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오랜만에 이 글을 씁니다(mm
* 원작 기준 11년 후, 바쿠고랑 미도리야가 빌런 x 프로파일러로 재회하는 이야기


* BGM / George Ogilvie <Count Your Blessings>


http://youtu.be/gbjreEKmEOM








손은 말하지 않는다

@ruka_tea




05





길고 긴 악몽의 터널을 지나자 저 멀리 빛이 보였다. 아침이었다.
어떤 꿈이었는지는 오늘도 기억나지 않았다. 미도리야가 부스스한 머리를 헤집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7시에 맞춰놓은 알람은 아직 울리지도 않았다. 창 너머에 걸린 햇살을 멍하니 바라보다 미도리야는 반쯤 열려 있던 창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좋은 냄새가 났었다. 꼭 뭔가를 기름에 튀기는 것 같은 그런 냄새였었다.

설마.

이불을 박찬 미도리야가 남은 문을 당기면서 침실을 빠져 나왔다. 동시에 우뚝 굳었다. 거의 쓴 일도, 인연도 없던 싱크대 앞에 바쿠고가 등을 지고 서 있었다.

“사람 먹을 게 없어서.”

프라이팬 위에서 노랗게 익어가던 계란을 휘적휘적 능숙하게 헤집으면서 바쿠고는 말했다. 딱히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할 말을 찾지 못한 숲색 눈이 잠시 바쿠고의 뒷모습을 말없이 뚫어 보았다. 어떤 어휘를 사용하더라도 이 생경한 광경을 정확히 표현할 자신이 없어 그랬을지 모른다.
자연히 눈길이 식탁 쪽으로 향했다. 식탁에는 이미 간소하지만 밑반찬 몇이 정갈하게 깔려 있었다. 우리집에 이런 게 있었나…? 반찬은 커녕 계란도 없었을 텐데. 집에서 식사를 해본 적은 지금껏 손에 꼽기도 힘들만큼 없었다. 의아한 듯 생각해보다 미도리야는 이내 해답을 찾아냈다. 바쿠고의 발치 곁에 근처 슈퍼마켓의 비닐봉투가 불룩하게 부풀어 있었다. 불을 줄인 바쿠고가 싱크대 위에 놓여있던 사발 그릇에 포슬포슬 적당히 익은 계란을 한 장씩 능숙하게 얹어 놓았다. 계란옷 밑으로 사라지는 파와 잘린 돈까스의 단면을 본 후에야 미도리야는 아까 맡은 냄새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가츠동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랬다.

“라면 처먹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지, 씨발. 주방 쓰는 거 꼬우면 쫓아내시든가. 아, 카드 니 꺼 썼다, 멍청아.”

네? 영문을 몰라 두 눈만 끔벅거리는 미도리야의 얼굴로 검은 물체 하나가 휙 날아왔다. 일단 급한대로 낚아채고 보니 제 지갑이었다. 아. 숲색 눈이 부슬부슬 웃었다.

“이건 절도예요, 바쿠고씨.”
“어, 빡 치면 신고하든가. 잘도 하겠다, 씨발. 지 상사한테 내가 여기 있다고 말도 못하는 주제에.”
“……”
“됐어, 갚아줄 테니까.”

대답을 하지 못했던 건 정곡을 찔린 탓이었다. 캥겨서 그랬다. 입을 꽉 다무는 미도리야의 얼굴을 흘깃 바라보다 바쿠고는 사발 둘을 들고 식탁으로 왔다. 밥이나 처먹든가. 사발을 툭 밀어주면서 바쿠고는 그렇게만 말하고 먼저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선뜻 젓가락을 들 수 없었다. 숲색 눈이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사발그릇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가츠동이라니.

“어떻게 아셨어요?”

사발을 향해 기울어진 입술이 문득 그렇게 물었다. 바쿠고가 젓가락으로 계란옷을 헤집으며 대꾸했다.

“뭘, 씨발.”
“제가 가츠동을 제일 좋아하는 거.”
“알고 한 거 아니거든. 자의식 과잉이냐?”
“……”
“켕기면 처먹지 마시든가. 독 넣었으니까.”

