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아랍AU 캇뎈, 토뎈
* 도둑 바쿠고, 하렘의 소년 점술사 미도리야, 하렘 주인 황자 토도로키로 캇데쿠토도/토도데쿠캇
* 먼저 여는 글을 읽어주셔요


http://youtu.be/RM4eyMmoo6o








감히 왕의 것을 탐한 자, 저주를 받으리라.

하렘의 입구에는 이와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황자는 가장 아끼던 보석을 잃었다. 도둑은 점술사를 훔쳐 달아났고, 점술사는 얼음보다 차가운 성을 떠나 불길처럼 뜨거운 사막으로 사라졌다.

그 밤, 가장 무서운 저주가 시작되었다.

예언은 오래도록 뒤척거리다 겨우 도둑의 품에서 잠에 빠져든 점술사의 몸을 화살촉처럼 예리하게 꿰뚫었다. 원치 않았던 예언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발작처럼 몸을 떠는 점술사의 귓가에 ‘꿈’은 낮게 속삭였다. 너는 또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잃게 될 거야. 그리고 또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테지. 그 무기력함이, 힘이 없는 자신이 가련하고 고통스러워 점술사는 판판한 가슴을 헐떡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라고, 아닐 거라고.

하지만 모두 그렇게 죽었다. 아빠도, 엄마도.

점술사의 비명소리에 도둑은 잠에서 깼다. 점술사는 이미 꿈의 세계에 통째로 먹혀버린 것처럼 흠뻑 젖은 솜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 도둑은 본래 누군가를 위로하는 법을 몰랐다. 그런 일엔 늘 서툴러서, 도둑은 제게 꽉 매달려 헐떡이던 점술사의 입술을 거칠게 집어 삼켰다. 아. 점술사가 환희와 황홀에 발끝을 부르르 떨었다. 도둑이 점술사의 눈을 손으로 덮으면서 속삭였다. 그깟 꿈에 먹히지마, 멍청아.

다 잊게 해줄 테니까.

맞아, 네 품에 있으면 잊을 수 있을 테니까. 점술사가 허겁지겁 도둑의 단단한 가슴팍을 더듬었다. 몇 번이고 입술을 겹치고 호흡을 섞으며 두 그림자가 단단히 겹쳤다. 헉헉 밭은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점술사는 탐욕스럽게 도둑의 혀에 제 혀를 얽으며 몇 번이고 울대를 밀었다. 흐릿하게 젖어있던 숲색 눈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일렁이던 그 빛이 아니었다. 유달리도 요요했던 그 눈빛은 차라리 발정 전의 짐승처럼 위태로웠다.
나를 취해. 점술사가 발갛게 부어버린 입술을 도둑의 귀밑에 찍으며 속삭였다. 캇쨩, 너도 그렇게 해줘.
맞아, 그들은 그렇게 했었다.

「바라카를 가진 자는 세상을 얻을 수 있대.」

너에게도 세상을 줄게. 점술사가 속삭였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줄게. 도둑은 그 말에 그만 분기가 치밀었다. 그딴 건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도둑이 이를 꽉 악물었다. 등신 새끼야.

「내가 가지고 싶었던 건 이미 훔쳤다고.」

그러니까 너는, 씨발, 입 다물어. 말을 씹은 도둑이 저에게 매달리던 점술사를 침대 위로 넘어뜨리고 허리 위로 올라탔다. 벗겨낼 틈도 없이 발목까지 떨어지던 하얀 토브 자락을 단숨에 점술사의 허리까지 걷어 올리면서 도둑은 하얗게 떨고 있던 점술사의 피부 곳곳에 이를 세우고 입술을 찍으며 그 숨결을 흠뻑 들이마셨다.
발갛게 떨고 있던 리샨사스를 힘껏 움켜쥐었을 때 점술사는 턱을 젖히며 기어코 도둑의 목에 제 팔을 두르며 매달렸다. 점술사에겐 도둑의 그 뜨거운 입술과 제 살갗 위를 더듬어오던 그 모든 것들이 구원인 것처럼 느껴졌다. 정욕과 탐심을 닮은 광기가 점술사를 그 단단한 품으로 힘껏 떠밀었다. 기대로 흠뻑 젖은 숲색 눈이 아이처럼 떼를 썼다. 그럼 놓지마. 제발, 나를… 어떻게든 해줘. 어떻게든 이 바람소리를 멎게 해줘. 이 고통을 제발 끝내줘.

