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이계의 왕 바쿠고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소년 미도리야로 차원이동물 캇뎈
* 판타지AU 캇데쿠
* 이번 편 미약한 토가데쿠 있습니다


BGM / Fringe Element

https://youtu.be/hj5IsFtx8tY






Rājā

~ The King ~


<8>










이 산을 다스리는 인간은 저주 받았다.

얼굴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이프가 아닌 검을 뽑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려다 어머니에게 목숨을 잃었다. 이 나라 왕은 반드시 죽는다. 평범한 저주조차 아니었다. 광증이었다.
인자하고 선량했던 왕이 하루 아침만에 급변해 눈에 보이는 모든 자들을 학살하는 잔악한 폭군이 된다. 이 성채의 오랜 역사였다. 때문에 이 성채의 녹을 먹으며, 왕을 섬기고 일을 주관하는 모든 사람들은 왕의 폭정에 익숙했다.

이계의 소년이 사라졌다. 그 말이 전해졌을 때부터 병사들과 시종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번에도 누구 하나는 목숨을 잃을 것이라 생각했다. 바쿠고는 앞선 그 어떤 왕보다도 강했으나 그만큼 성미가 급하고 신중함이 부족했다. 특히나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이계 아이다. 이계의 아이가 잠시 처소를 벗어났던 밤에 경비병만 셋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죽은 자리를 다시 채운 병사들의 얼굴은 벌써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누가 먼저 죽게 될 것인가.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그저 젊은 왕의 칼날이 자신을 겨누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허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키리시마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 사라졌다…」

바쿠고가 가볍게 입 끝을 비틀었다. 어차피 족쇄와 목줄을 채우지도 않았으나 지금은 훤한 대낮이었다. 녀석이 족쇄와 자물쇠를 열고 달아났던 때는 어두웠고, 비록 날이 흐리기는 했으나 용의 달이 뜨는 날이었다. 그때도 녀석은 스스로의 의지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훤한 대낮인 데다 병사들도 경비를 보고 있었으니 녀석이 문 바깥을 기웃거렸더라면 진작 보고가 들어왔을 터였다.
스스로 달아난 게 아니다. 바쿠고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분노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그 덕인지 몰랐다.

「그 마녀의 짓이로군.」

토가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마녀인지는 온 산이 다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저주의 대가로 용의 뼈를 원했던 자다. 용의 뼈를 가지고 싶어 했을만큼 토가는 분명 용에게 흥미가 있었다.
게다가 토가는 녀석이 튕겨낸 저주를 받고 의식을 잃었었다.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이계 소년의 안에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 그 소년을 원하는 이가 당신뿐만이 아닐 것이란 장로장의 이야기는 틀리지 않았다. 선홍색 눈이 병사들을 차갑게 뚫어보았다. 병사들의 목을 베던 지난밤과 달리 그 눈은 신중하고 냉철한 빛을 띠고 있었다.

「마녀를 수습했던 녀석이 누구냐.」
「저 그건 저희는 잘…」
「아, 내가 알고 있어. 보고를 받았거든.」

우물쭈물하던 병사를 대신해 키리시마가 앞으로 나섰다. 이 성채에서 유일하게 바쿠고의 검날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을 경비대의 대장이 보고 받은 내용을 되짚어 보다 의아한 얼굴을 했다.

「헌데 토가를 여관으로 데려갔던 녀석들은 토가가 어제 숨이 멎어 있었다고 했는데 말이야. 이미 죽었던 거 아냐? 죽은 사람이 대체 어떻게 지금 이 시간에 술수를 부려서 납치를…」
「마녀잖아, 멍청한 머리.」

마녀는 상대를 속이는 주술에 굉장히 능하다. 진짜 나이를 결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이따금은 호흡을 정지시키거나 심장을 멈춰 자신이 죽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 목을 몸에서 완전히 분리해놓을 때까지 마녀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다른 이는 몰라도 바쿠고는 절대 믿지 않았다. 눈앞에서 사라져 모습을 감추었으나 분명 어머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것처럼.
그 몸의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호흡을 멈추고 심장을 정지시켰을 것이다. 바쿠고가 소리 없이 볼 안쪽을 씹었다. 달의 예언을 들은 후에는 엄마의 심장도 간혹 뛰지 않았었다. 특히나 토가는 자신의 피를 힘으로 삼아 주술을 행하는 마녀였으니 그 피를 회복하고 다른 피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심장을 잠시 멈췄을 법 했다. 이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선홍색 눈이 예리하게 좁아졌다. 그 마녀는 대체 어떻게 그 녀석을 데려간 것일까.
허, 참… 키리시마가 곤란한 얼굴로 볼을 긁적거렸다.

