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이계의 왕 바쿠고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소년 미도리야로 차원이동물 캇뎈
* 판타지AU 캇데쿠

* 이번 편 비번 없는 수위 주의해주세요(///


BGM / Fringe Element <Road Less Traveled>

https://youtu.be/hj5IsFtx8tY






Rājā

~ The King ~


<5>











용의 정원 밑에는 용이 묻혀있다. 그 사실을 바쿠고에게 처음으로 알려주었던 사람은 어머니였다.

「이 성채는 용의 것이었지. 500년 전, 카츠키의 조상님이 상처를 입고 지하에 숨어버린 용을 베었단다. 바로 이 ‘용의 정원’ 아래에서.」

마녀였던 어머니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오랜 산의 자비로운 아들, 지혜롭고 현명한 암흑숲의 딸. 세상은 바쿠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렇게 부르고는 했다.
아버지는 달소를 잡기 위해 먼 길로 사냥을 나섰다 암흑숲 근방 벼랑에서 떨어져 실족失足을 했고, 죽어가던 아버지를 암흑숲으로 데려와 치료하고 돌본 것은 어머니였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 암흑숲을 떠났다. 오랜 산을 다스릴 왕의 영혼을 가진 자, 그리고 강하고 현명한 마녀의 아들. 바쿠고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이 산을 다스리고 지배할 준비가 되어 있던 완전한 존재였다.

「이 산이 처음 분화했을 때 신이 태어났지. 신은 빛과 어둠을 갈라놓고, 낮과 밤을 구분해놓았단다. 그리고 왼손으로 용을, 오른손으로 인간을 만들었어. 둘은 그때는 사이가 좋았단다. 신은 인간과 용이 서로 도우며 이 세계를 올바르게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어. 그 증표로 하늘에 두 개의 달을 선물로 심어주었지. 보렴, 카츠키. 저 붉은 달이 인간의 달, 초록으로 빛나는 저 달이 용의 달이란다.」

어머니는 신을 섬기는 장로들보다도 박식했고 모르는 것이 없었다. 장로들이 알려주지 않고, 아버지도 말을 흐려버리는 이 산의 이야기들을 어머니는 언제나 바쿠고에게 아낌없이 들려주었다. 어머니는 암흑숲의 마녀들 중에서도 힘이 강하고 지혜가 깊은 마녀에게만 주어진다던 예언의 은총을 받았다. 두 개의 달 중 하나가 사라져버리는 그믐날이면 어머니는 용의 정원으로 나가 어둠이 속삭이는 예언을 들었다. 용이 살해된 그 자리였다.
어머니가 들은 예언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무엇이건 다 알려주었던 어머니도 예언에 대해서는 아들에게 입을 다물었다. 허나 성 안에는 입이 가벼운 자들이 많았고, 그들은 항상 조심성이 없었다.

「이번 왕께서도 오래 살지는 못하시겠지? 지금껏 ‘저주’가 피해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잖아.」
「홀로 죽으면 다행이게? 선대께서도 아들들을 전부…」
「쉿, 입 다물어. 카츠키 도련님이 들으면 어쩌려구.」

바쿠고는 눈치가 빠르고 영민했다. 시종들이 입을 다물며 황급히 자리를 피해도 성 안에 무언가 불길한 이야기가 떠돌아다닌다는 것쯤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맥락은 모두 비슷했다. 바쿠고 왕가의 왕들은 모두 일찍 죽는다.
그 증거로 500년간 즉위하여 이 산을 다스렸던 27명의 왕들은 모두 제 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저주라고 말했다. 인간이 용의 목을 치고 이 성채를 빼앗은 그날로부터 시작된 500년의 저주였다.

「모두 죽였지. 부인도, 아들도, 아끼던 식솔들도 모두 다… 광증에 사로 잡혀서.」

얼굴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는 어느 날, 식구들이 모두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검을 뽑아들고 다섯 아들의 목을 손수 참수한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몸이 좋지 않아 그날 저녁을 거르고 마구간에 숨어있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목숨을 잃고 바쿠고 왕가의 명맥은 끊어져 버렸을지 모른다. 하기야, 신기하게도 언제나 한 사람은 살아남았었다.
 이것이 자신을 죽이고 산을 빼앗은 인간에게 내려진, 용의 저주였다. 인간은 이 왕좌의 주인이 아니다. 잘못된 이가 왕관을 쓰고 있으니 저주를 받아 광증에 사로 잡혀 스스로 파멸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영혼을 잃어버렸어도 여전히 이 산의 왕Raja은 용이었다.

지금껏 단 한 명의 왕도 이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장로들과 시종들은 혹여 그가 광증에 사로 잡혀 제 목이라도 칠까봐 납작 엎드려 무엇이건 거역하는 일 없이 따랐다. 장로장은 아버지의 개였고, 시종들은 바쿠고가 외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모두 찢어놓아도 그저 엎드려 울며 자비를 빌었다.
허나 눈치를 본다고 해서 저주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바쿠고가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가 ‘아직’ 괜찮았던 것은 분명 어머니의 힘이었을 것이다.