「나를 영영 신에게도 빼앗기지마.」





그 밤, 점술사는 도둑의 팔 밑에서 몇 번이나 울며 깨기를 반복했다. 흔들리는 몸을 따라 알을 잃은 빈 목걸이가 점술사의 판판한 가슴 위에서 덜그럭덜그럭 춤을 추었다. 구름처럼 탁하고 흐린 것을 도둑의 단단한 복부 위에 잔뜩 흩어놓으면서 온몸을 크게 떤 점술사의 몸이 이윽고 도둑의 품 위로 풀썩 가라앉았다. 그대로 미동도 없이 의식을 놓아버린 점술사를 단단히 끌어안고서 도둑은 한 잠도 이루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올 때까지, 기어코 저 들창 너머로 붉게 떠오르던 햇빛을 볼 때까지, 부옇게 피어오르던 모래 폭풍 속에서도 떠오르던 그 찬란한 빛을 보게 될 때까지.
데쿠. 꽉 눌려 탁하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품 안에서 잠이 든 연인의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소리를 따라 점술사는 눈을 들어 도둑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잠을 설친 탓인지 유난히 피곤해보이던 꺼칠한 얼굴을 크게 쓸면서 도둑은 말했다.

“돌아가자, 씨발.”
“……”
“어디 한 번, 그 망할 예언을 따라서.”

도둑의 친구가 차디찬 감옥 안에 내던져지던, 점술사를 잃은 황자의 서슬 퍼런 칼날이 밤새 뒤척이던, 아침이었다.








예언의 숲


Baraka بركة











하늘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길을 나서자 기이하게도 모래폭풍이 멎었고, 사막의 하늘은 언제 폭풍이 불었냐는 듯이 청명했다. 정말 신의 저주였나 싶어 쓰게 웃다, 이내 생각을 떨쳐버린 바쿠고가 미도리야를 먼저 말에 태웠다. 올 때처럼 고삐를 잡은 바쿠고의 품에 안긴 채로 미도리야는 저 너머로 멀어지던 사막의 성채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점점이 멀어져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성채를 보고 있노라니 마치 지난 보름이 모두 꿈처럼 여겨졌었다.

이대로 꼬박 하루를 달리면 다시 도성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에 운이 좋게 나타난 오아시스에서 바쿠고는 말을 멈추었다. 왜 이런 곳에 멈추었는지 영문을 몰라 눈을 꿈벅거리던 미도리야는 오아시스 주변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십 수 마리의 낙타 떼와 천막을 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이유를 알아차렸다. 광활한 사막을 오가며 낙타를 치고 장사를 한다던 이웃나라의 상단商團이었다.

“그냥 기어들어갔다간 네 앞에서 내 목이 떨어진다고, 멍청아.”

상단의 천막으로 성큼 들어서며 바쿠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미도리야에겐 퍽 낯설었던 이교도들의 언어로 상인들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고는 앞에 놓여있던 의복 중 한 벌을 집어 미도리야의 품으로 던져주었다. 하늘하늘하고 베일까지 달려 있던 이교도들의 의복은 어떻게 보아도 남자들을 위한 토브는 아니었다.
넌 그냥 입만 다물고 있어. 금화 한 자루를 상인들에게 건네면서도 바쿠고는 그 점을 몇 번이고 강조했었다.

“나머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날 밤은 그대로 천막 하나를 빌려 야영을 했다. 그 밤도 미도리야는 여지없이 비명을 지르며 발작을 했고, 바쿠고는 묵묵히 미도리야의 옷섶을 헤집으며 허공을 걷어차던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제 온몸을 긁으며 상처를 내고 발길질을 해도 바쿠고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정염을 따라 턱을 젖히고 천장을 올려보던 숲색 눈의 빛은 온통 탁하고 흐렸었다. 그러다 끝내 도달하지 못한 미도리야가 바쿠고의 가슴 밑에서 또다시 혼절했다. 바쿠고가 헉헉 숨을 몰아쉬며 의식을 잃어버린 미도리야를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몸 곳곳에 입술을 떨어뜨리며 살결을 들이마셨다. 그 온몸에 부적이라도 새기는 것처럼 길고 오랜 입맞춤이었다.
미도리야는 혼절한 채로도 이따금씩 뜨거운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온몸을 흠칫흠칫 떨었다. 헐떡이던 숨소리는 마치 누군가 목이라도 조르고 있는 것처럼 너무 가늘고 작았었다. 그때는 바쿠고도 가슴이 철렁했었다. 이 녀석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쿠고가 탁, 천막의 모래 바닥에 침을 뱉었다.

