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원작 기준 11년 후, 바쿠고랑 미도리야가 빌런 x 프로파일러로 재회하는 이야기
* BGM / Ruelle - Hero


http://youtu.be/rezTx3PSaAE









손은 말하지 않는다

@ruka_tea




06




한 번, 그리고 연거푸 두 번 초인종이 울렸다. 숲색 눈과 선홍색 눈이 동시에 현관을 돌아보았다. 벽에 걸린 시계가 아침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미도리야가 입술 끝을 짓이기면서 잠깐 바쿠고를 돌아보았다. 대화는 끝났다. 더 물어봤자 어차피 바쿠고는 대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검침원일 거예요. 가끔 평일 아침 이른 시간에 찾아오거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말꼬리를 흐리면서 미도리야는 현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몸을 숨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바쿠고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을 때 이미 현관에서 주방 쪽으로 꺾어지는 모퉁이 옆으로 바짝 어깨를 붙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다시 한 번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면서 생각을 삼킨 미도리야가 현관 쪽을 향해 다가갔다. 오늘은 수요일이다. 아침부터 바쿠고와 실랑이를 하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고 생각하자 다소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도 해야할 일은 많고, 본부는 변함없이 탈옥한 지 열흘째가 된 바쿠고 카츠키의 행방을 찾느라 지지부진한 수사를 이어갈 것이다.
오늘은 말할 거야. 미도리야가 잠깐 결심처럼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뗐다. 그리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으면서 물었다.

“누구세요?”

대답이 없었다. 미도리야가 의아한 눈빛을 하고 천천히 문손잡이를 돌렸다. 뒤에서 지켜보던 바쿠고의 눈빛이 돌연 날카로워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냄새’가 났다. ‘그것’의 냄새.
바쿠고가 소리를 질렀다.

“열지마, 이 멍청…!”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현관문의 사면이 퍽, 찌그러졌다. 아직 문고리를 다 돌리지도 못한 미도리야가 찌그러지는 문을 멍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 채로 경첩과 가볍게 분리된 현관문이 요란한 굉음과 함께 그대로 복도 쪽을 향해 날아갔다. 복도 쪽에서 들이닥친 바람이 숲색 머리를 크게 헤집었다. 그러나 미도리야는 선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검고 거대한 얼굴 위에서 뇌가 꿈틀꿈틀 박동하고 있었다. 벌어진 입에서 흐른 타액이 현관 타일 위로 뚝뚝 떨어질 때마다 코가 썩을 것처럼 악취가 났다. 그래도 미도리야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을 알고 있었다. 책과 TV에서 수십 번씩 관찰했지만 직접 본 것은 미도리야의 기억에 한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포로 얼어붙은 숲색 눈이 천천히 흔들렸다.

노우무다.

뒤에서 뻗어온 손이 미도리야의 어깨를 힘껏 낚아챘다. 힘에 떠밀린 미도리야가 그대로 거실 테이블 위로 요란하게 나뒹굴었다. 자신을 밀쳐낸 손바닥 안쪽이 혈관을 따라 붉게 빛난다 싶었을 때 눈앞에서 펑, 불꽃이 튀었다. 폭발의 충격파가 순식간에 거실에 놓여있던 모든 집기들을 크게 흔들었고, 사방이 연기로 가득 찼다. 노우무가 괴성을 질렀다. 쿨럭쿨럭 기침을 하면서 미도리야는 엎어진 거실 테이블을 짚고 일어나다 그 끔찍한 비명소리에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의 뼈가 다 곤두서는 것 같았었다. 그보다 미도리야는 지금 이 상황이 좀처럼 실감이 가질 않았다. 모두 다 꿈같았다. 오래도록 시달려온 그 길고 긴 악몽처럼, 눈을 뜨면 기억나지 않았던 그 꿈의 감각처럼.
천천히 가라앉는 연기 안쪽에 등을 지고 선 바쿠고의 모습이 보였다. 바쿠고에게 양손을 잡힌 노우무는 약이 바짝 올랐는지 침이 질질 떨어지는 입으로 으르렁 울대를 울리고 있었다. 노우무의 얼굴에는 좀 전엔 보이지 않았던 큰 화상이 붉게 앉았다. 맞아, 당신의 개성은 불꽃이었어. 미도리야는 생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바쿠고, 즉 빌런 B는 처음 시부야 백화점을 폭파시키며 데뷔했던 7년 전부터 지금까지 폭발의 위력이 해마다 증가해왔다고 했었다.
하, 존나. 바쿠고가 움켜잡은 손에 울컥 힘을 주며 낮게 짓씹었다. 노우무가 또 한 번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너무 끔찍해서 미도리야는 귀를 막는 법조차 잊어 버렸다.

