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2년만에 이어보는 음대 시리즈
* 피아노 치는 바쿠고와 첼로 켜는 미도리야로 캇뎈
* 이전 글을 모두 감상하신 후에 즐겨주세요.



    ~ 유에이 음대 AU ~
    (1)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 빗방울 전주곡
    (3) 사랑의 인사
    (4) 밤의 노래
    (5) 피아노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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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想曲 : 밤의 노래

Chopin, Nocturne in E-flat Major, Op.9 No.2

@ruka_tea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손을 쓰는 일이다.

곡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머리라면, 기교를 익혀 연주하는 것은 손이다. 유화를 그릴 때 수없이 많은 색을 덧입혀 작품을 완성해가듯, 한 곡을 보다 완벽히 연주하기 위해서는 쉼 없이 손을 혹사시켜야 한다.
때문에 연주자들은 평생 자잘한 직업병을 안고 산다. 비올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는 항상 턱과 목이 아프다.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도 다르지 않다. 완벽한 연주를 만드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손과 팔의 근육이라던, 음악계의 오랜 격언처럼.

물론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캇쨩, 나 왔… 뭐야, 그 아대는?”


저녁이었고, 지난 주말에도 그랬듯 미도리야는 이번에도 엄마에겐 과제가 있다는 핑계를 댔다. 캇쨩이란 이름은 그야말로 외박을 위한 프리패스였다. 사고 이후 유난히 그 이름을 안타깝게 여기던 엄마는 오늘도 미도리야를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다. 첼로 케이스에 쇼핑백까지 묵직하게 짊어지고 2층 저택에 들어서는 동안 미도리야는 세 번을 멈춰서야했다. 먼 것도 아니고 바로 옆 골목인데도 짐이 무거워서.
하지만 내려놓은 짐을 챙겨들던 바쿠고의 손목에 눈길이 닿았을 땐 인사하는 것도 까먹었다. 소매까지 걷어붙인 트레이닝 티셔츠 밑으로는 평소와 달리 검은 아대가 양 손목에 꿰어져 있었다.


“아, 뭐.”


시선을 느낀 바쿠고가 심드렁한 투로 대꾸했다. 동시에 슬그머니 눈길을 피하던 걸 미도리야는 똑똑히 봤다.


“망할 운동 중이었는데.”
“와, 어떻게 저렇게 빤한 거짓말을…”
“아, 뭐. 왜. 피아니스트가 손목 보호하는 게 신기하냐?!”


정곡을 찔렀더니 괜히 짜증이다. 합주 때 악기말고 다른 것도 맞춰버리는 바람에 어영부영 연애를 시작해버렸지만 대체 왜 저 성격은 바뀌지 않는 건지. 하기야, 아무리 관계가 변했대도 재료가 그대로니 어쩔 수 없나. 쓰게 입매를 밀던 미도리야가 머리를 좌우로 털었다. 이대로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혹시 다친 거 아냐? 캇쨩 요즘 계속 레슨 때문에 무리했잖아. 병원은? 다녀왔어?”
“어. 그런 건 칼이거든. 내가 누구처럼 참는 줄 아나.”
“아니, 그건 참으려고 참은 게 아니라 교수님 결혼식 때문에…”


숲색 눈이 쓰게 웃었다. 카야마 교수님의 결혼식에 축가 제의를 받았을 때,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차를 얻어 탔다 문을 잘못 닫고 왼손 검지를 찍었었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 일이었다. 덕분에 코드를 짚고 운지運指 할 때마다 손끝이 욱신거려 한동안 고생했다. 그때 생각이 나는 모양인지 선홍색 눈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때도 병원 바로 가라고 그랬지. 첼로 켜는 새끼가 손 함부로 굴리고 아주 잘하는 짓이다, 어!?”
“그러니까 별 거 아니었다니까! 연주도 잘했고… 아니, 잠깐. 내가 아니라 캇쨩 손 얘기 하고 있었잖아! 괜찮은 거 맞아?”
“아, 뭐… 됐어. 내 손은.”


와. 저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자기 손 지적하니까 얼버무리는 거 봐.
그래도 바쿠고는 자기 관리에 소홀한 타입은 아니었다. 보통 독해서는 절대 저만한 클래스의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다. 말마따나 손목에 미약한 통증을 느끼기가 무섭게 바쿠고는 곧장 정형외과에 갔을 것이다. 마음 쓰이는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묵직한 봉투를 펼쳐놓는 색 밝은 머리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선 미도리야가 걱정스러운 듯 다시 물었다.


“캇쨩, 쇼팽 독주회 잡혔다면서.”