울컥 얼굴을 구긴 바쿠고가 사발을 빼앗겠다고 손을 뻗기가 무섭게 왼손으로 그릇을 막았다. 아뇨, 먹어요, 먹을게요, 먹을 거예요! 말을 다급하게 더듬은 미도리야가 그제야 밥알을 크게 후비고 그릇을 기울였다. 그땐 왠지 웃음이 났다. 맛있었다. 숲색 눈이 흠뻑 웃었다.

“맛있어요. 바쿠고씨는 요리를 잘 하시네요.”
“니가 못하는 거지, 등신아.”
“그건… 틀린 말이 아니지만, 진짜요. 진짜로 엄청…”

맛있어. 말끝을 삼킨 미도리야가 다시 사발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열여섯 살 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후에 가장 먼저 먹었던 음식이 가츠동이었다. 그러니까 미도리야에겐 세상에 태어나 처음 먹은 음식과 다름이 없었다. 어찌 되었건 열여섯 살 이전에 먹은 음식은 생각이 나지 않으니까. 엄마는 도시락을 열고 젓가락을 갈라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라 특별히 챙겨왔다고 말했었다. 기억을 잃었어도 입맛은 변하지 않았는지 미도리야는 앉은 자리에서 숨도 쉬지 않고 금세 그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엄마는 그 뒤로도 종종 가츠동을 해줬다. 하지만 자주 해주지는 않았었다. 쉽게 매일 해먹을만한 음식은 아니었던 탓이었다.
이게 우연일까? 사발을 내려다보면서 미도리야는 생각했다. 가능하다면 계산해보고 싶었다. 당신이 하필이면 수많은 음식 중에 가츠동을 하고 싶어질 확률. 체포해야하는 빌런과 경찰이 함께 마주 앉아 아침 식사로 하필 가츠동을 먹을 수 있는 확률.

당신이 도화지에 적혀 있던 애칭으로 나를 부를 확률, 당신이 나를 하필 데쿠라고 부를 확률.

묻고 싶은 말을 우물거리는 대신 미도리야는 계란 옷을 헤집으며 쉼 없이 그릇을 기울였다. 바쿠고가 해준 가츠동은 정말로 맛있었다. 허겁지겁 그릇을 비우는 미도리야를 잠깐 빤히 쳐다보다 바쿠고도 멈췄던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식탁은 조용했고 이따금씩 젓가락이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가 침묵을 깼다. 그래도 간밤처럼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그랬다. 친구가 놀러와 있는 것 같았었다. 마치 오래도록 함께 지낸 사이인 것처럼.

“그래서.”

바쿠고가 절반쯤 남은 그릇을 헤집으며 툭 물었다. 양 볼이 빵빵하게 부푼 채로 미도리야가 대답했다. 에? 선홍색 눈이 잠깐 기가 찬 듯 웃었다. 다 먹고 말해, 멍청아. 그러나 대답을 기다려주지는 않았다.

“언제까지 얘기도 안 하고 숨길 건데.”

목적어는 없었다. 그래도 미도리야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단박에 알아들었다. 머금고 있던 밥알을 급하게 삼키고 잠시 숨을 고른 미도리야가 담담히 말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럼 바쿠고씨는 왜 저희 집에 온 건가요?”
“……”
“대답해주면 저도 말할게요.”

하, 존나. 바쿠고가 콧날을 울컥 찡그렸다. 경찰이 빌런한테 딜을 걸고 자빠졌네. 씨근거린 선홍색 눈이 대답을 우물거렸다.

“몰라.”
“……”
“그냥 씨발, 여기였어.”

미도리야가 잠깐 눈을 들어 습관처럼 바쿠고의 얼굴을 살폈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유추해본 바로도 그랬다. 바쿠고 카츠키는 비밀이 많다. 숨기는 것도, 말하지 않는 것도 많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거짓말을 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당신은 차라리 입을 다물어 버리겠지. 미도리야는 그렇게 짐작했다. 이런 성격은 그렇다. 자존심이 센 탓이다. 그게 당신이었다. 자기 뜻대로 하는 사람,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 사기꾼과 폭력사범은 성격이 다르다. 당신이 거짓말에 보다 더 능숙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제어 되지 못한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나를 구슬리지도 못하는 사람, 사탕 발린 말로 나를 제 편으로 만들지도 못하는 사람.