“신고해, 등신 새끼야.”

바쿠고가 등 뒤를 향해 말했다. 그 덕에 흐려져 있던 현실이 다시 미도리야의 눈길을 바쿠고에게 돌려 놓았다. 네? 미도리야가 되물었다. 노우무가 악에 찬 듯 꿈틀거렸다. 바쿠고의 발꿈치가 서서히 거실 쪽으로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당신이…”
“됐으니까, 씨발, 하라고! 네가 죽을 지도 모를…”

말을 다 맺기 전에 노우무가 그대로 바쿠고를 크게 떨쳐냈다. 가까스로 착지한 바쿠고가 뻗어오는 주먹을 피해 몸을 낮추곤 반동으로 노우무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찼다. 잠시 비틀거린 노우무가 괴성을 지르며 집안으로 쿵쿵 걸어 들어와 바쿠고를 향해 마구잡이로 주먹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치고 피하며 틈을 노린 바쿠고가 뻗어온 손목을 당기며 남은 손으로 노우무의 목을 움켜잡았다. 또 한 번 펑펑 연달아 불꽃이 터졌다. 집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바쿠고가 노우무의 뇌를 향해 손바닥을 펼치던 바로 그때였다.

“좋아좋아, 학예회는 여기까지.”

바쿠고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 멈춰 섰다. 선홍색 눈이 목소리를 따라 거실 소파 쪽을 향해 돌았다. 또다른 노우무가 핸드폰을 움켜쥔 미도리야의 등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그 곁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물 빠진 세피아색 머리칼의 남자가 히죽 웃었다. 시가라키였다.

“괜찮겠어, B씨?”

흉터가 크게 앉은 입술이 흔들리던 선홍색 눈을 향해 물었다. 노우무의 검고 커다란 손이 미도리야의 입을 틀어막고 굽슬거리던 숲색 머리칼을 천천히 더듬었다. 공포로 굳은 숲색 눈을 지진처럼 떨면서 미도리야가 몸부림을 쳤다. 시가라키가 굳어버린 바쿠고를 향해 킬킬거렸다.

“사람의 두개골이라는 게 생각보다 참 약해. 그치? 여기서 힘을 조금만 더 줘도 파사삭 부서져 버리거든.”
“읍, 흐읍, 웁!”
“B씨는 성질머리가 그래서 참 큰일이야. 몸 좀 사리는 게 어때? 경찰이 열흘동안 빌런을 숨겨줬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골치 아플 것 같은데.”

그치, 경찰씨? 시가라키가 엎드린 채 발버둥을 치는 미도리야를 향해 물었다. 힘껏 이를 악문 바쿠고가 끝내 힘을 풀었다. 손 안에서 붉게 달아올랐던 혈관이 빛을 흐리며 가라앉았다.
좋아, 아주 좋아. 흘깃 바쿠고를 바라본 시가라키가 박수를 쳤다. 미도리야를 움켜잡고 있던 노우무가 손을 풀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저벅 걸어온 시가라키가 우뚝 굳어 있던 바쿠고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때도 선홍색 눈은 쿨럭쿨럭 기침을 쏟아내고 있던 미도리야를 향해 있었다.

“선생이 화가 많이 났어. B씨 휴가가 너무 길다고 말이야. 우리는 아직도 할일이 엄청 많거든. 아, 설마… 배신이야? 아니지? 아니겠지, 그치.”

바쿠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시가라키가 히죽 웃으며 속삭였다.