쇼팽 독주회 한다면서, 네 친구 바쿠고군. 그 말을 전해준 건 카야마 교수였다. 직업병은 어쩔 수 없다고, 제자들의 결혼식 축연을 지켜보면서도 날카롭게 눈을 빛내고 있던 첼로 전공 교수는 이브닝 드레스로 갈아입고 피로연 자리에서 인사를 다니다 아예 미도리야의 테이블에 의자를 빼고 앉았었다. 너도 한 잔 하라면서 와인까지 권한 걸 보면 그날 미도리야의 첼로가 어지간히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깔끔하게 원샷으로 비운 와인잔을 털면서 카야마는 전혀 새로운 소식을 미도리야에게 전해 주었다.
해 바뀌고 신년에 한다던데, NHK홀에서. 카야마가 덧붙였다. 듣자하니 NHK가 내년부터 진행하는 ‘젊은 음악가’ 특집의 일환인 모양이었다. 그 첫타가 우리 학교 학생으로 뽑혔노라며 카야마는 자랑스럽게 얘기했지만, 미도리야는 기쁜 한편으론 걱정이 더 컸다. 그제야 알 것 같아 그랬다. 왜 요즘 들어 바쿠고가 레슨을 그렇게 빡빡하게 하고 있었는지. 바쿠고를 바라보는 숲색눈이 옅게 일렁거렸다. 그 눈이 창밖에 걸려있던 깊고 고요한 밤 어둠 같았다.


“연습… 많이 힘들어?”
“힘들기는 무슨. 쇼팽 한두 번 쳐보는 것도 아니고.”


불퉁거리는 투 치고 짜증을 내는 표정은 아니었다. 선홍색 눈이 미도리야를 흘긋 돌아봤다. 아대가 끼워져 있는 손이 숲색 머리를 가볍게 헝클였다. 불퉁대던 입가가 그때는 조금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데쿠새끼 또 그딴 얼굴 한다. 괜찮다고. 병원 갔다 왔다니까.”
“그래도 아대하고 있으면 심각한 거잖아. 왜냐면 캇쨩은 어, 그니까 2012년 클래식 스테이지 매거진에서 평한 바를 인용하자면…! 어릴 때부터 기본을 충실히 배워온 피아니스트라 양손의 밸런스가 매우 좋고, 왼쪽과 오른쪽 어디에도 쏠리지 않는 완벽한 힘의 균형을 가지고 있어서 부상 위험이 적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었고 또 쇼팽 국제 콩쿨 심사위원장이었던 코르사프는…”
“미친, 그걸 다 외우냐, 너는!?”


와, 씨발, 나도 다 까먹었는데. 선홍색 눈이 기가 막힌 듯 일그러졌다. 둥글게 끔벅거리던 숲색 눈이 조금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거야 캇쨩이니까… 그때는 정말 그랬다. 너에 대해서는 더 알고 싶어서 네가 참여한 모든 연주의 영상을 찾아봤고, 모든 칼럼과 인터뷰를 빠짐없이 읽었었어. 네가 그땐 너무 멀어서, 더 멀어지고 싶지 않아서. 하나라도 놓쳐버리면 정말 다신 만날 수도 없을만큼 니가 훨훨 날아가 버릴까봐.
그때는 다시 대화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미도리야가 저도 모르게 입매를 쓰게 밀었다. 그 눈에 걸린 빛을 가만히 뚫어보던 바쿠고가 또 한 번 손을 슥 뻗었다. 이번엔 머리가 아니라 어깨에 감겼다. 포옹처럼.


“하여튼 스토커 같아가지고는.”


이번에도 말투는 곱지 않았다. 그래도 미도리야를 내려다보는 선홍색 눈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뭐가 제일 좋았어.”
“어? 뭐라니, 뭐를…”
“니가 훔쳐봤던 내 연주 영상 중에.”
“아니, 그건 딱히 훔쳐본 게 아니라 캇쨩네 음반 회사 유튜브에 가면 다 올라와 있는, …쇼팽 에튀드 op 10-12번.”
“……”
“어,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소나타 2번이랑 슈만 환상곡 17번이랑 어 또… 헉.”


우물우물 거리던 미도리야가 입을 헙 다물었다. 나는 왜 또 좋다고 이걸 일일이 대답하고 있을까. 내가 봐도 진짜 스토커 같다. 민망해진 숲색 눈이 바쿠고를 흘깃 살폈다. 바쿠고는 딱히 기분 나쁜 얼굴은 아니었다. 들고 있던 미도리야의 쇼핑백 꾸러미를 바닥에 내려놓고 저만치로 밀어버린 바쿠고가 곁에 있던 소파에 앉으며 미도리야를 끌어 당겼다.
방심하고 있다 졸지에 끌려가 품에 안겼다. 제 몸에 기울듯이 달라붙은 숲색눈을 가만히 뚫어보며 바쿠고가 입술을 기울였다. 낮은 목소리가 귀밑을 달콤하게 울렸다. 도저히 달아날 수 없는 밤 어둠처럼.


“더 말해봐.”


