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이계의 왕 바쿠고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소년 미도리야로 차원이동물 캇뎈
* 판타지AU 캇데쿠
* 이번 편부터 BGM도 살짝 바꿔봅니당

BGM / WHEN THE SHADOW REVEALS YOU

https://youtu.be/nH1wowgc_Ko






Rājā

~ The King ~


<10>










아침부터 하늘이 낮고 흐렸다. 하지만 비는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미도리야가 기억하던 1년 전의 그날은 그랬었다. 아무 표정이 없던, 그 검은 정장의 소년처럼.

집으로 찾아오는 문상객들에게 마주 인사를 하던 바쿠고의 얼굴은 입고 있던 정장만큼이나 어둡고 딱딱했다. 영정 속에서는 미도리야에게도 항상 다정하고 상냥하셨던 바쿠고 아저씨가 환히 웃고 있었다. 그 앞에서 향을 꽂고, 절을 올리고, 상주였던 바쿠고와 맞인사를 하던 미도리야도 그날만큼은 잘 입지 않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울지 않는 그 소년의 얼굴만큼이나 멀고 낯설지는 않았었다. 다만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미도리야의 등 뒤로 따끔따끔 날아와 박혀왔다.

‘본래 이 집이 좀… 단명하잖아요.’
‘그래도 갑자기 심장마비라니 아직 나이도 젊은 사람이, 쯧쯧…’
‘안주인은 소식 듣고 어제 병원에서 정신을 놨나봐. 멀쩡하던 남편이 하루아침만에 죽었는데 제 정신이겠어요?’
‘아, 그래서 카츠키 혼자 빈소를…’

1년 전, 바쿠고와 미도리야가 열여섯 살이 되던 그 해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동네가 개발되는 것으로 결정이 났고, 바쿠고와 미도리야가 처음으로 친구가 되었던 놀이터가 밀렸고, 둘이 자주 기어 올라가 동네를 둘러보곤 했던 커다란 느티나무가 길을 닦는데 방해가 된단 이유로 벌목됐다. 바쿠고의 아버지가 마흔이라는 불혹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고, 근처 학교를 다니던 여학생이 귀갓길에 갑자기 실종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소녀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돌아오지 못했다.

‘쟤들 할아버지도 갑자기 돌아가셨다며.’
‘맞아요. 카츠키도 똑같을걸? 오래 못 살거예요. 이런 유전력은 본래…’
‘쉿, 듣겠어요.’

불편함을 느낀 미도리야가 반사적으로 바쿠고의 얼굴을 재빠르게 살폈다. 일자로 꽉 다문 입술은 그런 말들에도 의연했다. 괜찮아? 선홍색 눈길이 사납게 대답했다. 안 괜찮을 게 뭔데. 그리고 픽 입끝을 비틀며 덧붙였다. 어차피 씨발, 틀린 말도 아니고.

‘아, 나는 무슨 병으로 뒤져버릴지 존나 궁금하네. 씨발.’

일부러 그런 게 분명한 목소리로 바쿠고가 이죽거렸고, 뒤에서 입방아를 찧던 어른들이 민망했는지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미도리야는 그 얼굴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니잖아. 괜찮은 거 아니잖아. 아버지가 떠나고, 충격을 받고 쓰러진 어머니도 없는 빈소는 열여섯 살 소년이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다. 그럼에도 꼿꼿하게 등을 펴고 곧게 앉아 있던 바쿠고가 미도리야의 눈엔 차라리 왕처럼 보였었다. 가장 거칠고 험준한 땅을 기어코 정복한, 신이 내린 운명에도 굴복하지 않을 왕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위로해주고 싶었다.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야.’

고작 1년 밖에 되지 않은 기억들은 지금도 어제인양 또렷했다. 저도 모르게 스르륵 뻗었던 내 손, 멈칫하면서 물러나던 너의 손… 어릴 적에 항상 먼저 내밀어주던 그 단단하고 뜨겁던 손은 서늘하고 차가웠다. 자존심 강한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래도 바쿠고는 제 손을 움켜잡던 미도리야를 뿌리치지도, 밀어내지도 않았었다.

