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주말을 맞아 또 슬그머니 백업

* 사랑 받으면 꽃이 피어나는 세상에서 어느날 붉은 꽃 한 송이 핀 이즈쿠의 이야기

* 캇뎈



BGM / 단비(Sweet Rain) - 사랑이 꽃을 닮아 (Piano)


http://youtu.be/fMQmGVJldNA






카츠키 그리고 이즈쿠에게

루카 씀





이 피었습니다

07 ~ 09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 손으로 가장 먼저 지워버렸던 이름이었다. 나를 좋아할 수도 있을 거라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유일한 존재였다. 내 생의 가장 오랜 이름이었고, 가장 무거운 존재였고, 더불어 가장 아픈 자리였다. 내게 있어서는 영원히 일어날 수 없는 두 가지 일 중 하나였다. 내가 갑자기 개성을 가지게 되는 일, 그리고

캇쨩이 나를 좋아하는 일.

세상은 일어나지 않는 일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기적은 어쩌다 한 번 일어나기도 했다. 무개성이었던 내가 우연히 올마이트를 만나 개성을 계승 받는 입장이 된 것도 내게는 기적이었다. 그렇다면.

기적일까?

나는 생각했다. 목 뒤에서는 이제 제법 무거워진 꽃이 천천히 흔들거리고 있었다. 거울을 비출 필요도 없이 시선만 흘깃 뒤로 돌려도 이젠 꽃이 보였다. 보일듯 말듯 언뜻 비친 꽃잎은 붉은 색이었다. 눈을 비벼가며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붉었다.
흐, 웃음이 났다.

“아냐. 캇쨩이… 아무리 그래도 캇쨩이 날…”

좋아할리는 없어. 슬프게도 그건 사실이다. 혹시라도 캇쨩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가지기에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을 알았고, 그만큼 수많은 데이터들이 이미 견고한 벽처럼 축적되어 있었다. 미안, 캇쨩. 너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이미 너를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싫어하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흐…”

아닐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눈이 붉은 사람이 드물다고는 해도 세상에 오직 너뿐인 것은 아냐. 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너뿐인 것도 아닐 거야. 분명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곳에 이 꽃을 피워준 사람이 있겠지. 하지만 그게 너는 아닐 거야.
거듭 생각하면서 나는 바닥으로 쏟아졌던 올마이트 피규어를 다시 창턱에 세워두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젠 옷깃 속으로 다 넣지도 못할만큼 자라버린 꽃망울을 조심스럽게 정돈한 후에 나는 가방을 둘러매고 현관을 열었다. 그러다 나는 바깥 공기에 잠시 숨이 막혀 선 자리에서 휘청거렸다. 꽃향기가 짙었다. 엄마가 주방에서 내다보며 의아한 얼굴을 했다.
별 거 아니에요. 나는 엄마가 볼 새라 재빠르게 등을 돌리고 흐, 웃으며 선수를 쳤다. 그냥 꽃 향기가 심해서… 엄마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니? 엄마는 아무 향기도 안 나는데.”
“……”
“내년엔 마당에 라일락이라도 한그루 심어야겠어. 동네는 다들 봄꽃으로 요란한데 우리 집은 봄 같지가 않네.”

그때도 꽃 향기가 났었다. 달고, 향긋하고, 보드라운.
봄의 냄새였다.

향기는 온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혹시나 싶어 우라라카에게도 잠깐 향기를 맡아보라며 꽃망울을 흔들어주었지만 우라라카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쓰게 웃었다. 다른 누가 와서 맡아봐도 마찬가지였다. 이이다도, 츠유도, 키리시마와 카미나리도 모두 아무 향기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때도 향기에 숨이 막혀 눈앞이 어지러웠었다.

「데쿠군만 맡을 수 있는 거 아닐까?」

우라라카가 활짝 웃으며 덧붙였다. 그 꽃의 주인이니까 말야. 그리곤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꽃망울 안쪽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근데 꽃이 붉은 색이네? 꽃은 이 꽃을 보낸 사람의 눈동자 색을 닮는다고 그랬…」
「아아, 맞다! 이이다군에게 물어보고 싶은 영어문법이 있었는데!」

누가 봐도 어색한 소리를 떠벌떠벌 늘어놓고 자리를 피했던 건 찔려서 그랬다. 아니, 알아차릴까봐 무서웠다. 자리로 돌아와 앉는 동안에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우라라카군이 오해하면 어떡하지? 우라라카는 눈치가 빨랐다. 그만큼 속이 깊은 친구여서 내 비밀을 알아차려도 모르는 척 해줄 테지만 나는 죄를 지은 것처럼 찔리고 두근거렸다. 괜히 목 뒤의 옷깃을 주춤주춤 끌어올릴 때 또 한 번 에취,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눈을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그 바람에 나는 고개를 돌릴 타이밍을 그만 잊어 버렸다.

“뭐, 씨발아.”