「너희 아버지가… 저주에 먹혔어.」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은 그날은 아직도 어제인 것처럼 또렷했다. 비명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어난 바쿠고는 사방에서 진동하던 피 냄새를 맡았을 때 아버지가 미쳤음을 깨달았다. 복도에는 죽은 시종들과 장로들의 시신이 즐비했다.
아버지는 바쿠고의 방이 있던 복도 앞에 쓰러져 이미 숨을 거두었다. 그 참상 속에서 오로지 홀로 오똑 서있던 어머니의 양손이 마녀의 주술들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쳐 날뛰며 눈에 보이는 모든 이를 베어 죽이던 아버지가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 바쿠고는 지금 보고 있는 광경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제 네가 저주받은 관을 물려받겠지, 카츠키. 그리고 너 역시 광증에 사로 잡혀 네 옆에 잠든 사랑스러운 연인과 아이의 목을 조르게 될 거야.」
「……」
「내가… 왕이 될 자를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어. 용을 죽인 자를 사랑해서는 안됐었어. 그의 몸에서 그 저주만이라도 씻겨주고 싶었는데, 이 세계에는 이 저주를 멈출 힘이 존재하지 않는구나.」

너는 그렇게 보내지 않을 거야. 어머니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이 저주가 너를 좀먹도록 두지 않을 거야. 아마도 어머니는 이 모든 광경을 이미 오래 전부터 어둠이 속삭인 예언을 통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네가 이 산을 지켜야 한다. 어머니가 우뚝 굳어있던 바쿠고에게 손을 뻗으며 반듯한 이마를 손으로 덮었다.

왕의 아들, 더불어 마녀의 아들아.

「네 아버지를 지켜주었던 주문을 네게도 주마. 이 주술이 한동안 네게 닥칠 광증을 미뤄주겠지. 허나 명심하렴, 카츠키. 저주는 사라지는 것이 아냐. 이 저주를 풀 수 있는 열쇠는 오로지 하나 뿐이다.」

이 세계의 또 다른 왕, 이 산의 진실한 왕Raja.
그가 만약 이 세계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지하를 지켜야해. 그가 절대 용의 정원에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돼.」

어머니가, 암흑숲의 딸이, 모든 마녀들의 왕이 말했다. 어머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들려준 세상의 비밀이자 어둠의 예언이었다. 훗날 장로들도 똑같은 예언을 했지만 어머니는 장로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예언의 마지막 비밀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두 개의 달 중 하나가 홀연히 사라지는 날… 푸른달이 세상에 소년의 형상으로 내려오니 그는 만월이고 여름이며 숲이고 신이어라. 명심하렴, 그가 바로 이 산의 …란다. 너는 그를 결코…」

바쿠고는 어머니의 예언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마녀의 왕은 남편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힘을 썼다. 암흑숲의 붉은 안개가 어머니를 감쌌고, 이윽고 눈앞에서 모든 것이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바쿠고는 두 번 다시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다른 세계로 떠나신 것입니다. 이곳에서의 영혼이 죽은 대신 미츠키님은 그곳에서 또 다른 삶을 살고 계시겠지요.」

장로장이 불빛 덕에 유독 더 붉음이 짙어보이던 바쿠고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바쿠고가 재단 위에서 불타고 있던 아버지의 시신을 뚫어보고 있었다. 사냥터에서도 작은 토끼 한 마리 제대로 죽이지 못했던 선한 아버지는 그날 하루에만 스물이 넘는 이를 베어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쿠고가 주먹을 힘껏 쥐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보다 더 많은 왕들이 모두 용이 내린 저주를 받아 광증에 사로 잡혀 죽었다. 허나 나는 그리 죽지는 않을 것이다. 왕의 영혼을 안고 태어난 것은 나다. 이 산을 다스리는 것도, 이 산을 지키는 것도 나다. 이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라면 그 누구도 가차 없이 베어버릴 것이라고 그날, 그 자리에서 바쿠고는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그 누구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신이라도, 설령 500년 전에 이 세계에서 죽어버린 용이 다시 되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그래, 아들아. 운명은 너를 빗겨가지 않는단다.」

그날처럼 피에 젖은 어머니의 얼굴이 화사하게 웃었다. 꿈처럼.

「그는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것이다. 너를 죽이고, 왕의 영혼을 지닌 이를 학살하고, 마침내 그 산을 되찾기 위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손이 바쿠고의 목을 힘껏 졸랐다.











굳게 닫혀있던 선홍색 눈이 번쩍 열렸다.

바쿠고가 모로 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한참을 헉헉 숨을 몰아쉬고 난 후에야 호흡은 점차 가라앉았다. 사방이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이젠 눈보라도 완전히 그쳐 있었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꿈을 꾸었다.

「…쓸데없게, 씨발.」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짚으며 바쿠고가 픽 입 끝을 비틀며 자조했다. 일이 벌어진 후 한동안은 악몽에 시달렸지만 올해 들어서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약해졌나. 설마 그럴 리가. 다시 천장 쪽을 향해 똑바로 누우면서 바쿠고가 침대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우리 안쪽으로 버릇처럼 손을 밀어 넣었다. 이렇게 손을 뻗으면 눈표범은 아무리 잠들어 있다가도 주인의 기척을 느끼고 다가와 하얀 얼굴을 손 안에 문질러대고는 했었다.
오늘은 하얀 짐승의 짧고도 까슬한 털 대신 다른 것이 손에 걸렸다. 호수의 물결처럼 굽슬굽슬한 숲색 머리칼이었다. 선홍색 눈이 우리 속에 묶여있던 것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이 우리 안에 짐승이 아닌 다른 것을 넣었었다.