‘놔라. 어?’
‘……’
‘놓으라고, 손.’
‘싫어.’
‘……’
'오늘만 이렇게 그냥… 잡고 있을래.'

그때 둘의 사이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사춘기는 가깝던 두 소꿉친구를 갈라놓을만큼 무자비하고 잔인했다. 어울리는 무리도, 생각하는 방식도 판이하게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기껏 인사를 던져도 무시 당하기 일쑤였다. 아마 1년 전 그날, 미도리야는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바쿠고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래도 놓고 싶지 않았다. 위로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 자리를 홀로 지키고 있던 네가 외롭고 아파보여서, 그 메마르고 건조한 얼굴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등신새끼.’

입 끝을 픽 비튼 바쿠고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몇 년 만에 보던 그 웃음은 전과 다름없이 근사했고, 미도리야는 그 웃음소리에 심장이 움켜잡히는 기분을 느꼈다. 아무렇게나 뻗어온 손이 미도리야의 숲색 머리를 가볍게 헝클이고 떨어졌다.

‘그럼 계속 여기 있어. 놓지 말고.’
‘어? 아니, 그래도 이렇게 세게는…’
‘잡았으면 끝까지 잡아야지, 멍청아.’

바쿠고가 무릎 위에 포개져 있던 손을 꽉, 힘을 실어 마주 잡았다. 뼈가 욱신 거릴만큼 강한 악력이었지만 미도리야는 그 손을 잡아 빼지 않았다. 바쿠고가 그랬던 것처럼. 바쿠고가 제 손 안에 움켜잡힌 미도리야의 손을 잠시 신기하다는 듯이 뚫어 보았다. 그 눈길에는 무심코 가슴이 떨렸었다. 첫사랑처럼.

‘작았었는데.’

선홍색 눈이 픽 웃었다.

‘언제 이만큼 컸어, 데쿠 주제에.’
‘그러게, 흐. 캇쨩 쫓아오다 보니까 이만큼 커버렸네.’
‘……’
‘들어가서 눈 좀 붙일래? 손님들한테는 내가 말할게.’
‘아니, 이거면 됐어.’

잡힌 손을 자기 가슴팍으로 홱 잡아 끌면서 바쿠고가 미도리야의 무릎에 누워 눈을 감았다. 어른들이 놀란 듯이 수군거렸지만 바쿠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혹감에 미도리야의 귀 끝이 붉어졌다. 어른들 계신다고, 이런 데 말고 들어가서 자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다 미도리야는 제 배 쪽으로 푹 파묻힌 바쿠고의 눈가에 맺힌 물기를 보았다. 어깨를 흔들기 위해 뻗어간 손이 바쿠고의 색 밝은 머리칼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응, 이대로 자. 괜찮아. 난 계속 여기 있을 테니까.

‘쉬어, 캇쨩.’

대답 대신 움켜잡힌 손에 꽉 힘이 실렸다. 귀밑이 쿵쿵거렸다. 가슴이 너무 뛰어 아팠었다. 이대로 영원히 잡고 있으면 좋겠어. 놓고 싶지 않다고, 미도리야는 그때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다.










꽉, 잡힌 손의 악력이 너무 아팠다. 감겨있던 숲색 눈이 번쩍 열렸다. 머리 위를 촘촘히 덮은 잎새 틈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두 개의 달이 훤히 걸려 있었다. 밤이었다.
쿨럭 기침을 뱉은 미도리야가 그제야 제 손을 움켜잡고 자기 몸을 힘껏 끌어안은 얼굴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다물지 못한 입새로 그리운 이름이 튀어나왔다.

“캇쨩…”

아니, 아냐. 이 사람은 캇쨩이 아냐. 미도리야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색이 밝은 머리칼도, 지금은 눈을 감고 있어 보이지 않는 선홍색 눈도, 이름마저도 똑같았지만 이 사람은 '왕'이다. 그런데 대체 이 사람이 왜 나를 안고 이런 곳에… 혼란한 감정에 깊게 좁아지던 숲색 눈이 또 한 번 둥글게 열렸다. 쓴웃음이 흐 터져 나왔다.

