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아랍AU로 도둑 바쿠고, 하렘의 소년 점술사 미도리야, 하렘 주인 황자 토도로키
* 캇데쿠하고 토도데쿠한 캇데쿠토도/토도데쿠캇

* 약수위 주의해주세요

* 궁으로 돌아가는 미도리야와 함께 BGM도 다시


BGM / Acid arab <Hafla>

http://youtu.be/aVJXenM8dwo








하렘의 정원으로 와. 도둑은 말했다. 오늘 밤, 달이 가장 높을 때.

「그 통로는 수백 년 전에 지어졌어. 그 통로를 지었던 놈들은 이제 다 뒤져버려서 황가에서도 아는 이가 없다나, 뭐라나. 뭐, 망할 사부는 그렇게 말했거든. 그 미친 황자가 네 놈 얘기를 들어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리로 와. 허면 내가 다시 너를 훔쳐서 그 빌어먹을 궁을 빠져 나가줄 테니까.」
「……」
「잊지마, 멍청아. 달이 가장 높을 때.」

그 마음이 못내 고마워 점술사는 발꿈치를 들며 도둑의 입술에 예고도 없이 입을 맞췄다. 느닷없는 입맞춤에 드물게 귀 끝까지 시뻘겋게 물든 도둑의 얼굴을 올려보며 점술사는 말했다. 고마워, 캇쨩. 그리고 말했다. 꼭 돌아올게. 그 눈이 그때도 고와서,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 자리가 못내 좋아서 도둑은 끝내 제 솔직한 속내를 말하지 못했다.

너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그 황자가 너를 가둘 거라고, 그리하여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도둑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날, 이교도의 검은 토브를 몸에 두른 젊고 어린 남자가 궁에 나타났다. 경비들은 베일도 쓰지 않은 그 숲색 머리의 어리숙한 남자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보지 못했다. 술탄이 원정을 떠난 이후 궁의 경비대도 이전보다 삼엄해져 있었고, 경비들에겐 황자의 명에 따라 궁에 드나드는 모든 이를 철저히 수색하고 막아낼 의무가 있었다. 허나 앞을 가로 막으며 자신을 겨눠오는 예리한 창날에도 점술사는 의연했다.

“아미르Prince께 전해주세요.”

저를 향해 겨눈 날카로운 창끝을 손으로 무심히 밀어내며 점술사는, 미도리야는 잠잠히 웃었다.

“당신의 바라카Fortuneteller가 뵙기를 청한다고.”

사막의 바람이 유난히도 날카롭던 아침이었다.






예언의 숲


Baraka بركة






中1




황자의 점술사가 돌아왔다.

소식을 들은 토도로키가 잰걸음으로 하렘의 길고 넓은 복도를 급하게 걸었다. 걸음은 아무리 재촉을 해도 느리게만 느껴졌고, 궁의 입구까지 뻗은 계단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길고 많았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는 토도로키의 걸음을 따라 하얀 토브가 사막의 바람결에 몇 번이고 펄럭거렸다. 그래도 결코 그 걸음을 늦추거나 멈출 수는 없었다.

점술사는 궁의 입구에 서있었다. 검고 얇은 옷감이 바람결을 따라 전보다 더 말라버린 몸을 감싸며 크게 펄럭였다.

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던 그 얼굴을 보았을 때, 계단의 중턱을 다 내려오지 못하고 토도로키는 그만 숨이 멎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이제는 저버린 신의 이름이 웃는 법도 잊어버린 차가운 입술을 기어코 비집었다.

신이시여, 마시르시여.

그제야 멈췄던 걸음이 천천히 남은 계단을 내려와 오래도록 기다렸던 존재 앞에 마주섰다. 미도리야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황자폐하.

“마시르Fate의 축복이 당신께 임하시길.”

색이 다른 눈동자가 괴롭게 일그러졌다. 다시 돌아온 그 존재가 너무도 꿈같고 믿기지 않아 토도로키는 오래도록 말을 잃고 그 얼굴을 뚫어보았다. 보름간 사막을 떠돈 모양인지 주근깨가 흩어진 하얀뺨은 보다 초췌하고 수척해져 있었지만 색이 깊던 숲색눈만큼은 여전히 또렷했다. 오래 전에 신앙을 저버렸지만 지금이라면 차디찬 신전 바닥에 엎드려 천 번이건 만 번이건 신의 은혜를 찬미하며 절을 올릴 수도 있을 듯 했다.

