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마피아 x 정부 st로 캇뎈합니다
* 밝지는 않습니다. 이것저것 주의해주세요(mm

* 약수위 주의


* BGM/ Bryce Fox <Horns>


http://youtu.be/gs7__crSfCc







Wolf Trapper

@ruka_tea







늑대는 배를 채우면 토끼를 죽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생존의 법칙이다. 쫓고 쫓긴다. 죽이고 죽는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상위에 있는 포식자는 언제나 그보다 아래에 있는 객체를 사냥하며 그보다 더 높은 포식자에게 사냥 당한다. 늑대는 토끼를 사냥하고, 토끼는 늑대를 만나면 죽는다. 그게 법칙이다. 그러나 가끔 어떤 토끼는 늑대를 만나도 죽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늑대의 배가 불렀거나, 늑대가 미쳤거나.

‘늑대’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비가 오고 있었다.

30층 펜트하우스는 다 열어보지도 못할 수많은 방의 개수만큼이나 창문이 컸다.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빗소리는 땅보다도 더 예민하게 창문을 두드렸다. 아, 씨발. 바쿠고가 욕을 삼키며 퀸 사이즈 베드 안에서 몸을 뒤척거렸다. 몸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 손톱이라기엔 굵고 짙은 긴 상처자국들이 하얗게 드러난 등의 근육 위에서 불쾌하게 꿈틀거렸다. 바쿠고가 반사적으로 넓은 침대 옆을 더듬었다. 비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과 동시에 선홍색 눈이 울컥 일그러졌다.

토끼가 없었다.

바쿠고가 이불을 박차며 침대를 벗어났다. 옷걸이에 아무렇게나 걸쳐두었던 나이트가운을 꿰어 입고 바쿠고는 그대로 비척비척 침실을 빠져 나갔다. 빗발은 점점 더 굵어졌다. 선홍색 눈길이 급해졌다. 미처 보지 못하고 발길에 채인 의자 하나가 바쿠고의 발에 채여 복층 계단을 우당탕 굴렀다. 바쿠고는 급한대로 눈에 보이던 룸으로 들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탁자 위를 손으로 헤집었다. 손에 걸린 주사액 앰플들과 주사기가 카지노 칩과 얽혀 와르르 쏟아졌다. 얼음이 다 녹아버린 언더록 잔을 급하게 들이키고 바쿠고는 비어있지 않던 주사기 하나를 팔뚝에 꽂았다. 손끝에 눌린 주사기의 눈금이 단숨에 줄어들었다. 현기증이 끼쳐 바쿠고는 그 채로 잠시 테이블에 양 손을 짚고 크게 숨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바쿠고가 가빠진 숨을 사납게 잇새로 몰아쉬었다.

토끼를 찾아야 했다.

비 내리는 밤은 끔찍하다. 습기를 싫어했다. 이런 날에는 약을 아무리 찌르고 들이켜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비어버린 주사기를 던져놓고 바쿠고는 그대로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있던 베레타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한 손에는 총, 한 손에는 버번을 채운 언더록을 흔들면서 바쿠고는 반질반질 잘 닦인 대리석 위를 비척비척 걸었다.
너른 거실의 모퉁이를 크게 돌았을 때에야 비로소 찾던 얼굴이 보였다. 바쿠고의 등 위에 붉은 선을 그어놓은 건방진 손의 주인이 소파 위에 잠들어 있었다. 흐릿해진 선홍색 눈이 픽 웃었다.

“씨발 새끼가.”