캇쨩이 코를 문지르면서 불퉁거렸다. 아니… 나는 볼륨을 줄인 라디오처럼 우물거리면서도 캇쨩의 눈을 보고 있었다.
붉었다. 내 꽃처럼.

“꽃 피었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릴 생각이었다. 그냥 소리가 들려 반사적으로 본 것 뿐이라고, 딱히 너를 보려고 했던 게 아니라고 나는 말했어야 했다. 혀 밑에 파묻힌 말을 꺼내긴 커녕 시선을 피하는 게 나는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똑바로 하지 못했다. 내 눈이 돌아가던 찰나에 덜미를 잡혔다. 내 목 뒤의 옷깃을 덥썩 잡아 쥔 붉은 눈이 씨익 웃고 있었다.

“야, 데쿠.”

네 몸이 내 목 뒤로 기울어왔다. 차마 너를 돌아볼 수가 없어서 나는 괜히 허공 어딘가를 어정쩡하게 쳐다보며 대꾸했다. 응, 캇쨩. 넌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네 시선에 목 언저리가 다 따끔거렸다. 나는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한참 후에야 너는 하, 웃었다. 봄바람처럼.

“붉네.”

오늘 아침 내 코끝을 간질거리던 향기처럼, 그 숨 막히던 봄처럼.

“존나… 붉잖아, 데쿠새끼.”

꽃이 피어난 자리가 아플 때마다 보았던 불꽃처럼, 창턱 위에 놓여있던 올마이트 피규어처럼, 그 창틈으로 산들산들 불어오던 바람결처럼,
너는 자꾸만 웃었다.

“데쿠 주제에.”

웃음을 삼킨 네 목소리는 유난히 낮았고 가까웠다. 꽃이 핀 곁에 바짝 붙은 네 호흡이 간지럽고 뜨거워서 나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흠칫 움츠렸다. 그래도 너는 나를 놔주지는 않았었다. 봄처럼 너는 속삭였다.

“존나 예쁘네.”

건방지게 이런 걸 피웠어, 너드새끼가. 너는 킬킬 웃었다. 그때마다 꽃은 흔들거렸고, 밀려나온 향기에 나는 어지러웠다. 향은 짙었다. 달고 향긋했다. 그래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선생님이 들어오고 난 후에야 너는 겨우 내 등 뒤에서 멀어졌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교실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래도 너는 아닐 거야. 나는 거듭 생각했다.







*

몸에서 피어난 꽃은 오로지 그 꽃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만이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동화책에서도 그렇게 말했었다.

― 왜냐면 그건 당신의 꽃이니까요. 그런 꽃은 다시없어요. 두 송이가 존재하지도 않지요. 씨앗을 날려 보내고 그 꽃을 피워준 사람에게 당신이 오직 하나뿐인 것처럼요. 당신만이 오로지 그 사람의 삶이고 전부인 것처럼요.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학교를 돌며 내게 꽃을 피운 상대를 찾아보았다. 정확하게는 눈이 붉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 우리반, 다른 반, 다른 학년의 학생들을 틈만 나면 흘깃 거렸고 눈색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아닌 척 후다닥 눈을 돌려버리고는 했다.
늘 함께 다니다 보니 우라라카에겐 이런 행동을 진작 들켜 버렸다. 하지만 우라라카는 가끔 나를 보며 볼을 둥그렇게 부풀리고 웃기만 할 뿐이었다.

「찾을 수 있을 거야, 데쿠군. 파랑새는 본래 가까이에 있는 법이지만.」

관찰해본 바, 유에이 안에서 눈이 붉은 사람은 모두 셋이다. 한 사람은 이미 결혼한 선생님이었고, 또 한 사람은 윗 학년의 여자 선배였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잠시나마 혹시, 하는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선배에겐 꽃이 피어 있었다. 머리 위를 넝쿨처럼 가로질러 피어있는 분홍색 꽃은 꼭 화관처럼 보였다. 참 예쁘게 잘 피었다. 나는 멀어지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남은 건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다시 원점이었다.

“데쿠새끼 자리 좀 바꿀 것이지, 씨발.”

내가 눈이 붉은 사람을 찾아 전교를 헤매던 며칠동안 캇쨩의 재채기는 더욱 심해졌다. 수업 중에도 등 뒤에서 수시로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절반은 욕을 섞어 재채기를 한 후면 캇쨩은 코를 훌쩍거리며 괜히 나한테 시비를 걸었다. 그래도 처음처럼 의자를 걷어차는 일은 없었다. 대신 자주 내 쪽으로 몸을 당기며 엎드렸다. 그리고 꽤 오래도록 내 꽃을 들여다보았다.
궁금증을 참다못해 나는 결국 직접 물어보았다.

“캇쨩은 왜 자꾸 내 꽃을 쳐다보는 거야?”