“휴가동안 되게 많은 일을 하셨더라고, 우리 B씨는. 발신기도 뽑고, 전화도 하고, 연애도 하고. 그래서? 했어? 맛 좋았어? 어때, 토끼는? 맛있었어?”
“……”
“혼자 먹고 치사하네. 아, 나도 쑤셔보고 싶은데―”
“씨발, 죽여 버린…”

사나워진 선홍색 눈이 주먹을 움켜쥔 것과 동시에 손을 잡혔다. 가볍게 제압하며 시가라키가 씩 웃었다.  아까보다 낮아진 목소리가 바쿠고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미도리야가 숨을 가다듬으며 둘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우린 약속을 지켰는데 댁이 10년이나 지났다고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저 새끼 두개골까지 갈라놓고 살려줬는데 말이야. 선생이 진짜 엄청 화가 났거든, 바쿠고군.”
“……”
“설마 진짜 그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잊어버려. 그 남자는 너희를 버렸잖아.”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생각을 삼키며 미도리야는 둘의 눈치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바쿠고는 말이 없었고, 일방적으로 떠드는 건 시가라키 쪽이었다. 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미도리야도 들어 알고 있었다. 선배는 시가라키 토무라가 바쿠고 카츠키에게 현상금을 걸었다고 했다. 이런 경우는 단 하나 밖에 없었다.

변절자.

어떻게 해야 할까. 미도리야가 빈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빌런 연합이 바쿠고를 변절자로 찍었건 말건 결론은 하나뿐이다. 바쿠고 카츠키는 떠날 것이다. 총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미도리야가 입술을 꽉 씹었다. 현장요원이 아니라 구금된 빌런들을 상대하는 대인심리요원이었던 탓에 미도리야는 권총과 수갑을 지급 받지 못했다. 시가라키는 곧 바쿠고를 데리고 자리를 뜰 것이다. 미도리야가 잠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제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팝업으로 열려있는 문자 메시지는 간결했다. 신고 접수가 완료 되었습니다.
곧 경찰이 온다. 그 전에 잡아야 해. 미도리야는 생각했다. 나는 아직 당신을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 당신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당신에게 아직 듣지 못한 질문들이 너무 많았다.
총은 지급 받지 못했어도 대인 무술은 언제나 성적이 좋았었다. 기회를 노릴 수 있을지도 몰라. 미도리야가 빠른 눈으로 둘을 훑었다. 녀석의 목적은 바쿠고다. 바쿠고에게 한 눈이 팔려 있는 지금이라면 성공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관둬. 시가라키가 말했다. 색이 탁한 회색 눈이 미도리야를 보며 히죽 웃었다.

“네가 거기에서 달려 들어봐야 개죽음뿐이거든. B씨가 딱히 고마워할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치?”
“……”
“이제 돌아가자, B씨. 아, 인사할 시간은 줄게. 10분.”

시가라키는 그대로 바쿠고의 손을 놔주고 현관 쪽으로 돌아섰다. 노우무 둘이 비척비척 시가라키를 따라 문이 떨어져 나간 현관 너머로 사라졌다. 다시 둘이 남았다. 거실과 식탁은 10분 전과 다르게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부서진 테이블과 집기들이 어지럽게 흩어진 거실을 슥 눈으로 훑어보며 미도리야는 잠깐 쓰게 웃었다. 이사 가야겠지? 이만큼 요란을 떨었으니 이웃에도 충분히 들렸을 것이고, 자신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신고를 했을 것이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바쿠고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인사조차 없었다. 그대로 돌아서는 등을 보며 미도리야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안돼요, 바쿠고씨.”

돌아선 바쿠고의 등이 멈칫 했다. 미도리야가 입술을 힘껏 깨물고 놓으며 다시 말했다.

“가면 안돼요. 당신이 있을 곳은 그런 데가 아니에요. 자수해요. 제가 본부에 잘 말할게요.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정보원으로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하면 분명히 사면도 받을 수 있을…”
“그건 네가 사는 세계에서나 그렇겠지, 멍청아. 개소리 하지마.”
“……”
“나는 너 같은 새끼가 못 된다고.”