“맞아, 벼랑에서 떨어졌었는데…”

그러니까 그 마녀가 분명히 이상한 주술을 썼고, 벼랑이 무너져 내렸고… 눈길이 저절로 위쪽으로 향했다. 머리 위를 덮은 뾰족한 침엽수들 사이로 무너져 버린 벼랑이 어렴풋이 보였다. 저런 데서 떨어지고도 죽지를 않았다니… 목울대를 느리게 민 미도리야가 자신을 끌어안고 있던 왕에게로 향했다. 설마.

이 남자가 나를 구한 걸까…?

믿기지가 않았다. 이 사람은 나를 죽이려고 했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그 선홍색 눈에 담겨있던 살의를 미도리야는 수시로 느꼈었다.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얼굴을 뚫어 보았다. 혹시 죽은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머리보다 먼저 손이 멋대로 뻗어나가 붉은 털망토에 감싸여있던 남자의 맨가슴팍에 닿았다. 아.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펼친 손바닥 밑에서 단단한 근육이 고동을 품고 쿵쿵 뛰고 있었다.

“죽은 건 아니구나…”

눈보라가 그친 하늘은 맑은만큼 적막했고, 사방에선 새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두 개의 달과 별들이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릴만큼 고요했다. 가슴팍에 손을 댄 채로 미도리야는 잠시 남자의 입술에서 비져나오던 희미한 숨소리를 들었다. 다시 남자를 똑바로 뚫어보던 미도리야의 머릿속이 온통 복잡했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남자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방법으로 자신을 난폭하게 제압하고 가장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취했던 자다. 하필이면 가장 그리운 얼굴과 사랑하는 이름을 가진 이 남자가 미도리야는 죽도록 싫었었다. 그래도… 미도리야가 떨리는 입술 끝을 꼭 깨물며 의식 잃은 남자의 얼굴을 뚫어보았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남자가 나를 구했어. 이 남자가 감싸준 덕분에 저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죽지 않았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걱정에 바쁘게 남자의 몸을 살펴봤지만 일단 죽지도 않았고, 단단한 맨가슴팍 언저리에 긁힌 자국이 있는 것만 뺀다면 외상도 딱히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해보다 미도리야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눈보라를 일으키는 마녀가 있는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라는데 보통 인간하곤 다르겠지… 적어도 여긴 미도리야가 살고 있던 세계와는 달랐다. 무슨 마법의 힘이 이 남자를 지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남자가 나를 지켰다. 그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눈가가 시큰거렸다. 이번에도 역시 이 남자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도리야가 꽉 잡힌 오른손을 흘깃 내려보았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남자는 이 손은 놓지 않았다. 숲색 눈이 흐 웃었다. 이번에도 웃음결이 썼다.

“…이런 것까지 너하고 똑같을 필요는 없는데, 하하.”

무릎을 베고 잠에 빠져서도 이 손을 꽉 움켜잡고 있던 소년을 알고 있었다. 그때까지 미도리야는 그 소년을 그저 소꿉친구로만 불렀었다. 동경이었고 우정이었다. 그 감정이 다른 이름을 띠기 시작한 것도 그날부터였다. 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그 장례식장에서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손을 꽉 잡고 있던 너의 크고 하얀 손… 그 손은 다른 어떤 때보다 차가워서 미도리야는 불편한 자세로 무릎을 내어주고 앉아서도 차마 뿌리칠 수도 없었다.

나마저도 이 손을 놔버리면 아무도 네 손을 잡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너만 혼자 외롭게 그곳에 남아버릴 것 같아서.

오지랖이 넓은 거지, 쓸데없이. 미도리야가 소리없이 웃음을 삼켰다. 그래도 어릴 적엔 그 손이 수시로 미도리야를 지켜냈었다. 이번에도… 미도리야가 아직도 눈을 뜰 기미가 없는 그 얼굴을 잠자코 쳐다보았다. 같아도 같은 손은 아니지만.
그나저나 지금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도리야의 입술이 앞으로 둥글게 모였다. 이 숲은 익숙했다. 기껏 마녀에게서 도망쳤는데 다시 또 같은 숲으로 굴러떨어지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 거인 아이가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줬는데… 눈앞에서 빛이 꺼지던 회색 홍채와 선량한 얼굴을 생각하니 또 한 번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 많은 일들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돌아갈 수 있을까? 여기서 이대로 죽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이 남자는 왜 아직도 눈을 뜨지 않는 걸까.

