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오랜만에 손 풀 겸 두드려보는 글
* 원작바탕이지만 원작에서 15도쯤 빗겨 있습니다
* 모종의 이유로 히어로를 할 수 없게 된 미도리야 이야기로 캇뎈
* 은 사실 걍 원작 얘기 오랜만에 하고 싶어서()
* 우선 상편입니다








Blind Talk
@ruka_tea







히어로 DEKU가 무기한 휴식을 선언했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유에이 히어로과에 입학해 1학년 때 일찌감치 면허를 취득했고, 사이드킥을 지나 프로로 데뷔한 지 이제 3년이다. 은퇴를 선언하기 한 달 전에도 DEKU는 그 달의 프로 히어로 랭킹에서 3개월 연속 출동 횟수 1위를 달성하며 히어로 협회의 표창을 받았다.

겨울잠. DEKU는 자신의 휴식을 그렇게 표현했다.


「유에이 고등학교에 진학해 좋은 스승님들의 지도편달 아래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오래도록 꿈이었던 히어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3년간 프로로 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DEKU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플래시와 렌즈 앞에서 오랜만에 코스튬이 아닌 맨 얼굴을 드러냈다. 현장에서의 활동과 본인의 성실함 덕분에 체격은 다부졌지만 주근깨가 흩어진 둥근 뺨은 스물여덟이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앳돼보였다. 대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느냐, 한참 왕성하게 활동할 이 시기에 휴식을 선언하는 이유가 뭐냐며 묻는 기자들의 말에도 DEKU는 그 깊은 숲색눈으로 부드럽게 웃을 뿐이었다.


「히어로 DEKU가 되기 위해 28년을 살았습니다. 더 나이를 먹기 전에 DEKU가 아닌, 미도리야 이즈쿠의 인생을 잠시 즐겨보고 싶어요. 이유는 그뿐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미리 고지되었던 기자회견은 DEKU가, 아니, 미도리야 이즈쿠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었다. 미도리야는 곧장 에이전트의 직원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지만 회견장에 모인 이들은 좀처럼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DEKU가 유에이에 재학하던 시절부터 팬이었다던 한 소년은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에게 오히려 계속 되물었다.
왜요? DEKU는 왜 더 이상 히어로가 하기 싫대요? 기자들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말문이 막힌 기자들에게 던진 소년의 질문이 그날 저녁 뉴스의 클로징을 장식했다.


「아픈 건 아니겠죠?」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다. 히어로는 연예인과 같다. 뛰어난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프로로 데뷔하는 게 아니다. 좋은 스승이 있는 좋은 학교를 가야하고, 좋은 사무소에 입소해야하며, 좋은 선배 밑에서 사이드킥을 거쳐야한다. 여기까지도 낙타가 바늘구멍을 세 번이나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데 데뷔를 한다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꾸준히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명성이 있어야 한다.
미도리야 이즈쿠, 그러니까 DEKU는 유에이 체육제를 비롯해 아직 학생이던 시절부터 유명세를 형성하며 적잖은 팬층을 거느리고 있었다. 개성이 화려한 다른 동기들에 비해 팬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DEKU의 팬덤은 우직하고 충성스러웠다. 그 힘은 데뷔전을 치른 후에도 명성이 떨어지지 않고, 주요 사건마다 투입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 엄청난 행운을 DEKU는 스스로 걷어찼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DEKU가 휴식을 선언한 이유에 대해 매일 같이 인터넷에서 논쟁을 벌였다. 아프거나, 비밀리에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었거나.

하지만 논쟁이 3개월에 접어들 때 결론은 한 가지로 좁혀졌다.


「DEKU가 데뷔하던 해에 올마이트가 세상을 떠났잖아요.」


DEKU의 오랜 팬들은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3년 전, 7월의 어느 날. 데뷔전을 치른 DEKU의 생일이 머지않았던 그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인생의 스승인데… 힘들었겠죠. 어쩌면 3년동안 버텨준 것만으로도 우리는 고마워해야할지 몰라요.」


세상을 떠난지 3년이 되었지만 올마이트는 아직도 성역이었다. 놀랍게도 3개월간 인터넷을 시끄럽게 달궜던 논쟁도 올마이트의 이름이 나온 것과 동시에 소강되었다. DEKU가 마음을 잘 추스르기를, 그리하여 그 밝고 씩씩한 웃음을 언젠가 다시 보여줄 수 있기를. 팬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바랐다.

바쿠고가 DEKU가 은퇴한 ‘진짜’ 이유를 듣게 된 건 그 무렵이었다.


“바쿠고군, 데쿠군이랑 말이야. 최근에 연락한 적 있어?”


