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오랜만에 하드보일드
* 마피아 x 킬러로 캇데쿠
* 그래서 미도리야 이즈쿠는 왜 그 남자를 쏘았는가.txt
* 일단 여는 글부터 짧게 써봅니다













한 남자가 젖은 길 위를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다.

날씨가 궂었다. 밤부터 하늘이 흐려지며 비를 뿌렸고,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둠을 밝혀주는 건 희뿌연 빛뿐이다. 빗줄기에 섞인 흐릿한 빛에 의지하며 남자는 고집스럽게 걸어 나갔다. 단추를 잃어버린 수트 자켓도, 넥타이를 잃어버린 셔츠도, 구두를 잃어버린 맨발도 흠뻑 젖었다. 한 줌의 햇볕이라도 있었더라면 비에 젖어 창백해진 두 뺨의 주근깨와 투명하게 비치는 살갗을 수치스럽게 드러냈을 것이다.

이곳엔 남자를 지켜보는 시선이 없다. 남자는 일부러 늦은 시간을 골랐다. 백 번을 생각해도 다행이었다. 후 호흡을 가다듬은 남자가 잠시 걸음을 늦추며 주변을 둘러봤다. 뒤를 돌아볼 땐 서글서글한 눈매가 잠시 예민해진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 그제야 남자는 모퉁이를 돌아 술집들이 모여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불을 끄지 않은 술집이 딱 한 곳 있었다. 신이 도왔다. 남자는 망설이지 않고 술집의 문을 열어젖혔다.

잔을 닦고 있던 사장이 문 앞에 나타난 남자를 쳐다봤다. 라디오에선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축축한 밤에 어울리는 완벽한 선곡이었다.


“그냥 아무 거나… 한 잔 주세요.”


굽슬굽슬 일어난 숲색 머리의 물기를 크게 털며 남자는 그렇게만 말했다. 잠깐 남자의 얼굴을 살핀 사장은 별 말 없이 닦던 잔을 내려놓고 술을 고르기 시작했다. 남자는 바가 아닌 홀 테이블을 골라 앉았다. 젖은 자켓을 벗으려다, 남자는 관뒀다. 대신 비져 나와 있던 45구경 권총을 자켓 안쪽으로 더욱 깊이 감춰 넣었다. 비를 제대로 맞았으니 오늘은 이 총을 쓰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상관은 없었다. 오늘은 더 이상 이 총을 꺼낼 일이 없었다.


“아, 그리고 죄송한데…”


 버번이 담긴 언더록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있던 사장이 잠깐 남자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보다 한결 미안해진 얼굴로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화 한 통만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제 전화기가 이렇게 되어버려서… 쓴웃음을 흐리며 남자가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모서리에 사납게 찍히기라도 한 건지 전원이 나간 핸드폰의 액정이 산산이 박살나 있었다. 그때부터 사장은 눈치를 챘을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이 한산한 심야에 자신을 찾아온 손님이 평범할 리 없었다. 사장을 바라보는 남자의 입가는 터져 있었고, 목덜미엔 무언가에 졸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자국이 시퍼렇게 찍혀 있었다.


“경찰을 불러주세요.”


아직 물기가 다 마르지 못한 긴 속눈썹이 떨었다. 그래도 사장을 바라보는 깊은 숲색눈은 남자의 목소리만큼이나 차분하고 고요했다.


“센트럴 715번지 골든팰리스 20층 4호… 그 집 주인이 총에 맞았어요. 아마 들어보셨을 거예요. 바쿠고 카츠키라고, 흐.”


이 도시의 주인, 이 밤의 주인. 그리고 가지지 못할 것도, 잃어버릴 것도 없던 오만한 왕Ruler. 흐 웃음을 흐린 숲색 눈이 천천히 끔벅거렸다. 사장은 그때 처음으로 이 남자의 얼굴을 적시고 있는 것이 빗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쐈거든요."