미도리야를 돌아본 얼굴이 입꼬리를 차갑게 비틀었다. 그러다 잊은 것이 생각난 것처럼 바쿠고는 잠깐 식탁을 쳐다보았다. 그 난장에도 식탁은 부서지지 않았고, 그릇들은 잠깐 흩어졌을 뿐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두 개의 그릇, 두 벌의 수저를 바라보던 바쿠고가 돌연 몸을 돌려 들어와 식탁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숲색 눈이 크게 열렸다. 이 행동에 대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바쿠고씨? 갑자기 뭐하는…”

식탁과 함께 그릇들이 요란하게 바닥으로 쏟아졌다. 발끝으로 수저 한 벌을 싱크대 밑으로 밀어넣고, 바쿠고는 흩어진 그릇들을 퍽퍽 요란하게 밟아 완전히 부숴놓았다. 발자국이 짙게 남은 폐허 위를 질근거리다 바쿠고는 문득 뭔가를 발견하곤 서재 쪽으로 걸었다. 서재 벽에 길게 꽂혀 있던 핸드폰의 충전선을 뽑아 들고 다시 미도리야에게 돌아왔다. 미도리야는 양손목을 교차시키는 바쿠고의 동작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다 그 손을 힘껏 잡아 끌 때 숲색 눈이 크게 열렸다.

“!? 지금 뭐하시는… 바쿠고씨!”
“입 다물라고 했지, 씨발아.”

닥쳐. 바쿠고가 씹듯이 말을 자르고 버둥거리던 미도리야를 그대로 식탁까지 끌고 왔다. 그리고 의자에 앉혀지면서도 버둥거리던 양팔목을 교차시켜 그대로 의자 뒤쪽에 단단히 묶었다. 발버둥을 치던 미도리야가 천천히 잠잠해졌다. 왜 바쿠고가 식탁을 엎고 자신을 결박하고 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아 그랬다.
힘껏 매듭을 당겨 묶은 바쿠고가 그제야 허리를 긁고 짧게 숨을 가다듬었다. 사이렌 소리는 이제 맨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잠깐 현관 쪽을 살펴본 선홍색 눈이 미도리야를 뚫어보았다. 잘 들어, 멍청아.

“난 여기에 오늘 새벽에 왔어. 너를 노리고. 씨발, 프로파일러인지 뭔지 짜증나고 거슬리던 찌질한 수사관 새끼 잡아 족치려고. 존나, 너 같이 좆도 모르면서 나대는 새끼 깔아 눕히고 쑤시는 게 제일 꼴려서.”

아. 미도리야가 입술을 비틀었다. 역시. 짐작했던 그대로였다.

“공격 받았다고 해. 넌 배달한 야식이 온 줄 알고 문을 열었고, 나는 그 틈을 타서 너를 공격했다고. 핸드폰도 빼앗겨서 신고를 못 했다고. 넌 그대로 아침까지 의자에 묶여 있었어. 알겠냐고, 씨발아. 넌 그냥 내가 말한 대로만 말해.”
“난… 그렇게는 못해요. 못 속여요. 나는 선서를 했어요. 어떻게 경찰이 위증을…!”
“그럼 아예 말을 하지마. 입만 처닫고 있으면 너희 그 잘난 상사들이 알아서 소설을 써줄 테니까.”
“……”
“입 꽉 다물어.”

숲색 눈이 크게 끔벅였다. 왜, 라는 말을 다 어물거려보기도 전에 바쿠고의 오른 주먹이 힘껏 광대를 쳤다. 윽 비명과 함께 미도리야의 얼굴이 왼편을 향해 돌았다. 머리가 다 울릴 정도로 얼얼한 뺨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보기 좋네. 선홍색 눈이 씩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죽지마.”
“……”
“다시 만나면 다 말해줄 테니까, 등신아.”

내가 왜 너를 데쿠라고 부르는지. 그뿐이었다. 귓가에 낮게 씹어 삼킨 말을 잡을 틈도 없이 바쿠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쿠고씨! 미도리야가 현관을 넘어가는 바쿠고를 향해 소리를 쳤다. 우뚝 멈춰선 등을 올려보는 숲색 눈이 천천히 일렁거렸다. 잡지 못한 말이 툭 입새를 비집었다.