그때는 히어로 GROUND ZERO爆心地가 유럽 생활을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온 지 딱 보름이 되던 때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Ground Zero가 아닌 바쿠고 카츠키라는 이름을 대고 입국 심사를 마친 후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일단 처리할 서류가 너무 많았다. 엄마가 대신 구입해준 맨션 명의 변경부터 유럽에서의 활동을 입증할 경력 증명서 발급받고, 유럽 공인 운전면허를 일본 면허로 다시 변경하는 일만으로도 진이 죽죽 빠졌다.
게다가 돌아온 시기도 좋지 않았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6월에 입국했더니 장마철이었다. 폭발 개성은 비가 오는 날과는 상극이다. 이런저런 복잡한 서류들과 씨름하며 보름을 보냈더니 장마가 잠시 소강 됐고, 그제야 모국에서 첫 번째 일거리가 떨어졌다.
그 현장에서 하필 유에이 시절의 동창을 만났다. 여기까진 예상했던 바였다. 개교 이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었다는 명성에 걸맞게 동기들 대부분이 프로로 활동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아는 녀석을 만나는 건 별로 신기하지도 않다.
하지만 설마 그 이름을 다시 듣게 될 거라곤 바쿠고조차 예상하지 못했었다.


“바쿠고군은 영국에서 데뷔하고 쭉 유럽에 있었으니까 소식을 모를 것 같아서.”


여전히 혈색 좋은 뺨이 보얗게 웃었다. 우라라카 오챠코라는 이 녀석을 바쿠고는 동글이라고 즐겨 불렀었다. 하. 입 끝을 밀어올린 바쿠고가 난간에 가볍게 등을 기댔다. 난간 아래서는 이미 진압이 모두 끝난 빌런들이 순한 얼굴로 장갑차에 오르고 있었다.


“겨울잠 자러 간단 얘긴 들었거든. 런던이 무슨 인터넷도 안 터지는 촌구석인 줄 아나, 멍청한 동글이가.”
“우와, 대단하다. 저 입은 어떻게 아직까지 일관적으로 쓰레기지? 역시 유럽물 먹는다고 사람 고쳐지는 거 아니구나.”
“뭐, 씨발. 바쁘니까 할말 있으면 간단히 하라고.”
“아프대.”


아니. 우라라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확히는… 아픈 것 같아. 데쿠군한테 직접 들은 건 아니거든.”
“……”
“내 생각엔 좀 심각한 것 같아.”


알게 된 건 이틀 전이었다고 했다. 미도리야가 아침에 보낸 메시지를 반나절이 넘도록 읽지 않은 게 일단 화근이었다. 휴식을 선언한 이후로 미도리야는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이이다나 우라라카 같은 녀석들과도 연락만 주고받을 뿐 얼굴을 보이진 않았고, 우라라카도 그때까진 미도리야의 뜻을 존중했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 잠깐 데쿠군 집에 가봤거든. 본래 반나절씩이나 연락을 안 할 성격이 아니잖아. 데쿠군은 궁금한 걸 검색해볼 수 없으면 병이 나니까, 아하하.”
“근데.”
“받을 수가 없었을 것 같더라.”


우라라카가 잠시 깊게 심호흡을 했다. 내내 담담하던 목소리가 그때는 잠깐 떨렸었다.


“데쿠군, 앞을 못 보게 됐어.”


그뿐이었다. 그래도 숨통을 틀어막기에는 충분했다. 하. 타이밍을 놓친 낮은 호흡이 멋대로 잇새를 비집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너무 놀라면 말문이 막힌다더니.
그날 있었던 일 중에 이걸 가장 상상할 수가 없었다. 데쿠 새끼가 앞을 볼 수 없다니.

무슨 병인지, 원인이 무엇인지는 우라라카도 몰랐다. 자세하게 물어볼 수가 없어서 우라라카는 오래지 않아 그 집을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고 했다. 바쿠고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할말이 없었다.
내 얘긴 그게 다야. 우라라카가 담담히 덧붙였다. 그때는 바쿠고도 할 말이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말을 가장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득 악문 입술이 또 한 번 멋대로 떨어졌다.


“그딴 얘길 나한테 왜 하는데.”
“글쎄… 빚청산? 기억 안 나겠지만 내가 바쿠고군한테 빚을 하나 졌거든.”


우라라카가 어깨를 으쓱했다. 둥글게 휘어지는 갈색 눈엔 조금 전까지 지워졌던 미소가 다시 번져 있었다. 별. 바쿠고가 입 끝을 버릇처럼 비틀었다. 어이가 없었다.


“지랄한다. 일본 뜬 사이에 내 이름 걸고 대출이라도 받았냐?”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해볼걸! 바쿠고군 제대로 엿 먹일 수 있었는데!”
“…야, 동글이.”
“한 번 가봐. 이사 안 갔으니까.”