목줄이 채워진 이계의 소년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채로 이쪽 창살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셔츠도, 녀석의 눈빛을 닮은 초록색 베스트도, 바쿠고가 직접 그 솔기를 뜯으며 찢어놓았던 바지도 갈아입히지 않았다. 용의 정원에서 자신에게 꿰뚫리다 혼절한 후 바쿠고에게 안겨 이 방으로 올 때까지 소년은 눈을 뜨는 법이 없었다. 바쿠고는 그 목에 직접 목줄을 채워 우리 안에 넣었다. 눈표범에게 채웠던 목줄은 끝을 잘라내니 녀석의 곧은 목에도 딱 맞았었다.
몸을 당겨 침대의 끝에 다가와 앉은 바쿠고가 우리 안을 잠자코 내려 보았다. 굳게 속눈썹을 내려 닫은 눈 주변과 코끝은 아직도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도리야 이즈쿠라는 이름이라고, 장로는 말했었다.

이 땅에서는 숲의 정령들을 흔히 미도리야라고 불렀다. 암흑숲의 마녀들이 붙인 이름이다. 다정한만큼 겁이 많아 해가 다 저물고 밤이 되어야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숲의 정령들은 한 번 사람 손을 타면 영원히 무리들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숲을 헤매다 쓸쓸히 죽어간다고 했다. 그 얘기를 처음 망할 엄마에게 들었을 때에도 멍청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안을 내려다보던 바쿠고가 눈 사이를 예리하게 좁혔다.

만약 이 녀석이 이보다 더 내 손을 타게 된다면.

하. 저도 모르게 우리의 창살 안으로 뻗은 손을 거두면서 바쿠고가 옅게 입매를 비틀었다. 쓸데없는 짓이다. 녀석이 나타난 후부터는 이처럼 쓸데없는 짓이 많아졌다. 그래도 창살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숲색 머리를 바라보던 선홍색 눈은 악몽에서 깨어나던 조금 전보다 그 빛이 부드러웠다.

내 악몽은 어쩌면 네 놈인지도 모르지.

엄마의 꿈을 꾼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낯설고 불길한 이계의 소년아. 네가 이 세계에 나타난 후부터 견고했던 나의 세계에 불길한 틈이 생겼다. 오래도록 잊고 있던 부모의 꿈을 꾸고, 새끼였던 시절부터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던 눈표범을 내 옆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냈다. 생각하니 흥미가 다른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피로와 서러움이 한 데 얽혀 지친 얼굴로 잠에 빠진 이계 소년의 목에는 아까 전 병사들이 채워놓은 목줄이 있었다. 선홍색 눈이 예리한 호선을 그렸다.

「이 참에 너를 내 짐승 대신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너에게 의복을 입히는 친절을 베풀지 말았어야 했다. 보드랍고 따뜻한 침대 위에서 널 잠들게 두면 안됐었다. 처음부터 발목이 아닌 목을 졸랐어야 했어. 다시 한 번 뻗어간 바쿠고의 손이 목줄에 옥죈 미도리야의 목덜미를 스르륵 쓸어내렸다. 깊게 닫힌 긴 속눈썹이 잠결에 움찔 떨었다. 깨지는 않았다. 허나 벌어진 입술이 잠꼬대처럼 우물거리던 이름을 바쿠고는 똑똑히 들었다. 이번에도 그 이름이었다.

“캇쨩…”

순간 그 목을 움켜쥐고 그대로 부러뜨릴 뻔 했었다. 웃음기가 사라진 선홍색 눈이 난로의 빛에 서늘하게 반짝였다.

「목을 조르기 전에 혀를 잘라야겠는데.」

아니, 이 녀석을 제압하기 위해 굳이 피를 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틀만 지나면 키리시마 녀석이 암흑숲의 마녀를 데려올 것이다. 장로들처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것도, 법사들처럼 세상의 운행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마녀들의 주술은 결코 스스로 풀 수 없다.
암흑숲의 딸이었던 내 어머니의 주술이 아직 나를 지켜내는 것처럼 너 또한 그 몸에 새겨지면 영원한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가겠지. 목을 거슬러 미도리야의 턱을 만지작거리고 뻗어간 손이 붉게 벌어진 입술 틈을 비집었다. 습하고 뜨겁고 연약했다. 이 녀석의 뒤처럼.

「그래, 실컷 불러라. 지금은.」

내 것이라고 착각했던 그 이름. 네가 나와 혼동하는 그 이름. 아마도 너의 가슴 안에 박혀 있을 그 이름.

「이제 곧 꿈에서조차 그리워할 수 없게 될 테니까.」

미도리야의 입술 속으로 밀어 넣은 단단한 검지와 중지가 붉게 젖은 설육을 꽉, 눌렀다. 순간 숨이 막힌 미도리야의 몸이 크게 떨었다. 허나 눈을 뜨는 일도, 잠에서 깨어나 다시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일도 없었다. 보드랍고 축축한 체온이 꾹꾹 누르는 바쿠고의 손가락을 뜨겁게 감싸왔다. 하. 선홍색 눈이 다시 한 번 옅게 좁아졌다.