소파 위는 아까와 다름없이 엉망진창이었다. 에곤 쉴레의 모작이 비뚤게 걸려있는 벽면 앞에 어두운 숲색 머리 하나가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고 졸고 있었다. 바쿠고가 반쯤은 쓰러진 그 얼굴과 소파 주변을 한 번 슥 눈길로 훑어보았다. 에곤 쉴레, 누구의 발꿈치에 밟혔는지 모를 박살난 주사기, 알약, 설탕 같은 가루, 박살난 유리병과 빈 콘돔 껍질, 뚜껑을 닫지 않은 젤 튜브. 그 쓰레기통 한 가운데에서 팔자 좋게 잠들어 있는 너, 멍청이, 등신 새끼.
유난히 발목이 가늘던 두 다리가 등갓 밑에서 하얗게 구부러져 있었다. 미도리야는 바지를 입지 않았다. 내가 벗겼지. 바쿠고가 마른 입술을 혀로 느리게 훔쳤다. 티셔츠는 품이 컸고, 목선은 미도리야의 왼쪽 어깨에 아슬아슬 걸려 있었다. 그 틈으로 쇄골이 선명했다. 미도리야는 뼈대의 선이 짙었다. 바쿠고는 그 얇은 살갗 위로 도드라지는 녀석의 뼛자리를 더듬고 움켜쥐는 것을 좋아했다. 언젠가 실수인 척 한 번은 부러뜨려 보고 싶을만큼.
바쿠고가 잠깐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3시 50분이었다.

“30분이면 충분히 주무셨겠지.”

네 기분 같은 건 상관없어, 멍청아. 이 사이에 배려 같은, 동정 같은 그런 질척거리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른손에 들려있던 베레타를 비척비척 흔들면서 바쿠고는 소파 쪽으로 다가갔다. 표범의 가죽 같던 나이트가운은 끈이 헐거웠고, 바쿠고의 걸음을 따라 왼쪽 어깨를 타고 떨어지며 단단히 벌어진 견갑골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조차도 바쿠고는 추스르지 않았다. 지금은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었다. 좀 더 의미 있는, 좀 더 가치 있는.

“야.”

바쿠고가 총구 끝으로 기울어 있던 숲색 머리를 툭, 쳤다. 데쿠. 익숙한 이름에 미도리야가 잠깐 감긴 속눈썹을 움찔 떨었지만 그뿐이었다. 선홍색 눈이 노골적으로 일그러졌다. 제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는 바쿠고는 언제나 인내가 없었다.
총구가 기울어진 정수리를 지나 하얀 얼굴을 타고 미끄러졌다. 이마, 콧망울이 동그랗던 작은 코를 스친 총구 끝이 주근깨가 흩어진 뺨을 꽉 짓눌렀다. 살갗을 스치는 쇠붙이가 서늘한 탓인지 미도리야는 잠결에도 몸을 흠칫흠칫 떨었다. 안전장치는 풀려 있었다. 실수인 척 방아쇠를 당긴다면 이대로 이 녀석의 얼굴이 날아갈지 모른다. 바쿠고가 허리를 기울였다. 귓가에 바싹 닿은 입술이 낮게 속삭였다.

“일어나, 멍청아. 죽여 버리기 전에.”

닫혀있던 속눈썹이 갈피 잃은 나비처럼 얕게 떨었다. 뒤이어 습관처럼 입술을 힘껏 깨문 후에야 미도리야는 멍한 얼굴로 눈을 열었다. 색이 깊은 숲색 눈은 유난히 빛이 탁했다. 이런 시간인 탓인지, 아니면 약 때문인지. 이 점에 대해서 바쿠고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할 거면 이런 상태가 좋다. 나쁜 상태, 별로 건전하지는 못한 상태, 그러니까 별로 미안하지는 않은 상태.
어… 미도리야가 속눈썹을 느리게 끔벅였다. 색이 흐려진 숲색 눈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 웃었다. 흐물흐물 흐려진 목소리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캇쨩.

“나 못해, 힘들어… 이제 더는, 더는 못하겠어…”
“지랄한다. 어디서 내숭이야, 씨발.”
“아냐… 오늘은 피곤해. 아파…아직 속에 남아서, 뜨거워서…”
“어, 그건 네 사정이지. 멍청아.”
“……”
“빨아.”

