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1년만에 이 시리즈를 이어 봅니다^ㅇㅠ
* 아랍AU로 도둑 바쿠고, 하렘의 소년 점술사 미도리야, 하렘 주인 황자 토도로키
* 캇데쿠하고 토도데쿠한 캇데쿠토도/토도데쿠캇
* 라하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BGM / Tartalo Music <Blood in the Sand>


http://youtu.be/dFNqp8kAMKc





예언의 숲


Baraka بركة






여는 글



 



사막의 도시가 불타고 있었다.

미도리야는 불길을 피해 좁은 길을 정신없이 내달렸다. 어디를 향해 달려도 불길은 맹렬한 야수처럼 붉은 송곳니를 세우고 앞길을 막아 세웠다. 모든 게 불타고 있었다. 이따금씩 창 너머로 훔쳐보았던 너른 광장과 북적거리던 저잣거리, 장난감 상자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던 하얀 회벽의 집들…
코앞에서 금을 입힌 화려하고 아름다운 벽이 불길에 휩싸여 와르르 무너졌다. 가까스로 몸을 피한 미도리야는 그제야 자신이 어느 틈엔가 궁으로 돌아와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렘이었다.

「넌 달아날 수 없단다, 아가.」

등 뒤에서 여인이 낄낄 웃었다. 불길처럼 일렁이며 춤을 추던 여인의 검은 머리칼이 미도리야의 온몸을 뱀처럼 감쌌다. 사랑하는 아가, 나의 입, 나의 그릇.

「다른 운명을 짊어진 두 젊은이가 막다른 길에서 마주쳐버렸으니 그야말로 불과 얼음이구나! 숲이 둘을 인도했으니 이 얼마나 얄궂은 것이니, 운명이란…! 얼음은 칼날이 되어 숲의 심장을 꿰뚫고, 숲을 잃은 불은 미쳐 날뛰며 세상을 불사르니…」
「……」
「가련한 아가, 보렴. 다 너로 인한 것이란다.」

사납게 불타는 불길 가운데에 기둥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거기 매달려 있는 그림자를 차마 똑바로 볼 수도 없어서 미도리야는 그대로 괴로운 눈길을 돌려 버렸다. 아냐. 내 탓이 아냐. 흔들고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여인의 머리칼은 더 단단히 미도리야의 온몸을 죄여왔다. 여인이 속삭였다. 눈을 돌리지마, 똑똑히 보렴. 예언을 받는 아이야, 신의 소년아. 여인의 눈을 타고 흐른 눈물이 툭, 미도리야의 뺨 위로 툭 떨어졌다. 가련하게도.

「누구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었잖니.」

그때 미도리야는 똑똑히 보았다. 기둥에 매달려 있던 한 소년의 그림자를, 불길 속에 고고히 매달려 있던 쓸쓸한 죽음을, 이미 영혼을 떠나보낸 차가운 육신을,
색이 밝은 머리칼과 빛을 잃고 부릅떠진 선홍색 눈을.

닫혀있던 숲색 눈이 비명처럼 번쩍 열렸다.

“캇쨩… 캇ㅉ…!!”

헐떡이며 저도 모르게 허공을 젓던 미도리야의 손이 스르륵 다시 침상 위로 툭 떨어졌다. 이마는 물론이고 새하얀 토브 안쪽까지 식은땀에 흠뻑 젖었다. 젖은 이마를 훔치면서 미도리야는 제 옆에 누웠었던 얼굴부터 확인해보았다. 제 뒷머리 밑에 팔 한쪽을 밀어 넣어주고서 색이 밝은 머리는 긴 속눈썹을 닫고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아. 그제야 미도리야가 떨리던 제 가슴팍을 안도하며 움켜잡았다.