처음으로 너의 운명을 원망했다. 신에게 매인, 예언에 사로잡힌 이 빌어먹을 운명.

날이 밝자마자 바쿠고는 미리 돈을 지불했던 상인들의 낙타 두 필을 천막 앞으로 끌고 왔다. 낙타에 올라서도 미도리야는 이교도 여인들의 의복이 불편해 고삐를 쥐고도 한참동안 뒤척거렸다. 참아. 이교도의 터번을 감아 색이 밝은 머리를 감추면서 바쿠고는 말했다. 그래도 발목까지 모두 꽁꽁 동여맨 그 검고 답답한 의복이 네 놈을 지켜줄 테니까.

바쿠고의 말 그대로였다.

“이교도들의 나라에서 찾아온 오빠와 여동생이라…”

도성 앞은 떠날 때와 달리 경비가 삼엄했지만, 병사들은 바쿠고와 미도리야를 딱히 의심하지 않았다. 상인들에게 말을 걸 때처럼 유창한 이교도의 언어로 바쿠고는 미도리야가 자신의 여동생이며, 이곳에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살고 있어 인사를 하러 왔다는 말을 담담히 경비들에게 늘어놓았다.
그래도 얼굴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양피지에 사유를 적고 있던 경비가 미심쩍은 얼굴로 흘긋 미도리야를 올려보았다. 검은 베일로 얼굴을 모두 가린 미도리야가 유독 색이 깊던 숲색 눈을 끔벅거렸다. 경비가 히죽 웃었다.

“황자께서 찾으라고 수배를 내린 점술사의 눈이 꼭 이렇다고 들었거든.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깊은 숲색이라고 분명… 힉!”

미도리야에게 다가서던 경비가 제 목을 정확하게 겨누던 검날에 힉 숨을 삼키며 주춤 물러섰다. 꺼져Geri bas. 경비에게 겨눈 단검자루를 비틀면서 바쿠고가 이교도의 언어로 사납게 말을 잘랐다.

“내 나라에선 여인의 얼굴을 함부로 훔쳐본 자를 살인해도 죄가 되지 않거든.”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이교도는 신의 교리로 지배되는 이곳의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경비들이 분한 얼굴로 창을 거두며 뒤로 물러섰고, 바쿠고와 미도리야를 태운 낙타는 아무런 문제없이 성문을 통과했다. 그제야 미도리야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보름만에 다시 돌아온 도성은 한산하고 고요했다. 길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었고, 그나마도 고개를 숙이고는 바쁘게 제 갈 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시인들의 노래는 멈췄고, 춤을 추는 여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삽시간에 활력을 잃어버린 사막의 도성은 차라리 무덤과도 같았다.
모퉁이를 돌아 낯설고 좁은 시장의 뒷길로 들어섰을 때 바쿠고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항상 길 앞에 나와 뛰어놀고는 하던 익숙한 꼬마들이 울고 있었다. 지도를 찾아놓았다던 붉은 머리 건달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잡혀 갔어요, 에이지로 형이…”

이미 눈이 퉁퉁 부어 있던 꼬마가 터번을 벗어젖힌 바쿠고를 올려보며 울먹거렸다. 누가. 선홍색 눈이 사납게 되물었다. 그때 미도리야는 꼬마의 입술이 두려움에 바르르 떨리던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 두려움이, 그 아이가 느끼고 있을 감각이 낯설지 않았었다.

“황자께서…”

미도리야가 억장처럼 무너지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

하렘의 새가 노래를 멈췄다.

언젠가부터 정원에서는 새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카딘Crown princess과 이크발Mistress들은 새가 떠난 정원을 기이하게 여겼다. 본래 하렘에서는 리샨사스가 한창인 이 계절이면 정원에 놀러온 새들이 아침마다 말갛게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고는 했었다. 개중 입이 가벼운 이크발들은 이를 두고 점술사Baraka가 사라진 탓이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감히 아미르Prince의 앞에서 떠들 수 있는 자는 이 나라 어디에도 없었다.