근데 확실히 맞았던가? 남자가 우물거렸다. 아냐, 마지막엔 나도 힘이 빠졌었잖아, 그래서 손목이 흔들렸었어… 중얼거리는 남자를 어둡게 바라본 사장이 금세 몸을 돌렸다. 어쩌면 부탁하지 않았어도 사장은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을지 모른다. 남자가 또 한 번 버릇처럼 흐 웃었다. 마른세수를 하자 아직 젖은 양뺨이 연약하게 떨렸다. 아직까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떨리는 입술이 꽉 씹혔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너를 완벽하게 벗어났을까?

떨리는 손이 그제야 테이블에 올려진 버번을 허겁지겁 들이켰다. 독한 술은 타는 듯이 뜨거웠다. 오래 전에 이런 불길을 삼켰었다. 그 불길은 아직도 토해내지 못하고 온 속을 불태운다.
아, 근데. 카운터 안쪽에 서있던 사장이 핸드폰을 귀에 대며 물었다. 그쪽은 이름이 뭡니까? 남자가 흐, 웃음을 흐렸다. 한껏 졸린 목의 상처가 이제야 뒤늦게 욱신거렸다.

미도리야 이즈쿠… 아니.


“데쿠.”


그 이름을 붙여주었던 남자와 함께 자랐다,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만났다. 거기에서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의 일이었다.










Rule The Ruler
@ruka_tea








지배한다. 그리고 지배당한다. 그 중 바쿠고는 언제나 전자였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다. 두 번에 걸친 경제 대공황 때 밀주를 만들고 약을 돌려 부를 축적했던 외할아버지 때부터 이미 바쿠고의 역할은 결정되어 있었다. 무능한 정부와 부패한 경찰은 외할아버지가 그 어떤 법을 위반하더라도 눈을 감아주었고, 엄마가 자리를 이어 받자 이 거대한 도시의 대부분이 그 손 안에 있었다. 이 도시의 모든 술과 모든 마약과 모든 무기가 엄마의 손을 거쳐 뒷세계로 흘러 나갔다.

엄마는 모든 면에서 외할아버지보다 뛰어났다. 사업을 확장시키는 추진력과 수완, 사람을 설득하고 끌어 모으는 카리스마와 융통성. 그럼에도 자신에게 위해가 된다 싶으면 정을 붙인 동료라도 가차 없이 처단하는 비정함도 있었다.
처음에 조직 내부에서는 딸이 가업을 물려받았음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모양이다. 엄마의 아버지, 즉 외할아버지가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투자금을 보탰단 이유 하나로 자리를 하나씩 차고앉은 간부들은 회동이 열릴 때마다 트집을 잡고 엄마를 조롱했다. 운이 좋아 외할아버지의 곁에 있지 않았더라면 길에서 약을 빨다 객사했을 치들이 간부란 감투를 쓴다고 갑자기 없던 교양이 생길 리도 없었다. 엄마는 그들이 확실하게 선을 넘을 때까지 딱 1년을 기다렸다. 외할아버지 때부터 야금야금 돈을 빼돌려 횡령을 일삼던 간부들의 이중장부가 드러난 날, 엄마는 회의실에 모여 앉은 20명의 눈앞에서 45구경을 뽑아들고 간부 넷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현장을 정리한 건 엄마와 같은 대학을 나온 비서였다. 시체는 클리닝 전문 회사에 넘겼고, 남아 있던 간부들에게 돈 봉투를 찔러 넣어 입단속을 했고, 회의실의 핏자국이 잘 닦였는지 점검한 후에 마지막으로 엄마를 위해 로얄샬루트 한 병을 회장실에 가져다 놓았다. 그날 엄마와 비서는 아침이 밝을 때까지 어울려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10개월 후, 아이가 태어났다. 외할아버지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색이 밝은 머리칼과 붉은 눈을 가진 아들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바쿠고에게 물려준 것은 단지 외모만이 아니었다.