“죽이고 싶어 할 땐 언제고, 진짜.”
「…또 멍청한 말을 떠들어대고 있는 것 같은데.」

구시렁거리던 미도리야가 순간 입을 헙 다물었다. 감겨있던 선홍색 눈이 번쩍 열렸다. 하지만 곧장 고개를 돌리지 못한 건 그 눈길에 붙들려 버린 탓이다. 아. 미도리야가 저도 모르게 입술 끝을 꼭 깨물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똑같을 수 있을까. 이 눈을 좋아했었다. 항상 자신만만하고 물러설 줄 모르던, 지는 것보다 이기는 일에 더 능숙하던 이 눈.
이 눈에 상처 받았고, 이 눈에 아팠지만 그래도 이 눈을 좇아가며 자랐다. 이 눈을 보면 무심코 마음이 놓여. 이런 곳에 있어도 네가 곁에 있는 것 같아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결국엔 네가 내 손을 잡고 이끌어줄 것 같아서, 나는 네 손만 단단히 잡고 따라가면 될 것 같아서 걱정조차 사라져 버린다. 이 눈을 보고 있는 동안에는 무엇이건 견딜 수 있었다. 심지어 이 얼굴을 한 남자가 내게 준 상처와 아픔까지도.

“아… 어, 그게 어, 보려고 본 게 아니라…”
 
눈을 맞추고 있다는 것조차 잊고 뚫어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난 뭘 하고 있는 거야. 창피함과 민망함에 품을 벗어나려고 할 때 남자가 제 가슴팍 앞에서 잡혀있던 손을 힘껏 끌어 당겼다. 기껏 멀어졌던 얼굴이 코앞으로 바싹 붙었다. 미도리야의 뺨에 눌리듯 닿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낮고 탁한 목소리였다. 공교롭게도 미도리야는 이제 이 말역시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친 데는.」

본래 쓰는 말로도 대답하지 못했던 것은 놀란 탓이다. 이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곤 짐작도 못했다. 미도리야의 얼굴을 뚫어보던 선홍색 눈이 턱, 쇄골을 지나 미도리야의 몸 곳곳을 바쁘게 살펴보았다. 하. 남자가, 왕이 입 끝을 비틀며 낮게 웃었다.

「다행히 명줄은 질긴 모양이군.」
“어, 저기 저는…”

우물거린 말을 다시 이 나라 말로 바꿔 말해볼 틈도 없이 남자가 미도리야의 가슴팍을 힘껏 떠밀며 일어났다. 단단히 얽힌 손이 그제야 처음으로 풀려나갔다. 더럽게 무거워, 씨발.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우물거리면서 몸을 일으켜 땅을 딛고 서려던 남자가 크게 휘청거렸고, 미도리야가 저도 모르게 팔을 뻗으며 남자의 몸을 부축했다. 그제야 퉁퉁 부어있던 남자의 오른 발목이 눈에 들어왔다. 안심인지, 걱정인지, 혹은 고마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미도리야의 입가를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이 남자도 다치긴 다치는구나. 아예 천하무적은 아니었어.

남자가 허리를 안은 미도리야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놔. 이 남자가 발음할 때면 유난히 날카롭고 거칠어지는 억양이 미도리야에게 그렇게 말했다.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놓으라는 남자의 허리를 한 팔로 안고, 한쪽 팔은 멋대로 제 어깨에 둘러놓았다. 선홍색 눈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남자가 항상 허리에 걸려 있던 검이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아. 쓴웃음을 삼킨 미도리야가 다물었던 입을 뗐다. 이번에는 제대로, 또박또박 말했다.