토도로키가 기도처럼 눈을 감았다, 떴다. 감사합니다.

그대로 무릎을 꺾은 토도로키가 미도리야의 다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미도리야가 제 입을 틀어막았다. 하마터면 비명이 터질 뻔 한 탓이었다.

“폐하, 제게 이런 입맞춤은…!”

땅을 향해 완전히 엎드린 색이 다른 머리칼이 미도리야의 하얀 발등 위로 기울어졌다. 경비들이 황급히 눈을 돌렸다. 사막의 바람이 유난히 얇았던 미도리야의 검은 베일을 크게 펄럭이며 그 곧고 하얀 발과 그 발 위에 입을 맞추던 토도로키의 몸을 파도처럼 감싸 안았다.
황족의 입맞춤은 신성한 것이다.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며 점점 위를 향해 거슬러 오를 때마다 미도리야는 부끄러움과 황공함에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흠칫 떨었다. 뼈대가 선명하던 미도리야의 발등과 동그란 복숭아뼈를 지나 그대로 곧은 발목을 타고 오르며 토도로키는 몇 번이고 집요하게 입술을 붙이며 키스했다.

그만. 미도리야가 바르르 떨리던 입술 끝을 짓뭉개며 간신히 우물거렸다. 제발, 황자폐하.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입맞춤은 무릎까지 오고 난 후에야 겨우 멈췄다. 베일을 움켜잡았던 손을 풀어주며 토도로키는 허리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익숙해진 눈높이를 따라 미도리야가 색이 다른 눈동자를 가만히 올려보았다. 살아 단 한 번도 사촌에게 차가운 말, 무심한 말 한 적 없던 그 입술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즈쿠.”

그리고 천천히 웃음을 지운 입술이 차갑게 속삭였다.

“나는 이제 너를 태양에게조차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밀실로 데려가라. 짧게 말을 던진 토도로키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경비들에게 가로 막혀 양팔을 붙들리면서도 미도리야는 몇 번이나 그 이름을 불렀지만 색이 다른 눈동자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 너의 마음이 나를 떠난 것을 안다. 아니. 너의 마음이 내게 단 한 번도 머문 적이 없음을 나는 안다. 토도로키가 허리에 걸려 있던 검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허면 누구도 너를 가질 수 없어. 누구도 감히 이 땅에서 너를 취할 수 없어. 색이 다른 눈동자가 쓰게 웃었다.

너는 이제 영영 나를 미워하겠지.

그때는 어쩐지 마음이 아팠었다. 눈물이 날 것처럼.







*

거리의 술탄이 다시 돌아왔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바쿠고를 보고도 여자는 놀라지 않았다. 그간 새 애인이 생겼노라며, 이제 곧 그 사람의 집으로 거처를 옮길 것이라던 이야기를 안부와 함께 담담하게 전해주던 여자에게 바쿠고는 축하 대신 지참금으로나 쓰라며 금화 한 자루를 무심히 던져주었다. 여자는 애인에게 간다며 곧 집을 비웠다. 다시 홀로 남은 시장통의 소란하고 낡은 집에서 바쿠고는 바닥을 짚고 엎드려 팔을 굽혔다 펴며 오랜만에 몸을 풀었다. 큰 도둑질을 앞두고 있을 때면 늘 이렇게 했었다. 숨을 가다듬으며 몸을 가라앉히고 일으킬 때마다 상의를 벗어던진 상체 위에서 사막처럼 거친 근육이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바라카가 돌아왔노라고, 그리고 다시 갇혔노라고 창문 앞에 모여 있던 여인들은 수군거렸다.