오늘도 우리는 같은 길 위에 있었다. 애초에 이 방향에 사는 건 우리 둘뿐이어서 우리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너는 오늘도 길이 겹쳤을 뿐이라며 내 뒤에서 걸었고, 나는 너보다 세 걸음 정도를 어정쩡하게 앞서서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너에게 저런 소리를 물어봤던 건 그때도 시선을 느낀 탓이었는지 모른다. 네가 뒤에 있으면 나는 자주 목 뒤가 따끔거렸다.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던 꽃의 무게처럼.
뭐? 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쳐다보긴 개뿔.

“안 봤거든, 등신아.”
“그건… 아냐. 거짓말이잖아. 오늘도 종일 뒤에서 쳐다봤고, 지금도 계속 쳐다보고 있어.”
“안 봤다고.”
“봤어.”
“아, 그래, 씨발. 봤다. 그래서 뭐. 왜. 꼽냐?”

그딴 걸 달고 다니고 자빠진 게 누군데. 네가 씨근거리며 걷어찬 돌멩이가 내 발 옆으로 또르륵 굴러왔다. 이것봐, 아니라니까. 나는 너를 등진 채로 잠깐 그런 생각을 흐물흐물 삼켜 넣었다. 흐 웃음이 터졌다. 그때도 너는 내 등 뒤에 있었다.

“그래도 너는 아닐 거야.”

저벅저벅 걸어오던 네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멀지 않은 등 뒤에서 네가 툭 말했다. 뭐가, 씨발. 나는 잠깐 주먹을 움켜쥐었다 놓았다. 그 손에 문득 눈이 갔다. 올마이트가 내게 힘을 물려준 이후로 내 손에는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기적이 남긴 상처들이었다. 달리 말해, 이건 내가 기적을 감당한 흔적이었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두 가지 기적 중 하나였다.
생각하니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럼 남은 하나는 어떨까. 일어날까, 일어나지 않을까. 일어난다면 그것도 나는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 꽃의 주인이 만약 너라면, 내게 꽃을 보낸 사람이 너라면, 이 꽃을 피워준 사람이 너라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너라면,

캇쨩, 너라면.

“그래도… 흐, 아냐. 너는 아닐 거야.”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상상해 봐도 그건 아니었다. 자꾸 흐물흐물 웃음이 나왔다. 뭐가. 네가 등 뒤에서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약간 짜증이 나 있었다.

“아, 데쿠새끼 아까부터 존나 지 혼자서 처떠들고 자빠…”
“내게 꽃을 보낸 사람,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
“……”
“그게 절대 너일 리는 없어.”

나는 웃었다. 이런 얘기를 나는 왜 하고 있는 걸까. 캇쨩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조용한 등 뒤가 신경 쓰여서 나는 먼저 자리를 비킬 생각이었다. 이럴 때 네 눈을 보면 나부터도 이상한 생각을 해버릴 것 같아서 나는 일부러 너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도 바람에선 향기가 났다. 그 향기에 숨이 막혔다.

“야.”

네가 말했다. 나는, 돌아볼 수가 없어서, 돌아보지 않았다. 대답을 하려고 해도 어쩐지 혀가 잘 돌지 않았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향기가 너무 짙었었다. 핑계를 대자면 그랬었다.

“야, 데쿠.”

 네가 거듭 나를 불렀다. 그 말에 대답할 수가 없어서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너는 언제나 나보다 앞섰었다. 너는 언제나 나보다 빨랐어.
손목이 잡혔다고 생각했을 때 뒤꿈치가 돌았다. 하늘이 눈안에서 반바퀴를 구른 후에야 비로소 시선 끝에 네가 걸렸다. 괜한 숨을 들이켰다 향기에 숨이 막혀서 나는 선 자리에 우뚝 얼어붙었다.
아니, 아냐. 어지러워서 그랬던 게 아냐. 숨이 막혀서 너를 벗어나지 못했던 게 아니었다.

“……”

입술이 닿아 있었다.
기적처럼.






08

동화책은 말했었다.

― 알게 될 거예요. 그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그가 당신 꽃의 주인이라고 얘기해주지 않아도.
왜냐면 그 꽃은 당신이니까요. 이미 당신이 되어버린 꽃이니까요. 그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싹을 틔우고 망울이 맺힌, 당신의 꽃이니까요.


첫키스에 대한 공상을 자주 했었다. 어느 소설에서는 눈앞에 별이 튄다고 했고, 어느 드라마에서는 마치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상상했다. 사랑받는 기쁨으로 가슴은 충만해지고 쉴 새 없이 가슴이 고동쳐서 숨이 막힐 거야. 열이 오르고 현기증이 나겠지. 마치 아득한 꿈을 꾸는 것처럼 온몸과 마음이 행복으로 달콤하게 진동할 거라고 나는 막연히 짐작했었다.
그때만 해도 내 첫키스는 여자 아이일 거라고 믿었다. 작고 예쁜, 웃음이 귀여운. 처음으로 겹친 입술에 약간 겁을 먹고 어깨를 움츠리면 나는 그 아이가 놀라지 않게 손을 잡아줄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숨이 막혀 허둥거리면 우습고 부끄러울 것 같아 혼자 숨을 참는 연습을 해본 적도 있었다. 처음은 잘 하고 싶었다. 눈을 감고 천천히 입술을 겹치면서, 나보다 작은 손을 꼭 잡고서.
하지만 나는 눈을 감지 못했다.