「싫어요.」

미도리야를 노려보던 선홍색 눈이 순간 크게 열렸다. 놀란 듯한 그 얼굴에 미도리야는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신기하죠? 나도 신기해요, 이 나라 말을 이렇게 쉽고 빨리 익힐 수 있을 거라곤 몰랐는데. 미도리야가 우뚝 굳은 남자의 팔을 제 어깨에 단단히 둘러놓았다.

「이대로 갈 거예요. 당신이 뭐라고 하건 간에.」
「……」
「나를 구해준 사람을 그냥 두고 갈만큼 모진 성격이 못 돼서요.」

이 말이 맞나? 아무리 다시 눈을 뜨기 전보다도 말하는 게 수월해졌다곤 하지만 익숙한 언어는 아니라서 아직까진 좀 헷갈렸다. 미도리야가 눈치를 보듯 남자의 얼굴을 슥 살폈다. 하. 굳어있던 남자가, 바쿠고가 입 끝을 비틀었다. 좀 전보다 느슨해진 선홍색 눈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발음이 엉망진창이잖아, 멍청아.」

걸어. 작정하고 기대기로 했는지 미도리야의 몸에 체중을 꽉 실은 바쿠고가 저 너머로 턱짓을 했다. 당신 키나 체격이 나보다 큰 건 다 잊었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미도리야는 이내 말았다. 지금까지 본 얼굴들 중에 지금이 캇쨩과 가장 똑같았다. 어이가 없을만큼.











*

유일한 길이 사라졌다고 말한 건 왕, 즉 바쿠고였다.

「그 망할 마녀가 벼락을 불러 모두 무너뜨려 놓았으니까.」

무너진 벼랑을 따라 좁게 뻗어있던 그 길이 성채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모양이다. 원래 모양을 잃어버릴만큼 무너져 내렸으니 그쪽으로 다시는 갈 수 없겠지. 미도리야도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요?」

미도리야가 제 어깨를 단단히 끌어안은 바쿠고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망설이지도 않고 바쿠고는 즉답했다. 아무리 이런 상황이어도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거짓말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하기야, 캇쨩도 이런 성격이었다. 거짓말을 할 바에는 차라리 입을 다물어 버리던 소꿉친구와 똑같은 얼굴로 왕은 덧붙였다.

「이곳의 길은 500년 전에 모두 없어져 버렸으니까.」
「……」
「그래도 성스러운 재단까지 올라가면 돌아갈 방향은 보이겠지. 그 망할 재단이 이 산에선 가장 높은 곳에 있으니까.」
「저, 어… 성스러운 재단이 어떤 곳인데요?」
「……」
「…알겠어요. 안 물어볼게요.」

질문을 했더니 입을 확 다물었다. 이런 성격들이 어떨 때에 이런 행동을 하는지 미도리야는 평생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오랫동안 잘 알고 있었다. 귀찮으니 묻지 말란 뜻이다. 진짜 이런 것까지 똑같을 필요는 없다니까. 미도리야가 속으로만 조용히 투덜거렸다. 영혼이 똑같으면 이름과 생김새는 고사하고 성격도 대고 긁은 듯이 닮는 건지, 뭔지.
그래도 더는 묻지 않았다. 어쨌건 이 남자는 나름대로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달.」

바쿠고가 어깨에 걸지 않은 왼손 끝으로 하늘에 떠있던 두 개의 달을 가리켰다.

「저 달을 따라가면 된다고, 멍청아. 성스러운 재단은 버려진 신전을 지나 동쪽에 있으니까.」
「아. 그렇구나, 하하…」
「…」
「…근데 버려진 신전은 또 뭔데요?」

선홍색 눈이 사납게 미도리야를 노려보았다. 이번에도 즉 묻지 말라는 소리였다. 두 번이나 연달아 이런 눈길을 받아놓으니 이번엔 좀 억울했다.