“가지 말아요.”
“……”
“당신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당신을 붙잡는지는 모르겠다. 왜 당신을 보내는 게 이렇게 불안한 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잡고 싶었다. 당신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 삼키지 못한 말을 우물거리는 대신 미도리야는 힘껏 입술을 비틀었다.
바쿠고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답 없이 묵묵히 돌아서 있던 등을 바라보던 숲색 눈 끝이 천천히 실망처럼 가라앉았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당신과 나의 세계는 다르다. 우린 같은 세계를 살고 있는 존재들이 아냐.
잡을 수 없어. 어차피 당신은 내게 잡혀주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현관 쪽을 향해 있던 바쿠고의 발끝이 돌연 뒤를 향해 돌았던 바로 그때였다.

“바쿠고씨, 잠ㄲ… 웁, !”

의자 위로 그림자가 기울어진다고 생각했을 때 그대로 입술이 겹쳤다. 숲색 눈이 크게 열렸다. 다가온 양손이 미도리야의 목덜미를 따라 굽슬거리는 숲색 머리칼 속을 헤집으며 그대로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깨물었다. 호흡을 참는 타이밍도 잃어버린 입술을 틈입한 체온이 흠뻑 호흡을 섞었다. 느리고 뜨거웠다. 더불어 다정한 키스였다. 헷갈릴만큼, 언젠가 이런 키스를 받아본 적이 있다고 착각해버릴만큼.
천천히 입술이 떨어졌다. 잠시 말없이 시선이 마주쳤다. 귀 밑이 쿵쾅거려서,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 자리들이 불길처럼 달아올라서 미도리야는 끝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깐 미도리야를 내려다보며 바쿠고는 젖은 미도리야의 입술 위에 가만히 엄지를 문질렀다. 그리고 잡을 틈도 없이 그대로 몸을 돌려 현관을 나갔다.

복도는 오래지 않아 소란스러워졌다. 일을 통해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던 히어로가 무장한 특공대원들과 함께 현관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아요? 함께 올라온 구급대원이 결박되어 있던 미도리야의 팔목을 풀어주며 물었다. 미도리야가 멍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찮아요.

“진짜.”

미도리야가 오른손을 펼쳤다, 힘껏 쥐며 거듭 말했다.

“나는 정말로… 괜찮아요.”

가슴이 아릴만큼 뛰었다. 아팠다. 오래도록 쥐고 있던 불길이 빠져 나간 것처럼 그렇게 아팠었다.








*

바쿠고 카츠키가 다시 사라졌다.

오래도록 평온했던 독신자 멘션은 들이닥친 기자들과 TV 카메라들로 종일 시끄러웠다. 각 방송사들은 정규방송을 모두 중단하고 특집 뉴스를 편성했다. 사라졌다 열흘만에 나타난 B가 담당수사관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특종이었다.

[…행방이 묘연했던 B는 지금 뒤로 보이시는 이곳, 이 맨션에 머물렀다 다시 모습을 감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맨션은 B의 프로파일링을 담당했던 미도리야 수사관의 거처로…]
[이웃들의 말에 의하면 아침부터 싸우는 소리가 났고, 몇 차례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으며…]
[발견당시 B는 이미 도주한 후였으며 미도리야 수사관은 자신의 집 식탁에 두 팔을 결박 당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갑작스러운 일로 현재 심신이 크게 지친 상태이며, 수사본부 쪽에서는 언론의 접촉을 일절 거부하며 미도리야 수사관과 현재 비공개로 심리를 진행 중입니다.]
[B는 간밤에 이곳, 미도리야 수사관의 집에 찾아와 아침까지 수사관을 결박하고 협박한 후 빌런연합과 이곳에서 합류하여 현장을 떠난 것으로 전해지며 수사본부는 현재 총력을 다해 수색을 하고 있으나 뚜렷한 성과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한편 미도리야 수사관은 유에이를 거쳐 경찰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우수한 인재로 가족관계는 아버지와 어머니, 출신 지역은…]