전부터 우라라카는 요령이 좋았다. 휙 노려봤더니 이번에도 익숙하게 받아쳤다. 말문이 막힌 선홍색 눈을 가볍게 뚫어보며 우라라카가 꽉 찬 직구를 확인사살처럼 던져 넣었다. 데쿠군 집. 어이가 없었다. 바쿠고가 입 끝을 픽 비틀었다. 내가 왜, 씨발.
하지만 답이 정해져있다는 건 우라라카도, 바쿠고도 알고 있었다.


“런던 히어로 포스트에서 봤는데 바쿠고군, 런던 집에서 잠깐 키웠던 강아지 이름이 데쿠라며?”
“……”
“주소 다시 가르쳐줄 필요는 없지?”


그 말에도 끝까지 대답은 하지 않았다.









*

우라라카의 말대로 녀석은 아직도 같은 맨션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는 근방에 있던 원룸 중에서도 신축이었다. 넓지도 않고 엘리베이터도 없었지만 베란다까지 딸려있던 그 집에서 녀석과 친한 무리들은 자주 어울려 놀았던 모양이다. 우라라카나 이이다, 토도로키나 가끔은 자신과도 친한 키리시마나 카미나리 같은 녀석들도 종종 저 집에 모여 놀았다. 일단 데쿠 녀석의 집은 노선 세 개가 겹치는 역과 가까웠다.
게다가 졸업을 하고 가장 빨리 독립한 것도 데쿠 녀석이었다. 그런 집은 흔히 다른 친구 녀석들의 아지트가 된다. 일찍 독립했다는 이유 하나로.

바쿠고는 한 번도 그 집 안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래도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바쿠고가 유령처럼 우뚝 서있는 4층 맨션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7년이란 시간이 지난 탓에 맨션은 기억보다는 꽤 낡아 있었다. 태풍과 비바람, 생활매연이 만들었을 상흔과 얼룩이 맨션 곳곳에 흑백사진처럼 달라붙었다. 그래도 4층 A실의 베란다엔 여전히 똑같은 에어컨 실외기가 매달려 있었다.

7년 전에 딱 한 번, 저 집에 찾아간 적이 있다. 잔뜩 취해서.

주소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도 오직 그 때문이다. 주소를 준 녀석은 누구였더라. 등신 머리였나, 전기 멍청이였나. 그 부분은 기억이 흐릿하다. 둘 중 누구였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마 술자리에서 장난처럼 알려줬을 것이다. 전날에도 미도리야의 집에서 놀았다며, 동창들은 언제든지 놀러오라고 했다면서 녀석들은 멋대로 바쿠고의 핸드폰에 주소를 찍은 메일을 넣었다.
주소를 받고 한 달이 지난 후에야 바쿠고는 술에 취해 이곳에 찾아왔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일본에서의 모든 활동을 접고 영국으로 떠났다.


“…이사나 좀 가버리지, 등신 새끼가.”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아직도 이딴 집에서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 돈 아껴서 뒤질 때까지 갖고 갈 거냐고. 스크루지도 아니고, 씨발. 볼 안쪽을 우득 씹으면서 바쿠고가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올랐다. 이 맨션은 유난히 계단이 높았다. 7년 전 그날에도 바쿠고는 이 계단을 걸어오르다 세 번쯤 넘어졌었다. 심지어 술까지 마셨었다. 제 정신일 수가 없어서,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찾아갈 수가 없어서,

그래도 그때가 아니면 영원히 말을 못할 것 같아서.

그것도 이제는 다 옛일이다. 벌써 7년이나 흘렀다. 시간이 약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이 또한 다 지나갈 것이라는 불후의 명언처럼, 그 일은 바쿠고에게도 그랬다. 반쯤 자의로, 반쯤 타의로 영국에 갔다. 과연 옛말은 틀린 게 없다고, 그렇게 살다보니 확실히 전보다 무뎌지기는 했다. 생각하며 남은 계단을 성큼성큼 밟아 오르다 문득 헛웃음이 터졌다. 하, 존나.

그래봤자 고작 7년을 헤어져 있었다. 28년 평생 중에서.

같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거의 날 때부터 친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부터 유치원, 소학교와 중학교는 물론이고 고등학교까지 같았다. 그게 끔찍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전 같지는 않은 걸 보면 시간이 약이 되긴 한 모양이다. 아니면 그냥 망할 나이를 먹어버렸다거나.
하지만 문을 열기 위한 용기는 시간조차 해결해줄 수 없었다. 바쿠고가 비죽비죽 일어선 색 밝은 머리칼을 크게 헝클였다.


“……미치겠네, 씨발.”