“또 안 믿기겠지.”

숲색 눈이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만 움찔 떨었다. 이번에는 정곡을 찔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미도리야가 차분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뇨, 믿어요.”
“경찰이 빌런을 믿는다고, 씨발.”
“바쿠고씨는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니까.”
“……”
“저는 그냥… 이 우연이 좀 기가 막혀서요. 아무 집이나 두드렸는데 그게 자신을 수사하는 프로파일러의 집이라니, 하하…”

숲색 눈이 쓰게 웃었다. 바쿠고는 웃지 않았다. 웃음을 잃은 바쿠고를 보며 미도리야가 서서히 웃음의 볼륨을 줄였다. 당신의 단서들은 나의 단서들과 곳곳에서 겹쳐 있었다. 꼭 같은 공장에서 태어난 볼트와 너트 같았다. 이런 우연은 아마 벼락을 맞고도 죽지 않을 확률에 필적하지 않을까.
그래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취조실에서 처음 만나 이제는 불편하고 어색한 손님으로 자신을 찾아온 이 빌런이 이만큼 편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익숙했다. 왤까. 미도리야가 사발을 휘적거리면서 자신에게 거듭 물었다. 음식이 맛있는 덕분인지 모른다고, 미도리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색함이 다소 가신 것은 미도리야 뿐만이 아니었다.

“넌 왜 신고 안 하는데.”

여전히 테이블 어딘가로 빗겨간 선홍색 눈이 툭 물었다. 그리곤 다시 눈을 들어 미도리야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창을 타고 쏟아진 아침햇살에 비친 선홍색 눈이 옅은 귤빛으로 반짝거렸다.
대답해, 멍청아. 바쿠고가 거듭 말했다. 네 차례잖아. 미도리야가 잠깐 흡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같은 대답이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모르겠어요.”
“하. 나한테 뭐라할 게 아니잖아, 씨발아.”
“그러게요. 흐… 하지만 정말 모르겠어요. 왜 선배 앞에만 가면 입이 안 떨어지는 건지…”
“……”
“그래도 행방을 모르는 것보다는 바쿠고씨가 여기에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단 나으니까. 아, 그리고 음식도 맛있어요. 정말로!”
“……”
“이렇게 맛있는 가츠동은 처음 먹었어요.”

아니, 이 느낌은 단순히 맛있다는 감각은 아니었다. 첫술을 떴을 때 목이 멨었다. 가슴에 돌이라도 걸린 것 같았었다. 말을 하는 지금에도 가슴이 뛰었다. 심장에서 뻗어나간 혈액들이 온몸의 세포를 헤집으며 두근거렸다. 그럼에도 이 감각이 낯설지 않았다.
왤까. 미도리야가 물음표를 삼키면서 잠시 오므리고 있던 오른손바닥을 펼쳤다. 데인 듯 붉은 상흔이 깊게 앉아 있는 흉터자리가 박동하고 있었다. 더불어 뜨거웠다.

“전부터 존나 신경 쓰였는데 그거.”

맞은편에서 들린 목소리에 미도리야가 손바닥으로 기울였던 눈길을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바쿠고가 턱짓을 하며 다시 물었다. 그거, 그 손바닥, 그 상처.

“뭐냐. 화상 같은데.”
“아, 맞아요. 병원에서도 화상이라고 그러더라구요. 저는 어디에서 이런 상처가 생겼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흐…”
“……”
“손 근육이 힘껏 긴장된 상태에서 뜨거운 것을 쥐면 이렇게 손금을 따라 깊고 붉은 화상이 생긴대요. 제가 뭘 열심히 쥐고 있었나봐요. 계속 쥐고 있었던 것 같다고, 놓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꽉 잡고 있다가 다 데인 후에야 손을 놓은 것 같다고…”
“……”
“꼭… 불을 잡은 것 같다고.”