미도리야는 현장에서 간단한 응급조치를 받은 후 곧장 본부로 이송되었다. 급하게 들이닥친 기자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수그린 미도리야가 구급차에 오르는 모습을 집요하게 촬영해 생중계로 송출했다. 현관에는 폴리스 라인이 설치되었다. 과학수사대의 연구원들이 현장 정황을 살피기 위해 급파 되었고, 같은 시간 특공대는 10층 맨션을 지하부터 옥상까지 샅샅이 뒤지며 흔적을 찾았다. 현관에만 설치된 CCTV는 이번에도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수사본부에서는 인근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바쿠고 카츠키가 시가라키 토무라 등 빌런연합과 합류해 08시 37분경 뒷문을 통해 빠져 나갔음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점심부터 본격적인 대질 심문이 시작되었다. 미도리야의 처지를 가장 안타깝게 여긴 것은 다름 아닌 같은 팀의 선배였다.

“현장요원도 아니었으니 네가 얼마나 놀랐겠어. 신고할 정신도 없었겠지. 그렇지, 미도리야? 자, 천천히 얘기해보자. 아, 무리해서 대답하지 않아도 돼. 아직은 좀 힘들지?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을 거야. 네, 아니오로만 대답해줘.”

선배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는 미도리야를 채근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빌런의 습격에 크게 놀랐을 거라며 마음을 헤아려준 덕분인지 심리는 1시간에 걸쳐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이미 밝혀진 정보들을 토대로 작성된 진술서에 미도리야가 그렇다, 아니다만 대답해주면 될 뿐이었다. 경찰본부의 심리 매뉴얼은 체계적이었고, 언제나 피해자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차마 눈을 들지 못하는 미도리야의 행동을 두고 선배는 이처럼 자기 소견을 적어 넣었다. 충격을 받아 심신이 미약함, 며칠간 안정 필요, 안전한 거처를 지원할 것을 요구함.

“괜찮아, 미도리야. 우리가 다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

수사본부는 이렇게 잠정적으로 결론지었다. 간밤 11시경, 바쿠고 카츠키는 자신을 심리했던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앙심을 품고 찾아갔다. 며칠동안 모습을 숨기고 거처를 수소문한 덕분이었다. 현장요원이 아닌 탓에 상비한 무기가 없던 미도리야는 무방비한 상태로 몸싸움을 하다 바쿠고에게 제압되었고, 그대로 식탁에 놓여있던 의자에 결박당했다. 상황이 이런 탓에 핸드폰은 사용할 수 없었다. 아침이 되자 미리 연락을 받았던 시가라키 토무라가 노우무 둘과 함께 바쿠고 카츠키를 데려가기 위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미도리야 이즈쿠의 생사를 두고 의견충돌이 있었던 모양인지 싸움이 벌어졌고, 그 틈을 타 미도리야가 핸드폰으로 신고를 넣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히어로들을 대동하고 긴급 출동했으나 바쿠고 카츠키는 이미 빌런 연합과 함께 자리를 뜬 후였다.
미도리야는 선배의 질문에 네, 혹은 아니오로만 대답했다. 질문을 하는 내내 눈을 들 수 없었다. 가슴이 불안과 죄책감으로 쿵쿵 뛰었었다. 하지만 바쿠고의 예측은 정확했다. 1차 현장 탐문을 끝낸 과학수사대도, 미도리야를 직접 심리한 선배도, 수사본부도 결론은 모두 같았다. 누구도 미도리야가 바쿠고를 숨겨주고 있었을 것이라곤 감히 상상도 하지 않았다.

“담당수사관이 탈옥한 죄수의 표적이 되는 건 매우 흔한 일이잖냐. 그것치고는 네가 담담하게 대처를 잘 했어. B가 어떤 빌런인지는 심리해본 너도 잘 알고 있지? 자칫 성질을 거슬렀다간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몰라.”