그럴 줄 알았지, 씨발. 이미 짐작했으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백 번을 다 채운 후에야 바쿠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사막으로 떠나있던 보름동안에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은 갖가지 진귀한 보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바쿠고는 그 빛 어디에도 현혹되지 않았다. 바쿠고의 인생에 가장 빛나고 찬란했던 보석은 지금 이 손에 없었다. 황금 술잔과 금화더미를 지나 벽에 걸려 있던 낡은 단검 두 자루를 허리춤에 찔러 넣은 후에야 바쿠고는 지하를 빠져 나와 집을 나섰다. 그리고 오래도록 번잡하고 좁은 도시의 뒷길을 걸었다.

금화 한 자루는 줘야 할 것 같은데. 뒷길의 장물아비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라하브. 궁의 지도 같은 건 공식적으로 없어. 이런 걸 그려놓은 것을 알면 우리처럼 어둠 속에 숨어 사는 자들도 까딱하면 목이 달아나기 십상이거든. 대신 거기에서 살아나온 자들의 기억들을 모아 더듬더듬 그려놓은 지도 같지 않은 것이 하나 있기는 하지.」
「그럼 내놔, 영감쟁이.」
「젊은 놈이 성질머리하곤, 쯧쯧.」

혀를 끌끌 차면서도 장물아비는 바쿠고가 금화 한 자루를 던져주자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이전 숲의 황가가 다스리던 시절에 증축되었다는 궁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완전한 미궁이었다. 감옥은 그 궁의 지하에 있을 터였다. 자루 속 금화를 몇 번이고 이로 깨물어보던 장물아비가 건네받은 지도를 펼쳐보고 있던 바쿠고를 보며 덧붙였다.
조심해. 장물아비가 말했다. 거긴 도둑들의 무덤이니까.

「자네도 알걸. 궁의 지하감옥에서 탈출에 성공한 자들은 지금껏 한 명도 없었다고. 그 대단하다는 네 놈의 사부가 아직까지 잡혀 있다는 게 그 증거 아니겠어? 소문으로는 지하 고문실 맨 밑바닥에 수로와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고는 하는데, 그 방을 살아 지나갈 수 있는 자가 없었거든.」

아, 가기 전에 자네 창고 열쇠는 꼭 내게 맡겨주고 가. 속이 빤히 보이는 장물아비의 말에 바쿠고는 등을 걷어 차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장물아비가 욕을 하며 떠난 후에도 바쿠고는 그 인적 없는 뒷길에 서서 한참동안 지도를 뚫어보았다. 전문 화공이 아닌 뒷골목의 어중이떠중이들이 그려놓은 듯한 궁의 감옥 지도는 어설펐지만 장물아비가 말한 수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몇 번을 반복해 뚫어보며 길을 외운 바쿠고는 이번에도 길을 나서기 전에 그 지도를 완전히 태워버렸다. 길을 빠져나갈 때에 바쿠고의 손에는 이미 아무 것도 없었다.

해가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약재상에게 들러 마취 효과가 탁월하다는 물약을 한 병 산 것으로 준비는 모두 끝났다. 그 길로 바쿠고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도성의 신전으로 향했다. 이 도시에서 궁을 제외하고 가장 높다던 신전의 첨탑에서는 궁을 물들이는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노라고 사람들은 말했었다.
금화 한 닢을 마시르의 봉납함에 던져 넣고 합장을 올린 후에 바쿠고는 신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구경을 했다. 자비와 관용이 많은 신관들은 단검 두 자루를 찬 검은 의복차림의 사내가 신전을 둘러보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지하까지 남김없이 살펴보고 난 후에야 바쿠고는 신전의 첨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하렘의 하얀 지붕을 물들이던 붉은 석양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바쿠고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보석은 아마 저 어딘가에 묻혀있을 터였다.

해는 오래지 않아 저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바쿠고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질 때까지 시장에 앉아 술을 마셨다. 과연 점술사가 돌아왔다는 소문 덕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도성의 경비는 어제만큼 삼엄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경비들을 지나쳐 바쿠고는 술값을 치르고 천천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수로의 입구는 신전의 지하와 연결되어 있었다.