베레타의 총구가 멍하니 벌어져 있던 입술을 사납게 짓눌렀다. 미도리야가 잠깐 눈을 열고 바쿠고를 바라보다, 이내 흐물흐물 눈길을 떨어뜨렸다. 어차피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미도리야는 턱을 당기며 입술을 열었다. 아직도 잠이 덜 깬 입술이 벌어지며 베레타의 차가운 총구를 천천히 집어 삼켰다. 바쿠고가 남아있던 손으로 미도리야의 뒷머리를 느리게 헤집으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어차피 탄창에는 실탄이 하나 밖에 없었다.
젖은 호흡이 천천히 전후운동을 반복했다. 물기에 젖어 번들거리는 베레타의 총신이 미도리야의 입 안으로 사라지고 나타나는 모습을 흘깃 바라보며 바쿠고는 몸을 기울이며 소파로 올라왔다. 남아있던 손끝이 쓸데없는 애무를 생략하고 곧장 티셔츠 아래로 향했다. 티셔츠 밑으로는 아무 것도 없었다. 총구를 물고 있던 미도리야가 다리 틈을 더듬어 오는 촉각에 저도 모르게 흠칫 어깨를 좁혔다. 바쿠고가 입매 끝을 픽 밀었다. 못하기는, 씨발.

“또 젖었잖아, 멍청아.”
“아냐, 그건 아까…”

미도리야가 총구를 머금고 있던 입을 풀며 항변하듯 잠시 눈을 크게 열다, 이내 눈길을 떨어뜨리며 우물거렸다. 캇쨩이… 내 안에, 계속… 선홍색 눈이 같잖다는 듯이 가볍게 웃었다. 그래도 바쿠고는 미도리야의 이런 태도를 꽤나 좋아했다. 유난히 선이 짙던 뼈대들처럼, 색이 죽도록 깊은 네 그 빌어먹을 눈만큼이나.
왜? 미도리야는 물었다. 겨우 벗어났나 싶었더니 이 시간에 왜 또 자신을 찾느냐는 의문이 훌륭하게 숨어있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들을 필요도 없이 미도리야는 금세 대답을 찾아냈다. 숲색 눈이 다른 밤보다 유난히 소란한 창문 쪽을 잠시 돌아보았다. 빗발은 아까보다 굵어져 있었다.
아, 비… 우물거리며 숲색 눈이 흐 웃었다. 조금 전까지 베레타의 총신을 머금고 있느라 흠뻑 젖어버린 입술이 바쿠고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캇쨩.

“할까?”

아, 근데 하다가 잠들 것 같아. 미도리야가 입고 있던 티셔츠 자락을 스스로 걷어 올리며 부슬부슬 웃었다. 그 잠깐을 다 기다리지 못하고 셔츠 밑에 손을 쑤셔 넣으며 바쿠고가 대답했다. 자, 멍청아. 기울어온 입술이 젖혀진 미도리야의 턱 밑에서 날선 호흡처럼 덧붙였다. 깨울 거니까. 달아오른 호흡에 미도리야가 눈 사이를 좁히며 흡 숨을 들이켰다. 턱을 따라 목선을 훑으며 올라간 입술이 미도리야의 귓불을 깊게 머금었다 놓았다. 셔츠 밑을 쑤셔 들어온 손끝으로 반쯤 일어선 돌기께를 찬찬히 문지르며 바쿠고는 속삭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미도리야가 눈을 일그러뜨리며 하르르 얕게 떨었다. 이제 완전히 일어선 돌기의 틈을 엄지 끝으로 거칠게 긁어내릴 때 참지 못한 허리가 그만 훌쩍 튀었다. 바쿠고가 반쯤 걸쳐져 있던 나이트가운을 급하게 벗어던졌다. 눈앞으로 기울어진 선홍색 눈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데쿠.

“그러니까 너는 허리나 흔들어, 씨발아.”
“……”
“밤새 사랑해줄 테니까.”

아아. 미도리야가 환희처럼 입술을 꽉 씹었다. 창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쉽게 그칠 비는 아니었다.