“그 건달 녀석이 도무지 입을 열지 않습니다.”

하렘의 빈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던 색이 다른 눈동자가 목소리를 따라 송구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푹 수그린 경비 대장을 잠시 흘깃 돌아보았다. 그 건달 녀석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이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토도로키가 다시 빈 창을 돌아보며 차갑게 대꾸했다.

“어떻게든 입을 열도록 만들어. 그게 새로 이 자리에 임명된 네 놈의 소임이고 의무다.”
“알고 있습니다. 허면 황자폐하, 녀석의 아버지를 이용해 협박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듣자하니 넉 달 전에 수감되었던 도둑단의 두목이 녀석의 아버지라는 것 같습니다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몇 달 전이라면 이런 협박은 비겁하다며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토도로키가 소리 없이 쓴웃음을 삼켰다. 이즈쿠, 네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무슨 소리를 했을까. 쇼토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너는 부정했을까, 아니면 그 크고 깊은 눈을 흔들며 상처 받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을까. 허나 모두 소용없는 짐작이고 헛된 생각이었다.

오로지 한 사람만을 마련해준 이 아름답고 화려한 방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보고를 마친 경비대장이 목례를 올리고 물러나는 동안에도 토도로키는 그저 텅 빈 창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하렘의 정원은 온통 붉었다. 제 철을 맞은 리샨사스는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눈에 걸릴만큼 온 곳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미도리야는 저 붉은 리샨사스를 유난히도 좋아했었다. 그래서 토도로키는 다른 꽃을 모두 뽑아버리고 저 자리에 리샨사스를 심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리샨사스는 붉은 꽃망울을 한껏 열고는 그 여린 꽃잎을 한들한들 흔들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떠나버린 새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방의 주인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창 너머를 바라보던 토도로키가 소리 없이 입술 끝을 꽉 씹었다. 어쩌면 이 방을 떠나 홀연히 사막으로 날아가 버린 눈이 깊고 웃는 얼굴이 곱던 어느 새를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새야, 너는 지금 어느 이름 없는 하늘 위를 날고 있을까.

아무 것도 가져간 것 없이 미도리야만 사라져 버린 이 방은 그날로부터 공허한 무덤이 되었다. 미도리야가 사라진 그날부터 토도로키는 수시로 이 비어버린 무덤으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이해를 할 수가 없어 그랬을 것이다. 토도로키는 미도리야를 가장 완전한 새장 속에 가두었었다. 지금껏 감히 하렘의 담장을 넘어오다 살아남은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하렘으로 오르는 담장은 까마득히 높았고, 어쩌다 운이 좋아 담장을 올랐다 하여도 정원에 닿기도 전에 악어를 풀어놓은 수로를 건너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렸다.
그 안온한 새장 속에 오래도록 너를 가뒀었다. 혹여 세상 빛이 너를 데려갈까 너의 눈을 가렸고, 혹여 세상의 바람이 너를 업어갈까 너의 발을 묶었다. 그 새장은 결코 함락될 수 없을만큼 견고하고 단단한 것이었을 터다. 설령 운명의 여신Masir이라 하여도 너를 이 새장 속에서 훔쳐갈 수는 없었겠지.
허면 너를 훔쳐간 도둑의 솜씨가 좋았을까. 그렇게도 짐작해보았었지만 토도로키는 그뿐만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즈쿠, 네가 저 창을 넘어 홀연히 사라진 그날부터. 색이 다른 눈동자가 깊게 일그러졌다. 알고 있었다. 너는 스스로 나간 거다. 네 자신의 의지로 나를 떠나, 나의 이 새장을 떠나서. 토도로키가 빈 주먹을 힘줄이 두드러질만큼 힘껏 쥐었다.

어느 누가 감히 너에게 새장 밖을 알게 했을까. 누가 네게 감히 사막의 바람을 가져왔을까.

너는 영영 이 새장 속에 살 수도 있었다. 사막의 바람을 몰랐더라면 너는 이 새장을 열고 날아가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막의 냄새를 가진 누군가가 감히 이 새장을 열고 들어와 너에게 바람을 알게 했다. 그 사실을 짐작해보는 것만으로도 토도로키는 가슴 안에 피어오르는 분기를 도무지 인내할 수가 없었다.