신관들도 모두 저녁 기도를 올리러 떠난 신전의 입구는 잠겨 있었지만 문을 여는 것은 바쿠고에겐 일도 아니었다. 미리 챙겨온 짧은 쇠막대로 자물쇠를 열어젖히고 바쿠고는 그대로 텅 빈 신전의 홀을 지나 지하로 내려갔다. 오늘은 수로 안에 금화를 던지지 않았다. 봉납이라면 오늘 낮에 이미 했다. 대신 바쿠고는 뒷주머니를 뒤져 미리 챙겨온 기름에 적신 수건과 부싯깃을 꺼내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천천히 좁고 습한 수로를 거슬러 올랐다.

너와 나를 위해 입을 다물었던 붉은 머리 도둑은 이 길 끝 어딘가에 갇혀 있었다.

한 식경쯤을 걸었을 즈음, 위에서 불어온 바람이 미약하게 흔들리던 불꽃을 훅 꺼뜨렸다. 여기다. 바쿠고는 단박에 알았다. 바람이 분다는 것은 여기 위 어딘가가 다른 곳처럼 막혀 있는 벽이 아니라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제 쓸모를 잃은 수건을 수로 안에 던져버리고 바쿠고는 새 수건을 뽑아 손에 둘둘 감았다. 그리고 제 머리 하나 위에 놓여있던 낮은 천장을 양팔로 천천히 떠밀었다.

벌어진 돌 틈새로 경비 둘이 탁자에 앉아 카드를 돌리고 있었다.

오늘 경비들은 거의 보름만에 다 같이 어울려 술을 마셨다. 그간 고생이 많았다며 황자께서 내린 귀한 술이라며 상관들은 잔을 치켜들었고, 경비들은 늦게까지 자리에 남아 삼삼오오 어울리며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맘껏 누렸다. 며칠간 도둑단의 아들을 고문했던 고문관도, 경비대장도 오늘은 일찍 술에 취해 숙소로 돌아갔다. 남은 자들은 숙소와 경비실 곳곳에 흩어져 더 취하거나 마시르의 이름으로 금화를 걸고 내기를 하거나 했다. 그 탓에 그들은 이 어둠을 틈타 들어온 그림자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흠뻑 젖은 수건이 경비의 입을 틀어막았다.

놀라서 몸을 일으킨 경비는 그대로 뒤통수를 맞고 잠에 취한 동료의 곁으로 쓰러졌다. 소리를 죽인 바쿠고가 그대로 어둠의 그림자처럼 쓰러진 경비들의 몸을 타고 넘었다. 모든 일은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벌어졌다. 보초를 서던 경비들은 이미 취해 있었고, 제 입을 틀어막는 마취제의 향과 혈을 눌러오는 손에 속수무책이었다. 마지막 경비가 바쿠고의 손 안에서 쓰러졌다.

복도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키리시마와 사부는 복도의 맨 끝 방에 함께 갇혀 있었다. 기척을 죽인 바쿠고가 다가갔을 때에도 키리시마는 제 친구를 알아보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제 아버지의 침대에 엎드려 졸고 있었다. 횃불 빛에 드러난 키리시마의 얼굴은 수척했으나 생각했던 것만큼 다 죽어가는 얼굴은 아니었다. 안도에 픽 입매를 민 바쿠고가 조용히 감옥의 창살을 흔들었다.

“야, 건달.”

일어나. 창살을 비집은 바쿠고의 다리가 엎드려서 졸고 있던 키리시마를 퍽 걷어찼다. 그 바람에 화들짝 놀란 키리시마가 놀라 펄쩍 일어나다, 어둠결에 나타난 얼굴을 알아보곤 소리 없이 입을 떡 벌렸다. 녀석이 만약 조금이라도 조심성이 없었다면 진작 소리를 질렀을 얼굴이었다.
안부인사는 됐어. 바쿠고가 친구를 향해 입매를 씩 밀었다. 그리고 가느다란 쇠붙이 서너 개가 붙은 고리를 키리시마의 손 안으로 던져주었다.

“귀찮으니까 문은 직접 따라고.”