「룰Rule을 지켜.」


엄마는 수시로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바로 룰러Ruler, 支配者니까.」


룰은 지배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한 번 만들어지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이 세계에도 그런 룰이 몇 가지 있었다. 배신하지 말 것. 의리를 다할 것. 서로의 영역을 지킬 것. 조직간 사이가 험악해도 책임자가 가족을 잃었다거나 슬픈 일을 겪고 있을 때 예고 없이 습격하지 말 것. 예컨대 떳떳하지 못한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도의였다.
엄마가 번창시킨 가장 어두운 세계에서 룰은 바쿠고를 성장시키는 삶의 지침이었다. 룰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해져야했다. 바쿠고는 욕심이 많았고, 지는 것을 싫어했다. 총기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것쯤은 열 살이 될 땐 이미 일도 아니었다.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를 했다던 가정교사들도 바쿠고의 똑똑함엔 혀를 내둘렀다. 수도 없는 칭찬들이 바쿠고는 딱히 기쁘지도 않았다. 당연했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사람은 날 때부터 공평하지 않다. 계급은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이다. 바쿠고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것 역시 당연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람 머리에 총알을 태연하게 박아 넣을 수 있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45구경 권총을 만지며 자란 삶이 보통 사람들과 똑같을 리도 없었다. 
그렇게 자랐다. 문제될 것도 없었다. 미츠키의 뒤를 이어 B컴퍼니를 이어 받을 바쿠고 카츠키를 지적할 사람도 없었다. 무엇이건 원하는대로 했다. 가질 수 없는 것도, 이루지 못할 것도 없었다.

룰이 흔들릴 순간은 27년 평생에 딱 두 번 뿐이다. 이젠 기억도 희미한 다섯 살 어린 시절, 그리고 스물일곱번째 4월 20일.
오늘이었다.







센트럴시티 항구의 하역창 앞으로 검은 캐딜락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아침 7시였다.

전날 밤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빗발은 줄었지만 아직도 어깨를 적시기엔 충분했다. 차가 멈추자 조수석을 열고 튀어나온 비서가 신속하게 우산을 펼치고 뒷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는 상대는 선뜻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비서가 긴장한 얼굴로 허리를 숙이며 뒷좌석 안을 들여다보았다. 서류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꺼내보던 바쿠고의 눈빛이 사나웠다. 사실 바쿠고는 전날부터 썩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저… 오늘 새벽에 발견됐답니다.”


얼굴을 읽은 남자가 바쿠고의 손에 들린 사진을 보고 선수를 쳤다. 사진 속에는 물에 젖어 잔뜩 부풀어 오른 사내의 시신이 찍혀 있었다. 한참동안 바라봐야 아는 얼굴임을 눈치챌만큼 시신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그래도 목덜미를 관통하고 지나간 구멍 자국은 똑똑히 보였다.


“이 정도면 사흘은 됐을 거라고 경찰에서 그러더군요. 시간상 저희에게 일을 받아 나간 직후에 처리된 것 같습니다. 경찰에선 일단 단순 자살 사건으로 보고한다고 합니다.”
“자살… 하, 단순자살.”
“……”
“목에 씨발, 이딴 바람구멍을 뚫어놨는데 자살. 하.”


지랄을 한다. 바쿠고가 입매를 서늘하게 비틀었다. 어차피 그 정도쯤이야 경찰에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조사하기엔 귀찮아질 것 같으니 대충 자살이라 보고하는 것뿐이다. 짭새 새끼들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사진을 한 손으로 가볍게 구겨버리며 바쿠고가 그제야 차에서 내렸다. 멋대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하는 바쿠고의 옆에 비서가 우산을 바짝 기울이며 따라붙었다.


“그래도 저희 남부 루트에선 벌이가 제일 좋던 드럭 딜러입니다. 관리하고 있던 장부도 많구요. 녀석이 죽은 걸 알면 하이에나들이 날뛸 텐데요.”
“어, 그걸 정리하는 게 니 일이고.”
“하지만 보스, 남부 쪽은 본래도 지역 딜러들이 난리를 치던 곳이라 잘못하면 루트를 빼앗길 수도…”


우물우물 떠들던 비서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콧등을 눌러오는 리볼버가 차가웠다. 하, 새끼 오늘따라 존나 말 많네. 입 끝을 비튼 바쿠고가 겨눈 총 끝을 꽉 눌렀다.