― 그가 당신의 손을 잡아온다면, 그가 당신에게 입술을 겹쳐 온다면.


 색 밝은 머리칼 뒤로 석양은 붉었고, 자존심처럼 높고 준수한 콧날이 부드럽게 내 뺨을 문질렀다. 나보다 더 큰 손이 내 손에 단단히 깍지를 꼈다. 나는 그만 깜짝 놀라 흡 숨을 들이켰고 하필 그때 입술이 벌어졌다. 흠뻑 무거워진 내 꽃이 목 뒤에서 바람처럼 떨고 있었다. 네 손이 내 뺨을 힘껏 움켜잡고, 네 호흡이 내 호흡을 흠뻑 헤집었다. 나는 그만 코로 숨을 내쉬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도.

― 숨이 막히고 어지럽답니다. 꽃이 핀 자리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겠지요. 사방에서 꽃향기가 나고, 뿌리를 내린 자리마다 데인 것처럼 뜨거워질 거예요. 처음에는 괴로울 지도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각들이 당신의 몸을 구석구석 흔들어 놓을지도 몰라요. 처음이라는 것은 으레 그렇지요. 서툴고 아프답니다. 괴롭고 힘들어요. 처음이니까요.
하지만.


동화책은 말했었다.

― 사랑을 알았다고 해서 모든 꽃이 피어나는 것은 아니랍니다. 모든 사랑이 그런 것처럼요. 모든 인연이 그런 것처럼 말이에요.

달아나는 내 어깨를 힘껏 잡고 몇 번이나 각도를 바꾼 후에야 너는 겨우 나를 놓아주었다. 네 입술이 천천히 멀어 지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덩그러니 얼어 있었다. 이미 놓쳐버린 버스처럼 뒤늦게 현실이 나를 덮쳤다. 내 목 뒤에서 좀 전보다 더 무거워진 꽃망울이 떨고 있었다.

“왜?”

나는 물었다. 대체 왜, 캇쨩.

“나한테 왜… 키스한 거야?”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나를 뚫어보던 선홍색 눈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어릴 적부터 네 얼굴을 읽는 데엔 꽤 자신이 있었다. 너는 감정에 한해선 언제나 솔직했고, 나는 모른다고 잡아떼기엔 너를 너무 오래 지켜봤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네 얼굴에 걸린 감정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화를 내는 것도 같았고, 실망한 것도 같았고, 슬픈 것도 같았고, 단순히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도 보였다. 미간을 깊게 좁히고 한참 나를 뚫어보다 너는 돌연 내 뒷목을 낚아챘다. 또 입술이 겹칠 것 같아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며 어깨를 흠칫 좁혔다. 이번에는 그래도 밀어낼 생각이었다. 이런 거 하지 말라고, 네게 화를 낼 생각이었었다.
너는 키스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실눈을 뜨고 이상하게 조용한 네 얼굴을 살펴보았다. 너는 내 목 뒤를 보고 있었다. 아니, 내 꽃을 보고 있었다.

“안 폈네.”

너는 말했다. 아. 나는 알아차렸다. 동화책에서도 그렇게 말했었다.

― 당신이 사랑을 주지 않으면 꽃은 피어나지 않는답니다. 그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건, 그가 당신을 위해 그 꽃에 얼마나 많은 애정과 정성을 쏟았건.


내 목 뒤를 바라보던 선홍색 눈이 크게 일렁거렸다. 너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들여다보았다. 믿을 수가 없다는 것처럼.

― 사랑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지요. 꽃도 꽃의 주인을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봄날 바람처럼 변덕스럽고 갈피를 모르는 것이랍니다. 어느 방향을 향해 불어갈 지 알 수가 없어요. 답은 두 가지 밖에 없답니다. 당신도 그를 사랑한다,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를 사랑한다면 당신의 꽃도 기쁨으로 환하게 웃으며 꽃잎을 활짝 열겠지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꽃은 영원히 피어나지 않아요. 그 꽃은 이미 당신이니까요. 처음 싹을 틔울 때부터 그 꽃은 당신의 심장에 뿌리를 내렸으니까요.
피어나지 않아요. 당신의 가슴이 그처럼 뛰지 않는다면요. 당신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요.


네 얼굴이 복잡해보였다. 너는 오래도록 말을 잃은 것처럼 내 뒷목을 쳐다보았다. 한참 후에야 너는 쓰게 웃었다. 마치 처음으로 패배를 알게 된 것 같은 얼굴이었다. 너는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었다. 처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져버린,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던 상대에게 패배해버린, 결국 나에게 이기지 못했던 그날의 너 같았었다.

“하, 존나…”

네가 입술 끝을 힘껏 씹었다. 꽉 눌린 잇새로 비져 나오던 네 목소리가 어쩐지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기분 탓이었겠지만, 캇쨩. 나는 네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었어.