이즈쿠, 나는 너를 훔친 자에게 결코 관용과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네가 사라져 버린 날 이후부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얼굴도 똑바로 알지 못하는 그 녀석을 베어버리는 꿈을 꾸었다. 너는 어쩌면 한 순간의 달콤한 꿈에 취해 그를 살려달라고 내게 엎드려 빌지도 모르지. 지금껏 토도로키는 미도리야의 청을 거절하고 물려본 적이 없었다. 허나 이번은 아냐, 이즈쿠. 토도로키가 빈 입술을 소리없이 꽉 악물었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네가 아무리 울며 빌어도, 그의 죽음이 너의 가슴을 칼날처럼 꿰뚫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만들어도.

어차피 죄라면 이미 지었다. 신앙은 이미 오래 전에 저버렸다. 너를 마음에 품었던 어린 날부터.

그래도 오늘쯤이면 소식을 들을 수 있겠지. 토도로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새로 임명된 경비대장은 일부러 지하 감옥의 고문관 중에 골랐다. 녀석은 가장 악랄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어떻게든 그 도둑의 친구라는 녀석을 비틀어 끝내 입을 열도록 만들 것이다. 생각을 삼키며 토도로키는 잠시 빈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때 닫혀 있던 문이 다시 열렸다. 미도리야를 모시고 있던 시동 소년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폐하! 저는 아무도 안 계신 줄 알고…!”

소년이 다급히 엎드리며 이마를 땅에 붙였다. 토도로키는 별 다른 표정도 반응도 없이 제게 고개를 조아리며 벌벌 떨던 작은 소년을 잠시 쳐다보았다. 허나 화를 내거나 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었다.

“매일 정리하고 있느냐.”

머리 위에서 떨어진 낮은 목소리에 머뭇머뭇 고개를 들어 올린 소년이 영문 모를 얼굴로 반문했다. 예…? 그 동그랗고 커다란 눈이 꼭 누군가를 닮아 있어서 토도로키는 저도 모르게 오랜만에 희미하게 눈 끝을 접었다. 그리고 얼굴만큼 좀 전보다 한결 풀어진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이즈쿠의, 아니, 바라카의 방을 매일 정리하고 있느냐는 말이었다.”
“아… 네!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니까요.”

소년이 흐, 웃었다. 보름간 만나지 못한 주인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어린 소년의 얼굴에 번져 있었다.

“사막의 바람이 많이 매서울 텐데… 같이 일하는 어른들이 그러셨어요. 사막의 바람은 무섭다고, 자칫 눈을 팔고 그 뜨거운 바람에 휩쓸리면 그대로 돌아오는 길을 잃고 만다고… 그러다 그 바람을 한 번 마음에 품게 되면 영영 돌아오고 싶지 않을 거라고.”
“……”
“그래도 만약 스스로 떠나신 거라면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
“헉, 제가 무슨 말을… 죄송합니다, 황자폐하!”

합 입을 다문 소년이 다시 한 번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던 소년을 내려다보면서도 토도로키는 낯설지 않은 감각을 느꼈다. 너를 닮았다. 더불어 이 소년은 나를 닮아있기도 했다.

네가 떠난 보름동안 주인 없는 방을 홀로 지키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아이가 어떤 연유로 미도리야에게 오게 되었는지는 토도로키도 잘 알고 있었다. 연회 자리에 불려 나온 어린 꼬마를 본래 노예로 팔아 넘기겠다고 하던 아버지에게 미도리야는 드물게 고집을 피우고 간청을 하며 이 아이를 제게 달라 하였었다. 그리하여 미도리야는 노예로 넘어가 사창가의 남창으로 팔릴 지도 몰랐을 아이의 삶을 수렁에서 건져냈다. 이 아이에게 미도리야 이즈쿠는 그저 모시는 주인 그 이상일 것이다. 생각을 삼키며 토도로키가 바짝 물기가 마른 울대를 느리게 밀었다. 확실히 이 아이는 자신과 닮아 있었다.

이즈쿠, 내 삶을 구원한 건 오직 너뿐이었는데.