*

트랩의 ‘늑대’가 토끼를 한 마리 주웠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3년 전의 여름이었다.

소문은 도시의 뒷골목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갔다. 포주들은 페디큐어를 바르고 있던 매춘부들의 침대 밑에서 소식을 전해 들었고, 딜러들은 약을 사러 온 각 조직의 말단들에게 물건과 함께 늑대의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도시의 밤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트랩의 ‘늑대’는, 즉 바쿠고 카츠키는 언제나 가장 흥미로운 이름이었고 동시에 가장 주의해야할 이름이었다. 이 도시에서 트랩 카지노 호텔의 후계자로 태어났지만 다섯 살에 반란을 일으킨 조직원들에게 부모가 살해당한 후 거리로 쫓겨난 새붉은 눈의 소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뒤로 소년에 대한 소식은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뒷거리의 소매치기 패거리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소년은 딱 14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도시에 나타났다. 홀로 베레타 한 자루를 들고 트랩의 카지노 호텔로 찾아간 새붉은 소년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 세계의 전설로 남아 있었다. 소년은 그날 영업 중이던 카지노부터 펜트하우스로 가는동안 총 77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마지막 77번째는 그 언젠가 자기 아버지의 가장 충실한 부하였고, 소년의 눈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여 버리고 트랩의 보스가 된 바로 그 사내였다. 소년은 펜트하우스에서 벌거벗고 엎드린 채 애인들의 하이힐을 핥고 있던 사내에게 인사 대신 네 발의 실탄을 박아 넣었다. 유다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그리고 소년은, 바쿠고 카츠키는 트랩의 주인이 되었다. 카지노 호텔 4곳과 밀수용 화물선박 20척이 온전히 바쿠고의 것이었다. 아니, 그것들은 처음부터 바쿠고의 것이었다. 본래 가졌어야 할 것을 찾았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트랩의 젊은 왕을 이르러 ‘늑대’라고 불렀다.

바쿠고는 뜨겁고도 잔인하며 무자비한 왕이었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늑대와도 같았다. 아무도 ‘늑대’를 거스를 수 없었다. 진작 힘을 잃고 조직들과 결탁한 경찰은 고사하고 군대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젊었고, 패기에 넘쳤고, 잔인했으며 오만했고, 그럼에도 신중하며 머리가 좋았다. 하루 아침만에 도시에서 가장 큰 카지노의 주인이 되었지만 당황하는 법도 몰랐던 바쿠고는 3년차에 접어들 때는 세 개의 호텔을 더 개업시켰다. 돈은 더 많은 힘을 바쿠고에게 끌어 주었다. 수십 톤의 코카인을, 수백 정의 총기를 손짓 한 번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신이었다. 이제는 누구도 이 도시에서 바쿠고를 함부로 죽일 수도, 거스를 수도 없었다. 누구라도 기분을 거스르면 반드시 죽었다. 양복점에서 새 수트를 맞추고 있던 중에 골라온 구두의 색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거울 앞에서 부하의 머리를 그대로 날려 버리는 남자였었다. 이 오만하고 어린 주인을 끌어내리고 싶어 다른 조직에선 몇 번이나 암살자를 보냈지만 모두 바쿠고의 베레타에 머리를 꿰뚫려 사망했다.
이젠 그런 암살자조차 오지 않는다. 바쿠고는 제 뜻대로 굴러가는 이 도시가 퍽 마음에 들었다. 멋진 도시였다. 해안가에 접해 있어 비가 많이 온다는 사실을 제할 수 있다면.

‘토끼’를 만났던 그날에도 비가 내렸었다.