「만약 그 마녀가 죽은 게 아니었더라고 해도 말이야, 바쿠고. 토가가 녀석을 데리고 갔다고 하면 분명 주술을 쓰지 않았을까? 암흑숲으로 돌아가려면 분명히…」
「아니, 안 썼어. 쓸 수 있을 리가 없지.」

그 맹한 새끼의 몸 안에 용이 있으니까.

용에게는 그 어떤 주술도 함부로 쓸 수 없다. 자각이 없는 상태에서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는 바쿠고조차 짐작하기 어려웠다. 허나 토가는 그 저주를 직접 되돌려 받아봤으니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마녀들은 주술을 사용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나면 신중해진다.
주술은 쓸 수 없다. 그렇다면 분명 어느 빈 수레에 녀석을 숨겨 넣고, 남들의 눈을 피해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을 것이다.

대체 어디로 끌고 갔을까.

「하지만 암흑숲까지 마녀 홀로 수레를 몰고 가기는 쉽지 않을 텐데.」
「돕는 녀석이 있겠지. 주술을 쓸 수 없는 상대는 그 이계 녀석뿐이니까.」

그리고 그 자가 분명 녀석을 빼돌리는 일을 도왔을 것이다. 허면 누굴까. 바쿠고가 눈 사이를 다시 한 번 깊게 좁혔다. 이런 대낮에 녀석의 곁에 아무 의심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상대, 이 낯선 세계에서 녀석이 의지하며 방심할 수 있는 상대.
선홍색 눈이 장로장을 뚫어보았다. 마주친 선홍색 눈이 차갑게 웃을 때부터 장로장은 이미 바쿠고가 무슨 말을 할 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거인 녀석들이군.」

그러고 보니 항상 이 시간 즈음이면 홀 앞을 지나 자리 정리를 하러 가는 녀석들이 보이지 않았다.










*

그날 새벽, 성채를 빠져 나온 거인이 커다란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거인의 아이가 커다란 자루를 등에 업고 성채의 샛길 앞에 나타났을 때, 그 근방을 지키고 있었던 병사들은 이미 토가가 뿌려놓은 독 안개에 취해 모두 깊이 잠들어 있었다. 미리 준비해놓았던 수레에 업고 온 자루를 싣고, 토가까지 올라탄 후에 거인의 아이는 그 수레를 묵묵히 끌며 어두운 거리를 벗어났다. 그때도 아이의 목덜미에는 거미가 앉아 있었다. 이미 거미에게 서너 번을 물어뜯긴 아이의 목덜미는 퍼렇게 부어올라 있었지만, 아이는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멍한 눈길로 그저 인적 없는 눈길 위를 묵묵히 걸어 나갔다.

돌부리에 걸린 수레가 크게 흔들렸다. 미도리야가 눈을 떴던 것은 그 즈음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미도리야는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을 가장 먼저 느꼈다. 신발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왼쪽 발은 허전했고, 똑바로 펴지도 못한 맨발 끝은 주머니 같은 꺼슬한 천 위에 닿아 있었다. 요란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골이 흔들릴만큼 허리를 꺾으며 기침을 했지만 대체 몸이 어디에 들어있는 건지 팔다리를 똑바로 뻗을 수도 없었다.
사방을 더듬어본 후에야 미도리야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자루나 주머니 같아… 하지만 의식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묶여 있던 자루가 급하게 열리며 흐릿한 시야에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히, 웃는 노란 눈은 분명 어제 보았던 그 마녀였다.

「안녕, 잘 잤어?」

마녀가 해맑게 말을 걸었다. 그 문장은 미도리야도 책에서 읽었던 것이었고, 덕분에 이 앳된 얼굴의 마녀가 자신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허나 여기가 어디냐고,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냐는 질문은커녕 인사를 할 여유도 없었다. 노란 눈의 마녀가 손 안에 든 약병을 미도리야의 눈앞에서 가볍게 흔들었다.