미도리야의 죄책감과 달리 상황은 하루가 다 저물기 전에 정리되었다. 바쿠고 카츠키는 다시 사라졌다. 수사대는 사흘에 걸쳐 미도리야의 집을 샅샅이 뒤졌지만 도주의 흔적이나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쓰레기통은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고, 그날 아침 식사를 한 것 외에 어디에서도 바쿠고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과학수사대는 사흘만에 철수했지만 미도리야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본부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권했다. 이번 일로 미도리야의 위치가 빌런들은 물론이고 언론에게도 노출되었으니 안전을 위해 아예 이사를 가는 편이 좋겠다며 선배는 말했다.
바쿠고 카츠키의 사건에서는 완전히 손을 뗐다. 서에서는 미도리야를 위해 본부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는 비즈니스호텔을 지원해주었다. 중국과 한국의 사업가들이 주로 묵는다던 비즈니스호텔은 깔끔했고, 헬스와 수영장 등 부대시설도 좋았고, 조식과 석식 역시 맛있었다. 미도리야는 자신을 취재하기 위해 진을 치고 기다리는 기자들을 피해 뒷문으로 퇴근한 후 저녁 내내 호텔 헬스장에서 런닝을 했다. 헬스장 TV는 언제나 뉴스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B를 찾았다거나 제보가 들어왔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종일 같은 말을 반복하는 뉴스를 보다가 샤워를 하고 석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일식 코너를 자주 찾았고, 밥을 기다리면서 미도리야는 자주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메뉴는 대부분 가츠동이었다. 가츠동은 언제나 너무 달거나 너무 짰다.

“그건 맛있었는데…”

젓가락으로 밥알을 후비면서 미도리야는 쓰게 웃었다. 괜찮았는데. 숲색 눈에 흠뻑 고여 있던 것들이 뺨을 타고 사발그릇 안으로 툭 굴러 떨어졌다. 정말,

좋았었는데.

일상은 다시 예전처럼 평온히 흘러가고 있었다. 미도리야가 젖은 뺨을 흠뻑 훔쳤다. 이젠 눈앞의 이 밥알들이 사라지는 게 무서웠다. 그때 그 맛있는 가츠동을 영원히 다시 먹지 못할까봐 미도리야는 그게 가장 두려웠다. 당신을 이제 영영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당신이 다시 내 인생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아서.
바쿠고 카츠키가 또 한 번 모습을 감춘 지 다시 열흘이 지난 무렵이었다.







*

똑똑 소리가 열려있던 미도리야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서류에 파묻혀 있던 숲색 눈이 문쪽을 돌아보았다. 선배였다.

“미도리야, 청장실에 올라가봐야겠는데.”

점심시간이 끝난 직후였고, 미도리야는 여느 때처럼 자신에게 배당된 빌런들의 사건파일을 검토하던 중이었다. 바쿠고 카츠키는 이제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미도리야의 손을 완전히 떠났지만, 세상에는 B 외에도 수많은 빌런들이 있었다. 잠시 제 앞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서류를 내려다본 미도리야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의자를 밀었다. 아무리 할 일이 많다지만 다른 호출도 아니고 청장의 호출이었다. 숲색 눈이 잠깐 의아한 눈길로 선배를 돌아보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청장님이 갑자기 왜 저를…”
“글쎄. 손님이 오셨다는 것 같은데? 네 손님.”

그뿐이었다. 수고해라. 말과 함께 미도리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선배는 그대로 몸을 돌려 수사본부 쪽으로 사라졌다. 손님이라니. 잠깐 얼빠진 얼굴을 해보다, 미도리야는 이내 호흡을 가다듬고 넥타이를 고쳐 묶었다.
8층에 오르자 청장의 보좌관이 가장 먼저 미도리야를 맞아주었다. 보좌관이 청장실 안쪽에 말을 전하는 동안 미도리야는 비친 거울을 보며 몇 번이고 다시 자신의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보좌관이 청장실 문을 크게 열어주며 활짝 웃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세요, 미도리야 수사관님.”

짧은 목례로 감사를 전하고 미도리야는 열린 문 안쪽으로 성큼 들어섰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본부에 배정되어 임명장을 받았던 3년 전 이후로 청장실을 찾는 건 처음이었다. 긴장을 감추지 못한 숲색 눈이 안쪽을 향해 먼저 불쑥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둥그렇게 눈이 열렸다. 선배의 말대로였다. 청장실에는 청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 미도리야군! 어서 오게.”