그날 바쿠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키우던 강아지가 아침에 빈 탄피를 잘못 삼키고 목숨을 잃은 탓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비가 왔다. 길에서 주워와 한달동안 침대 곁에서 재울 정도로 아꼈던 강아지를 바쿠고는 제 스스로 묻을 수도 없어 부하들에게 떠맡기곤 슬럼으로 가 저녁 내내 좁은 룸에서 약을 들이마셨다. 비서가 찾아와 소파 위에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바쿠고를 부축했다. 바깥은 이미 깜깜했다. 그대로 리무진 뒷좌석에 올라 바쿠고는 폭우가 쏟아지는 슬럼의 좁은 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렇게 말했다. 차 세워. 그리고 창밖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저거.
기사가 손끝을 따라 창 너머를 쳐다보았다. 한 청년이 맨발을 하얗게 드러내고 가로등 빛에서 비를 맞고 있었다. 숲처럼 짙은 머리칼에 숲보다 깊은 눈을 하고 있던 남자였다.

「태워.」

바쿠고가 말했다.

「재밌어 보이니까.」

그날, 바쿠고의 운전기사는 주인과 이름 모를 남자를 싣고 3시간동안 아무 목적지 없이 거리를 내달렸다. 리무진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고, 뒷좌석과 앞좌석을 가르는 칸막이도 내려가지 않았다. 얇은 칸막이 너머에서 청년은 웃었다 울었다 헐떡이다 조르기를 반복했다. ‘늑대’는 말했었다. 혀, 씨발, 더럽게 못 쓰네, 씨발 새끼가.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멍청이가.」
「……」
「맘에 들어.」

‘토끼’는 리무진이 멈춘 것과 동시에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늑대는 놓쳐버린 사냥감을 찾기 위해 도시를 이 잡듯이 뒤졌다. 싸구려 드럭을 파는 딜러들부터 조직의 말단, 멍청하게 여자 등이나 처먹고 사는 포주들의 입에 총구를 들이대고 토끼의 행방을 물었다. 그 중 몇 번은 실수인 척 방아쇠를 당긴 적도 있었다. 오래지 않아 늑대가 토끼를 찾는다는 소문이 도시를 휩쓸었다. 미도리야 이즈쿠라는 이름의 소년이었다.

「이 도시 토박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부모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쩌다 이 도시에 오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이쪽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아요. 다운타운 역 앞에 있는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지난주에 그만뒀답니다. 세 들어 있던 아파트에서도 방을 뺐고요. 보스,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찾고는 있지만 그 소년말고도 다른 좋은 녀석들이 많으니까…」

비서가 가까스로 미도리야 이즈쿠가 살았던 아파트를 찾아냈지만 거기에도 이미 녀석은 없었다. 토끼가 달아난 지 한 달이 지나갈 무렵이었고, 바쿠고는 비서의 변명을 다 들어줄 만큼 인내심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얼굴이 다 뭉개져 버린 비서의 시체를 그대로 두고 바쿠고는 실탄 한 발이 빠져 나간 베레타의 총신을 버릇처럼 닦았다. 그러다 실탄 한 발을 남겨놓고 남은 실탄은 모두 버렸다. 한 달이나 기다렸다. 이만하면 많이 참았다고. 탄창을 다시 닫으며 바쿠고가 힘껏 입술을 악물었다. 이 한 발은 이제 다른 누구에게는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한 한 발이었다.

깜찍한 토끼야,
너를 다시 만나면 죽여버릴 거니까.

한 달이 지나갔다. 또 두 달이 지나며 세 달째가 됐다. 비는 종종 눈발이 섞인 진눈깨비가 되었다. 석달동안 비서는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아직 베레타의 실탄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바쿠고는 여름보다 말수가 줄었고, 조직 연합의 사교회에도 좀처럼 나서지 않았다.
호텔 정원의 떡갈나무가 마지막 잎새를 떨굴 때 손님이 찾아왔다. ‘토끼’였다.