후회가 미친 듯이 치밀었다. 역시 맨정신에 오지 말 걸 그랬나. 그때처럼 술이라도 까고 진탕 취한 후에 왔어야 했는데. 아니, 그랬으면 여기까지 멀쩡히 걸어올라올 수도 없었을 거다. 바쿠고가 잠시 제 옷을 내려다봤다. 청바지는 영국의 유명한 빈티지 스트릿 샵들을 사흘이나 뒤져서 샀던 것이고, 회색에 검은 깃을 덧댄 브랜드 셔츠는 오늘 아침에 세탁소에서 찾아 왔다. 향수는 덤이었다. 블루 드 샤넬.
누가 봐도 신경을 썼다. 또 한 번 참지 못한 실소가 잇새로 샜다. 저가 봐도 기가 막혔다. 데쿠새끼라고, 씨발. 딴 새끼도 아니고.


“…뭘 긴장하고 자빠져 있냐, 나는.”


너의 7년이 어땠는지는 알고 있다. 매일매일 네 기사를 읽었고, 매일매일 DEKU라는 이름을 검색했었다. 런던에서 잠시 키웠던 웰시 코기에게 데쿠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까다로운 방역 문제 때문에 결국 녀석은 그간 런던에서 집을 돌봐줬던 관리인에게 입양 보냈지만, 그때까지 7년을 녀석과 함께 보냈다. 그리고 매일 이름을 불렀다. 데쿠라고.
생각해보면 참 웃기는 일이다. 데쿠라는 이름을 보고 싶지 않아서 이 망할 나라를 떠났었는데.


“얼굴만 보는 거라고, 얼굴만.”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바쿠고는 그렇게 믿었다. 버릇처럼 셔츠 깃을 가다듬고 걸음을 당겨 4층 A호 문 앞에 섰다. 기억보다 더 낡아버린 초인종은 여전히 현관문 오른쪽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눌러볼 필요는 없었다.
문이 열려 있었다. 하. 긴장이 풀린 입 끝이 가볍게 비틀렸다.


“멍청이가 아주 도둑 들라고 광고를 하지.”


데쿠는 꼼꼼한 성격이다. 학교 사정으로 잠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할 때도 제 방 뿐 아니라 복도, 벌 청소를 하던 상담실 문까지 꼬박꼬박 잘만 걸어잠갔었다. 이게 어쩌면 동글이 녀석이 말했던 불안감일까. 데쿠 새끼가 안하던 짓을 한다. 무의식적으로 울대를 밀며 바쿠고가 틈이 벌어진 현관문을 천천히 당겨 열었다.
낡은 문이 쇳소리를 길게 남기며 무겁게 떠밀렸다. 마침내 안쪽이 환히 드러났을 때 바쿠고는 그대로 우뚝 굳었다.

집 곳곳에 무수한 하얀 노끈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가구도, ㄱ자로 꺾여진 방의 구조도 모두 바쿠고가 기억하고 있던 7년 전과 똑같았지만 풍경이 전혀 달랐다. 암막 커튼을 비집고 들어온 햇빛이 노끈 위에서 하얗게 반짝거렸다. 마치 거대한 거미줄 같았다. 어떤 것은 거실에서 화장실로, 어떤 것은 베란다에서 싱크대로, 어떤 것은 소파에서 식탁으로 뻗어가며 저마다의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이 집의 주인일 숲색 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긴장이 탁 풀어졌다. 대신 다른 감정이 바쿠고의 눈 사이를 사납게 좁혀놓았다. 몸도 안 좋다던 새끼가 집을 이 따위로 만들어놓고 대체 어디 갔냐고. 울컥 눈을 구긴 바쿠고가 제 몸에 바짝 달라붙어있던 노끈 하나를 손끝으로 툭 흔들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 괴이한 노끈의 용도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이건 씨발, 대체 무슨…”
“누구세요?”


노끈을 튕기던 손이 우뚝 멈췄다. ㄱ자로 꺾여있던 방 안쪽에서 나타난 오른손이 흔들리는 노끈을 가만히 움켜잡았다. 조금 전 바쿠고가 손끝으로 튕겼던 그 끈이었다. 하지만 바쿠고는 침대까지 쭉 뻗은 채로 출렁출렁 흔들리는 그 끈을 이미 보고 있지 않았다. 익숙한 웃음소리가 흐, 흘러 나왔을 때는 목 안쪽이 바짝 조였었다. 그때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기가 막혀서, 씨발.


“욕실 수리해주러 오신 분이신가요? 어, 하지만 아직 알람이 울리질 않았는데…”


흔들리는 끈을 양손으로 움켜잡으며 꺾인 벽 뒤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모든 동작들이 느렸다. 달팽이도 이보다는 빠르겠다, 등신 새끼야. 그 말이 혀 밑까지 치밀었지만 꺼낼 수는 없었다. 줄을 따라 나타난 얼굴은 눈물이 날만큼 여전했다. 부스스한 숲색 머리, 둥그런 뺨, 둥그런 얼굴, 그런 일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짝이던 그 색 깊은 숲색 눈.