“내가 지금 너 같은 새끼가 징징대는 걸 듣고 싶은 게 아니거든. 사람 기분이 엿 같아 보이면 알아서 포장부터 해와야지.”
“보스, 그건…”
“저 새끼 목에다 바람구멍 뚫어놓은 새끼 데려다 놓든가.”


아니면. 얼어붙은 비서의 동공 앞에서 덜컥 잠금장치가 풀렸다.


“너도 저 새끼랑 같이 누워 보든가.”
“……”
“알다시피 내가 요새 기분이 좀 더러워서.”


이번이 벌써 네 명째다. 한달동안 가장 실적이 좋은 루트를 담당하고 있던 딜러 넷이 죽었다. 제대로 수사하라고 돈까지 찔러줬지만 경찰들은 흐지부지 시간만 끌고 있었다. 하기야, 총격 사망이 분명한데 자살이라고 보고하는 새끼들한테 뭘 바라겠나.
그렇다고 그냥 냅둘 수도 없었다. 이건 명백한 룰 위반이다. 엄마에게 공적으로 자리 하나를 물려받은 3년 전부터 이 도시에서 바쿠고를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적어도 누구도 이렇게까지 대놓고 거슬리게 하지는 않았다. 볼 안쪽이 절로 꽉 씹혔다.

어떤 새낄까. 감히 이 도시에서 나를 무시할 수 있는 간 큰 새끼는.

뒷세계에서 구를대로 굴러본 딜러를 넷이나 죽이는 것만 봐도 보통은 아니다. 게다가 솜씨도 깔끔했다. 실탄은 모두 숨통을 정확히 꿰뚫었고, 저항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 네 건의 살인을 목격한 자도 없었다. 첫 번째 녀석은 호텔 복도에서, 두 번째 녀석은 술집 화장실에서 사라졌다. 세 번째 녀석은 극장이었다. 오늘 발견된 이 녀석은 새로 사귄 애인의 침실에서 사라졌다. 네 녀석 모두 실종된 지 일주일 후에 항구 앞 연안에서 발견됐다.
일반인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바쿠고가 아는 청부업자 중에서 이만큼 뒷처리까지 완벽한 녀석은 없었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다. 완벽주의자거나, 미친 새끼거나. 뭐가 됐건 살려둘 수는 없었다. 벌써 네 건이나 놓쳤다. 달리 말하면 네 번을 졌다는 뜻이다. 아직 이겨본 적도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바쿠고는 이 점을 가장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인생에 이런 엿 같은 패배감을 느껴본 건 한 번이면 족하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하지만 당길 일은 없었다. 바쿠고가 여전히 콧등을 겨눈 총 끝을 가볍게 꽉 눌렀다. 무슨 근거로. 되물은 말에 비서의 눈짓이 주차된 캐딜락의 반대편을 향했다. 오래도록 사용되지 않은 컨테이너 한 동이 거기 덩그러니 서 있었다.


“하, 씨발.”


입 끝을 비튼 바쿠고가 총 끝을 떼어냈다. 저기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네 번이나 엿 먹였던 새끼. 몸이 곧장 입구 쪽을 향해 돌아섰다. 우산을 다시 고쳐 잡고 뒤를 따르는 비서의 걸음이 급해졌다.


“…어떻게 찾았어.”
“남부 딜러가 실종됐던 아파트 말입니다. 그 시기에 그 아파트를 단기 임대한 사람이 있더군요. 방은 이미 뺀 후였는데 마침 그 옆집 사람이 녀석을 몇 번 봤답니다.”


그게 어제였다. 옆집에 홀로 살던 노파는 자신에게 친절했던 청년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찾아온 사내들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대답을 망설이던 노파는 비서가 건넨 돈뭉치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고 했다. 오래지 않아 역 근처를 수색하던 팀이 같은 인상착의를 가진 녀석을 발견했다. 녀석은 그때도 태연하게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고 했다.
이 대목이 바쿠고는 묘하게 거슬렸다. 감이 그랬다. 지금껏 셋을 죽여 놓고 완벽히 처리했던 녀석이다. 어디로 들어와 어디서 그 녀석들을 끌고 나갔는지도 밝히지 못했다. 그런 녀석이 범행을 저지를 아파트에 임대를 잡고, 멀지도 않은 장소에서 태연하게 샌드위치를 먹는다. 개연성이 미묘하게 엇갈린다. 그래도 문 앞에 멈춰선 비서의 표정은 완고했다.