「나를 찾았다고 들어서…」

펜트하우스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토끼가, 미도리야 이즈쿠가 볼을 긁적거리며 웃었다.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그래서… 미도리야가 우물거렸다. 이제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해서. 그리고 굳어 있던 선홍색 눈을 올려보며 미도리야는 말했다. 안부나 자기소개 따위의 지루하고 따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딴 건… 이미 알아, 등신아.」
「네 정부가 되고 싶지도 않아. 날 곁에 두고 싶으면 다른 이름을 붙여주면 좋겠어.」
「……」
「석 달동안 계속 네 생각을 했어. 네 입술이, 네 손이… 자꾸 어른거려서, 잊을 수가 없어서… 네가 보고 싶었어.」

들어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대로 베레타의 남은 실탄을 네 머리에 박아 넣었어야 했었다. 하지만 바쿠고는 베레타의 방아쇠에 손가락도 걸 수 없었다. 잠금을 푸는 대신 바쿠고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물었다. 야, 멍청이.

「총은.」
「잘 못 쓰는데, 흐… 만져본 적도 없어.」
「사람 죽여본 적은.」
「……」
「없겠지, 씨발. 이런 주제에 정부도 싫다, 근데 곁에 있게는 해달라… 뭘 시켜달라고, 하.」
「……」
「맘에 들어.」

어디로 보나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덤불 같은 머리칼은 비라도 맞은 듯 굽슬거렸고, 하얀 뺨에는 아직 소년기도 채 벗지 못한 것처럼 주근깨가 별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눈이 예뻤다. 자칫 방심하면 끝도 없이 끌려갈 것처럼 색이 깊었었다. 그 탓이다. 바쿠고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미도리야는 그날부터 돌아가지 않았다. 하기야, 집은 어차피 처분했다고 했으니 갈 데도 없었을 터였다. 바쿠고는 미도리야의 위치가 맘에 들었다. 가진 게 없는 녀석이었다. 가질 줄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가진 것이 없는 녀석은 가진 것이 있는 자를 필연적으로 동경하게 된다. 애완동물은 먹이를 주는 주인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그게 이치다. 그게 이 세계의 생태며 법칙이었다.
나는 너를 내 우리에 넣을 거야. 바쿠고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네 세계의 신이 되는 거지. 바쿠고가 혁대를 뽑으며 숲색 머리를 아래로 짓눌렀다. 무릎을 꿇은 미도리야의 귓불을 만지작거리면서 바쿠고는 말했다.

「배신하지마.」
「……」
「죽여 버릴 거니까.」

응. 미도리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바쿠고의 앞섶에 천천히 뺨을 문지르며 말했다. 숲색 눈이 아지랑이처럼 나른하게 웃었다. 카츠키, 아니… 캇쨩.

「이젠 나를 더 함부로 해도 좋아…」
「……」
「더, 심하게… 더, 아프게…」

네가 내게 상냥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미도리야는 그렇게 우물거렸었다. 그러나 바쿠고는 끝내 그 말은 듣지 못했다. 급하게 겹쳐진 입술에서는 비 냄새가 났었다.
숲처럼.













*

마른 허리가 크게 떨었다.

“캇쨩, 흐… 아, 나… 나, 더는, 더… 아아,!”

긴장으로 굳어있던 허리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바쿠고가 제 몸 위로 풀썩 쓰러지는 하얀 등을 끌어안았다. 그대로 틈 없이 몸을 겹치고 둘은 한동안 숨을 가다듬었다. 미도리야가 바쿠고의 가슴팍에 가만히 뺨을 대다 흐, 웃었다. 뭐. 바쿠고가 물었다. 미도리야가 말했다. 그냥.

“캇쨩 심장 소리가 들려서… 캇쨩도 이만큼 뛰는구나 싶어서.”
“……”
“좋아서.”
“또 헛소리 한다, 씨발.”

비켜, 씻게. 울컥 눈을 좁힌 바쿠고가 그대로 미도리야의 몸을 떠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거실을 벗어나는 바쿠고의 뒷모습을 미도리야는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멀리서 물소리가 들렸다. 숲색 눈이 반사적으로 잠시 창쪽을 향했다. 비는 이미 그쳤다. 미도리야가 흡 숨을 들이키며 가다듬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이미 4시를 넘었다.