하여튼 정 안 가는 자식. 친근함과 반가움이 뒤섞인 얼굴로 키리시마는 그렇게 투덜거리곤 건네받은 쇠붙이를 감옥의 문고리에 밀어 넣었다. 오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사부는 자신의 아들이 부축을 해 몸을 일으킨 후에야 뒤늦게 눈을 열었다. 허나 인사를 나눌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세 그림자가 횃불이 일렁이던 복도를 지나 쓰러진 경비들의 몸을 넘었다.

고문실의 돌은 바쿠고가 빠져 나올 때 그대로 아직 열려 있었다. 먼저 아버지를 수로로 내려준 키리시마가 곧 그 뒤를 따라 아래로 뛰어내렸다. 허나 바쿠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먼저 가. 그 말에 키리시마가 의아한 얼굴로 바쿠고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너는, 인마. 바쿠고가 씩 입매를 밀었다.

“나는 여기에 아직 훔칠 게 남았거든.”

너는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눈부신 보석이겠지. 너를 다시 훔칠 수만 있다면 이젠 그 빛에 눈이 멀게 되어도 상관은 없었다.
지금은 황자도 너의 곁을 떠나있을 것이다. 전해들은 바로 궁의 법도와 관례상 황족은 정실이 아닌 이의 곁에서 밤을 보낼 수 없다. 네게 정말 미쳐버린 것이 아니라면 그 녀석도 지금은 곁에 없겠지. 게다가 난 약속을 했다고. 바쿠고가 눈을 들어 감옥의 좁은 창에 걸려있던 달빛을 흘긋 돌아보았다. 달은 이제 거의 중천에 가깝도록 높아져 있었다.
하이고. 키리시마가 놀리듯이 제 친구를 흘깃 흘겼다. 암만 봐도 놀리는 듯한 투였다. 훔칠 게 남았기는, 무슨.

“미도리야지?”
“…어디서 씨발, 이름을 불러. 건달새끼가.”
“아니, 미도리야가 미도리야지 그럼 이즈쿠도 아니… 야, 인마, 왜 때려!?”

득달 같이 저를 걷어차오는 발길질에 키리시마가 억울한듯 꽥 소리를 지르다, 이내 목소리를 낮췄다. 아직은 장소가 위험했다. 알겠으니까 일단 몸부터 피하자. 쓰러져 있던 경비들이 움찔움찔 떠는 것을 흘깃 살펴본 키리시마가 바쿠고를 잡아끌었고, 바쿠고가 못 이기는 척 그 힘에 끌려 열려있던 돌 아래로 뛰어내렸다. 키리시마가 열려 있던 돌문을 닫았다. 침묵하고 있던 사부가 입술을 뗀 건 바로 그때였다.

“방금 미도리야라고…”

키리시마가, 바쿠고가 동시에 아버지이자 사부인 남자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의연하고 담대했던 대도둑의 눈동자가 유령의 이야기라도 들은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사부가 신음처럼 연거푸 중얼거렸다. 미도리야라니.

“설마 미도리야라면 이즈쿠님… 미도리야 이즈쿠님을 말하는 것이냐.”
“……”
“네 녀석들이 입을 다무는 걸 보니 맞는 모양이군. 세상에, 어찌 이런…”

마시르시여. 사부가 신음했다. 이 무슨 가혹한 운명인가. 입술 끝을 꽉 씹으며 사부는 바쿠고를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망설이듯 달싹이던 입술이 자신의 가장 우수했던 제자를 보며 기어코 한숨을 쉬었다.
카츠키. 사부가 말했다.

“내 너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








*

괴롭게 헐떡이던 호흡이 밀실의 침묵을 흔들었다.

하렘의 밀실은 다른 방과 다름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나 좁았으며 창이 단 하나도 없었다. 본래 술탄에게 반역하거나 신을 저버린 죄를 지은 후궁들이 처형되기 전에 기거하는 방이었으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밀실은 쓰는 이도 없이 오래도록 버려져 있었다. 창이 없는 벽은 높고 좁았고, 방의 가구라곤 오로지 크고 육중한 침상뿐이었다.
시푸른 벽에는 마시르의 은혜를 찬미하는 기도문이 금박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허나 미도리야에겐 그 기도문을 읽어볼 여유와 이성이 없었다. 이 방에 들어와 지금껏 몇 번이고 틈을 젖히며 자신을 뜨겁게 꿰뚫었던 이가 다정과 관용을 잃어버린 것처럼.