“또 꿈이었구나…”

아니, 내가 꾸는 것이니 당연히 그냥 꿈은 아닐 테지만. 쓴웃음을 삼키고 미도리야는 잠시 어둠에 잠긴 주변을 눈길로 훑어보았다. 달도 별도 감춰버린 사막 한 가운데에서 모래 폭풍이 버려진 성채를 때리며 낮게 울고 있었다. 그 소리가 꼭 짐승의 울음소리를 닮았다고 미도리야는 잠시 생각했다.
오아시스 곁에 지어진 성채는 오래 전 어느 왕이 지어둔 별장인 듯 했지만, 사람의 흔적 없이 버려져 있었다. 커튼은 곳곳이 뜯겼고, 목조로 만든 가구는 모두 좀이 슬어 부서졌지만 대리석으로 지은 건물만큼은 폭풍에도 끄떡없었다. 어떻게 이런 좋은 별장이 지금껏 버려져 있었을까 싶을 만큼 성채는 완전하고 안락한 요새였다. 모래폭풍이 아무리 발톱을 세워도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위치한 침실까지는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바람이 조금씩 더 거세지고 있었다. 미도리야가 뒤척거리며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눈을 감아도 잠은 좀처럼 다시 오지 않았다. 한 번 깨버린 탓인지, 아니면 꿈자리가 사나웠던 탓인지.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간다면 좋겠건만 이런 폭풍에 겁도 없이 나섰다간 순식간에 모래에 파묻혀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사막은 미도리야가 하렘에서 짐작했던 것보다도 더 잔인하고 사나웠다. 금빛 모래가 휘몰아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미도리야는 분노한 불의 신이 내려와 세상을 온통 불태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하기야, 그래서 예전부터 이야기책에선 사막을 불에다 견주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막처럼 맹렬한 불길이라면 미도리야도 딱 한 사람 알고 있었다.

다시 뒤척거린 미도리야의 몸이 이번에는 침대 바깥으로 돌아누웠다. 지금껏 잠잠했던 누군가의 팔이 미도리야의 허리를 스르륵 감싸 안았다. 돌아눕던 숲색 눈이 어둠 속에서 흐, 웃었다. 등 뒤에 바짝 맞붙은 맨가슴에서 제 것이 아닌 고동이 뜨겁게 뛰고 있었다.

“나 때문에 깼어?”
“어. 좀 부스럭거려야지, 등신이.”
“미안, 흐… 잠이 좀 안 와서.”
“됐으니까 자, 멍청아. 그딴 건 그냥 꿈이니까.”

어떻게 꿈 때문인 줄 알았냐는 말은 되묻지 않았다. 너는 이상하게 그래. 나를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익숙하게 내 속내를 읽어낸다. 그게 좋아서 미도리야는 그저 짧은 대답처럼 웃음을 삼켰다. 응. 그리고는 슬그머니 몸을 붙이며 바쿠고의 팔 안으로 들어왔다. 거센 바람이 석궁石宮의 사면을 굶주린 짐승처럼 탐욕스럽게 두드렸다. 오늘은 길고 긴 밤이 될 거야. 생각을 삼키면서 미도리야는 제 등에 맞닿은 가슴의 박동을 느끼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러나 선홍색 눈은 오래도록 눈을 감지 못했다.
침실의 사위를 가려둔 얇은 모슬린 장막들이 요란하게 펄럭거렸다.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

황자가 하렘의 보석을 도둑맞았다.

소문은 발 없는 말보다도 빨라서, 검은 복면의 사내들이 도성을 돌아다닐 때부터 도성 곳곳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궁에서 왕족 일가를 지키는 근위대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술탄은 원정 중이었고,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황자에게 궁의 모든 권한을 일임해주었을 테니 술탄의 근위대는 분명 아니었다.

황자의 근위대였다. 지금껏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여동생을 죽이고 역모로 왕권을 잡았다는 술탄의 아들이라고 해도 황자는 난폭하고 폭력적인 아비와 달리 점잖고 신앙심이 강했었다. 그런 황자가 근위대를 풀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수시로 수군거렸다. 근위대들은 긴 칼을 차고 성 곳곳을 돌며 막연한 기준도 없이 눈에 걸리는 자들을 수시로 심문했다. 도둑이 숨을 죽이고, 매춘부들이 열려있던 창을 닫았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소문은 살아온 세월만큼 지혜로운 노인들의 입을 통해 서서히 도성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황자가 가장 아끼던 하렘의 점술사가 사라졌다. 틀림없었다.