“앞으로 5분…”

바쿠고의 샤워 시간은 언제나 그쯤이다. 기분이 내킨다면 목욕을 하고 몸을 푼 후에 잘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면 저를 끌고 들어갔을 것이다. 미도리야가 바쿠고가 사라진 방향을 유심히 살펴보며 소파 아래로 손을 뻗었다. 도청기는 아직도 가죽 소파 아래에 잘 붙어 있었다.
현재 시각 04시 32분. 미도리야가 소리를 죽여 말했다. 숲색 눈에는 조금 전과 달리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딱딱해진 말투처럼.

「…내일 새벽 3시, 서쪽항구에 배가 한 척 들어올 예정입니다. M92F 70정… 물건은 갑판 말고 2층 선실 밑. ‘늑대’가 갈 거예요. 직접.」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차피 단방향 통신이니까. 미도리야가 쓰게 웃었다. 조금 전까지 같은 자리에서 신음을 흘리면서 헐떡거렸던 사실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는다. 3년 전보다 이젠 제법 많은 것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벌써 3년이었다.
이 ‘늑대’를 잡기 위해 덫으로 들어온 지가.

익숙해지지 않는 건 너뿐이야. 미도리야가 소리 없이 숨을 가다듬었다. 나는 얼마나 더 오랫동안 너를 속일 수 있을까. 샤워기의 물소리는 아직 그치지 않았다. 꼭 빗소리 같은 그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 미도리야는 다시 소파 위에 길게 누웠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다.
이제 곧 아침이었다. (*)






+ 울프트래퍼(Wolf Trapper)는 늑대사냥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미도리야는 바쿠고를 잡으려고 정부(뒷설정으론 군대 소속 특별수사팀)에서 심은 요원이라는 그런 것.....

며칠 전에 토막만 덜렁 던져놓았던 글을 스르륵 풀버전으로 써서 들고 옵니다 u////u 사실 꾸금으로 쓸까 하다가 아무 내용 없이 떡만 반복할 것 같아서 그냥 수위 조절해서 내용을 좀 더 디테일하게 쓰....기는 했는데 역시 마음에 완전히 차지는 않네요 흑흑ㅜㅜ 그래도 보고 싶은 것을 보았는 데에 오늘도 의의를 두고... 이 글은 언젠가 시리즈로 쓰고 싶어요ㅠ.ㅠ

?
  • 사랑합니다 2017.03.23 07:52 SECRET

    "비밀글입니다."

  • 하루세번 2017.04.10 23:34
    사랑합니다 루카님,,,하루세번,,,사랑합니다사랑합니다사랑합니다 ㅠ ㅁ ㅠ 언제나 잘 읽고있어요오오오 ㅠ ㅁ ㅠ bbbbbbbbbbbbbbbbbbbbbbbb
  • 루카님찬ㄴ양하겠습니다ㅠㅠ 2017.05.06 02:12 SECRET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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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완결 히로아카 게시판 이용 전에 읽어주세요 XD 2016.05.24
135 완결 Vendetta / 02 6 2017.05.14
134 단편 가라오케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4 2017.05.13
133 완결 Vendetta / 01 3 2017.05.11
132 완결 Morality Play / 中3 5 2017.05.09
131 연재 Pull-up (B170507) 3 file 2017.05.07
130 완결 Morality Play / 中2 8 2017.05.05
129 완결 Morality Play / 中1 4 2017.05.02
128 완결 Morality Play / 上 10 2017.04.30
127 연재 Rājā / 2 10 2017.04.28
126 연재 Rājā / 1 4 2017.04.24
125 단편 Talk About You (for.爆豪勝己) 10 2017.04.20
124 완결 손은 말하지 않는다 / 10 (完) 12 2017.04.19
123 완결 손은 말하지 않는다 / 09 5 2017.04.14
122 연재 Rājā /여는 글 9 2017.04.11
121 완결 손은 말하지 않는다 / 08 7 2017.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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