엎드려 침대를 움켜잡고 있던 미도리야가 다 잠겨버린 목소리로 비명처럼 떨었다. 또 한 번 벌어져 있던 틈이 흠뻑 뜨겁게 젖었다.

제발… 미도리야가 다 잠겨버린 목소리로 간청처럼 애원했다. 쇼토, 이제 그만… 그 말에도 토도로키는 이 방에서 지금껏 줄곧 그랬던 것처럼 대답 한 번 돌려주지 않았다. 묵묵히 닫아버린 차가운 입술이 바르르 떨고 있던 미도리야의 곧은 뒷목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 어깨를 다시 잡혀 자세를 돌려놓는 동안에도 미도리야는 반항할 힘도 없이 축 늘어져 순순히 토도로키가 하는대로 그저 두었다. 이젠 쾌락도, 다정함도 아리고 괴로운 독이었다. 벌어진 틈이 불길처럼 달아올라 쓰리고 아팠다. 그러나 미도리야는 그보다는 다른 것이 더 아프고 슬펐다.

나는 그저 너와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을 뿐인데.

힘을 잃고 이리저리 떠밀리던 미도리야의 몸은 달아날 의지를 잃어버린 작은 동물 같았다. 기억보다 가늘어진 발목을 움켜잡으며 토도로키는 힘없는 무릎을 다시 구부리며 벌려 놓았다. 다시 겹치며 닿아지고 비벼질 때마다 구부러진 다리 위에서 붉은 리샨사스가 애처롭게 떨고 있었다. 그 자리를 더듬으며 토도로키는 미도리야의 귀 밑을 달고 부드럽게 머금었다. 그 입술만큼은 자비를 모르는 허리와 달리 달콤하고 상냥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미도리야에게 심한 말을 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았던 다정한 사촌의 입맞춤이었다. 그 다정함조차 이제는 어지럽고 쓰린 독이었다.
쇼토, 이제 그만. 기어이 숲색 눈이 후드득 고여 있던 눈물을 쏟으며 애원했다. 제발, 그만.

“아파. 쇼토, 너무 아파…”
“괜찮아, 이즈쿠.”

할 수 있어, 더. 얼굴 위로 기울어온 입술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미도리야의 젖은 뺨과 턱, 입술에 가림 없이 키스하며 색이 다른 눈동자가 부드럽게 웃었다.

“내가 아직 너를 다 취하지 못했어.”

아니, 나는 영영 너를 다 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토도로키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너를 꿰뚫어도 너의 가장 깊은 속까지 나는 끝내 닿을 수는 없겠지. 알아. 색이 다른 눈동자가 천천히 웃음을 지웠다. 누가 감히 내 뜰에 곱게 피어있던 너를 꺾었는지, 누가 감히 나조차도 닿지 못한 너의 깊이에 가닿았는지, 누가 너의 그 깊은 틈을 불태웠는지.

네가 감히 누구에게 마음을 주었는지.

“그 도둑…”

낮게 비져나온 목소리에 미도리야가 흐릿하게 젖어 있던 눈을 크게 열었다. 토도로키는 웃지 않았다. 언제고 저를 향해서는 부드럽게 웃어주었던 그 색이 다른 눈동자가 얼음처럼 차갑게 미도리야를 뚫어 보고 있었다.
죽여주지. 펼쳐진 손이 리샨사스가 흩어진 살갗을 그대로 찢어버릴 듯 힘껏 주무르며 속삭였다. 지옥에도 갈 수 없도록. 미도리야가 고통과 괴로움에 허리를 비틀었다. 하지마, 쇼토, 제발… 아픔과 쾌락의 여진이 뒤섞인 목소리가 혼란처럼 헐떡였다. 귓가로 기울어온 입술이 가장 예민하고 부드러운 귓불을 빨며 이를 세웠을 때 미도리야는 그만 견디지 못하고 턱을 젖혔다. 멈췄던 허리가 다시 격렬히 벌어진 틈을 난폭하게 치대며 빠지기를 반복했다. 눈을 괴롭게 일그러뜨린 미도리야가 비명처럼 헐떡였다. 제발, 제발…