「어차피 다시 잠들게 될 테지만.」

그대로 턱을 움켜잡혀 정체도 모를 그 약을 모두 마셨다. 몇 번 얼굴을 돌리려고 했지만 턱을 붙잡고 있던 마녀는 무슨 주술이라도 부린 것인지 힘이 셌고, 미도리야는 피할 길도 없이 그 약병을 남김없이 들이켰다.
물약이 식도를 넘어갈 때부터 발작이 시작됐다. 하늘이, 스쳐가는 숲이, 나무가, 온 세상이 붉게 물들며 일그러졌다. 뜨거워, 괴로워, 아파. 괴롭게 눈 사이를 좁힌 미도리야가 돌연 이상한 촉감을 느끼고 제 다리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발목에서부터 온몸을 칭칭 휘어감은 거대한 뱀이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다리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서 단단히 일어선 것을 흠뻑 삼키고 있었다.

소리조차 되지 못한 비명이 온몸을 비틀었다. 악몽보다 더 지독한 환몽이었다.

수레는 좁은 샛길로 접어들어 깊은 숲을 한참이나 더 들어가고 난 후에야 멈춰 섰다. 수레는 그대로 버렸다. 토가가 앞장을 섰고, 주술에 사로 잡혀 있던 거인의 아이가 여전히 헐떡이며 발작을 하던 미도리야를 업고 그 뒤를 따랐다.
업힌 채로 몸이 흔들릴 때마다 미도리야의 환몽은 더욱 짙고 끔찍해졌다. 사방에서 뒤엉킨 뱀들이 몸 곳곳을 파고들며 벌거벗은 몸 곳곳에 달라붙어 튀어나온 모든 돌기를 집요하게 빨아댔다. 아픔보다 끔찍한 감촉들에 울고 소리치다 기어이 미도리야는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흐릿하게 번진 시야 안에서 등불을 들고 미도리야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던 토가가 히죽 웃었다.

「깼구나? 아, 그래도 움직이진 못할 거야. 약이 이렇게 잘 들을 줄은 몰랐지만, 히히.」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이번에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언어를 완벽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미도리야는 토가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머리가 멍하고 무거웠다. 마치 온몸을 결박당해 물속에 가라앉아 버린 것처럼 온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눈, 그리고 입술 정도뿐이었다. 그래도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는 분명히 느꼈다.
낯선 장소, 맹렬한 추위, 등 밑에 깔린 차갑고 딱딱한 감촉과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노란 눈의 마녀. 숲색 눈이 크게 흔들렸다. 성채에서 느낀 것과는 비견할 수 없을 공포가 어둔 늪처럼 미도리야의 온몸에 달라붙었다.

죽을지도 몰라. 그 마녀의 눈을 보았을 때 미도리야는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죽지 않을만큼만 먹이느라 힘들었어. 본래는 달소도 미쳐 날뛰게 하는 독약이란 말야, 그거. 살아있어야 재밌잖아.」
“……”
「엄청엄청 오래 참았단 말야, 나.」

어둠 어딘가에서 날이 선득한 단도를 집어든 토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히, 웃었다. 그 채로 거리낌도 없이 자기 몸 위로 올라올 때 숲색 눈이 저도 모르게 흠칫 떨었다. 피하고 싶었지만 힘을 모두 잃어버린 무력한 몸으로는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어떻게 놀아줄까? 미도리야의 허리를 타고 앉은 토가가 단도의 날을 혀로 츱, 핥았다. 그리고 몸을 기울여온 토가의 손이 미도리야의 셔츠 틈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 살갗을 매만지작거리며 토가가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작은 동물을 태어나 처음으로 만져본 아이와 같은 환희가 그 노란 눈 안에 가득 걸려 있었다.

「피부가… 엄청 말랑거려. 보드랍고, 따뜻하고…」

후후 입술을 오므려 웃으며 토가가 느리게 헐떡이던 미도리야의 흉근을 스르륵 쓸어내렸다. 놔, 하지마. 그렇게 말하고 싶어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쉿. 토가가 미도리야의 입술에 손가락을 붙이며 속삭였다. 미도리야가 기억하는 달빛을 닮은 노란 눈이 광기처럼 번뜩였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약을 썼거든. 용의 영혼에게 저주는 쓸 수 없어도 그 영혼을 담고 있는 육신은 인간이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른다. 토가가 미도리야의 턱을 움켜쥐고 잔을 가져와 약을 기울였다.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나마도 힘이 없었다. 다 삼키지 못한 약이 미도리야의 턱을 타고 떨어져 베개를 적셨다. 그저 삼킨 것뿐인데도 액이 흐른 자리들이 마치 홧홧 열이 오르고 마비가 된 것처럼 저릿저릿 했다. 벌어진 입술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헉헉 밭은 호흡만 헐떡이던 미도리야를 내려다보던 토가의 노란 눈이 가늘어졌다. 붉은 혀가 미도리야의 뺨을 츱, 핥았다. 그 축축하고 뜨거운 감촉에도 미도리야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이젠 약을 삼킨 성대까지 마비된 것 같았다.