“안 피네.”
“……”
“안 피잖아, 씨발.”

등 뒤에서 네가 마른 세수를 하는 기척이 났다. 나는 네 얼굴을 돌아볼 수가 없어서 내 발끝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 두근거림은 이제 곧 꽃이 피어난다는 신호가 아니었다. 나도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래서 설레고 기쁘다는 그런 고동소리와는 달랐다. 내 가슴은 당황했고 겁을 먹었다.
미안. 한참 후에야 나는 우물거렸다. 너는 곧장 대답이 없었다. 볼이라도 꽉 악문듯한 목소리가 한참 후에야 툭 대꾸했다.
사과하지마, 등신 새끼야.

“기분 더러우니까.”

그뿐이었다. 너는 간다는 인사도 없이 등을 돌렸다. 저벅저벅 멀어지는 네 발걸음 소리에 나는 시큰거리는 코를 훌쩍 들이키며 흐 웃었다. 화났다. 너는 화가 나면 보폭이 좁아지고 평소보다 더 빠르게 걷는다. 마치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괜찮다는 것처럼, 영원히 상처 받지 않는 아이처럼, 누구도 나를 상처 줄 수 없다는 자존심처럼.
그래서 나는 네게 미안했다. 내가 네 말마따나 둔하고 멍청한 데쿠새끼였다면 좋았을 텐데, 다른 문제들처럼 네게도 영원히 눈치가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입술이 겹쳤던 자리가 아팠다. 불길이 머물렀다 떠난 자리처럼 뜨겁고 쓰렸다. 꽃은 여전히 잎을 꼭 닫고 있었다. 그때도 꽃 향기가 났다. 따뜻하고 뜨거운, 봄날 햇살 같은.






*

꽃이 성장을 멈춰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지던 꽃이었다. 새로 고개를 디밀었던 작은 잎새는 초록으로 물드는 법을 잊어버린 연두빛이었고, 당장에라도 터뜨릴 것처럼 벌어지던 망울도 그대로였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꽃은 피지 않았다. 새 잎이 자라는 일도, 줄기가 새롭게 가지를 치는 일도 없었다. 깊게 살갗을 파고들던 뿌리 때문에 꽃이 핀 자리들이 뜨거워 밤마다 잠을 설치는 일도 사라졌다. 그래도 나는 자주 잠을 설쳤다. 열 개에서 딱 멈춰버린 올마이트 피규어들처럼.

캇쨩은 더 이상 내게 꽃에 대해 묻지 않았다.

우리 관계는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어차피 남과 다름없는 사이였고, 어울리던 무리들도 달라서 누구도 우리에 대해 묻지 않았다. 꽃망울이 맺혔는데도 꽃을 피우지 않는 점이 이상하다면서 우라라카는 몇 번 내 목 뒤를 들여다보았지만 그 꽃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내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주며 그렇게만 말했었다. 괜찮아, 데쿠군.

「그 사람 마음이 변한 거니까. 원래 감정이라는 게 그렇잖아.」

더 좋은 사람이 있을 거라면서 우라라카는 이름처럼 활짝 웃었었다. 나는 그 말에는 이상하게 따라 웃을 수가 없어서 괜히 책을 펼치며 딴전을 피웠었다. 그때도 너는 내 자리 뒤에 앉아 이 모든 이야기들을 다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전처럼 재채기를 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변해가고 있었다.

열여섯은 꿈을 좇아가기에도 바쁘고 벅찬 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우리는 체육대회를 하기도 했고, 학교에 난입한 빌런에게 같이 맞선 적도 있었다. 나와 짝을 이뤄 올마이트를 대적하던 날엔 내 감정도, 네 감정도 격해서 꽤 크게 싸웠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둘만 있을 때엔 가끔 일상적인 대화들을 나누기도 했다. 그래도 너는 영영 내 꽃에 대해서는 다시 묻지 않았다.

― 이제 곧 시들어 가겠지요.


나는 자주 그 동화책을 떠올렸다.

― 피어나지 못한 꽃은요. 그래서 성장을 멈춰버린 꽃은요.


시간은 바람처럼 빨라서 봄은 즐길 틈도 없이 빠르게 저물었다. 하복 셔츠로 갈아입으면서 나는 꽃의 멈춰버린 무게에도 제법 익숙해졌다. 향기는 이제 전처럼 심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꽃의 존재에 대해서는 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아무리 오래 되어도.

캇쨩, 네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져버리진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슬프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교실은 이제 곧 떠날 합숙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그때도 네 목소리만큼은 또렷하게 들렸다. 내 등 뒤에서 반쯤 엎드린 채로 너는 무심히 우물거렸다.

“빨리 죽어버려, 이딴 멍청한 꽃.”

하마터면 그러지 말아달라고, 네게 말할 뻔 했었다.