이 입술로 내 것을 달게 빨고 있을 때에도 네 놈의 눈은 끝내주겠지.

마녀가 오기 전에 즐길 것이 하나 더 생겼다. 만족감을 눈 안으로 감춰 넣으면서 바쿠고가 젖은 손가락을 스륵 잡아 뽑았다. 벌어진 입술을 타고 새어나온 타액이 턱을 적시며 떨어졌을 때 색이 밝은 머리가 우리를 향해 기울었다. 그리고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가느다란 실을 남기며 츱, 떨어진 입술을 혀로 축이며 바쿠고가 아직 잠에 빠진 미도리야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캇쨩이라…

「한 번만 더 그 이름을 말한다면 이대로 네 혀를 잘라 버릴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잠시 즐겨도 괜찮겠지. 침상에서 내려와 우리 앞에 똑바로 선 바쿠고가 창살 깊이 손을 넣어 의식 없는 미도리야의 머리칼을 잡고 턱을 젖혔다.











*

젖은 물소리가 들렸다.

벌어진 미도리야의 입술 안에 뭔가가 빠듯할만큼 물려 있었다. 허나 미도리야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도저히 구분이 가질 않았다. 뜨거워… 탁한 의식으로 미도리야는 간신히 그런 생각을 했다. 마치 불에 잔뜩 달궈진 기둥이 입 안을 쑤셔대는 것 같았다. 다 삼키지 못한 타액이 미도리야의 목덜미를 타고 주르륵 흘러 떨어졌다. 그 자리를 닦는 대신 미도리야는 제 손에 걸린 단단하고 차가운 창살을 움켜잡았다.
귀 밑을 매만져주는 손길이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꼭 입을 맞추기 전에 굽슬거리던 머리칼을 스르륵 넘겨주던 손처럼.

캇쨩… 입안에 머금어진 것 때문에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 이름이 미도리야의 눈가에 눈물로 맺혔다. 캇쨩, 캇쨩이야.

물려있던 것은 오래지 않아 입안을 빠져 나갔다. 무의식적으로 콜록콜록 기침을 할 때마다 온 관절이 저릿할만큼 아파왔다. 아픔 탓인지 조금씩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뜨고 싶지는 않았다. 눈을 뜨면 이 꿈에서 깨버릴 것 같아. 다시 너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그게 무서워서 미도리야는 미간이 깊게 패이고 눈이 당길만큼 두 눈을 힘껏 감았다.
하. 귓가에서 흐려진 목소리가 낮게 웃었다. 그 익숙한 웃음이 누구인지 알고 있어서, 더더욱 눈을 뜨고 싶지 않았었다. 네가 사라져 버릴까봐.

「잠은 이미 다 깬 것 같은데.」

욕망으로 탁하게 흐려진 목소리가 이국의 언어로 속삭였다.

「눈을 뜨지 않으면 이보다 더 심한 짓을 하고 싶어진다고.」

머리칼을 부드럽게 매만지던 손이 목덜미를 지나 가슴으로 스르르 미끄러졌다. 그 덕분에 미도리야는 제 목에 뭔가 수상한 것이 채워져 있음을 눈치 챘다. 허나 더 만져볼 틈도 없이 그대로 셔츠 안쪽을 파고든 손가락들이 여며져 있던 단추를 가볍게 뜯어냈다. 가슴팍을 만져올 땐 저도 모르게 힉 신음이 터졌다. 꽉 눌러 감고 있던 눈 사이가 괴롭게 일그러졌다.

「죽여줄까. 이대로.」

기억 속의 바쿠고와 똑같은 목소리가 하, 웃었다. 가슴팍을 파고든 손가락들이 박동하는 미도리야의 심장 곁을 힘껏 쥐었다. 절로 힉, 몸이 튀었다.

“으, 으읍, 흐… 으윽,…!”
「이렇게 하, 귀엽게 떨어대서야,」
“윽,… 읍, ㅎ, 읏,…”
「언제까지 버티나 한 번 보고 싶어지는데.」

남아있던 손이 창살을 넘어 앞섶을 움켜잡았다. 꽉 악문 턱이 절로 천장을 향해 들렸다. 입술을 아무리 꽉 악다물어도 남자의 손길을 따라 자꾸만 단숨이 헐떡이며 흘러 나왔다. 그대로 앞을 주무르는 손길은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미도리야는 이 모든 상황이 꿈일 것이라 확신했다.
캇쨩이야. 나는 지금 네게 안기는 꿈을 꾸고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온몸이 뜨거워졌다. 달아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죽이고 싶은 자에게 만져지는 것치고 네 놈은 꽤, 잘 젖는데.」
“읍, 흐읍, 으ㅅ,”
「제법 끝내주는 얼굴을 할 줄도 알고.」

엄지가 천천히 젖어들기 시작한 앞섶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 느른한 감촉을 미도리야는 사정없이 뒤를 꿰뚫던 때보다도 몇 배는 더 참기가 어려웠다. 쉼 없이 몸이 떨렸다. 너와 똑같은 목소리, 너와 똑같은 손, 너와 똑같은 감촉… 심지어 너와 똑같은 체온과 체취.