보세요, 여기. 미도리야가 말이 없는 바쿠고를 향해 오른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화상에 대해서는 엄마에게도, 다른 학생들에게도 자세히 얘기한 적이 없었다. 기억에 없는 상처가 낯설고 무서워서 그랬을지 모른다. 그런데 왜 당신 앞에서는 손바닥까지 들이밀며 나는 이러고 있을까.
타인이라 그렇다. 미도리야는 생각했다. 당신은 내게 친구도 연인도 아니다. 내 인생에 관계가 없는 타인이라서, 이 문을 걸어 나가면 결국 완전히 남이라서 나는 내 가장 부끄러운 상처를 보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함께 살아온 엄마보다 얼굴을 처음 본 신경정신과의 의사 앞에서 울기가 더 쉬웠던 것처럼, 무섭고 끔찍하다고 욕을 하며 울었던 것처럼.

“이게 뜨거운 물이나 기구에 덴 화상은 아니래요. 여기… 이 붉은 테두리 쪽은 좀 검고 어둡잖아요. 이게 살갗이 탄 흔적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불을 쥔 것 같다고…”
“……”
“저는 왜 이런 얘기를 바쿠고씨한테 하고 있을까요, 하하…”

미도리야가 겸연쩍은 얼굴로 손을 거두며 쓰게 웃었다. 말 한 마디 없이 디밀어진 제 손바닥만 들여다보던 선홍색 눈이 어색해서, 어쩌면 민망해서 그랬을지 모른다. 바쿠고는 아무 말도 아무 표정도 없었다. 깜박이는 법도 잊은 채 손바닥 안쪽을 꿰뚫을 듯 쳐다보던 선홍색 눈은 흉터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도 한참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하, 씨발. 한참만에야 바쿠고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실소가 터졌다. 존나 아팠겠네. 그뿐이었다.

“괜찮냐? 나한테 씨발, 이런 얘기해도.”

바쿠고가 표정 없이 물었다. 다시 미도리야를 꿰뚫어 보는 선홍색 눈이 매섭게 가늘어졌다. 미도리야가 저도 모르게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눈길이 차가웠다.
의자가 긴 소리를 끌며 바닥을 긁었다. 바쿠고가 양손으로 탁자를 짚으며 숲색 머리를 향해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귓가로 바싹 기울어 온 입술이 낮게 속삭였다.

“넌 여전히 너무 물러, 멍청아. 생겨먹은 꼬라지처럼.”
“……”
“데쿠.”

또 그 이름이었다. 크게 열린 숲색 눈이 유령을 좇듯 선홍색 눈을 올려보았다. 바쿠고가 말했다. 착각하지마.

“나는 지금 여기서 널 죽여 버릴 수도 있으니까.”

삽시간에 달라진 눈빛에 미도리야가 반사적으로 어깨를 빼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다가온 양손이 힘껏 목을 졸랐다.






*

기억에는 형체가 없다. 감정처럼, 자고 일어나면 모두 잊어버리는 꿈처럼. 그런 건 애초에 만지지 못하는 것이다. 유실되면 찾을 수도 없다. 손아래에서 행복하게 고르르 울고 있다 열린 창틈을 비집고 나가버린 고양이나 산책 중에 끈을 놓쳐버린 개하고도 다르다. 형체가 없으니 쫓을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다.
미도리야는 보이지 않는 그 형체를 아주 오래도록 좇았었다. 단 한 번도 뚜렷하게 떠오른 적은 없었다. 기억도, 꿈도 그 형체를 들여다보려 애를 쓰면 쓸수록 부연 안개처럼 흐려져 아침이면 모두 사라져 버리고는 했었다. 한바탕 꿈을 꾸어도 아침이면 모두 잊었다. 기억나지 않았다. 손에 남은 흉터가 어디에서 어떤 불길에 덴 것인지도, 이렇게 맛있는 가츠동을 어디에서 먹었는지도, 스케치북에 그려져 있던 소년의 이름도, 누가 나를 데쿠라고 불렀는지도.