내 아버지가 만든 지옥에서도 너는 언제나 내게는 웃어주었다. 함께 놀아주던 동무조차 잃어버린 후에는 오로지 나를 좇으며 따랐었다. 네게는 그런 것이 있었다. 너를 향한 추악한 탐심과 정염에도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고결함, 그 아무리 험한 바람에도 결코 쉽게 부러지지 않는 의연함… 너는 강했고 또한 아름다웠다. 너의 삶을 쉼 없이 부러뜨리던 예언의 고통처럼.
그래서 너를 꺾었다. 토도로키가 쓰게 웃었다. 눈앞의 이 어린 아이가 저보다도 나았다.

“네 나이가 몇이더냐.”

이번에도 토도로키는 소년의 무례를 꾸지라는 대신 그렇게만 물었다. 바짝 엎드린 채로 소년은 우물거렸다.

“열 살… 열살이 되었습니다, 황제폐하.”
“그렇군.”

색이 다른 눈이 곧 사라져 녹아버릴 얼음처럼 옅게 일렁였다.

“네가 나보다도 더 어른이구나.”

슬며시 다가온 손이 소년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흠칫 놀라 목을 움츠리면서도 소년은 토도로키의 손 안에서 잠자코 엎드려 있었다. 소년은 그 언젠가 유약했던 너처럼 작았고 어렸다. 더불어 강하고 의연했다. 나를 구원했던 그 색이 깊던 눈처럼.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어. 토도로키가 쓰게 웃었다.

이 관계는 시작부터 부정한 것이었다. 내 아버지가 네 어머니를 죽이고 너의 왕국을 빼앗았을 때부터, 내가 내 아버지처럼 너를 그의 궁전에서 억지로 빼앗아온 것처럼 모든 일은 신이 정한 도리와 굴레를 진작 벗어났다. 이제 너를 위해 잃을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너를 위해 진작 신을 버렸던 것처럼.

내 꽃, 내 새야.
나는 끝내 너를 되찾을 것이다.

이 소년에게 금화 한 상자를 내리도록 해라. 바라카의 방문을 닫고 나오면서 토도로키는 입구를 지키던 병사에게 그렇게 전했다. 하렘의 하얀 복도 위로 건기의 햇살이 따갑게 기울었다. 그때도 정원에선 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영원한 침묵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해가 기울고 있었다.






*

“돌아갈 거야.”

미도리야가 입술을 꼭 씹었다 놓았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햇살이 주근깨가 흩어져 있던 하얀 뺨을 불꽃처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말을 잃어버린 도둑의 얼굴을 담담히 뚫어보며 미도리야는 거듭 말했다. 캇쨩.

“내가 돌아갈게.”
“……”
“내가 아미르Prince에게… 아니, 쇼토에게 돌아가면 다 끝날 일이야.”

지금껏 관계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거나 다쳤다. 아빠, 엄마, 술탄의 궁을 지키던 병사들, 하렘의 사람들, 그리고 그 먼 사막까지 우리를 위해 힘든 길을 오고 갔던 너의 그 쾌활했던 친구… 이 다음은 분명히 너야. 미도리야가 입술을 거듭 꼭 짓씹었다. 알고 있었다. 예언의 칼날은 단 한 번도 미도리야의 곁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쇼토, 너의 그 얼음 같은 칼날조차 나의 운명이 내린 저주가 아닐까.

가야해. 미도리야는 고집을 부리듯 거듭 되뇌었다. 말을 잃고 가만히 뚫어만 보고 있던 바쿠고가 기어이 눈을 구겼다. 절로 소리가 높아졌다.

“미쳤냐!? 그 새끼는 지금 돌았다고. 이대로 돌아가면 너는 씨발 영영 못 돌아올…”
“그땐 네가 다시 나를 훔쳐주면 되잖아.”
“……”
“가야해. 쇼토랑 얘기를 하고 싶어.”

생각해보면 나는 단 한 번도 네 감정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준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나는 늘 입을 다물었었다. 네가 미웠었다. 그럼에도 너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 차디찬 궁에서 나를 구해준 건 너야. 좀처럼 웃는 일이 없어 얼음Jamad이라 불린다던 황자는 그래도 자신의 사촌에게는 늘 색이 다른 눈동자를 부드럽게 접으며 다정한 얼굴로 웃어주곤 했었다. 그 맘을 나는 알고 있었어. 알면서도 늘 모르는 척 했었다.