「이계에선 무얼 먹어? 어찌 이리 부드럽지? 어찌 이리 말랑말랑하고 따뜻할까?」
“으, 우ㅎ… 으, !”
「알 것 같아. 네 왕이 왜 네게 저주를 걸고 싶어 했는지, 후후… 나도 궁금해. 이 속엔 뭐가 들어있을까?」

가슴팍을 미끄러진 손가락들이 미도리야의 셔츠를 툭툭 거침없이 풀어냈다. 성채에서 만져지던 것과는 그 촉감도, 결도 달랐다. 찢어 삼킬 것처럼 맹렬하던 왕의 손길과 달리 토가는 어쩐지 좋은 것을 참지 못하는 어린 아이 같았다. 벌어진 셔츠 안을 마구 더듬어 오던 작은 손은 마치 귀여운 토끼를 막무가내로 쓰다듬는 것 같았다.

「아, 얼른 죽여 버리고 싶어.」

미도리야의 목덜미에 단도의 날을 들이대며 토가가 히, 웃었다. 그 말뜻은 이번에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토가의 웃는 얼굴과 단도를 보던 순간 미도리야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미쳤어…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너를 죽여야 용의 영혼이 용의 몸으로 돌아갈 테니까, 후후… 하지만 어차피 보름까지 기다려야 하잖아? 아, 어떡하지? 너무 좋아! 그때까지 어떻게 할까? 살갗을 도려낼까? 아냐, 살갗은 아까운데…! 피는? 괜찮지? 응? 아… 얼마나 달콤할까…!」

나를 죽일 것 같아, 이 마녀.

왕에게서 처음 느꼈던 적의와는 전혀 달랐다. 그보다 더 위험하고 어두운 느낌이 분명 이 마녀에게 있었다. 하지만 수가 없었다. 칼날을 들고 깔깔 웃는 토가의 얼굴을 바라보던 숲색 눈이 연신 지진처럼 떨었다. 귀여워. 히, 웃음을 삼킨 토가가 몸을 기울이며 미도리야의 입술을 질근 물어뜯었다. 아릿한 통증에 미도리야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열었다, 이내 일그러뜨렸다. 핏물이 맺힌 자리를 혀로 할짝 핥으면서 토가가 킬킬 웃었다.

「아, 역시 달아.」
“……”
「지금보다 더 취해있으면… 더 맛있겠지.」

미도리야의 입술을 떠난 토가가 손짓을 하자 손 안에 익숙한 물병이 나타났다. 그 병을 알아본 미도리야의 눈이 크게 흔들렸지만 이번에도 고개 한 번 돌려보지 못하고 무력하게 턱을 잡히고 입술이 벌어졌다. 옳지, 잘 마신다. 병을 기울이며 토가가 킬킬 웃었다. 또 한 번 같은 감촉이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다. 축축한, 차가운, 어둡고 끔찍한.

돌아가고 싶어.

눈을 질끈 감으면서 미도리야는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곳이 어디였는지는 끝내 헷갈렸다. 너와 내가 살고 있던 세계인지, 아니면 그 남자가 있는 성채였는지.










*

성채의 가장 깊은 방에서 낮고 음울한 울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거인의 아이였다.

「바쿠고님, 이 아이는… 이 아이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이 아이를 죽이실 것까지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바쿠고는 언제나처럼 둘이 아닌 혼자 남아있던 거인의 아이보다도 침상에 남아있던 신발 한 쪽에 부아를 참을 수가 없었다. 가죽을 꿰어 만든 신은 초록색 조끼와 색 어두운 바지와 함께 이계 소년의 몸에 꿰어져 있던 것이었다. 그 순간 홀로 남아있던 거인의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저절로 검날이 머리 위로 들렸다. 겁을 먹은 아이가 바쿠고의 앞에 납작 엎드리곤 낮은 소리로 살려 달라며 울었다. 장로장이 말리지 않았다면 바쿠고는 정말 그 자리에서 아이의 목을 베어 버렸을지 몰랐다.