*

꽃이 거기에 있으니까요.
마음이 떠나지 않았으니까요.
그가 아직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09

왜 히어로가 되고 싶어요? 유치원 선생님이 물었다. 너는 대답했다. 지기 싫어서요. 나도 대답했었다. 사람들을 구해주고 싶어서요.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올마이트처럼.
선생님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카츠키랑 이즈쿠는 가장 가까운 친구면서도 정말 다르구나.」

돌이켜 보면 우리는 단 한 번도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올마이트를 좋아했고, 같은 꿈을 꾸었지만 바라보는 방법은 언제나 달랐었다. 우리는 언제나 조금씩 엇갈려 있었다. 자라온 환경은 비슷했지만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성격도 달랐고, 행동패턴이나 취향도 같은 점이 하나 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늘 우리 허리춤만큼 높은 벽이 가로 질러 놓여 있는 것 같았었다. 개성 강한 너, 개성 없던 나처럼.

나를 좋아하는 너,
너를 좋아하지 않는 나처럼.

“바쿠고랑 미도리야랑 어째 서먹하네? 사이 좀 좋아진 것 같더니.”
“싸웠나?”
“변덕이지, 뭐. 바쿠고 녀석 원래 자기 멋대로잖아.”
“매번 미도리야군만 불쌍해.”

합숙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간간이 소리를 죽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들리지 않는 척을 했다. 잠깐 네 쪽을 흘깃 돌아보기도 했었다. 너는 대각선 앞에서 팔짱을 끼고 의자에 얼굴을 비스듬히 기대고선 눈을 꽉 감고 잠들어 있었다. 정말 잠든 건지, 아니면 너도 저 얘기를 다 듣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하긴, 익숙한 일이었다. 너는 언제나 그랬었어, 캇쨩.

내 얘기만 들리지 않는 척, 네 눈에 나만 보이지 않는 척.

중학교 때의 너를 떠올렸다. 네가 한 말들을 생각했다. 무개성에 쓸모도 없다고, 너 같은 건 감히 내 옆에 설 수도 없다고,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네 성격처럼 잔인했던 불길과 불타버린 내 노트를 생각하면 아직도 돌이라도 걸린 듯이 숨이 막혔다. 그래도 그렇게 했다. 네가 내게 저질렀던 실수들을 떠올려 보면 너에 대한 미안함을 어느 정도는 잊을 수 있었다. 너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네가 보낸 내 꽃이 결국 이렇게 망울로만 맺혀있다 져 버리게 되더라도, 네 마음과 내 마음이 같지 않아도. 그래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늘 거울부터 찾았다.

꽃은 이제 붉은 빛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망울 틈으로 언뜻 보였던 꽃은 이제 처음 그 잎을 드러냈을 때처럼 선명하지 않았다. 향기도 옅어졌다. 시들어가는 것처럼 보여서 나는 자꾸만 버릇처럼 꽃망울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아직 물기가 흠뻑 맺혀있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마음이 놓였다. 동화책을 펼쳐볼 수는 없었다. 이 꽃이 왜 이렇게 색을 잃어 가는지 이미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내 눈으로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었다.
버스 창문에 비친 꽃은 아침보다 더 어둡고 흐렸다. 나는 옷깃 위로 봉긋 솟아오른 망울을 이리저리 비춰보다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흐물흐물 웃음이 나는데도 자꾸 눈가가 시큰거렸다.
캇쨩은 나를 이제 좋아하지 않는 걸까?

“아니, 처음부터 네가 아니었을 지도…”

응, 뭐가? 곁에 앉아 있던 우라라카가 물었다. 나는 거짓말을 들킨 아이처럼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아무 것도 아냐. 발밑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거듭 우물거렸다. 정말, 아무 것도 아냐.
재채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이름도 모를 산길을 오래도록 달린 후에야 버스는 겨우 멈췄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곧장 합숙이 시작됐다. 합숙소까지 뻗어있던 산길은 짐작한 것보다도 좁고 험했다. 잔가지가 수시로 뺨을 긁었고 몇 번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도 했었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뛰고 또 뛰었다. 티셔츠가 흠뻑 젖었다. 달리고 있는 동안에는 잊을 수 있었다. 꽃의 무게도, 그 꽃과 똑같이 붉던 너의 눈동자도.

캇쨩은 끝까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은 모두 함께 차렸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도 우리는 밥을 비우기에 바빴다. 사실 그런 사소한 감정에 신경을 기울일 만큼 너와 나는 섬세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는 입학 후에 처음으로 떠나온 합숙에 잔뜩 들떠 있었다. 식사 후에는 온천을 했고, 다섯 살 꼬마들처럼 물놀이를 한다고 욕탕은 삽시간에 시끄러워졌다. 그때도 나는 꽃에 대해 잊고 있었다. 그렇게 잊어버릴 수 있을만큼 꽃은 이제 퍽 가벼웠었다. 그렇게 간단히 잊어버릴 수도 있을만큼, 그렇게 간단히 무시할 수 있을만큼.

나는 그게 너무 슬펐어, 캇쨩.