“아니고서야 그 쇼토 황자가 근위대를 거리에 풀었을 리가 없지. 틀림없다니까.”
“하지만 그냥 도둑이 든 것일 수도 있잖아요? 하렘의 재물을 도둑맞았다든가…”
“아니지. 단순히 재물을 잃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악착 같이 찾으러 다닐 리가 없거든. 그 점술사를 제 아비인 술탄에게서 빼앗아 왔다잖아. 포기가 되겠어?”
“근데 그 점술사가 황자의 사촌이라면서요? 세상에, 어떻게 피를 섞은 제 사촌 형제를…”
“쉿, 목소리를 낮춰. 이 사람이 경을 치려고… 그 이야기는 금구인 거 몰라?”

언제나 활기찼던 도성에선 조금씩 웃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떠들다가도 근위대가 지나가면 소리를 죽였고, 혹여 괜한 트집을 잡혀 검문이라도 당할까봐 바깥출입을 삼갔다. 시인들은 입을 닫고 무녀들은 춤을 멈추었다. 그래도 천진한 아이들만큼은 어른들과 달리 동네 곳곳을 활기차게 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 냉철함이 얼음을 닮아 자마드Ice라 불린다던 황자의 심성처럼 꽝꽝 얼어붙은 거리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그 밝고 활기찬 노래가 그나마 작은 위안거리가 되어주었다.

어린 술탄의 벗이었던
재상의 귀하고 용맹한 아들
마시르께서 그를 축복하니
죽음의 칼날을 피해
사막의 불꽃을 따라
거리의 술탄이 되었네
이제 달이 차면 돌아올 거야
숲의 주인을 지키러
예언의 주인을 지키러


어느 누가 맨 처음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어느 아이는 얼핏 광장에서 놀고 있다가 아름답지만 차가운 인상의 젊은 여인이 알려줬다고도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부르며 이 노래를 배웠다. 밝고 쉬운 선율 덕분인지 어른들보다도 아이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언뜻 들어선 십 수 해 전에 벌어진 어떤 사건이 연상되기도 했으나 아이들이 부르는 것이기에 어른들은 노래를 관심 있게 듣지 않았다. 아니, 설령 유심히 들었다 하여도 십 수 년 전의 일을 기억하며 신경 쓰는 어른은 없었을 터였다.
그리하여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재상의 아들이 누구인지, 사막의 불꽃이 되었다는 거리의 술탄이 누구인지, 그가 지키겠다는 숲의 주인이 누구인지.

공중으로 날아오른 짙푸른 보석이 다시 도둑의 손 안으로 떨어졌다.

오아시스를 끼고 있는 오랜 성채는 모래폭풍을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지만 그 위치가 너무 깊어 찾는 이가 드물었다. 처음 바쿠고가 미도리야를 데리고 이곳에 도착했을 때에도 오아시스 주변의 말구유는 이미 십 수 년동안 쓰인 적이 없었는지 곳곳이 틀려 썩어가고 있었다. 그 덕에 오히려 바쿠고는 이곳이 딱 좋았다. 절대 들킬 리가 없는 요새라고 호언장담했던 키리시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은 특히나 모래폭풍이 심해 술탄의 군대조차 함부로 오지 못할 것이라고 키리시마는 말했었다. 대리석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있던 바쿠고가 울컥 콧날을 구겼다.

“헌데 씨발, 그 폭풍에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될 줄은.”