“와, 진짜 비싸게 군다… 아니,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 내가 뭘 어쨌,”
「욕하는 것 같은데.」
「하하, 설마요. 그럴 리가요! 어, 계속 갈까요? 어디로 가면 돼요? 저쪽?」

정곡을 찔린 미도리야가 어물어물 말길을 돌렸다. 왼뺨을 찌르듯이 꽂혔던 시선이 다시 정면을 향했다. 그 채로 서로 말없이 또 한참을 걸었다. 말이 통하게 되었다곤 하지만 남자는 기본적으로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다. 이런 것도 캇쨩이랑 똑같네. 생각을 삼키면서도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말대로 두 개의 달이 떠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좁은 숲길을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숲은 아까 거인 아이와 함께 걸었던 곳과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약간 달랐다. 아마 벼랑이 무너질 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떨어진 듯 싶었다. 나무줄기가 뒤얽힌 오랜 석조 건물들이 이쪽에 보다 더 많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 버려진 유적지 같은 동네가 가장 번성했던 지역을 지나고 있는 듯 했다.

「너.」

한참을 말없이 걷던 바쿠고가 돌연 입을 열었다. 놀래라. 먼저 말을 걸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낮은 목소리에 미도리야가 의아한 얼굴로 바쿠고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정면을 바라보는 붉은 눈 안에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언제부터 이 땅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됐어.」

아, 그거… 숲색 눈이 쓰게 웃었다. 하기야, 궁금하긴 하겠다. 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 한 마디 똑바로 알아듣지 못했던 녀석이 느닷없이 의사소통에 아무 무리가 없을 정도로 언어를 구사하고 있으니. 하지만 그 이유는 미도리야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이렇게 돼서, 하하… 아, 물론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요.」
「……」
「아, 혹시 마녀가 먹인 약 중에 뭔가 이상한 힘을 가진 게 있었던…」
「약이라니.」

문장을 다 맺어보기도 전에 되묻는 말투가 사나웠다. 예리하게 좁아진 선홍색 눈 사이가 서늘했다. 왜 또 화를 내는 거지, 이 사람은. 영문을 모르겠어서 미도리야는 그저 둥그런 눈을 끔벅거리며 순순히 대답했다. 네, 약…

「먹으니까 닿은 자리가 다 아팠어요. 머리는 어지럽고, 몸은 꼼짝도 못하겠고, 하하…」
「…늪거미의 독액이로군.」
「? 늪… 네? 그건 뭔가요?」
「있어, 멍청아.」

이렇게 질문을 자르는 것만 벌써 세 번째다. 알려주지도 않을 거면 말을 하지마, 이 자식아. 억울함과 답답함을 감추지 못한 숲색눈이 솔직하게 쓰게 웃었다. 그 얼굴을 못 본 건지, 아니면 보고도 모르는 체 하는 건지 바쿠고는 그저 계속 걸으라는 말만 반복했다. 더 늦기 전에 잘 곳을 찾아야 하니까. 그리고 선홍색 눈이 잠시 미도리야의 얼굴을 달라붙듯 훑어보았다.

「회복에는 ‘피’가 필요하니까.」
「…회복이라니 뭐가요?」
「걷기나 해. 곧 알게 해줄 테니까.」

다시 오래도록 걸었다. 점점 더 좁고 복잡해지는 희미한 길을 따라 머리 위를 덮은 뾰족한 잎들은 점차 더 무성해졌다. 이제는 두 개의 달빛도 가려질만큼 숲은 깊었고, 드문드문 어깨를 맞대고 있던 좁은 건물들 대신 입을 벌린 거대한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쯤이 좋겠군. 바쿠고가 서서히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눈앞에 드러난 3층 높이의 건물 쪽으로 턱짓을 했다. 어차피 숲이 깊어 달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여정은 아마도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바쿠고를 부축한 채로 미도리야가 거대하고 높은 입구를 천천히 지나쳤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바쿠고가 미도리야의 어깨에서 팔을 풀었다. 어딘가에서 달빛이라도 스며들고 있는 모양인지 실내는 생각처럼 어둡지 않았고, 밖에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웅장하고 컸다. 미도리야가 갇혀있던 건물과 구조는 비슷해 보였으나 규모면에서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우와…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며 미도리야가 5층짜리 건물 한 채 높이만큼 멀고 까마득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붉고 푸른 달빛이 번진 천장에 뭔가 검고 어두운 것이 그려져 있었다. 비슷한 그림을 미도리야는 전에 장로장이 건네준 책 안에서도 보았었다.
용… 아니, 이 세계에서는 분명히 그것을 이렇게 읽었었다.

