도 답하지 않을 거야. 뺨을 타고 떨어진 것들이 벌어진 목덜미를 찬찬히 타고 흘렀다. 목덜미가 소리 없이 젖었다. 매장소가 기척 없이 가만히 입술을 짓씹었다.
살날은 차피 머지않았다. 그걸 알기에 너는 이리 하는 것이겠지. 그럴 거라면 나는 임수로 죽고 싶어. 그 말을 매장소는 이번에도 입 밖으로 밀어내지 않았다. 등의 불씨가 점차 잦아들었다. 이제 저 심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경염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임수의 명패에서 붉은 천을 걷어낸 것은 그로부터 꼭 한 달 뒤의 일이었다.





*

이 골짜기에는 이름이 없지요. 린신은 말했다. 떠난 자들의 땅이거든요.

“어쩌자고 안내역을 떠맡아서 유랑 중에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원.”

매령의 협곡으로 경염을 안내해준 것은 린신이었다. 남쪽의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다 태후가 몽통령을 통해 보낸 연통을 받았을 적부터 린신의 기분은 줄곧 좋지 않았다. 경염이 린신과 합류하던 지점에서부터 호위는 없었다. 두 사람뿐인 유랑이었다. 린신은 앞서 말을 몰면서도 쉼 없이 투덜거렸다. 비류 녀석에게 원숭이를 보여주기로 했는데. 경염은 입이 무거웠다. 반응이 별 반 없으니 린신도 한참을 불퉁거리다 제 풀에 지쳐 입을 다물고 여로를 재촉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보름을 꼬박 달려 도착한 매령에는 매화가 가득했다. 매화가 많아 매화의 골짜기(梅岺)라던 이름다운 계절이었다. 협곡을 따라 천지에 하얀 꽃이 눈처럼 흩날렸다. 이곳엔 늘 눈이 내리지요. 린신은 그렇게 소회했다. 여깁니다. 말을 매고 여장을 풀며 경염은 눈을 둥그렇게 여는 것으로 의문을 표했다. 린신이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재차 강조했다. 여기, 여기란 말입니다. 그 녀석을 거둔 자리, 그 녀석을 처음 만난 자리. 그 녀석이 죽음을 건너온 자리.

“시체인 줄 알았었지요. 이 땅은 죽은 자의 협곡이니까요. 죽은 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으니 녀석도 뭐, 개중 하나이겠거니 했지요. 차피 죽었을 것을 알면서도 숨은 붙었는가 확인이나 해보자고 발끝으로 한 번 툭 쳤더니, 허. 이 시신이 대뜸 내 발목을 덥썩 잡더라고.”
“……”
“그리고는 그러덥니다. 살아야한다고, 허니 살려달라고.”

린신이 처음 매장소를 거둘 때 눈이 쌓였던 자리에는 매화의 꽃잎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하얀 꽃잎 위에 자리를 펼치고 린신은 주변을 둥그렇게 돌아가며 부적을 붙였다. 누워요. 린신이 턱짓을 했다. 신을 벗고 경염은 깔아둔 자리에 다리를 뻗으며 천천히 누웠다. 협곡은 좁았다. 좁은 협곡이 맞물린 틈으로 하늘이 파랗게 펼쳐져 있었다. 린신이 잔을 채웠다. 천천히 술을 뿌리면서 린신은 말했다.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명천(冥川) 밑에는 온갖 것들이 살고 있지요. 녀석들은 살아 호흡하는 객(客)들을 별로 좋아하질 않아요. 눈을 뜨시면 가장 먼저 눈앞에 보이는 배중에 가장 허름하고 낡은 배를 골라요. 아, 이건 노자입니다. 손에 쥐고 계십시오. 사공이 꽤 시끄러울 겁니다. 녀석들은 항상 손님들에게 호기심이 많거든. 어디에서 왔느냐, 무슨 죄를 지었느냐, 아주 쉼 없이 물어볼 거라고. 그러면 딱 입을 다물어요. 뭐, 말수야 보통 적은 분이 아니시니 평소처럼만 하시면 될 일이지만.”
“……”
“녀석과 함께 돌아오고 싶다면 세 가지만 명심하면 됩니다. 첫째, 말하지 말 것. 둘째, 숨소리를 크게 내지 말 것. 그리고 셋째, 돌아보지 말 것.”