본래는 이곳에 오래 머물 예정이 아니었었다. 잠시 몸을 숨기며 키리시마의 도움을 받아 여정을 떠날 준비를 갖춘 후에 여기에서 말을 달려 꼭 보름이 걸린다던 이웃나라의 항구로 향하는 게 바쿠고가 세운 계획이었다. 허나 성채에 도착했을 무렵부터 불어 닥친 모래폭풍이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문제는 또 있었다. 선홍색 눈이 등을 지고 창가에 앉아 오아시스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숲색 머리를 흘깃 쳐다보았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미도리야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사막의 바람에 베일자락을 날려버리고 벌거벗은 맨몸으로 안겨있던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품에 안겨 성채로 들어설 때부터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었다. 말을 달리던 중임을 아랑곳 하지 않고 그 몸을 탐하고 어루만지며 몇 번을 끈덕지게 괴롭혔던 장본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쿠고 자신이었다. 처음으로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보낸 첫날밤에도 바쿠고는 미도리야의 허약해진 상태를 그저 제 탓이라고만 여겼다.
멍청이가 그깟 접 몇 번 붙었다고 약해 빠져서는. 그런 소리를 툴툴 거리면서도 바쿠고는 이튿날엔 미도리야의 다리춤엔 손도 대지 않았다. 미도리야는 그저 피곤한 얼굴로 흐, 웃기만 했다. 새로 갈아입혀준 하얀 토브의 품이 컸는지 자꾸만 동그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추슬러 올리면서 미도리야는 꿈처럼 우물거렸다. 지금처럼.

“캇쨩.”

제 이름을 속삭이는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뒤를 돌아보는 대신 미도리야는 여전히 창틀에 이마를 툭 기대고 있었다. 허공에 던져올린 보석을 다시 손 안으로 감추며 바쿠고가 짧게 대꾸했다. 뭐. 그때도 미도리야는 모래 바람이 흩날리는 부옇고 흐린 오아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께서 저주하시는 것 같아, 나를…”
“……”
“있어야 할 자리에서 달아나버렸다고, 가장 부정한 모습으로 신의 품을 떠나버렸다고…”
“부정은 개뿔, 씨발. 사촌한테 발정하는 게 부정이겠지.”

너는 씨발, 그딴 소리 하지 말랬지. 바쿠고가 이를 갈았다. 숲색 눈이 답 없이 흐, 웃었다. 그 말투가 비록 거칠어도 자신을 비난하거나 책을 잡는 것이 아님을 알아 그랬다. 색이 밝은 머리칼을 크게 헝클인 바쿠고가 잇새로 욕을 뱉었다. 망할, 신이 뭐라고.

“잘 들어, 멍청아. 신의 저주는 없어. 성에 갇혀 살았던 네 놈이야 알 턱이 없겠지만, 우기가 끝난 사막에는 망할 모래폭풍이 지랄 맞게 잦은 건 당연한 이치라고. 알겠냐? 신의 저주는, 씨발, 지랄 같은 소리지. 그냥 시기가 안 좋은 것뿐이라고.”
“……”
“며칠만 기다려. 그럼 폭풍도 지금보단 잠잠해질 거고, 머리 붉은 건달 녀석도 지도를 구해올 테니까.”

어차피 여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바쿠고가 입술 끝을 힘껏 씹었다. 이곳에 고립된 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다. 며칠에 한 번씩 폭풍이 잦아들 때를 노려 키리시마가 식료품은 조달해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영영 녀석에게 신세를 지며 이곳에 갇혀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꼬리가 길면 언젠가는 밟힌다. 게다가 이 녀석은… 바쿠고가 비스듬히 기울어 있던 숲색 머리칼을 잠자코 뚫어보았다. 눈을 가린 안대도, 발목을 채운 족쇄도 없었지만 녀석은 다른 이도 아닌 황자의 하렘에 있었던 존재다. 지금은 토브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단정하게 모여 있는 저 무릎 위의 하얀 피부에는 지금도 붉은 리샨사스가 농염한 꽃잎을 함박 열고 있을 터였다. 바쿠고가 콧날을 사납게 일그러뜨렸다. 저 청초한 살갗 위에 그 꽃을 새겨놓은 자를 떠올리자 울컥 분기가 솟아 그랬었다.