캇쨩, 나는 지금도 네가 그리워 참을 수가 없는데.

두 눈을 꽉 감고 있던 미도리야의 손이 기어이 참지 못하고 자신을 거침없이 만져대던 손목을 잡았다. 이끌듯 잡아끄는 손길에 손의 주인은 놀란 듯 잠시 멈췄다, 전보다 더 억세고 격렬히 앞을 주물렀다. 아릿한 둔통이 허리 아래를 달콤하게 휘감았다. 끝내 천장으로 젖혀진 입술이 호흡을 뭉개며 헐떡였다.

“더… 그런, 앞 말고 더…”

나는 지금 꿈을 꾸는 거야, 캇쨩. 그 꿈에서 너를 만난 것뿐이야.

“더, 안에, 싫, 만져지는 건 싫, 읏,”
「오늘은 여러모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데.」
“그만… 이제 손은, … 하고 싶어,… 앞은 그만, 아읏,”
「살고 싶어 수작을 부리는 것인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또 나를 다른 녀석과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더, 아으ㅅ, 좋아… 더, 더…”
「뭐, 상관은 없지. 어차피 암흑숲의 마녀가 오면 너는 종일토록 내게 범해지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순간 어깨를 움켜 잡아온 손이 미도리야의 몸을 제 쪽으로 힘껏 끌어당기고 미도리야의 손을 자신의 목에 두르게 했다. 반사적으로 남자의 목을 힘주어 안으면서도 미도리야는 눈을 뜨지 않았다. 이 꿈에서 나는 깨지 않을 거야. 미도리야는 몇 번이고 같은 생각을 했다. 이미 한계까지 치달은 두 무릎 사이는 살갗이 닿는 것만으로도 후들후들 떨었다. 한 손으로 미도리야의 허리를 능숙하게 끌어안고, 남은 한 손이 몸에 걸쳐져 있던 나머지 옷들을 거침없이 풀어헤쳤다. 기울어온 입술이 미도리야에게 깊게 입을 맞췄다, 젖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미도리야는 그때 어쩐지 바쿠고가 웃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도달해, 맘껏.」

남자가, 바쿠고가 파르르 떨리던 앞섶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달아오른 밭은 호흡을 잇새로 몰아쉬며 남자가 속삭였다.

이즈쿠.

“아, 아아… 아ㅎ,!”

기어이 열린 숲색 눈이 천장을 향해 크게 떨었다. 긴장이 이완되는 몸을 힘껏 움켜 안으며 바쿠고가 마지막으로 허리를 깊게 찍었다.









*

미도리야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여전히 간밤에 언뜻 보았던 우리 안에 있었고, 사방이 검게 칠을 입힌 창살로 둘러쳐진 우리 위쪽은 지붕 없이 뚫려 있었다. 방은 미도리야가 머물던 곳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넓고 높았다. 혼자 눕기엔 넓은 침상, 정성껏 세공하고 깎아낸 가구들과 곳곳에 걸린 묘한 패턴의 직물들, 이제는 불티가 거의 남지 않은 벽난로, 양면을 따라 나란히 높은 창문을 미도리야는 잠시 빙 둘러보았다. 누구의 방인지는 알 것 같았다.

왕의 방이었다.

밤 내내 창을 흔들던 눈보라는 이제 말끔히 가셔 있었다. 눈이 붉은 젊은 왕은 자리를 비운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데다 나를 가두고서 대체… 미도리야가 목에 채워진 목줄을 저도 모르게 더듬었다. 무엇보다도 미도리야는 왜 자신이 이런 곳에 와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젯밤의 모든 기억들이 흐릿했다. 길고 오랜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제 분명… 어떤 여자분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나는 그 목소리를 따라서 정원으로 나왔고…”

꿈인가? 눈 사이를 좁히고 고민하던 미도리야의 얼굴이 쓰게 웃었다. 아무리 기억이 또렷하지 못하다고 해도 몸에 남은 흔적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다. 그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당신이 진짜 너무 밉고 싫어.

“이런 세계로 떨어진 것도 서러운데, 하하…”

장로장은 어떻게든 그의 마음에 들어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었다. 어쩌죠… 저는 그 약속을 지키지는 못할 것 같아요. 너와 이름마저 똑같은, 그 바쿠고 카츠키라는 이름의 왕은 결코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기야, 그건 어차피 나도 마찬가지니까 서로 공평한 걸지도… 우물거린 미도리야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밤새 혹사당한 관절들이 피곤한 비명을 질렀다.
씻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목줄까지 채워 우리 안에 가둬놓은 자에게 그런 친절이 있을리 만무했다. 대체 어떻게 족쇄를 풀었는지, 문은 어떻게 열었으며 왜 정신을 차렸을 때 한 번 와보지도 못한 그 정원에 오도카니 서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꾼 꿈과 관련이 있을까? 짐작해보다 미도리야는 문득 다른 것이 궁금해졌다.

그 남자는 왜 나를 죽이지 않는 걸까?