“제발… ㅎ, 쇼토, 그만… 하ㅇ, 그만, 더는, 아ㅎ,…!”
“나는 너의 앞에서 그 자를 도륙할 것이다. 그의 가슴을 꿰뚫고, 그의 머리를 육신에서 떼어내어 사막의 개들에게 던져주겠지. 볼만할 거야.”
“그만,… 괴로워, 더는… 아파, 찢겨… 찢길 것 같, 흐ㅅ,!”
“나는 그리할 거다. 반드시, 그렇게 하고 말 테니까,”
“쇼토, 쇼ㅌ… 아으ㅎ, …!”
“나는 토도로키니까.”

너와 나 사이에 풀 수 있는 매듭 같은 것은 없어. 우린 그저 이렇게 태어났을 뿐이다. 허니 너는 울어라, 세상에서 가장 고운 얼굴로. 절망과 비탄은 너의 영혼을 영원히 내게 가두겠지. 그럴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죄를 지어도 상관없었다. 허리를 쉼 없이 찍으며 토도로키가 미도리야의 입술에 제 입술을 단단히 겹쳤다. 그 입맞춤에서는 비릿한 피맛이 났었다. 죽음을 닮은 맛이라고 토도로키는 잠시 생각했었다.





*

너의 왕이다.
사부가 바싹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오랜 예언처럼 그렇게 말했다. 미도리야 이즈쿠는.

“10년 전에 이 궁에선 반란이 있었지. 숲의 황가를 섬기던 모든 가신들이 토도로키 엔데버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특히 가까웠던 충신들은 하인까지 남김없이 학살당했지. 그때 네 어머니가 시종장이었던 내 형님을 거쳐 너를 내게 보냈다. 이 아이를 거리의 아이로 키워달라고, 숲의 황가를 섬겼던 재상의 아들이었음을 모르고 크게 해달라고, 도둑들과 창녀들의 왕이 되게 해달라고, 그리하여 살아남게 해달라고.”
“……”
“네 손에 쥐고 있던 그 보석은… 이즈쿠님이 주신 것이다.”

어린 시절의 동무라고 했다. 오래도록 황가를 섬겨왔던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나, 반역이 없었더라면 역시 그 황태자가 무탈하게 자라 술탄이 될 때까지 그 곁을 지켰을 것이라고 했다. 사부가 말을 잃은 제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탄식을 했다. 마시르시여, 잔인하고 지독한 운명의 여신이여.

어찌 이 둘을 다시 만나게 하셨습니까.

머리 위에서 발소리가 났다. 키리시마가 다시 닫아놓은 수로의 천장돌을 다급한 얼굴로 흘긋 올려다보았다. 재워놓았던 경비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일단 얘기는 나중에들 나누면 안될까? 이럴 때가 아니라고. 가야해요.”

키리시마가 아버지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버지를 끌며 수로를 몇 걸음 걷던 키리시마가 꼼짝도 하지 않는 바쿠고를 돌아보았다. 야, 카츠키! 가야한다니깐? 허나 바쿠고는 그 뒤를 따르지 않았다. 키리시마가 답답한 제 가슴을 쿵쿵 쳤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는데, 인마. 지금은 안돼. 지금쯤 이미 우리가 탈옥했다는 얘기가 황자의 귀에도 들어갔을 거라고. 그럼 생각을 해봐. 네가 황자면 어쩌겠어. 누가 우릴 데리고 탈옥을 시켰겠냐고. 너밖에 없잖아.”
“……”
“오늘은 안돼. 내일 다시 와. 인마, 잘못하면 너는 물론이고 미도리야도 죽는다고…!”
“어, 씨발, 그건 알겠는데,”
“……”
“내가 이제 할일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서.”

너를 훔치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너를 가진 그 자가 그저 미친 자라고 생각했었지. 그 집착을, 네게 세상 빛을 보지 못하게 하고 족쇄를 채우는 그 병든 마음을 사실 나는 이해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그래서 너를 다시 훔치면 될 거라고만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가볍게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건 얘기가 다르지. 선홍색 눈이 기울어진 어둠 밑에서 씩 웃었다.