안다고, 그 새끼가 지금 얼마나 미쳐서 너를 찾고 있을지.

그런 탐욕을 바쿠고는 알고 있었다. 이 녀석에게는 그런 것이 있었다. 저 단정하고 서툰 뼈대 밑에 숨겨져 있던 열과 황홀처럼 미도리야에겐 어떻게든 파헤쳐 보고 싶은 어떤 은밀한 비밀 같은 것이 있었다. 저자의 소문으론 둘이 사촌지간이라고 했었다. 허나 어느 평범한 사촌이 제 사촌의 몸에 창기임을 나타내는 리샨사스의 문신을 새겨놓을까. 이 나라에서 사촌간의 탐심은 친형제간과 마찬가지로 용서받을 수 없는 부정이었다.
너의 주인은 지금 반쯤 광인이 되어 너를 찾아다니겠지. 바쿠고는 생각했다. 자신들의 발목을 묶어버린 이 망할 폭풍이 모래 위에 찍힌 말발굽 자국을 지워주지 않았더라면 그 자는 진작 너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럼 그 머리 붉은 양아치 새끼 말마따나 내 목은 효수 되어 광장에 걸렸겠지. 바쿠고가 입매 끝을 픽 비틀었다. 허나 그렇게 둘 리가 없었다.

도둑은 한 번 훔친 물건은 절대 잃지 않는다. 이 세계의 철칙이었다.

어차피 며칠만 더 견디면 이 성채를 떠난다. 그때가 되면 제 아무리 대단한 황자라고 해도 영영 잃어버린 제 꽃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 머리 붉은 건달 새끼가 얼른 지도를 찾아와야 하는데… 바쿠고가 버릇처럼 입술 끝을 질근거리던,
그때였다.

“아니, 떠날 수 없을 거야.”

창문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미도리야의 입술이 툭 말을 던졌다. 소리를 따라 바쿠고가 눈을 들었다. 뭔 헛소리를 하고 있느냐고, 또 신 운운할 거면 집어치우라고 핀잔이라도 줄 생각이었다. 허나 이 편을 돌아보던 미도리야의 눈을 보았을 때 바쿠고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숲색 눈이 일렁이고 있었다. 어둔 늪처럼,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만큼 넓고 깊은 숲처럼.

“캇쨩. 난 다시 돌아가게 될 거야.”

나를 꽃이라 불러 주었던 사람의 품으로, 나를 잃을 바엔 차라리 죽음을 택할 가장 잔인하고 가련한 폭군의 품으로. 천천히 일렁거리던 숲색 눈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툭, 굴러 떨어졌다.

“그러니까… 달아나.”
“……”
“제발.”

‘예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코 밑까지 검은 복면을 끌어올린 사내들이 문을 난폭하게 열어젖혔을 때부터 키리시마는 일이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내들은 키리시마의 눈앞에서 집 곳곳에 흩어진 집기를 걷어차고 장을 엎었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대신 해 수해 전부터 돌보고 있던 꼬마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키리시마는 그들을 말릴 수도, 맞서거나 대적할 수도 없음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황자의 근위대다. 키리시마가 어깨를 움츠리며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태연하게 행동해야해. 키리시마는 생각했다. 보름동안 간판도 걸지 않는 상점 십수 곳을 이 잡듯이 뒤져 찾아낸 지도는 오늘 아침에 마루 밑에 묻어두었다. 살살 너스레를 떨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은 사내 몇이 붉은 머리를 우악스럽게 움켜잡으며 키리시마를 바닥에 그대로 찍어 눌렀다. 졸지에 무릎을 꺾고 주저앉으면서도 키리시마는 제 몸 밑에 깔려 있을 지도에 대해서 들키지 않기만을 그저 마시르Fate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사내 중 누군가가 문 쪽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라하브의 동료라는 녀석을 잡았습니다!”