며칠째 계속 꼬리를 물고 있는 생각이 다시 미도리야의 머리 안에서 어지럽게 피어올랐다. 거듭 생각해도 이상했다. 나는 어제 달아난 거였잖아. 아무리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족쇄를 풀고 다른 장소를 헤매고 있었으니 도주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 증거로 남자는 자신에게 목줄을 채워 대형 짐승을 가둘 법한 이런 우리 안에 넣어 놓았다. 화가 났다는 뜻이다. 게다가 남자는 결코 미도리야에게 선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말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쓴 웃음을 삼킨 미도리야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 닫혀있던 거대한 문이 벌컥 열린 것은 그때였다. 방의 주인이 돌아온 것이 아닐까 싶어 저도 모르게 문 쪽을 돌아본 미도리야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 낯선 세계에서 장로장과 더불어 미도리야가 마음을 편히 풀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 그곳에 서있었다. 거인의 아이들이었다.

“나를 씻겨주러 온 거야? 여기까지?”

며칠 사이에 미도리야와 키가 비슷했던 아이들은 성인 어른의 키만큼 훌쩍 자라 있었다. 우리로 다가와 열쇠를 열던 아이가 미도리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말을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 아마도 미도리야의 얼굴 표정을 보고 눈치를 읽은 모양이었다.
우리 안으로 먼저 들어온 아이가 창살에 묶여 있던 목줄의 반대편 매듭을 풀어주었고, 뒤따라 들어온 아이가 미도리야를 등에 업었다. 어제도, 그제도 아이들의 등에 업히거나 안겨서 욕실과 침대를 오갔었지만 아직도 조금은 쑥스러웠다.

욕탕은 난로 옆 휘장 안쪽에 숨어 있었다.

방처럼 욕탕 역시 천장이 높았고, 미도리야가 머물고 있던 방이 몇 개쯤은 들어갈 수 있을만큼 넓었다. 정면에는 호수의 전경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높고 거대한 창이 뚫려 있었고, 천장에서부터 쏟아지는 온천의 물줄기가 정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원형 욕조 속으로 쉼 없이 흘러들었다.
TV에서 봤던 유럽 고급 스파 같아… 감상을 다 삼킬 틈도 없이 거인의 아이가 그대로 업혀있던 미도리야를 욕탕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내려놓을 때 섬세함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 순하고 선량한 아이들이 가진 유일한 단점이었다.

“잠깐, 힉, 내가 벗을 수 있… !”

머리끝까지 흠뻑 젖은 미도리야가 얼굴을 들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저항하는 의미가 없을만큼 아이들은 너무도 손쉽게 미도리야를 단숨에 알몸으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버린 미도리야의 머리 위로 한 아이가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약수를 끼얹었고, 남은 아이가 작은 그릇을 꺼내고 들고온 자루에서 하얗고 질척거리는 점액 제형을 주욱 짜냈다. 그게 뭔지는 지난날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연고였다.

“어, 저기… 어, 이거야말로 진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데, 하하…”

정신없이 씻겨 지기가 무섭게 다시 욕탕 밖으로 끌려나온 미도리야의 눈앞에 하얀 연고를 쿡 찍은 손가락이 다가왔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도 그 손은 덩치가 큰 성인남자의 손가락처럼 길고 굵었다. 간밤에도 제 뒤를 괴롭혀온 것에 비한다면야 저 정도 굵기쯤은 아무 것도 아닐 테지만 밤새도록 비벼져 부어오른 안쪽은 그 손가락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꾹 힘이 들어갔다.
치료를 위한 일이니 이 아이들에게 다른 마음은 전혀 없을 것이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선량하고 깊은 눈동자와 그 손가락의 굵기가 주는 갭에 미도리야가 저도 모르게 울대를 밀었다. 안기는 건 조금 쑥스럽고 만다지만 이건 정말 몇 번을 해도…

그때였다. 반쯤 닫혀있던 장막이 세차게 걷혀지며 색이 밝은 머리가 욕탕에 나타났다. 반사적으로 그쪽을 돌아본 숲색 눈이 흠칫 떨었다.

왕이었다.

오늘도 상의는 입지 않은 넓은 어깨에는 하얀 털을 덧댄 붉은 망토가 멋지게 휘감겨 있었다. 허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거인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홍색 눈길이 차가웠다.

「씻기는 일을 도우라고 했지, 연고를 써도 괜찮다고는 한 적이 없을 텐데.」

험악해진 선홍색 눈길에 거인의 아이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몸을 움츠렸다. 무슨 말인지는 이번에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소꿉친구의 행동과 감정만큼은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던 것처럼 미도리야는 이번에도 남자의 얼굴에 묻어있던 감정을 읽었다.
남자는 화가 나 있었다. 미도리야의 소꿉친구는 화가 나고 언짢은 일이 있을 때면 늘 저렇게 선홍색 눈 사이를 사납게 일그러뜨리고는 했었다. 그것조차 캇쨩과 같았다.

「나가.」

왕의, 바쿠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거인의 아이들이 들고 있던 것을 놓고 자리를 벗어났다. 아이들은 겁을 먹었었다. 바쿠고를 돌아보는 미도리야의 눈길이 당연 고울 리가 없었다.

「감히 내 욕탕까지 내어주고 달꽃의 향료로 씻겨주었는데도 도무지 감사할 줄을 모르는 얼굴이군.」

바쿠고가 차갑게 입매를 비틀었다. 이번에는 미도리야도 알아듣거나 말거나 지지 않았다.