네가 그 남자의 아들이라서, 네가 그저 토도로키 쇼토라서.

바쿠고가 사납게 콧날을 일그러뜨렸다. 이 등신 새끼가.

“잘 들어, 멍청아. 네 놈과 그 새끼 사이에 얘기란 건 없어. 두고 보라고, 그 새끼가 너를 어떻게 하는지. 너를 어떻게 가두는지. 이제는 팔다리를 모두 분질러 너를 아예 햇살조차 닿지 않을 깊고 깊은 궁 안에 영원히 가두겠지. 두 번 다시 그 누구도 너를 보지 못하게. 감히 그 누구도 너를 탐낼 수 없도록, 씨발.”
“……”
“…나라도 그렇게 할 테니까.”

숲색 눈이 크게 열리다, 이내 천천히 가라앉았다. 홱 시선을 돌려버리고 씨근거리는 선홍색 눈을 좇아 가만히 뚫어보다 미도리야는 흐 웃었다.

“그래, 알아. 걱정하는 거… 나도 돌아가기 싫어. 돌아가봐야 어차피 영원히 달아나지도 못할 곳에서 난 계속 꿈만 꾸겠지. 꿈꾸기 싫어. 알고 싶지도 않은 내일 같은 거, 보기 싫어.”
“……”
“근데 그보다 누굴 잃는 게 난 더 싫어.”

날 때부터 그런 삶이었다. 운명이 내게 그렇게 속삭였어. 너의 모든 것을 잃게 될 거라고, 너는 달아날 수 없다고, 영원히 이 운명에 뿌리를 내리고서 햇살과 바람이 그리워 잎을 흔들며 우는 나무에 불과하다고.
바쿠고가 고집스럽게 입을 꼭 다문 미도리야를 복잡한 얼굴로 뚫어 보았다. 어떻게 말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그 입술에 굳게 걸려 있었다. 하, 씨발. 욕을 짓씹은 바쿠고가 색이 밝은 머리를 크게 헝클였다.

“그래, 씨발. 가. 가서 뒤져라, 등신 새끼야.”

그리고 품 속을 뒤적거린 바쿠고가 미도리야의 손 안에 뭔가를 툭 던져주었다. 엉겁결에 양손을 벌린 미도리야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제 손 안에 떨어진 것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작은 돌멩이처럼 손 안에 꼭 들어오던 그것은 유독 초록빛이 깊은 보석이었다.
가져가라, 멍청아. 바쿠고가 무심한 투로 툭 그렇게 말했다. 내 부적이니까.

“다섯 살 땐가, 내가 불길을 뚫고 사부한테 달려왔을 때 이걸 쥐고 있었다더라. 사부 생각에는 이게 내 목숨을 살린 것 같다더라고. 씨발, 그딴 미신을 왜 믿고 자빠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가져가라고. 혹시 모르니까.”

숲색 눈이 흐, 웃었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논다는 지적을 하는 대신 미도리야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그리고 손 안에 떨어진 그 초록빛 보석을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붉은 노을빛에도 색이 깊은 보석은 꼭 숲처럼 푸르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생긴 보석을 본 적이 있는데… 미도리야가 입술 끝을 꼭 씹었다. 하지만 어디에서 이 보석을 보았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리 위로 붉은 노을이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이제 곧 밤이었다.




(계속)



저는 오늘도 11시까지 야근을 했고 내일도 출근을 해야하지만 그게 너무 억울해서 피곤을 무릅쓰고 이 글을 씁니다..... 흑흑 더 빨리 쓰고 싶었는데 현실 대체 왜 이럴까요..... 진짜 왜 이렇게 바쁜 건지 억울하고 서러운 삶 ㅠ... 그래도 틈틈이 써놔서 다행이네요ㅠ.ㅠ.ㅠ.ㅠ.ㅠ.ㅠ.ㅠ
중편은 또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짬짬이 힘내보겠습니다ㅠ.ㅠ9999 읽어주시는 분들 늘 감사해요.. 피드백도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바쁘고 피폐한 삶에 넘나 큰 위로와 힘이 되고 있는 ㅠ0ㅠ0ㅠ0ㅠ0ㅠㅠ0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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