대장에게 보고를 하는 건가? 처음에 키리시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황자의 근위대는 일반 사병보다도 대우가 좋고, 그 근위대를 총괄하는 대장은 장군에 맞먹을만큼 높은 직책이라고 전해 들었었다. 허나 맨 뒤편에 서있던 남자가 무리를 해치고 나타났을 때 눈치 빠른 키리시마는 자기 예감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남자는 키가 컸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태가 좋았다. 매일 훈련을 하는 다른 사병들과 달리 검을 잡는 그 손은 햇볕에 별로 그을리지도 않았지만 키리시마는 그 남자의 검술 솜씨가 보통이 아님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단 한 번 막힘도 없이 서슬 퍼런 검 자루를 힘껏 잡아 뽑으며 남자가 머리와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던 복면을 걷어냈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것과 동시에 키리시마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제 스스로 바닥에 바짝 붙였다. 그 얼굴을 키리시마는 두어 해 전, 탄신일을 맞은 술탄이 성문 앞에 나타나 축사를 하던 자리에서 보았었다.

당신께 마시르Fate의 축복이 임하시길. 키리시마가 조아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황자폐하.

머리칼처럼 색이 다른 눈동자가 얼음처럼 빛났다. 남자가, 황자가 덜덜 떨고 있던 키리시마의 정수리에 검날을 겨누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놈이 네 친구라는 자를 위해 지난 보름간 무엇을 했는지는 이미 확인했다.”
“……”
“고해.”

태어나 단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차가운 얼굴로 토도로키는 덧붙였다.

“그 도둑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감히 내 꽃을 꺾은 그 도둑이 지금 어디에서 숨 붙이고 있는지.






(계속)

1년만에 바라카라니, 이렇게 더워지고 나서야 바라카라니.... 그래도 날이 더워지니 기똥차게 막힌 혈이 뚫려서 1년만에 힘을 냅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 그동안 꾸준히(?) 물어봐주시고 재촉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 감사해요ㅠ.ㅠ.ㅠ.ㅠ.ㅠ.ㅠ 덕분에 이 시리즈를 잊지 않고 있었다며ㅠㅠㅠㅠㅠㅠㅠ
무튼, 라하브 말미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 시리즈는 라하브 > 자마드 > 바라카로 이어지며 바라카가 마지막입니다^ㅇ^ 자마드는 수위라 성인 공개이긴 하지만, 역시 말씀 드렸듯이, 토도데쿠 과거 이야기이기 때문에 건너뛰고 보셔도 이야기가 진행 되는 데엔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혹시라도 자마드 전체공개 버전 토막이 궁금하시다면 트위터에 정리해둔 모멘트에서 확인해주시면 된다며 >0<  https://twitter.com/i/moments/873381043004358656

어쨌거나 이 시리즈의 최종편이라 음악도 바꿨어요u////u 분량은 라하브랑 자마드와 똑같이 여는 글+상중하 생각 중이긴 한데, 쓰다가 살짝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러합니다... 세 번째 재록본 원고를 또 해야 해서 얼마나 또 부지런히 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힘 닿는 데까지 해보겠다며ㅠ0ㅠ9
무튼 읽어주신 분들, 감상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ㅠ.ㅠ////// 전 상편 또 이챠이챠 힘내서 들고 올게요>0<

?
  • OOP 2017.08.04 16:15 SECRET

    "비밀글입니다."

  • 달군 2017.08.04 19:54 SECRET

    "비밀글입니다."

  • 닝닝 2017.08.05 19:09
    바라카ㅜㅜ기다리고 기다리던 시리즈가 나왔네요ㅠㅠㅠ루카님 내 사랑 다 받으세요ㅠㅜ바라카 나온 기념으로 라하브 자마드 다시 정주행하고 와야겠습니다! 루카님 항상 잘 보고있어요 감사합니다♡
  • 루카님쨩 2017.08.06 13:00 SECRET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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