“남을 겁주면 기분이 좋아요? 왕이란 자리는 본래 그런가요? 저 아이들은 그저 저를 돌봐주려고…”

순간 말꼬리를 흐물흐물 흐리며 입을 다문 것은 제 앞으로 다가와 자신을 내려다보던 그 선홍색 눈 탓이다. 선홍색 눈길이 말문을 잃고 자신을 올려다보던 미도리야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갑자기 왜… 생각하며 눈만 말똥말똥하고 있던 미도리야가 돌연 시선을 느끼고는 바닥에 무방비하게 누워있던 제 몸을 깊게 말았다. 그러고 보니 알몸이었었다.

「건방지게 내 욕탕을 차지할만큼의 값어치는 해줄 몸인데.」
“저기 어, 대체 또 뭘 그렇게 쳐다보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어… 저는 그쪽처럼 시도 때도 없이 서는 분들하고는 많이 달라서요. 그쪽하고 뭘 하고 싶지도 않고, 제 몸이 지금 정상적인 컨디션도 아니고…!”
「잔소리를 하는 것 같은데. 아니면 오늘은 이 이상 하기 싫다고 되바라진 소리를 하고 있다거나.」
“저는 진짜! 하고 싶지 않으니ㄲ… 히익!?”

확 뻗어온 손이 미도리야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으며 그대로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바꿔 놓았다. 하기 싫다니까, 나는…! 미도리야가 내지른 소리가 높은 욕탕을 왕왕 울려도 바쿠고는 미도리야의 등을 짓누른 손을 풀어주지 않았다. 버둥거리는 미도리야를 내려다보던 선홍색 눈이 어쩐지 웃고 있었다. 재미있다는 듯이.

「너란 놈은 참 질리지가 않는단 말이지. 그렇게 버둥거리면 그 목이 쉴 때까지 괴롭혀주고 싶어지는데.」
“놔요,… 놔! 놓으라고, 개자식아!”
「걱정 말라고. 오늘은 안 해, 멍청아.」
“놔, 쓰레기 같은 자식아, 하기 싫어, 오늘은 절대 안할,…!”

바쿠고가 엎드려진 미도리야의 눈앞에서 남아있던 손을 저쪽으로 뻗었다. 그 손에 잡혀 드르륵 끌려오는 것을 확인한 미도리야가 저도 모르게 과격해지던 욕을 스르르 혀 밑으로 삼켰다. 거인의 아이들이 두고 간 연고였다.

“그걸로 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 읏,?!”

연고에 흠뻑 젖은 손가락이 미도리야의 골반 틈을 느리게 파고들었다. 순간적인 이물감에 미도리야가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 떨었다. 통증을 느낀 탓이었다. 아직 상처가 남아 있어 그 잠깐의 접촉으로도 만져진 자리가 쓰리고 아팠다. 하지만 달랐다. 전날 억지로 쑤셔오던 그 감촉은 분명히 아니었다.

「오늘은 내가 도와주지. 감사하라고. 감히 왕을 이만큼 부려먹는 건 네 놈 뿐이다.」

생색을 내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인데… 흘깃 바쿠고를 노려보던 미도리야의 눈이 일그러졌다. 파고드는 감촉은 너무 느렸고, 부드러웠다. 참을 수가 없었다. 꽉 악문 잇새로 스며나오는 숨이 점차 달떠지기 시작했다.

“잠, 잠ㄲ… 그렇, 그렇게 만지면, 그런, 이상ㅎ, 아으ㅅ,!”

축축한 물소리가 울렸다. 손가락은 거칠었지만 살갗을 문지르는 동작은 더없이 부드러웠고, 근질거렸고, 뜨거웠다. 연고가 스칠 때마다 홧홧하게 부어있던 속의 열기가 거짓말처럼 스르르 가라앉았다. 재미있는 모양인지 아예 본격적으로 미도리야의 허리를 타고 앉은 바쿠고가 손가락을 놀리며 남은 손을 숲색 머리 쪽으로 뻗었다. 연고를 바르는 손길처럼 그 머리칼을 쓸어내리는 손도 전날처럼 거칠거나 난폭하지 않았다. 귓가로 기울어온 입술이 미도리야의 귓등을 부드럽게 질근거렸다.

「여기 어디쯤을 찌르면 안달을 내던데.」
“아, 그만… 기분이 이상…ㅎ아… 힉,!”
「역시, 하. 정확하지. 보라고. 손가락이 부러질 뻔 했잖아, 지금.」
“그ㅁ… 이상, 근질, 아, ㅎ읏, 하ㅇ,… 읏,”
「나는 이 새낄 대체 어쩌고 싶은 건지, 씨발.」
“그, 아아, 아ㅎ, 읏, 하으ㅅ,!”

연고는 두 개의 손가락을 따라 상처를 입고 달아오른 살갗에 흠뻑 비벼졌다. 처음 삽입될 때 느꼈던 통증은 이제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 연고의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는 전날에도 충분히 배웠다. 발라진 즉시 열은 가라앉고 통증이 사라졌고, 긴장이 풀어진 자리에는 대신 쾌감을 닮은 나른한 둔통이 떠돌았다. 이쯤 되니 곤란한 건 오히려 미도리야였다.