그러나 가끔 전혀 처음 보는 것들 앞에서 온몸이 박동할 때가 있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막히고, 손 안의 흉터가 불길처럼 뜨거워졌었다. 마치 잊어버린 것들을 몸은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헉, 허억… 그만, …”

목을 졸라오는 양손에는 힘줄이 힘껏 불거져 있었다. 그만두라는 말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똑바로 부를 수 없었다. 잔뜩 미간을 일그러뜨린 숲색 눈이 지진처럼 떨며 헐떡였다. 힘에 밀린 턱은 젖혀지고 벌어진 입술을 타고 통제를 잃어버린 타액이 말갛게 흘러내렸다.
미도리야는 제 목을 조르는 바쿠고의 손목을 움켜잡고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점차 호흡이 가빠져왔다. 눈앞이 흐렸다. 인간의 뇌는 산소공급이 차단되면 3분만에 의식을 잃고 4분이면 사망한다.
나는 이렇게 죽는 걸까. 미도리야는 생각했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들었다. 선배에게 먼저 연락을 했어야 했다.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나는 아직 이 상처가 어떻게 생기게 된 건지도 모르는데, 당신이 우리집에 찾아온 이유도 듣지 못했는데,

왜 당신이 나를 데쿠라고 부르는지도 나는 모르는데.

그때였다. 바쿠고의 손에 힘껏 짓눌린 목덜미의 얇은 피부 밑에서 전혀 다른 감각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아니, 감각이 아니었다. 10년 전에 잃어버린 기억이었다. 유실해버린 열여섯 살 미도리야 이즈쿠의 조각들이었다.

이렇게 목을 졸린 적이 있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서서히 희석되며 흐려졌다. 미도리야는 그 안개 같은 형상 속을 떠다니는 조각들을 쳐다보았다. 낡고 어두운 벽, 피, 찢겨진 튜브, 깨져버린 약병들, 예리하게 반짝거리던 메스… 미도리야는 허공에 뜬 두 발을 버둥거렸고, 검고 굵은 손가락들이 목뼈를 부러뜨릴 것처럼 목을 졸랐다. 누군가 흐릿한 안개 너머에서 귀찮다는 듯이 중얼거렸었다. 아아, 정말. 흉터가 크게 앉은 입술이 히죽 웃었다.

너는 안돼, 무개성씨.

‘나는 너처럼 자격 없는 새끼들이 설치는 게 진짜 너무 싫어. … 고마운 일이야. 그치? 네 머리를 살짝 뜯어내는 것만으로 인류에 이바지 할 수 있다니까. 과학의 발전에 힘을 보태는 거예요, 무개성씨.’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이 씨발아.

‘뛰어!’

누구였더라. 미도리야는 생각했다. 흐릿해진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목을 조르던 손에서 천천히 힘이 빠져 나갔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것들이 유령처럼 눈앞을 부유했다. 손이 보였다. 그 손을 향해 미도리야는 오른손을 뻗었다. 그리고 불렀었다. 그 손처럼 불꽃같았던, 그 손 안에서 피어난 불꽃같았던 그 이름. 태양이었던 그 이름.

내가 가장 미워했던,
내가 가장 사랑했던,





*

캇쨩.

소년이 말했다. 제발

“가지마…”




*


선홍색 눈이 지진처럼 흔들렸다. 동시에 바쿠고가 이미 힘이 풀린 양손을 힘껏 떠밀었다. 힘에 떠밀린 미도리야가 의자와 함께 우당탕 바닥으로 쓰러졌다. 갑작스럽게 자유로워진 호흡에 미도리야는 그대로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한참동안 기침을 했다. 바쿠고가 저도 모르게 한 걸음을 물러섰다. 펼쳐졌다 다시 힘껏 쥔 주먹이 옅게 떨었다. 내가 씨발, 지금 무슨 짓을…

아니. 바쿠고가 볼 안쪽을 힘껏 씹었다. 못 들었다. 나는 아무 것도 못 들었다고, 씨발.

기침소리가 점차 가라앉았다. 후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호흡을 고른 미도리야가 타액으로 흠뻑 젖은 입술을 손등으로 크게 훔치고 웅크렸던 허리를 들었다. 바쿠고는 일부러 그쪽을 보지 않았다. 숲색 머리칼을 교묘히 빗겨난 선홍색 눈이 다시 한 번 조롱처럼 비웃었다. 등신새끼.