“대체 누구시지. 어…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되는데, 흐.”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남자는 그제야 조금 겁에 질린다. 둥글게 뜬 눈동자는 빛이 조금 탁한 것을 빼고는 바쿠고를 여전히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바쿠고를 보지 못했다. 흔들린 줄을 따라 천천히, 조금씩 남자는 바쿠고가 서있는 현관 쪽을 향해 걸었다. 울대가 밀렸다.
튈까. 딱 한 걸음만 남았을 때 바쿠고는 그렇게 생각했다. 7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게 할까. 한 번 해봤으니 어렵지도 않을 거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 정리했던 서류들을 다 찢어버리고 런던행 비행기에 타버리면 그만이다. 런던 집은 매물로 내놨지만 아직 팔렸단 소리를 못 들었으니 갈 데가 없는 것도 아니다. 돌아가면 다시 데쿠새끼를 찾아야지. 똥오줌은 못 가려도 내가 부르면 단숨에 달려오는 그 통통한 웰시코기를 무르팍에 올려놓고 영화나 보면서 시차 적응 좀 하다가 다음 날엔 다시 본래 에이전트로 돌아가 복귀하겠다고 통보하면 된다.
그렇게 해도 된다. 그렇게 해야 한다. 어차피 씨발, 7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바쿠고가 빈주먹을 소리 없이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등을 돌릴 타이밍이 없었다.

걸음보다 먼저 뻗어온 오른손이 바쿠고의 콧날에 툭 닿았다. 빛을 잃은 숲색눈이 둥글게 열렸다. 의아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보다는 믿기지가 않는다는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캇쨩?”


뒤로 물러나던 바쿠고의 어깨가 흠칫 멈췄다. 둥글게 열린 숲색 눈이 흔들렸다. 아냐,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흐, 웃음을 흐린 숲색 눈이 다시 한 번 또렷이 바쿠고를 향했다. 콧날에 닿은 손이 바쿠고의 얼굴 위를 천천히 미끄러졌다. 콧날, 뺨, 그리고 입술에 닿았을 때 남자는 비로소 웃었다. 하기야. 이 새끼는 예전부터 자신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었다.


“캇쨩이구나.”


틀린 적도 없었던 것처럼.


“맞지? 캇쨩… 아닌가? 어, 입술이랑 코가 너무 캇쨩인데…”
“아오, 진짜 등신 새끼가.”


기어이 인내가 폭발했다. 런던으로 돌아가려던 계획은 글러 먹었다. 바쿠고가 제 얼굴을 더듬고 있던 미도리야의 손을 힘껏 낚아챘다. 그대로 힘을 주어 당기자 방비를 못한 몸이 바쿠고의 코앞까지 끌려왔다. 그제야 그 눈이 똑똑히 보였다. 빛을 잃어버린 눈, 이제 다시는 자신을 볼 수도 쫓을 수도 없게 되어버린 눈.


“멍청한 새끼가,”


바쿠고가 볼 안쪽을 우득 씹었다. 멋대로 뻗어간 왼손이 미도리야의 눈가를 거칠게 문질렀다. 지금까지 그 어떤 것 중에 이 얼굴을 가장 참을 수가 없었다.


“왜 니가 울어.”


울고 싶은 건 7년 전에도 나였다고, 등신 새끼야.









*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다.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사람을 동경했고, 같은 것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녀석이 미웠다. 거슬렸고, 참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빠져 있었다. 이 멍청하고 둔해 터진 데쿠에게.

지나놓고 보니 사랑이었더라는, 흔해빠진 연애담이 자기 얘기였노란 사실을 바쿠고가 알아차린 건 유에이를 졸업하고 난 후였다. 그전까지는 그런 감정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내내 미도리야를 향한 우월감에 도취되어 살았었다.
그게 사랑일 리 없었다. 하다못해 우정조차 아니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될 녀석을 왜 그리 신경 쓰느냐는, 같은 반 녀석들의 말에 성질을 내면서도 바쿠고는 단 한 번도 다른 감정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았었다.

그때 데쿠는 그저 데쿠였다. 멋대로 자신을 동경하는 멍청한 무개성 너드.

그 일방적인 동경이 끔찍한 한편으로 녀석의 그 동경이 맹목적으로 자신을 향할 때마다 바쿠고는 우월감을 느꼈다.
설령 데쿠 녀석에게 연연하고 있다고 해도 이유는 그뿐이었다. 그저 개성을 잘 타고 났을 뿐임을, 이 평등하지 못한 개성 사회에서 그것 또한 천운임을 어린 바쿠고는 알지 못했다. 그게 바쿠고의 가장 큰 실수였다. 자기 개성의 우월함에 사로 잡혀 있던 것. 데쿠를 향한 감정 역시 우월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단언했던 것. 그것 밖에 보지 못했던 것.