「그래, 씨발. 네 놈이 죽어서야 그 새끼가 돌아왔을 때 신을 신겨줄 놈이 없겠지.」

분기를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바쿠고가 검을 다시 검집 속에 밀어 넣었다. 목숨을 건졌음에도 거인의 아이는 여전히 조아린 고개를 들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말마따나 이 녀석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사라진 것은 이 녀석보다 조금 더 키가 큰, 이 녀석의 쌍둥이 형제다. 항상 짝인 것처럼 붙어 다니던 두 거인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미 답은 나왔다.
토가는 이계 녀석 대신에 거인에게 주술을 썼다. 그리고 그 거인이 방심한 이계 녀석을 데리고 토가의 뒤를 따랐을 것이다. 하. 바쿠고가 입 끝을 비틀었다.

「목격자는.」

바쿠고가 뒤편에 서있던 키리시마를 향해 물었다. 키리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없어. 아무래도 그 마녀가 성채를 빠져 나갈 때 무슨 술수를 부렸던 모양이야.」
「그랬겠지. 달고 있는 짐들이 여간 눈에 띄는 것들이 아니니까.」

게다가 토가는 영악하다. 암흑숲의 그 어떤 마녀들보다도 영악했고 악랄했다. 이럴 때 어머니라도 있었더라면 추적 주술을 써서 그 마녀가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분기에 볼 안쪽을 울컥 씹다 바쿠고는 이내 생각을 흐렸다. 아니, 어머니가 있다 해도 나는 결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의 도움도 빌리고 싶지 않았다. 그 녀석을 찾는 일만큼은.
처음 그 녀석을 발견한 것도 나다. 헤매던 녀석을 정원 앞에서 다시 찾아냈던 것도 나라고. 허니 그 녀석은 내 것이지. 바쿠고가 입술 끝을 사납게 악물었다.

헌데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무리 거인의 힘을 빌렸다고 하더라도 주술보다 빠를 수는 없다. 해봐야 말이 달리는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을 뿐이다. 멀리는 못 갔을 것이다. 허면 어느 방향으로 향했을까. 바쿠고가 눈 사이를 깊게 좁혔다. 분명 목적지가 있었을 터다. 토가가 데려간 녀석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용의 영혼을 가진 아이다. 무작정 용을 죽인다고 해봤자 용의 뼈는 이곳에 묻혀 있으니 이 성에서 되살아날 테고, 그럼 다시 내 손아귀로 녀석의 영혼을 되돌려 주는 꼴밖엔 되지 않는다.
물론 그게 그 마녀가 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용을 되살려 이 성채를 무너뜨리고 엉망으로 부수는 것. 허나 토가는 용의 뼈를 원했었다. 온전한 용의 뼈를 원했던, 욕심이 많은 마녀가 설사 죽거나 다칠 수도 있는 이 성채에서 무작정 용이 부활하긴 바라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홍색 눈이 예리해졌다.
만약 그 마녀가 용을 단순히 되살리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그 용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용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분명 그 용과 관련이 있는 장소를 택하겠지. 내가 그 마녀라면.

허면 어디일까. 바쿠고가 버릇처럼 눈 사이를 일그러뜨렸다. 이 산에서 용과 관련이 있는 장소는 세 곳 뿐이다. 용이 살았던 곳이자 목숨을 잃은 장소인 이 성채, 용이 태어났다던 성스러운 재단. 그리고 남은 한 곳은…

엎드려있던 거인의 아이가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왕, 저… 알아. 내 형제, 어디 있는지…」

생각에 빠져 있던 선홍색 눈이 앞에 엎드린 거대한 그림자를 뚫어 보았다. 바쿠고가 눈 사이를 예리하게 좁혔다. 알고 있다니. 곁에 섰던 장로장이 고개를 조아리며 부연했다. 거인의 아이니까요.

「거인족은 50년에 한 번만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은 모두 쌍둥이로 태어납니다. 저희처럼 두 개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 못한 대신, 이 아이들은 서로의 영혼에 공명하는 힘을  받았지요. 서로의 감정, 기분, 건강과 수명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허면 이놈은 사라진 형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말이군.」
「……」
「말해.」

허리춤에서 다시 뽑힌 칼날이 거인 아이의 목을 겨눴다. 표정을 지운 선홍색 눈이 차갑게 덧붙였다.

「네 놈 형제에게 영혼의 반을 잃는 고통을 알려주기 전에.」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이 산 어디에도 네가 숨을 곳은 없어. 너는 사라지지도 돌아가지도 못할 것이다, 이계의 아들아. 이 땅에 떨어진 후부터 너는 이미 내 것이었다. 이 땅의 왕은 자신이 가진 것을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 바쿠고의 칼날이 거인 아이의 목을 더 깊숙이 짓눌렀다. 두려움과 공포에 부르르 떨던 아이가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미도리야가 닫혀있던 입술을 열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사방이 밝았다. 아침이었다.