“이제 주제가 좀 파악되시겠지, 씨발. 까불지 말라고 했을 텐데.”
“……”
“나는 언제든지 널 죽일 수 있어, 멍청아.”
“아뇨.”

말을 단칼에 자른 숲색 눈이 선홍색 눈을 담담히 돌아보았다. 평소와 같은 웃음기도 없었다. 피하는 법도 몰랐다. 그 눈이 바람결에도 흔들림을 모르는 숲 같았다. 비바람에도 여전히 그곳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어느 깊은 못 같았었다.

“당신은 그렇게 못해요, 바쿠고씨.”
“……”
“지금도 날 봐줬잖아.”

어느 순간 목을 조르던 손 안에서 힘이 빠졌었다. 이젠 알 것 같았다. 당신은 끝까지 모질지 못해. 당신은 당신의 말처럼 잔인하지도, 난폭하지도 않다. 그저 서툴고 겁이 많은 사람이다. 바쿠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숲색 눈이 힘껏 입을 악다물고 있던 그 얼굴을 고요히 뚫어 보았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당신은 빌런이 될 사람이 아냐. 영웅이 되었어야 할 사람이죠. 그리고 누구보다 영웅이 되길 원했을 거야. 가장 강하고 지지 않는 영웅. 패배를 모르는 영웅.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영웅… 아마 누군가는 당신을 동경했겠죠. 힘이 없는, 가진 게 없는, 개성이 없는…”
“……”
“나 같은… 그런 사람.”
“……”
“바쿠고씨.”

미도리야가 힘껏 입술 끝을 물었다 놓았다. 그리고 여전히 말이 없는 바쿠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우연이 아냐. 기분 탓도 아니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오른손을 힘껏 움켜쥐며 미도리야는 이윽고 남은 말을 밀어냈다.

“우리, 만난 적 있죠?”

바쿠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

초인종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계속)




또 오랜만에 쓰네요 허허.. 이 글은 늘 오랜만인듯 ㅠㅠㅠㅠㅠㅠㅠㅠ 맘 같아선 매일매일 쭉쭉 쓰고 싶지만 매편매편 감정소모가 심한 데다 저도 쉽게 쓰고 싶지 않아 몇 번씩 거듭해서 되씹고 숙고하다 보니 연재텀이 너무 기네요 흑흑 ㅠ.ㅠ.ㅠ.ㅠ.ㅠ.ㅠ.ㅠ 일단 10편 완결 생각하고 있는데 과연 언제쯤 다 쓸는지... 다음 편부터는 좀 속도를 붙여야겠다 싶고ㅠ_ㅠ 무튼!

이제 슬슬 미도리야 손바닥 안에 있는 상처가 왜 생겼는지 아실듯 말듯(?)할 것 같습니다... 요건 한 3편쯤 지나가면 밝혀질듯 u////u 그래도 목표 달성해서 나름 후련하네요ㅠ_ㅠ 일단 올려놓고 저는 퇴근합니두아아아//// 읽어주시는 분들, 피드백 남겨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ㅠ_ㅠ 매번 계속 생각날 때마다 곱씹어 읽어서 지금 거의 외울 지경인ㅠㅠ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

+ 이번 편 첫문장은 가와ㅂ바타 야스나리 <설국>의 오마쥬입니다 (mm

?
  • 혜미 2017.03.23 00:00 SECRET

    "비밀글입니다."

  • 아불 2017.03.23 02:09 SECRET

    "비밀글입니다."

  • 감사합니다 선생님 2017.03.25 01:50 SECRET

    "비밀글입니다."

  • 도영 2017.03.25 16:04 SECRET

    "비밀글입니다."

  • 캇데쿠로승천 2017.04.07 09:17
    루카님 너무좋아요 이거때문에 회사에서 일을못하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아아아ㅏㅏㅏ루카님아ㅡ아아ㅏㅏㅏㅏ
  • ran 2017.05.09 19:07 SECRET

    "비밀글입니다."

  • 루카님짱 2017.05.13 12:49 SECRET

    "비밀글입니다."

  • 글쓴이 2018.07.04 12:40 SECRET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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