유에이에 들어오고 난 후에야 바쿠고는 실수를 깨닫게 됐다.

구체적으로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짚이는 데가 너무 많았다. 녀석이 유에이에 합격했을 때부터인지, 자신을 이겨버렸을 때인지, 혹은 묻지도 않은 개성에 대해 고백했을 때부터인지. 처음에는 화가 났었고, 녀석이 멋대로 자신을 앞질러 가기 시작할 때부터는 조금씩 불안해졌다.
유에이는 이제까지의 세계와는 달랐다. 이전까지 미도리야 이즈쿠의 세계는 모두 바쿠고의 통제 속에 있었다. 어차피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였고, 그 동네에서 바쿠고는 개성이 가장 강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왕이 될 수 있었다. 어른들의 기대와 또래들의 동경이 바쿠고를 폭군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유에이는 보다 넓은 세계였다. 더 뛰어난 개성과 더 다양한 생각을 가진 녀석들이 데쿠 곁에 모여 들었다.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이 곤두설 때마다 바쿠고는 잠을 설쳤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 알게 됐다. 아마도 자신이 빌런에게 끌려갔다 구출되었던 그때, 손을 대신 잡아주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키리시마가 쑥스러운 얼굴로 고백하던 그날. 데쿠 녀석은 자신을 구하면서 남의 손을 빌렸다. 직접 손을 뻗지 않았다. 그날 바쿠고는 깨달았다. 데쿠 새끼의 인생에서 내가 유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더불어 깨닫게 됐다. 이딴 걸로 충격을 받고 자빠진 나는 대체,

미도리야 이즈쿠라는 이름의 데쿠에게 얼마나 빠져 있었던 건지.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 깊은 물에 머리끝까지 잠겨 있었다. 유에이를 졸업할 때까지 바쿠고는 그 감정에서 도망치기 위해 죽을힘을 다 했다. 하지만 이건 사람의 감정이다. 하물며 자신도 모르는 새에 평생을 다져온 감정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헤어 나올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 바쿠고가 처음으로 이 감정을 인정하게 된 유에이를 졸업하고도 1년이 지나고 난 후였다.

7년 전, 장마가 끝난 직후, 무더웠던 여름 밤.

이미 꿈에서도 읊을 수 있을만큼 외우고 있었던 주소를 무작정 찾아갔던 그 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올랐던 높은 계단과 불이 훤히 밝았던 4층 A호. 지금보다 깨끗했던 신축 맨션의 복도에 주저앉아 10분을 고민하다 바쿠고는 가까스로 초인종을 눌렀었다.
하지만 그날 문을 열었던 건 데쿠 녀석이 아니었다.


「이게 누꼬. 바쿠고군 아이가?」


혈색 좋은 뺨은 유난히 더 붉었었고, 살짝 달큰한 술 냄새가 났었다. 방 안에 그 밖에 다른 녀석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돌아서서 미도리야를 부르던 우라라카를 말리지 못했던 건 타이밍을 빼앗긴 탓이다. 어쩌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만난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단 한 가지 생각 외에는.


「어… 캇쨩? 캇쨩이 어떻게 우리집에…」


너는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볼을 긁적거렸고, 단 한 번도 내 눈을 똑바로 보지 않았었고,


「할말? 어, 지금은 약간 곤란한데…」


나는 등신 머저리처럼 그 앞에 오도카니 서있었고, 하필이면 잔뜩 취해 있었고, 입술이 멋대로 열렸었다.


「다음에 하면 안 될까?」
「어, 씨발. 됐어. 간다.」


다음 같은 게 있을 리가 있냐, 등신 새끼야.

그때 등 뒤에서 부르던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바쿠고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발 닿는대로 무작정 걷다가 벤치에 걸려 고꾸라져 그대로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녀석이 하필 바쿠고의 얼굴을 알아봤고, 시비를 걸던 녀석과 멱살잡이를 하다 녀석의 팔뚝을 날려버렸다. 일반 주택가라 개성 사용이 금지된 지역이었다는 건 그보다 몇 시간 후에 경찰서에서 들었다.
가뜩이나 유에이 시절부터 전적이 화려했던 젊은 사이드킥이 개성이 금지된 지역에서 일반인에게 위해를 가했다. 사태를 무마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경찰 서장과 오래도록 면담을 한 사무소의 대표가 지친 얼굴로 바쿠고를 바라보았다.