여전히 온몸에 힘이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 전처럼 피아식별이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지난 덕인지 약효가 다소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래도 팔다리는 여전히 꿈쩍할 수 없었다. 미도리야가 느릿느릿 눈꺼풀을 끔벅이며 그제야 자신이 누워있던 곳을 둘러보았다.
돌기둥과 부서진 석벽으로 둘러싸인 방은 집이라기보다는 책에서나 보던 버려진 신전과 닮았다. 사방에서 뻗어 나온 나무 줄기와 덩쿨이 오래된 석벽에 뒤엉켜 있었고, 그 덕에 간신히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듯 했다. 앙코르와트랑 파르테논 신전을 섞은 것 같아… 생각을 하며 미도리야가 잠시 흐, 웃었다. 하지만 앙코르와트도, 파르테논도 이곳처럼 날씨가 춥지는 않을 터였다.

돌 재단 위에서 미도리야가 으슬으슬한 어깨를 흠칫 좁혔다.

등 밑에는 소인지, 곰인지 알 수 없을 동물의 털가죽이 도톰하게 깔려 있었다. 이거라도 없었다면 나는 얼어 죽었겠지. 미도리야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을 데려온 마녀는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인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미도리야가 무거운 고개를 들어 잠시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팔도 다리도 묶여 있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일 힘이 없었다.

“달아나려면 지금 밖에는 없는데, 하하… 아니, 이런 날씨니까 달아나도 금방 죽으려나.”

부서진 석벽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하늘은 잔뜩 흐렸고, 이미 굵은 눈보라를 뿌려대고 있었다. 저만한 눈보라라면 며칠 전에도 겪어봤다. 난생 처음 알게 된 몽유병 때문에 정원을 헤맬 때에도 미도리야는 꿈을 꾸고 있었지만 사방을 때리던 눈보라 소리가 얼마나 거셌었는지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산은 얼핏 보아도 지형이 복잡하고 높았다. 이런 날씨에 이런 산을 함부로 헤매는 것은 죽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미도리야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여긴 너무 추워. 미도리야가 힘이 들어가질 않아 웅크리거나 떨지도 못하는 몸 대신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꼭 짓이겼다. 온천수가 흐르는 성채는 의복이 벗겨지고 욕탕 속에 던져질 때에도 이만큼 춥진 않았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미도리야는 처음으로 그 남자가 있던 공간이 그리워졌다.

캇쨩, 너와 똑같은 그 남자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사람을 풀어 온 사방을 뒤지며 자신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흥미를 잃어 버렸으려나. 그거야말로 지금껏 미도리야가 가장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다. 이대로 달아난다면 나는 자유를 얻을 수 있어. 족쇄에 묶일 필요도, 목줄에 묶여 남자의 몸 밑에서 허리를 뒤틀며 원하지 않는 쾌락에 울며 헐떡일 필요도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미도리야가 입술을 둥글게 모았다. 생각에 빠질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사실 마냥 싫지는 않았었어.

약을 먹이고 억지로 취했던 자다. 그것도 모자라 목줄을 채우고 우리에 가뒀었다. 이 세계의 정서가 어떤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왕이 있고, 계급이 있으니 그런 야만적인 행위가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허나 나는 아냐. 미도리야가 억울함에 입술을 꼭 씹었다. 나는 너무나 21세기 소년인데. 비록 천황이 있고, 아시아에서는 정치적으로도 아직 후진적인 점이 많은 나라라고는 해도 이렇게 노골적인 계급제는 살면서 겪어본 적이 없었다. 이런 건 미도리야에게 그저 책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권력을 무기 삼은 폭력, 위계에 의한 강압적인 관계. 그래서 상처를 입었다. 나는 이 세계의 사람도 아닌데, 왜 그 남자는 내 생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닮아서.
그런데도 지금은 그 남자의 품이 그리웠다.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사람이 진짜… 이렇게 간사하다니, 하하.”

몸이 힘들면 마음의 상처조차 희미해진다. 아니, 나는 단지 성채의 온기가 그리워 이러는 것만은 아닐 거야. 미도리야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알고 있었다. 온 뼈를 부러뜨릴 것처럼 야만적으로 나를 제압해도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얼마나 다정한지, 어쩌다 떨어지던 입맞춤이 얼마나 달고 부드러웠는지. 그럴 때면 다른 기억이 떠올라 괴롭고 아팠다. 그 남자와 만든 기억이 아니었다. 저 세계에 두고온, 달아나버린, 영영 이 세계에 갇히게 된다 하더라도 영원히 잊지 못할 단 한 사람.