설 것 같아. 미도리야가 볼 안쪽을 힘껏 씹었다. 아니, 이미 반쯤은…

그래도 죽어도 이 남자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모르기를, 그저 이대로 끝나기만을 미도리야가 간절히 바라던 그때였다. 입구의 장막이 다시 한 번 크게 펄럭거렸다.

「바쿠고, 암흑숲의 마녀를 데리고 돌아왔…」

입구에 나타난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반 박자 늦게 욕탕 안을 확인하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동시에 끈질기던 바쿠고의 손이 우뚝 멈췄다. 선홍색 눈이 잠시 언짢은 얼굴로 제 또래의 붉은 머리 남자를 노려보았으나 그게 전부였다.

「씨발, 흥 다 깨졌네.」

씨근거린 바쿠고가 그대로 미도리야의 몸 위에서 일어났다. 붉은 머리 남자는 당황한 얼굴이었다. 미도리야를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 머리색처럼 붉어진 얼굴이 바쿠고를 원망하듯 쳐다보았다. 그 대화하는 투나 표정을 보아 남자는 장로장이나 다른 시종들보다는 보다 편한 상대임에 분명했다. 미도리야는 그렇게 짐작했다.

「바쿠고, 너란 놈은 대체… 나는 말이야, 어!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해서 금화를 두 자루나 더 얹어주고 마녀의 주술로 이틀만에 돌아왔는데!」
「잘했네. 그래서 씨발, 어쩌라고.」
「인마, 넌 말을… 됐다, 됐어. 그런데 이 녀석이 혹시 그 이계에서 왔다던,」

붉은 머리가 벌거벗은 몸을 주춤주춤 웅크리던 미도리야를 돌아본 것과 동시였다. 눈앞에서 펄럭 펼쳐진 붉은 망토가 붉은 머리의 시야를 가로 막았다. 그 망토를 그대로 미도리야의 벗은 몸 위에 덮듯이 툭 떨어뜨린 바쿠고가 붉은 머리를 또렷이 노려보았다. 그 목소리가 서늘하고 낮았다. 화가 났을 때의 그 소꿉친구처럼.

「보지마. 죽여 버린다.」
「뭐? 야, 이유는 설명해줘야… 바쿠고! 인마, 야!」

그대로 몸을 돌린 바쿠고가 먼저 자리를 나섰고, 붉은 머리가 한발 늦게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소란했던 욕탕은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대체 뭐였던 거지, 방금… 어깨에 덮인 붉은 망토를 손으로 꽉, 움켜잡으며 숲색 눈이 쓰게 웃었다. 그때도 눈가가 시큰했었다. 눈물이 날 것처럼.

이것 봐. 체취도 똑같잖아.

“캇쨩 냄새…”

보고 싶어. 정말로 보고 싶어. 눈가를 일그러뜨린 미도리야가 망토 안으로 몸을 더 깊이 말았다. 왕이 부른 암흑숲의 마녀가 왕을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계속)








이번 주 지옥의 업무를 달성하고 또 이렇게 5편을 들고 옵니다.... 흑흑 저는 살아남았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런데 대체 이번 편 왜 이렇게 긴 것이고, 그 중 7할이 떡이라니(착잡)
무튼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하나 비밀들을 풀어가야할 타이밍이라 글이 자꾸만 길어지네요ㅠ.ㅠ 다음 편은 부디 이보다 더 짧게 써지길 바라면서 저는 이제 불금을 준비하러 갑니당 /////// 흑흑 이번 주 저 진짜 고생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더불어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큰절)

?
  • bbbb 2018.07.20 17:47
    저희야말로 써주셔서 감사합니다ㅜㅜㅜㅜ
  • 루카님사랑합니다 2018.07.20 18:46 SECRET

    "비밀글입니다."

  • lh 2018.07.20 18:53 SECRET

    "비밀글입니다."

  • 루카님의 수호천신 2018.07.20 20:23 SECRET

    "비밀글입니다."

  • ㅌㅎ 2018.07.20 21:43
    아 너무 재미있습니다...!!! 애초에 그럴 의도가 아니었던 거인의 아이들의 건장한 손가락과 연고로 마구 곤란해지는 이즈쿠를 떠올린 저는 나쁜 사람이고요,... 음.....-////-;
    ♡♡♡ 저주에 시달리는 젊은 왕이라니, 너무나 흥미진진해요....!!!!///// 앞으로의 전개도 무척 궁금해집니다!!
  • 갓갓루카님 ㅠㅠ 2018.07.21 03:30 SECRET

    "비밀글입니다."

  • ㅎㄹ 2018.07.22 22:27
    ㅠㅠㅠㅠㅠㅠㅠ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연고발라줄때 좋아서 울뻔했어요
    미도리야 비밀도 차근차근 밝혀지겠죠??????미도리야 수동적이지 않은것도 좋고 바쿠고가 둘인거나 저주받은 마녀의 아들도 그렇고 설정 다너무발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늘 꽃길만 걸으시고 건강하세요
    제평생 2차쓰는분중에 루카님 글이 갑중갑입니다ㅠㅠㅠㅠㅠㅠㅠ인생존잘님
  • 고먐미 2018.07.23 04:14
    저희야말로 ㅠㅠㅠ ㅅ써주셔서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루카님 사랑합ㄴ미다 정말 으허엉 너무 재밌어요 흐어엉으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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