생각했을 때 나는 이미 이불을 걷어내고 있었다. 베개를 움켜쥐고 대치중이던 토코야미와 키리시마가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미도리야도 같이 할래? 키리시마가 씩 웃으며 물었다.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각선 앞에 펼쳐져 있던 빈 이부자리를 보았던 탓이었다. 그 자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어서 나는 그랬었다. 눈을 돌리면 곧장 보이는 그 자리가 누구의 것인지, 지금 이 방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이미 알고 있어서 나는 슬펐다. 떠오르는 게 너무 많았다. 내 뒷자리, 대각선 뒷자리에 앉아 버스 창문에 기대 졸고 있던 색 밝은 머리, 또 대각선 앞에 펼쳐져 있는 너의 빈 자리. 왜 우리는 영영 남일 수 없을까. 왜 자꾸 네가 눈에 보일까. 나를 남처럼 무시하면서도 너는 왜 내 곁에서 세 걸음 이상은 멀어지지 않을까.

내 꽃은 왜 아직도 시들지 않았을까.

나는 그 길로 곧장 방을 나섰다. 키리시마에게는 잠깐 바람을 쐬고 싶다는 핑계를 댔다. 이미 점호가 끝난 후였지만 선생님에게 걸려 혼이 날 수도 있다는 걱정도 나는 까맣게 잊어 버렸었다. 복도를 달리는 동안 계속 목 뒤가 무거웠다. 꽃 향기에 어지러웠다. 그만 떨어져 버릴까봐 나는 손을 뻗어 내 목 뒤를 감싼 채로 복도를 달렸다. 밤 어둠 밑으로 뛰쳐나왔을 때 나는 그만 얼어붙은 것처럼 오똑 멈춰버렸다. 머리 위에 별이 너무 많았다. 네 머리 위로 빛나던 달이 너무 높고 환했었다.

캇쨩.

입술을 달싹였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너는 먼 어둠을 향해 등을 지고 서 있었다. 네가 무엇을 보는 건지 나는 몰라서, 네가 왜 이런 시간에 여기 혼자 나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다만 네 머리 위에 걸린 밤이 너무 찬란해서 나는 네 이름도 부를 수가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비스듬히 선 채로 너는 잠깐 하늘을 보기도 했고, 발끝에 걸린 돌멩이를 어둔 숲 쪽으로 툭 걷어차기도 했다. 네가 한숨을 쉬었을 때 내 목 뒤에 뻗어있던 망울이 바람처럼 떨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잡지 못한 말이 입술을 비집었다. 네 이름은 아니었다. 왜 이 늦은 시간에 여기에 있는지, 오늘 합숙도 많이 힘들지 않았는지 같은 빤한 안부도 아니었었다.

“안 할 거지.”

등을 돌리고 서있던 네가 나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칠 때 나는 입술을 힘껏 씹었다 놓았다. 허리를 잘린 말이 갈피 잃은 별처럼 쏟아졌다.

“끝까지 말 안 할 거지, 캇쨩은.”

달은 밝았고 네 얼굴은 그늘 밑에 숨어 있지 않았다. 그 탓에 나는 네 눈이 일그러지던 순간을 놓치지 못했다. 크게 불길처럼 일렁이던 네 눈을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다. 너는 그래도 언제나처럼 입꼬리부터 비틀었다. 같잖다는 듯이, 끝까지 비겁하게.

“뭐가, 씨발.”
“내 꽃이 누구 꽃인지, 왜 나한테 이런 꽃이 생겼는지.”
“……”
“누가 내 방에 올마이트 피규어를 갖다 놨는지, 누가 밤마다 내 방 창문을 넘어 왔는지, 누가 내 핸드폰에서 자기 전화번호를 계속 지웠는지.”

아. 나는 자꾸 부슬부슬 웃었다. 너는 대답이 없었다. 자기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면서 내 말엔 대답도 하지 않는 네가 미워서 나는 자꾸 실없이 웃음이 났다.
캇쨩. 나는 웃었다. 너는… 진짜 나빠.

“키스… 왜 했어, 개자식아.”
“……”
“이것도 말 안 해줄 거야?”
“……”
“끝까지 말 안 할 거지.”
“……”
“캇쨩은 그래도 얘기 안 할 거지. 그런 거지. 계속, 그냥 모르는 척 할 거지. 내 꽃이 져버릴 때까지.”
“……”
“자존심 상하는 거지. 화나는 거지. 꽃이 핀 게 나라서…”
“……”
“네 씨앗이 꽃을 피운 게, 데쿠새끼라서…”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너를 미워해본 적이 없었어. 하지만 지금은 네가 너무 미웠다. 이럴 때만 말이 없는 네가, 아무 할 말 없다는 듯이 발끝만 쳐다보는 네가 처음으로 나는 너무 미웠었다.
자존심이 상했던 거다. 네 꽃을 피운 게 나라서. 그래서 너는 말을 하기 싫은 거다. 너는 입술을 꽉 다물고 먼 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다시 한 번 묻고 싶었다. 네게 듣고 싶었다.
캇쨩.