돌아가야 해. 미도리야가 눈을 번쩍 열었다. 그래도 아직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그 남자와 마녀는 다르다. 이 마녀는 정말로 나를 죽일 지도 몰라. 미도리야가 볼안쪽을 굳게 씹었다. 아무리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몇몇 문장들은 이제 책을 읽은 덕분에 알고 있었고, 이 세계에 와서 는 건 눈치 뿐이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녀의 눈길은 분명 그 남자의 눈길과는 달랐다.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는 정말 죽게 될 지도 몰라.
여기서 빠져 나가야해. 숲색 눈이 주변을 바삐 훑었다. 하지만 이렇게 손끝 하나 간신히 들어 올릴 정도인데 대체 어떻게 해야…

어. 저편을 바라보던 숲색 눈이 둥그렇게 열렸다. 낯익은 얼굴이 거기에 서있었다. 거인의 아이였다.

이쪽을 향해 식사를 받쳐 들고 터벅터벅 걸어오던 아이의 눈빛은 어제처럼 흐릿한 노란색이었다. 표정도 없는 아이는 묵묵히 식사를 옆에다 내려놓고 벽에 기대 앉을 수 있도록 축 늘어진 미도리야의 몸을 자리에서 일으켰다. 이끄는대로 앉으면서도 미도리야는 말이 없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뚫어 보았다. 저기… 미도리야가 입을 떼다 잠시 닫았다. 그리고 더듬더듬 말을 걸었다. 장로장이 가져다준 책, 그리고 눈앞의 이 아이 덕에 알게 된 문장이었다.

「괜찮아?」

내가 맞게 말했나? 미도리야가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아이는 그조차도 아예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아. 숲색눈이 둥글게 열렸다. 알 것 같았다. 이 아이는 지금 조종당하고 있는 거야. 그 마녀에게.
나한테 한 것처럼 약을 썼을까? 아니면 마녀니까… 주술? 감이 잡히질 않았다. 책이나 만화에서는 마녀가 주술을 걸었을 때 잘못 건드리면 저주를 받던데… 생각을 삼키던 미도리야의 눈에 '그것'이 보인 건 바로 그때였다.

거미였다. 어제도 분명 똑같은 거미가 아이의 팔뚝 위에 있었다.

검은 배에 붉은 무늬가 어지럽게 얽힌 거미는 오늘도 미도리야의 자리를 정돈해주는 거인 아이의 팔뚝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저거다. 미도리야는 직감했다. 축 늘어져 있던 손끝에 본능적으로 힘이 실렸다. 아직 움직일 수 있는 건 손가락뿐이었다. 조금만 더… 미도리야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손목만 조금 더 움직일 수 있다면…
자리 정돈을 끝낸 거인의 아이가 쟁반에 받쳐온 빵을 조금 뜯어 미도리야의 입으로 가지고 왔다. 한 입을 받아 오물거리면서도 미도리야는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거미는 답답했는지, 아니면 다른 희생자를 찾아다니고 있는 건지 아이의 손등에 앉아 있었다. 더, 조금만 더. 아이가 뜯어낸 두 번째 빵조각이 다시 입가로 다가왔다. 손등에 앉은 거미가 미도리야의 코앞까지 바짝 다가왔을 때, 영원히 굳어있을 것 같던 손목과 어깨가 처음으로 주인의 말을 들었다.

낚아챈 거미를 미도리야는 단숨에 손등으로 짓눌렀다. 찍, 터지는 기분 나쁜 느낌과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동자에서 불길한 노란빛이 사라졌다. 하하… 미도리야가 쓰게 웃었다. 더듬더듬 어설픈 억양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다행이야.」

놀란 듯 커다래지던 아이의 선량한 눈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걱정을 하는 얼굴이었다. 왜 여기에 있는지, 왜 이렇게 아파 보이는지 미도리야의 얼굴을 정신없이 살펴보던 아이는 자신이 조종당했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인지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건 미도리야였다. 아니, 어, 울 것까진 없는데… 달래야하나, 어떻게 해야하나, 당황하던 미도리야가 울먹거리던 아이의 거대한 등을 가만히 도닥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말해보기로 했다.