“내가 이젠 죽여야 할 사람이 생겨서.”
“……”
“그러니까 가요. 나는 씨발, 당하고는 못살거든.”

하렘으로 가야 한다. 생각을 삼킨 바쿠고가 인사도 없이 다시 몸을 돌렸다. 거기에 있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 사람,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 사람,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부순 사람, 빼앗은 사람. 그리하여 네게서 나를 잃게 한 사람. 내게서 너를 잃게 만든 단 한 사람.

지금 이 나라 황가의 이름은 토도로키라고 했었다.



(계속)




역시 이 시리즈는 이 브금을 들어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흐름부터는 사실 라하브 때 바쿠고가 미도리야 훔치던 장면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라 브금도 같이 쓰고 싶었어용 헤헤<<< 아마 완결까지 다시 또 이 노래일 듯 하지만^ㅇㅠ
무튼 트위터에도 예고했듯 바라카는 중2나 중3까지 나온 후에야 매듭이 지어질 것 같습니다.. 최종장이라서 역시 좀 기네요 흑흑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떤 결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쯤에서 이 정도 언급은 괜찮을 것 같아서 (그래도 가리기/긁어주세요>>) 세 사람 중 누구도 죽지는 않을듯 합니다.
다음 편도 그렇게 빨리 나오진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틈틈이 힘내겠다며ㅠ.ㅠ.ㅠ.ㅠ.ㅠ.ㅠ.ㅠ 즐겁게 읽어주시는 분들 늘 감사해요 흑흑 ㅠㅠㅠㅠㅠㅠ 쓰기 힘들어서 광광 울다가도 남겨주신 피드백 곱씹어 읽으면 없던 기운도 솟아나는 그런 마법으로 오늘도 곶손을 놀립니당.. 감사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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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합니다 2017.08.20 15:36 SECRET

    "비밀글입니다."

  • OOP 2017.08.20 15:40 SECRET

    "비밀글입니다."

  • 눈누난나 2017.08.20 16:33 SECRET

    "비밀글입니다."

  • 샤인 2017.08.20 23:03 SECRET

    "비밀글입니다."

  • 너무잘읽고있습니다 2017.08.21 04:13 SECRET

    "비밀글입니다."

  • 루카님이최고예요! 2017.08.24 02:46 SECRET

    "비밀글입니다."

  • 멍멍 2018.02.07 05:22
    다음편 안나오나요 ㅠㅠㅠㅠㅠㅠ
  • 갓갓루카님 ㅠㅠ 2018.06.26 03:06 SECRET

    "비밀글입니다."

  • 갓카님.. 2019.01.08 19:02 SECRET

    "비밀글입니다."

  • 바라카,,, 2019.01.29 09:58 SECRET

    "비밀글입니다."

  • 시엔카일류 2019.02.26 17:21 SECRET

    "비밀글입니다."

  • 루카님사랑해요제사랑을뱓아주세여 2019.03.15 07:44
    루카님 ㅠㅠ 사랑합니더 ㅠㅠㅠㅠㅜ 글 쓰시다가 힘들어서 울었다고 하신게 너무 속상하네요 ㅠㅠㅠ
    루카님, 힘내시구, 진짜 루카님의 글을 사랑해서 몇번이나 정주행 하고 있어요-!!! 더 빨리 써달란 재촉 이제 안 할게요 ㅠㅠ 여유 있으실 때, 몸도 마음도 괜찮으실 때 행복하게 글 써 주시면 그걸로도 족합니다!! 언제나 다양한 세계관과 탄탄한 설정과 언제봐도 예술인 문체들이 짱이십니다 어휘력이 없어서 더 표현을 할 수가 없는게 아쉬울뿐이예요 ㅠㅠ 암튼 루카님, 행복하게 글 써주세요♥♥ ㅎㅎ 읽는 저는 글을 읽으면서 언제나 행복하니까요 ㅎㅎ 루카님 적게 일하고 돈 많이 버세요!! 들숨에 건강을 날숨에 재력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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