“확실합니다.”


우산을 접은 비서가 문에 걸려있던 자물쇠에 열쇠를 찔러 넣었다. 얽혀있던 자물쇠와 체인을 풀어내는 소리가 요란했다. 분명히요. 비서가 거듭 덧붙였다.


“자세한 건 직접 확인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문이 떠밀렸다. 안이 들여다보인 순간 확신한 건 비서가 아니라 바쿠고였다. 범인임을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하, 씨발.”


재갈을 물리고 의자에 팔다리를 결박당해 앉아 있는 녀석은 어떻게 봐도 아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바쿠고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는 나이를 꽤 먹었다. 인기척을 느낀 녀석이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던 머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의 눈이 여기서도 볼 수 있을만큼 크게 움찔거렸다.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을만큼 바쿠고는 그 눈을 잠시 오래도록 뚫어보았다.

유난히 긴 속눈썹이 옅게 떨렸다. 숲을 닮은 홍채의 색이 깊었다. 그것만큼은 바쿠고가 기억하던 10년 전과 똑같았다.


“프롭니다. 업자 일 시작한 지는 3년 됐구요.”


아니, 10년 전엔 사람은 커녕 개미 새끼도 밟지 못하던 녀석이었다. 바쿠고가 볼 안쪽을 힘껏 씹었다. 비서는 녀석이 프리였다고 했다. 청부업자 리스트를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은 것도 납득이 갔다. 리스트에 올라가려면 소속이 있어야 한다.


“올해로 스물일곱입니다. 그리고 이름은…”


미도리야 이즈쿠.

하지만 바쿠고가 떠올렸던 이름은 그게 아니었다. 저 녀석에겐 다른 이름이 있었다. 오로지 녀석만을 위한 이름이었다.
볼을 짓이긴 건 하마터면 그 이름을 부를 뻔 해서다. 후 호흡을 참는 동안에도 선홍색 눈은 숲색 눈에 고정 되어 있었다. 얼굴을 살펴본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보스…


“혹시 아는 녀석입니까?”
“아니.”
“……”
“전혀.”


알아도 모른다. 알았다 하더라도 이제는 잊혀졌다. 저 새끼의 똑바른 이름 넉 자가 무엇이었는지, 내가 저 새끼를 어떻게 불렀는지는. 이제 와 중요한 것도 아니지. 바쿠고가 입 끝을 비틀었다. 오늘은 4월 20일이다. 이건 내 생일을 축하하는 선물인가. 그렇다면 이딴 우연을 선물하는 신이란 새끼는 얼마나 쓰레기인가.
그래도 어떤 방식으로 이 재회를 축하하면 되는지는 알고 있었다.


“몰랐으면 지금부터 새롭게 알아 가면 되고.”


바쿠고가 뚜벅뚜벅 걸음을 당겼다. 제게로 걸어오는 그 얼굴을 미도리야는 또렷이 올려다보았다. 부딪치는 숲색 눈이 온통 복잡하게 흔들렸다.  한 걸음을 남겨놓고 멈춰선 바쿠고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얼굴을 잠시 뚫어보았다. 이 새끼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아마 자신이 그렇듯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니 기분이 나만큼 엿 같지는 않겠지. 입 끝을 비튼 바쿠고가 그대로 앉아있던 녀석을 힘껏 걷어찼다. 의자 넘어가는 소리가 높은 천장을 요란하게 울렸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흉통을 느꼈는지 재갈 틈으로 헐떡이는 미도리야의 호흡이 다소 흐트러져 있었다. 하지만 숨을 가다듬어 볼 틈도 없이 바쿠고의 구둣발이 미도리야의 얼굴을 꾹 눌렀다.


“마음이 바뀌었어.”