「영국으로 가.」


데뷔는 영국에서 해도 충분하니까, 거기에 아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 밑에 소개해줄게. 덧붙이며 대표가 쓰게 웃었다.


「무조건 프로로 데뷔 시킬 수 있을 녀석이라고 해서 졸업 전부터 작업해서 스카웃했더니, 참.」
「……」
「넌 그 성격부터 고치고 와야겠어. 히어로가 이렇게 자기 성질을 못 다스려서야.」


한 달 뒤, 바쿠고는 일본을 떠났다. 계기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개성 사회 이전에도 수시로 테러에 시달렸던 유럽에서는 바쿠고처럼 상대를 압도하는 개성을 선호했고, 덕분에 데뷔 역시 빨랐다. 6개월의 짧은 사이드킥을 거쳐 무장테러단체 중 한 곳의 근거지를 산산이 폭파시키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가지지 못할 것이 없었다. 실패할 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바쿠고의 다소 오만한 성격조차 히어로다운 자신감으로 받아들였고, 어디엘 가나 팬들을 몰고 다녔다. 수십 편의 CF를 찍었고, 10곳도 넘는 기업의 스폰서를 받았다. 7년은 바쿠고가 일본을 떠난 것 이상을 차고 넘치도록 보상해주었다. 6대의 수퍼카, 집값이 유럽에서 가장 비싸다는 런던 한복판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3층 저택, 기분전환으로 한 번 사본 리치먼드의 별장지와 요트 한 척.

하지만 딱 한 가지만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었다. 7년 전 그 무더웠던 여름밤, 도망치듯 두고 와버렸던 그 유일한 하나. 바쿠고 카츠키 인생에서 가장 거슬렸던 단 한 가지.
그 녀석을 바쿠고는 오랫동안 데쿠라고 불렀었다.


“설마 캇쨩이 일본에 돌아왔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흐.”


노끈을 한참동안 이리저리 밀어댄 후에야 겨우 소파에 두 사람이 앉을 공간이 생겼다. 노끈을 밀고, 현관을 닫고,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을 때까지 미도리야는 벌겋게 달아오른 눈가로 훌쩍훌쩍 코를 들이키면서 바쿠고에게 수도 없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다섯 번쯤 들었을 땐 짜증이 나서 옛날처럼 엉덩이를 걷어 차줄 뻔 했다. 그걸 참아낸 게 오늘 바쿠고가 한 일 중 최고의 잘한 일이었다.

두 번째로 잘한 일은 아마 지금이었다.


“어, 근데 캇쨩… 소리 좀 내줄래? 소파가 어디에 있는지 약간 헷갈려서.”


노끈을 잡고도 미도리야는 소파에 앉질 못해 한참을 비틀거렸고, 바쿠고는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일단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양손으로 이리저리 뻗은 노끈을 더듬더듬 만지고 있는 걸 보니 이 거미줄의 용도를 알 것 같았다. 앞이 보이질 않으니 저 끈으로 물건의 위치를 가늠하는 거다.
이건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바쿠고가 콧날을 일그러뜨렸다. 이럴 바엔 차라리 사람을 쓰든가, 망할 요양원에라도 가든가. 혀 밑까지 치민 그 말을 바쿠고는 이번에도 잘 참았다. 것보다는 제 앞에서 헤매고 있는 이 숲색 머리가 더 큰 문제였다. 저러다 씨발, 해 지기 전엔 앉지도 못하겠다. 그래도 뺨을 둥글게 부풀린 녀석의 얼굴은 밝기만 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는 몰라도.


“내가 아직 이 생활에 익숙해지질 못해서, 흐. 미안, 박수만 쳐주면… 캇쨩!?”


이러다간 끝도 없을 것 같아 무작정 허리를 안고 끌어 당겼다. 이번에도 방비를 하지 못한 미도리야가 자세를 무너뜨리며 그대로 바쿠고의 몸 위로 쓰러졌다. 졸지에 반쯤 안긴 꼴이었다. 어… 빛을 잃은 숲색 눈이 바쿠고의 코앞에서 깜박거렸다. 그래도 그 빛은 여전히 깊고 예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는데.”
“내 맘이다, 등신아. 됐으니까 고마우면 인사나 하라고.”
“아, 응. 고마워. 그러니까 이젠 나 좀 놔주…”
“……”
“캇쨩?”
“……”
“캇쨩.”


감겨있던 팔에 꽉 힘을 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7년만이라 그런 건지, 이렇게 놔줬다가 이 새끼 기껏 찾은 소파에 앉지도 못하고 자빠지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는 건지. 아니면… 선홍색 눈이 코앞까지 닥친 미도리야의 얼굴을 가만히 뚫어보았다. 그때도 어쩐지 울대가 멋대로 밀렸었다.


“언제부터 이랬어.”