책상에서 서류를 펼치고 있던 청장이 반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갑게 건네오는 악수를 받으면서도 미도리야는 응접실에 등을 지고 앉아 있던 남자가 신경이 쓰였다.
축 늘어뜨린 금발처럼 남자의 몸집은 왜소했다. 등은 살짝 구부정했고, 테이블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얼굴은 핏기가 아예 사라진 것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래도 나쁜 안색은 아니었다. 누구지? 생각을 삼킨 미도리야가 우선은 청장을 향해 공손한 얼굴로 물었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래. 미도리야군, 소개해줄 손님이 있어. 그러니까 이 분이…”
“날세.”

남자가 청장의 말을 툭 자르며 점잖게 끼어들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미도리야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미도리야는 그 얼굴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보았다. 남자가 지친, 그러나 빛이 영롱한 얼굴로 담담히 말했다.

“내가 자네를 불러달라고 했네, 미도리야 청년.”

TV에서 그의 은퇴 기자 회견을 봤었다. 쪼그라진 풍선처럼 축 어깨를 늘어뜨리고 몇 번이고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이던 이 남자를 10년 전에 봤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기분은 단순히 TV에서 본 얼굴을 본 데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분명히 달랐다. 미도리야가 가슴을 힘껏 움켜쥐었다.
이 남자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만났었다. TV도, 인터넷도, 잡지도 아닌 곳에서.

“내 소개를 하지.”

금발 머리칼의 왜소한 남자가 풍채 좋은 영웅처럼 웃었다.

“자네 인생에 대단히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네.”
“……”
“그리고 자네를 볼 면목이 없는 사람이지.”

남자가 활짝 웃으면서 미도리야에게 악수를 건넸다. 그 왜소한 남자가 사실은 어떤 얼굴이었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 미도리야는 알고 있었다. 남자가 덧붙였다.

“잠시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네, 미도리야 청년.”

세상은 그를 올마이트라고 불렀었다.









(계속)



업무로 허덕이던 중에 힘을 내서 이 글을 씁니다.... 제가 보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어요ㅠㅠㅠㅠㅠㅠㅠ<<< 덕분에 이번 편은 좀 빨리 나온 듯 싶지만 ㅎㅎㅎ
무튼 이제 올마이트도 나왔으니 나올 사람은 다 나왔고, 남은 것은 이 복잡한 매듭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일 뿐인 듯.... 저를 위해서, 그리고 또 즐겁게 읽어주시는 분들 위해서 꼭 매조지 하겠습니다ㅠ_ㅠ
그럼 저는 다시 일을 하러..... 2기가 시작되는 이 시즌에 이렇게 바쁘다니 피눈물이 쳐나는 ㅠ.ㅠ.ㅠ.ㅠ.ㅠ.ㅠ.ㅠ.ㅠ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히로아카 2차 소설 BBS. 캇데쿠 중심으로 달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공지에XD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공지 완결 히로아카 게시판 이용 전에 읽어주세요 XD 2016.05.24
135 완결 Vendetta / 02 6 2017.05.14
134 단편 가라오케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4 2017.05.13
133 완결 Vendetta / 01 3 2017.05.11
132 완결 Morality Play / 中3 5 2017.05.09
131 연재 Pull-up (B170507) 3 file 2017.05.07
130 완결 Morality Play / 中2 8 2017.05.05
129 완결 Morality Play / 中1 4 2017.05.02
128 완결 Morality Play / 上 10 2017.04.30
127 연재 Rājā / 2 10 2017.04.28
126 연재 Rājā / 1 4 2017.04.24
125 단편 Talk About You (for.爆豪勝己) 10 2017.04.20
124 완결 손은 말하지 않는다 / 10 (完) 12 2017.04.19
123 완결 손은 말하지 않는다 / 09 5 2017.04.14
122 연재 Rājā /여는 글 9 2017.04.11
121 완결 손은 말하지 않는다 / 08 7 2017.04.0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18 Nex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