「왕Raja…」

곁에 서 있던 선홍색 눈동자가 순간 예리해지는 것을 미도리야는 보지 못했다. 얼마나 그림을 정신없이 쳐다보았는지 미도리야는 제 목이 뒤로 한참을 젖혀진 것도 몰랐다. 그럴만한 그림이었다.

녹빛을 띤 용이 거대한 몸체를 뒤틀며 천장 아래를 향해 포효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그림은 곳곳이 부식되었지만 그럼에도 용이 가진 박력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용은 얼핏 어림잡아보아도 5미터는 가볍게 넘어설 것 같았다. 실제로 저만한 크기이지 않았을까? 용이 드나들었다던 성채가 꼭 저만한 높이였으니 용의 몸집도 저것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럼 얼마나 강했을까? 저 용을 제압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터다. 허니 저 용을 제압했다던 그 ‘왕’의 힘도 분명…
생각하며 미도리야가 저도 모르게 곁에 선 바쿠고를 돌아보던 순간이었다. 목을 뒤로 기울였던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미도리야의 몸이 그대로 돌바닥 위에 쓰러졌다. 하지만 쓰러진 건 미도리야 혼자가 아니었다.

“어…”

미도리야가 제 몸 곁에 양팔을 딛고 있던 선홍색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울대를 느리게 밀었다. 이번에도 이 남자가 나를 잡으려고 했다. 내가 넘어지기 전에.

「너란 놈은 대체 조금도 눈을 돌릴 수가 없어.」

왕이, 바쿠고가 사납게 중얼거렸다. 그 얼굴에도 미도리야는 다른 것이 묻고 싶었다. 얼굴만 같은 것이 아니라 이젠 그 영혼의 심성까지 똑같은 상대에게 묻고 싶은 말이 혀뿌리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당신은 왜 자꾸 날 지켜내는 건가요?

「캇쨩…」

또 한 번 그 이름이 무심코 입술을 비집었다. 미도리야를 내려다보던 바쿠고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아, 그러고 보니 이렇게 부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어. 미도리야가 의식을 잃었던 밤의 기억을 어렴풋이 더듬었다. 저도 모르게 이 이름을 끄집어냈을 때 남자는 피가 식을만큼 차가운 얼굴로 저를 뚫어 보았었다. 지금도 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그때와 달리 나는 이제 당신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야. 미도리야가 긴장한 울대를 또 한 번 꿀꺽 밀었다. 어쩐지 이번만큼은 말해보고 싶었다.

「캇쨩이라고… 있었어요. 당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 제 친구, 제 소꿉친구.」

내 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지금도 뼈에 사무칠만큼 그리운 사람. 그런 쓸데없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목이 메여 그랬다. 아, 나는 네 이름만 떠올려도 눈물이 날 것 같아. 어느 틈엔가 흐려진 숲색 눈끝을 둥글게 접으며 미도리야가 흐, 웃었다. 일부러 그랬다. 웃지 않으면 정말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많이 닮았어요. 그래서 솔직히 힘들어요. 그러니까 당신… 어, 왕님 얼굴을 보면.」

뭐라고 불러야 할 지를 몰라서 대충 그렇게 말했다. 왕. 이렇게 부르면 안 되나? 미도리야가 말없이 자신을 뚫어보던 얼굴을 잠시 살폈다. 남자는, 바쿠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천장에 반사된 달빛을 등진 그 얼굴에 그림자가 깊었다. 그래도 무슨 생각을 삼키고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는 얼굴이었다. 하긴, 난 항상 네 생각을 읽는 데도 서툴렀어, 캇쨩.

“좋아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이 나라의 말이 아닌 본래 쓰던 말이 무심코 본심을 입 밖으로 밀어냈다. 아직 수도 없이 후회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립고 아팠다. 네가 보고 싶어서, 네가 그리워서. 며칠을 보지 못했던 이 왕의 얼굴조차 지금은 반가웠다. 참지 못하고 손이 멋대로 뻗어나간 것도 어쩌면 그 탓이었는지 몰랐다.
지금 네가 이렇게 내 앞에 있다면 나는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좋아해.”