그럼 뭐, 살펴 가십시오. 린신이 농처럼 인사하고 가부좌를 틀어 앉았다. 부적이 허공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하얀 매화, 파란 하늘, 붉게 빛나던 부적의 빛이 한데 얽힐 때 경염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윽고 깊고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 길고 먼 굴의 끝에서 누군가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소년이었다. 소년이 돌아보며 경염을 향해 함박 웃었다. 느려 터져서는. 야, 물소! 소년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이 편을 향해 재게 걸어왔다. 그래. 경염은 생각했다. 너는 그랬었다. 너는 그리 무엇이건 성급했었다. 늘 나를 답답해했고, 늘 나를 채근했다. 진중하지 못하다고 너는 장군께도 즐겨 혼이 났었다. 네 벗인 경염을 보라며, 어찌 저리 어른스럽고 진중한지 아느냐며, 반만 좀 닮아보라는 장군의 잔소리에 너는 장난스레 웃으면서 그리 말하고는 했었다. 그러니까 제가 경염의 몫만큼 먼저 걷고 있는 것뿐이라구요.
자, 경염. 손을 뻗으며 소년이 웃었다. 먼 과거의 편린처럼 아득하게 웃으며 소년은 말했다. 서둘러.

「네 몫까지 나는 앞서 갈 테니까.」

소년이 홱 손을 거뒀다. 그 채로 등을 돌리며 소년은 긴 어둠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경염이 화급히 그 뒤를 쫓았다. 너는 어째서 매사 그리 서두르는 것일까. 무엇이 급해 운명은 너를 그리 채근했을까. 재게 걷던 걸음이 점차 달리기 시작했다. 가지마. 좇으며, 달리면서 경염이 연거푸 같은 생각을 짓씹었다. 가지마라, 수아야. 거리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이윽고 저 먼 굴의 끝을 향해 달리면서 소년은 즐거운 듯이 웃었다. 잡아라, 잡아봐라, 이 느린 물소야. 소년이 달리며,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잡으면 네 소원이 무엇이건 다 들어주마. 경염이 밭은 숨을 삼키며 힘껏 달렸다. 조금씩 거리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열 걸음, 다섯 걸음. 그러다 마침내 지척까지 바싹 다가왔다. 경염이 소년의 어깨를 단숨에 낚아챘다. 굴의 저 편에서 빛이 환히 쏟아졌다. 소원을 말해. 빛을 업은 채로 소년이 말했다. 경염이 입술을 달싹였다. 수아야, 내 소원은…
눈이 떠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

망울이 깊은 눈이 화급히 열렸다. 하얗다. 경염은 가장 먼저 그 생각을 했다. 온 천지에 매화를 닮은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하늘에는 태양이 둥그렇게 걸렸고, 들판을 따라 강물은 유려한 선을 그리며 저 너머로 흘러갔다. 사람들은 도처에 자리를 잡고 연을 날리거나 차를 마시거나 혹은 부채를 펄럭이며 시를 읊고 풍광을 감상했다. 아이들은 꽃밭을 뛰어다니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경염의 눈길이 잠시 황망해졌다. 평화롭다. 하여 경염은 자신이 두 발을 딛고 선 곳이 도무지 어디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우선 배를 타기로 했다. 강을 따라 정박된 조각배 앞에서 사공들은 저마다 장기를 두거나 차를 마시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객(客)을 알아본 사공들이 경염에게 손짓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배의 생김도, 사공의 차림새도, 명기되어 걸려있는 삯도 제각각이었다. 서푼, 닷푼을 외치던 사공들을 잠잠히 지나치며 경염은 움켜쥐고 있던 지전을 잠시 꺼내 보았다. 린신이 경염에게 지전을 쥐어주며 가장 낡고 허름한 배를 찾으라고 했었다. 배들은 모두 좋았다. 사람 서넛은 너끈히 탈법한 커다란 배를 지났을 때에야 경염은 비로소 그늘 속에 숨어있던 작은 배 하나를 발견했다. 배는 기름칠을 하지 않았고, 과연 물에 뜨기는 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낡았다.
저 배다. 경염은 곧장 배를 향해 걸었다. 사공은 대나무로 짠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로 정박한 배의 선미에 기댄 채로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경염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사공이 물을 맞은 듯 몸을 떨며 부스스 고개를 들었다. 경염이 우뚝 굳었다. 삯을 받지 않는다는, 배 곁에 선 표지판을 발견한 덕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공이 사람 좋은 얼굴로 볼을 긁적거렸다. 하마터면 입을 열어 말을 할 뻔 하였다.
형님.

“이게 얼마만에 태우는 손님이신지를 모르겠네. 삼도천을 건너실 겁니까?”

경우 형님.











(계속)

우선은 이쯤에서 잠시 끊어갑니다 ^_ㅜ... 뒤는 나올까요. 뒤도 있겠죠 허허허허... ㅠㅠ 무튼 변신 이야기를 다시 읽다 갑자기 불현 듯 이 이야기를 정매로 보고 싶어서 그만 사고를 쳐보는데 별 내용은 없는ㅠㅠㅠㅠ 명시했듯 이 글의 모티프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엔딩에 대해선 아직 뚜렷하게 생각하질 않았어요. 써봐야 알 것 같은... 하지만 뒤는 나올까요22222 요즘 왜 이렇게 글쓰는 게 귀찮은지 모르겠다며ㅠㅠㅠㅠ
무튼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ㅜ_ㅜ// 뒤도 기회가 닿으면 이챠이챠 써서 들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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