「나는… 괜찮아.」

정말 괜찮아. 거듭 들린 말에 아이가 눈물을 그치고 미도리야를 쳐다보았다. 안심했다는 미소가 퍼지던 그 선량한 얼굴을 바라보며 미도리야가 머릿속으로 부지런히 조합한 문장을 입 밖으로 밀어냈다. 억양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 전해질 터였다.

「데려다줘, 나를. 그에게.」
「……」
「너의 왕Raja에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와 같은 이름을 가진, 그 남자에게.










*

산, 호수를 지나 깊은 숲… 거인의 아이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돌, 기둥, 무너진 천장과 돌벽… 우물거린 말을 들은 바쿠고의 선홍색 눈이 선명하게 밝아졌다. 이 산에서 용과 관련이 깊은 세 곳 중 마지막 장소였다.

「버려진 신전이군.」

산꼭대기에 있는 성스러운 재단으로 향하는 두 개의 길 중 동쪽 길에 그런 신전이 있었다. 500년 전에는 그런 이름이 아니었을 것이다. 용을 숭배하는 인간들이 세웠다던 신전은 용이 죽고 신도들이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폐허가 되었다. 덩달아 그 장소가 용에게 저주를 받았다는 소문까지 떠돌았고, 그 근방에서 약초를 채집하던 약초꾼들조차 발길을 뚝 끊으면서 그 근처는 완전히 버려져 있었다.
서쪽에 있는 이 성채와는 반대편이다. 말을 달리더라도 하루는 꼬박 걸린다. 그래도 짐작대로 먼 곳은 아니었다. 표정이 한결 풀어진 바쿠고가 아이에게 겨누었던 검을 다시 걷어 들였다. 다만 뒤편에 서있던 키리시마의 표정이 어두웠다.

「허나 그 근방은 산사태가 났을 텐데…」
「잘됐군. 길이 험해졌다면 그 마녀도 함부로 움직이진 못할 테니까. 내 표범을 데려와.」
「야, 아무리 그래도… 뭐? 직접 가게?!」

뭐하러? 키리시마가 거듭 물었다. 허나 바쿠고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루 정도 뒤처진 시간쯤이야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신속히 눈표범을 끌고 돌아왔다. 목줄에 끌려 나타난 눈표범이 오랜만에 만난 주인의 앞에 꼬리를 흔들며 납작 엎드렸다. 하얗고 동그란 머리를 가볍게 긁어주며 바쿠고가 입매를 픽 밀었다.
나는 절대 너를 돌려보내지도, 놓쳐주지도 않을 테니까. 아끼는 짐승의 털을 쓰다듬어주던 선홍색 눈이 뒤편을 흘깃 돌아보았다.

「아, 거인도 같이 데려간다.」

창 너머에서 하늘이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곧 눈보라가 몰려올 것처럼 불길하고 어두운 구름이었다.





(계속)







역시 1주일에 한 편은 쓰기 위해 또 이렇게 힘을 냅니다... 이번 편은 진짜 약간 판타지 같은(?) 느낌이지만 어쨌건ㅎㅎㅎ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길어지고 있지만 아마 15편에서 17편쯤 완결이 날 것 같아요. 지금 딱 절반 정도까지 온 듯…
무튼 읽어주시고 피드백 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ㅠ_ㅠ//// 정말 덕분에 힘내서 잊지 않고 쓰고 있어요 흑흑... 다음 편부터는 소장본 원고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틈틈이 써서 들고 오겠읍니다999 읽어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큰절

?
  • ㅎㄹ 2018.08.11 20:16
    루카님은 최고존엄갓존잘이십니다ㅠㅠㅠㅠㅠㅠ요즘 라자덕분에 힘내서 살고 있어요!!!!
    이거 읽는게 최고낙인것같아요 오늘도 1편부터 7편까지 또 재탕했어요
    바쿠고 냉정한거 넘 멋졌어요..!미도리야는 탈출한걸까요???거인아이도 볼때마다 넘 찡하구ㅜ토가 피해서 무사히 탈출하고 캇데쿠 얼른 재회했으면ㅠㅠㅠㅠㅠㅠㅠㅠ
    9편나올때까지 또 계속 돌려볼것같아요 루카님 사는동안 많이버세요..
    매번 이런글 돈도 안내고 공짜로 보는거 죄송할정도로 감사하고 감사합니다ㅠㅠㅠㅠ히로아카 파주셔서 감사해요
  • 엘로 2018.08.11 23:57 SECRET

    "비밀글입니다."

  • 꺄아 2018.08.12 09:04
    이번편도 볼수있어 행벅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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