또 한 번 본심이 멋대로 입술을 비집었다. 스르륵 뻗어나간 손이 표정 없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왕의, 바쿠고의 뺨을 천천히 매만졌다. 그때도 남자의 얼굴에서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화가 난 것도 같았고, 뭔가를 삭이는 것도 같은 복잡한 얼굴이 미도리야를 말없이 뚫어 보고 있었다. 그 눈길에 자꾸만 멋대로 마음의 빗장이 열렸다. 숲색 눈 끝에 맺혀있던 것들이 기어코 뺨을 타고 주르르 떨어졌다.

“…당신이 미워.”
「……」
“당신이 날 구하지만 않았어도 이만큼 그립진 않았을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알아듣게 말해.」

꽉 눌린 목소리가 낮게 비져 나왔다. 그러게. 며칠 전엔 하고 싶어도 못했다지만 이젠 당신에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데.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미도리야는 잠시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자신조차도 모를 수많은 감정들이 혀뿌리 밑에 걸려 아우성치는 통에 어지러웠다. 그래도 지금 무엇이 가장 간절한 지는 미도리야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미도리야를 망설이게 했다.
이 남자는 나를 힘으로 취했는데, 나를 제압하고 죽이려고 하던 자였는데.

「한 번만… 한 번만 데쿠라고 불러주세요.」

미도리야가 젖은 눈을 꽉 감았다 떴다.

「캇쨩이 저를 그렇게 불렀거든요.」

하. 사납게 일그러진 선홍색 눈이 차갑게 웃었다. 그 얼굴이 하고 있는 말을 미도리야는 이번에도 읽어내지 못했다.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 싶어 숲색 눈이 쓰게 일그러졌다. 그 순간 왕의, 바쿠고의 손이 미도리야의 뺨으로 다가왔다. 굽슬거리는 숲색 머리칼과 뺨 사이를 파고든 손가락은 그때도 따뜻하고 다정했었다. 그날, 내 머리칼을 넘겨주며 입을 부딪치던 너의 손길처럼.

「이젠 하다하다 별… 어처구니없는 얘길 다 들어주고 싶어지는데.」
「…싫으시면 됐,」
「데쿠.」

분명히 그렇게 불렀다. 우뚝 굳어버린 숲색 눈앞으로 부드럽게 기울어진 선홍색 눈이 콧날을 다정하게 부딪치며 연거푸 속삭였다. 데쿠.

「하찮은 이름이군.」

남자가, 바쿠고가 우습다는 듯이 입매 끝을 비틀었다. 허나 미도리야를 뚫어보던 선홍색 눈은 그때도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귀여운 것을 내려다보는 맹수의 눈처럼.

「맘에 들어.」

그리고 기울어진 입술이 벌어진 미도리야의 입술을 천천히 덮어왔다. 불길처럼.






(계속)





이번 주도 역시나 딱 1주일만에 슬금슬금 들고 옵니다 u/////u 밤이나 되어야 올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 플롯을 틈틈이 짜둔 덕에 스스사삭 이렇게 또 한 편을 쓴다며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튼 이제부터 또 서너 편은 지금까지하고는 캇뎈 감정선도 살짝 달라질 것 같고, 새로운 얘기들도 추가될 예정이라 슬그머니 브금을 바꿔봅니다 u////u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덩 ㅠ.ㅠ.ㅠ.ㅠ.ㅠ.ㅠ.ㅠ.ㅠ 저는 다음 편도 힘을 낼 것9999999 이 글이 요즘 제 최고 낙인 것 같아요 흑흑...

?
  • 루카님 계신 곳으로 백번 절하고 싶다 2018.08.25 16:59 SECRET

    "비밀글입니다."

  • 으어대박 2018.08.25 17:14
    아 배경음악하고 글이 진짜 찰떡이네요..... 사랑해여 작가님........///
  • 꼬마 어른 2018.08.25 21:04
    아니 바쿠고 너 너무 스윗한거 아니니.......♡♡♡♡ㅜㅜㅜㅜ
  • 지나가던시민 2018.08.25 21:21 SECRET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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