“나를… 좋아해?”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흐 웃었다. 겁쟁이. 그 말이 억울한 듯 울컥 눈을 들었다. 오랜만에 다시 눈이 마주친 네 얼굴이 사나웠다. 입 다물어, 씨발. 그리고 다시 눈길을 멀리 돌려 버리며 너는 말했다.

“나는 말 같은 거 안 믿어. 진심이 아니니까.”
“……”
“한 번만 더 그딴 거 물어보면 죽여 버린다.”

그대로 너는 몸을 돌려 나를 지나쳤다. 네가 떠난 후에도 나는 오래도록 그 빈 터에 서있었다. 네가 사라져도 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높다랗게 걸려있던 달을 보면서도 나는 어쩐지 웃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꽃이 내린 자리들이 아팠었다. 처음 내 살갗을 뚫고 꽃잎을 피울 때처럼 너무 아파서 나는 그만 무릎을 꺾고 주저앉았다.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 죽을 것처럼 아팠지만 나는 끝까지 울지는 않았었다.

누군가 먼 어둠 속에서 에취, 재채기를 했다.

*

그리고 합숙 두 번째 날, 너는 사라졌다.




(계속)




1. 역시 손 가는대로 쓰고 있고
2. 원작에선 변함없이 15도쯤 빗겨 있습니다....

3. 피드백은 이 백업글에 댓글로 달아주시면 좋아라 합니다(mm


오늘도 때가 되어 스르륵 백업u////u 끝이 머지 않은 듯 하면서도 쉽지가 않네요 허허ㅠ.ㅠ.ㅠ.ㅠ.ㅠ 무튼 매편 피드백 남겨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ㅠ ㅠ...♥

?
  • 퓨우 2017.03.04 19:25 SECRET

    "비밀글입니다."

  • JeNie 2017.03.04 21:35 SECRET

    "비밀글입니다."

  • 아아ㅏ아아아니ㅣㅜㅜㅜ 2017.03.05 02:16 SECRET

    "비밀글입니다."

  • ㅇㅇㅇ 2017.03.05 13:04 SECRET

    "비밀글입니다."

  • ㅇㅇ 2017.05.05 21:54 SECRET

    "비밀글입니다."

  • ran 2017.05.20 04:02 SECRET

    "비밀글입니다."

  • OOP 2017.08.07 14:29 SECRET

    "비밀글입니다."

  • 용ㅊ 2017.08.20 15:13 SECRET

    "비밀글입니다."

  • 루까님 발닦갱 2017.09.24 17:28
    진짜 이거 제 최애인데ㅠㅠㅠㅠㅠ왜 안 이어쓰는 건 자까님의 의지시마뉴ㅠㅠㅠㅠ간략하게 즐거리라도ㅠㅠㅠㅠㅠㅠㅠㅠㅠ쨌든 스릉흠드ㅠㅠㅠㅠ
  • 팔랑나비 2018.02.04 22:13 SECRET

    "비밀글입니다."

  • ㅇㅇ 2018.03.25 12:57
    헑궁룽ㅇㅈㄹ욿ㅇ누ㅜㅜㅠㅠ안듀ㅏ..안뒤어...안뒤어..!작가님 저는 다음편을 보지않으면 죽는병에 걸ㄹ. .ㅕ....ㅆ...쿨ㄹ러ㅂㄹ쿨럽쿨ㄹㅈ더
  • 2018.07.01 21:29
    몇년 전 글인데 어쩌다 알게되어서 읽게 된 글들인데 왠지 자꾸 저랑 겹쳐보여서 다시 재채기를 했다는 부분에서 울어버린 것 같아요 저 둘의 입장이었던 적이 있어서 그런가 가상의 세계고 캐릭터지만 울컥해서 울었네요 저희가 사는 세계가 저렇게 꽃이 피고 지는 세상이었다면 좀 달랐을까해요 잘읽고있어요 감사해요
  • 캇뎈 뽀뽀해 2018.09.09 00:37
    꽃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네요 사실 완결아닌건 안본다는 주의였지만 이대로도 충분히 완성된 이야기인거같아서 아련아련하니 정말 좋아요. 애기들아 사랑해...붉은꽃이라니 뒤에서 보면 정말 숲속에 핀 꽃처럼 예쁘겠다싶어서 증말ㅠㅜㅜㅜ동화도 너무예쁜 문체여서 보는내내 이모감성 뿜뿜했습니다 감사해요 루카님
  • 오오오오오오오 아르나데 2018.10.11 23:41 SECRET

    "비밀글입니다."

  • 루카님은저의파랑새 2019.04.14 21:43 SECRET

    "비밀글입니다."

  • k 2019.05.06 12:20
    다음 편이 아직 안 나왔지만 진짜 루카님의 수 많은 글들 중 마음에 와 닿는 시리즈입니다.
    끝났지만..!
    만약 나온다면 다음 편 기대하고 있을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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