룰을 부순 녀석이다. 누구건 걸리면 살려는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이 새끼라면 얘기가 다르다. 10년 전부터 이 관계는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이 녀석의 실수는 내 눈 앞에 다시 나타난 거다. 읍읍 몸을 비틀던 녀석이 바쿠고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 눈길을 구둣발로 가볍게 짓누르며 바쿠고가 비서를 향해 툭 입을 열었다. 굳이 돌아보지는 않았다.


“야, 넌 나가라.”
“……”
“내가 이 새끼랑, 하고 싶은 게 좀 있어서.”


겁이 없으면 겁을 가르쳐야지. 룰을 모르면 룰을 알려줘야한다. 그게 내가 만든 세계의 룰이야. 우습게도 이 녀석은 그 룰을 10년 전에 한 번 부쉈었다. 봐준 건 한 번 뿐이다. 놓친 것도 한 번 뿐이다. 몸을 돌린 비서가 등 뒤에서 문을 닫았다. 이젠 둘만 남았다. 10년간 불러본 적이 없던 그 이름이 툭 흘러 나왔다.


“야, 데쿠.”


눈가를 떠나 뺨을 타고 미끄러진 구두 끝이 미도리야의 턱을 제 쪽으로 들어 올렸다. 눈길이 사나웠다. 그래, 너도 사람 새낀데 빡은 치겠지. 그래도 이 녀석의 어떤 감정도 10년 전의 자신만큼 비참하진 않았을 것이다. 바쿠고가 입 끝을 비틀었다.


“뭐부터 해줄까, 씨발 새끼야.”
“……”
“내가 널 곱게 돌려보내주진 않을 생각인데.”


턱을 놔주고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기울어진 몸을 따라 바닥에 쓰러진 녀석의 몸 위에 그림자가 덮였다. 손을 뻗어 주근깨가 흩어진 뺨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이렇게 만져본 적이 언제였나. 그것조차 10년만인가. 그때는 지금보다는 조심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런 것들은 이제 다 잊었다.
아, 잊지 않은 게 하나는 있었다. 뺨을 따라 떨어진 손이 미도리야의 셔츠 앞을 움켜잡으며 거칠게 들어올렸다. 코앞까지 끌려온 숲색 눈이 혼란하게 흔들렸다. 날선 호흡이 사납게 쏟아졌다.


“어차피 넌 이제 아무 데도 못가.”
“……”
“그게 내 룰이라서.”


움켜잡힌 셔츠가 단숨에 벌어졌다. 재갈에 막힌 호흡이 비명처럼 헐떡였다. 피할 새도 없이 미도리야의 허리 위에 올라탄 바쿠고가 거침없이 벌어진 셔츠를 파고들었다. 마구잡이로 뒤틀리는 허리를 무게로 짓누르며 바쿠고가 밧줄을 풀고 미도리야의 발목을 억지로 잡아 열었다.


“하, 존나… 더럽게, 버둥거려, 개새끼가.”
“읍, 으웁, 읍…!”
“다리, 벌리라고, 씨발. 부러뜨리기 전에.”
“으ㅂ, 우읍,!”



지옥이 시작되던 순간이었다.








(계속)












그래서 이 시리즈의 한줄 요약 예고 : 캇뎈이 서로 미쳐 날뛰는 하드보일드 배틀 호모



그래서 저는 또 이렇게 사고를 치고... 연재를 지르고..... 하지만 간만에 하드 보일드 너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동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게다가 진짜 찐으로 배틀 뜨는 캇뎈이 너모 보고 싶어서 그만....... 쨌건.

써봐야 알겠지만 일단 이 시리즈도 5편 내외 완결 생각하고 있습니동 u_u 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흑흑.... 그래도 최선최대로 힘을 내겠다 다짐하며 저는 일단 퇴근을 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 감사해요 (큰절


?
  • 꼬마어른 2019.08.07 22:35
    헉 대박 헐 대박..... 루카 님+캇뎈+하드보일드라는 최강의 조합이라니...!ㅜㅜㅜ♡♡♡
    (너무 황송해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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