툭 튀어나오는 목소리가 저가 듣기에도 별로 좋은 투는 아니었다. 낮은 투에 놀랄만도 하건만 정작 미도리야는 잠깐 눈을 둥그렇게 열고 말았다. 언제나처럼 흐물거리는 웃음이 이번에도 그 둥근 뺨에 익숙하게 걸려 있었다.


“한 반 년 전부터… 아, 그치만 처음부터 이렇게 안 보였던 건 아냐! 지금은 그냥 상태가 약간 나빠져서, 흐.”
“이게 어딜 봐서 약간이야. 약간 뜻 모르냐, 어?!”
“아니, 진짜 약간 불편한 것뿐인… 캇쨩, 간지러, 잠깐, 간지럽, 힉,!”


옆구리를 냅다 찔러댔더니 입술까지 꽉 씹으면서 어깨를 힉 떨었다. 옆구리 약한 건 네 살 때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씩 입매를 민 바쿠고가 같은 자리를 더 찔러대자 이젠 아예 턱까지 젖히면서 헐떡거렸다. 그만, 진짜, 진짜 그만! 급하게 뻗어온 손이 바쿠고의 손을 멈춰 세웠다. 헉헉 밀려나온 호흡이 잔뜩 밭았다. 그 호흡을 바쿠고는 애써 모르는 척 했다. 지금은 그딴 거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망할 병원이랑 의사 멍청이들은 뭐라는데.”
“와, 진짜 캇쨩이구나. 이런 쓰레기 말투를 7년만에 들으니까 캇쨩이 확실히 맞는 것 같고, 약간 반갑기도 하고… 아니, 이게 아니라!”
“……”
“그냥… 모르겠대. 이유도, 원인도.”


스무 곳을 넘게 가봤는데. 흐물흐물 웃던 숲색 눈끝이 축 가라앉았다. 당황하면 속마음을 그대로 중얼거리는 버릇만큼이나 이것 역시 징그럽게 여전했다. 하. 바쿠고가 입 끝을 비틀었다. 이 새끼는 아직도 이렇게 기분을 못 감춰서 어쩌자는 건지.
그런데도 나는 왜 매번 너한테만 속았던 건지.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 새끼들이 돌팔이인 거겠지.”


말꼬리를 돌린 건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일부러 씨근거린 말투에 미도리야가 눈을 둥글게 열다 이내 흐 웃었다. 별 걸 다 쪼갠다. 가늘어진 선홍색 눈이 미도리야의 얼굴을 잠깐 뚫어봤다. 왜. 바쿠고가 물었다. 미도리야가 느슨해진 입꼬리를 부드럽게 밀며 대답했다. 그냥.
공교롭게도 바쿠고는 미도리야가 어떤 때에 이런 얼굴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소꿉친구라서.


“캇쨩이 여기 있는 게 안 믿겨서…”
“……”
“왜 돌아왔어?”


불편한 얘기를 꺼내기 전에 미도리야는 흔히 이런 얼굴로 웃었다. 미안하고 곤란해 한다. 그래도 이 말을 철회하지는 않겠다는 단호함이 그 탁한 눈에도 또렷이 담겨 있었다.


“왜? 것도 7년이나 나가 있다 왜…?”
“……”
“달아났었잖아.”
“……”
“날 피한 거였었잖아, 개자식아.”


하. 바쿠고가 입 끝을 악물었다. 그때는 하마터면 솔직하게 대답할 뻔 했었다.






(계속)






주구장창 쉬고 있던 중에 손 풀 겸 +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오랜만에 토닥토닥 글을 씁니다... 덕분에 또 이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버린 인생.....
무튼 뒤는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상/하거나 상중하일것 같습니다U_U 힘내게 되면 이챠이챠 들고 오겠다며 다짐을 하고 저는 이제 퇴근을 하러///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동 ㅜ////ㅜ (큰절

+ 우라라카랑 미도리야는 아무 사이 아닙니다. Just 친구
+ 그러니까 이 글에서 연상되는 그 상황은 100프로 바쿠고가 오해한 것...
+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풀겠습니동

?
  • 꼬마어른 2019.06.10 21:04
    으아아아 루카 님이 돌아오셨다ㅜㅜㅜㅜ 감사합니다ㅜㅜㅜㅜ
  • 글쓴이 2019.06.10 21:41 SECRET

    "비밀글입니다."

  • 다애 2019.06.10 22:02 SECRET

    "비밀글입니다."

  • 두둥새 2019.06.10 22:05 SECRET

    "비밀글입니다."

  • 메롱 2019.06.11 17:45 SECRET

    "비밀글입니다."

  • 독꾸 2019.06.11 21:00 SECRET

    "비밀글입니다."

  • 루카님덕후39292828234 2019.06.11 23:31 SECRET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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