다가온 입술이 말랑한 귓불을 가만히 머금고 떨어졌다. 버릇처럼 어깨를 좁힌 미도리야가 꿈처럼 우물거렸다. 그럼 진짜 밤새야하는데…


“쇼팽 폴로네이즈 53번이랑, 흐, 발라드 1번…”
“또.”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도 좋았고… 잠, 캇쨩, 읏,…”


왼손이 허리를 안고, 오른손이 요령 좋게 미도리야의 티셔츠 속을 파고 들었다. 맨살갗에 비벼지는 아대의 촉감이 낯설어서 이상하게 자꾸 몸이 떨렸다. 버릇처럼 입술을 꾹 깨물며 미도리야가 잠깐 바쿠고를 원망하듯 쳐다봤다. 이러자고 온 게 아니었다. 물론 외박을 하다보면 당연히 이렇게 될 일이었지만, 오늘은 바쿠고에게 부탁할 게 있었다. 그 부탁을 입밖으로 내놔도 당연히 이렇게 되긴 했겠지만.
슥 목덜미로 기울어진 바쿠고의 입술이 긴장한 살갗을 부드럽게 들이마셨다. 더 말해봐. 피부에 바짝 닿은 입술에서 새어나온 목소리가 낮고 뜨거웠다. 더. 탁하게 흐려진 목소리가 거듭 속삭였다. 아. 또 한 번 입술을 뭉갠 미도리야가 바쿠고의 뒷목을 움켜 안았다. 머리가 안 돌잖아. 이렇게 야하게 만져오면.

그래도 딱 떠오르는 곡이 하나 더 있었다.


“쇼팽, 녹턴 9-2번…”


본격적으로 티셔츠를 밀어올리고 있던 바쿠고의 손이 우뚝 멈췄다. 눈이 마주쳤다. 하. 바쿠고가 입끝을 비틀었다. 선홍색 눈 사이가 묘하게 일그러졌다.


“꿈꿨냐? 9-2번은 무대에서 친 적 없거든, 멍청아.”
“응, 없어. 그래도 좋아. 캇쨩이 제일 처음 쳐줬던 곡이잖아.”
“……”
“네 살 때, 우리 친구 됐을 때…”


녹턴 9-2번은 쇼팽의 모든 곡 중에 가장 유명한 한편, 클래식 무대나 콩쿠르에서는 외면 받는 곡이다. 일단 어렵지가 않다. 어렵지 않으니 기교를 뽐내기엔 적합하지 않고, 따라서 앵콜 무대가 아니고서야 자주 연주되지도 않는다. 피아니스트의 역량을 완전히 드러내는 레퍼토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쿠고도 쇼팽 국제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이 곡을 연주하지 않았다. 그게 벌써 4년 전이다. 쇼팽의 피아노곡들 중에서도 난도가 높은 것들을 주로 골랐노라며, 우승할 게 틀림없다며 호들갑을 떨던 신문 기사들을 미도리야 역시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바쿠고는 아깝게 우승을 놓쳤다. 그 해 쇼팽 국제 콩쿠르에는 우승자가 없었고, 바쿠고는 사실상 1위와 다름없던 2위를 수상했다.

숲색 눈이 잠시 둥글게 열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 왜 2위였었지?


“하, 데쿠새끼. 그딴 것도 기억하고.”


씩 입매를 민 선홍색 눈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멈췄던 손이 본격적으로 티셔츠 안을 파고들며 가슴팍을 지분거렸다. 잠깐, 캇쨩, 우리 저녁부터 먹고… 항변해봤지만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별로 먹히진 않았다. 우물거리는 미도리야의 뒷목을 그대로 잡아당긴 바쿠고가 가볍게 입술을 겹쳤다. 츱,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 밤처럼.


“녹턴 9-2번 한 번 쳐줘야겠는데.”
“안돼. 나 진짜 울 것 같애.”
“더 좋네. 모르냐? 데쿠새끼 우는 얼굴이 제일 꼴리는 거.”
“그런 건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다시 한 번 뒷목이 당겨지며 각도를 튼 입술이 보다 깊게 겹쳤다. 아, 진짜. 미도리야가 항변처럼 잠시 미간을 좁혔다. 내 말은 진짜 안 들어. 그래도 겹쳐진 입술을 벌리고 스며들어오던 설육에 맘껏 제 혀를 감았다. 호흡을 깊게 얽으면서 바쿠고가 그 몸을 그대로 소파 위에 떠밀었다. 제 등을 파고들던 손의 감촉이 느껴졌을 때 숲색 눈이 번쩍 열렸다.


“하지만 캇쨩 손… 괜찮아? 무리하면 안 되잖아. 나는 좋은데…”
“……”
“아니, 어! 그니까 하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라…!”


아니, 그거 맞아. 하고 싶어. 미도리야가 발갛게 달아오른 볼 안쪽을 꼭 씹었다. 내 입은 가끔씩 왜 이렇게 이성을 벗어나는 건지. 선홍색 눈이 잠시 커졌다, 이내 가볍게 일그러졌다.


“하고 싶단 소리네.”
“……”
“그리고 사돈 남말하고 자빠졌다. 너나 잘해, 등신 새끼야.”



가볍게 투덜거린 바쿠고가 역으로 미도리야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끌어온 손등을 미도리야의 눈앞에 흔들었다. 어릴 적부터 자잘한 흉터들로 깨끗했던 적이 없던 손에는 오늘 아침에 새롭게 터진 물집이 앉아 있었다.
괜한 쑥스러움에 숲색 눈이 흐, 쓰게 웃었다. 그러게.


“그치만 어… 첼로는 어쩔 수가 없으니까…! 메이저 잡을 때는 운지 폭이 넓어서 엄지에 힘을 주지 않으면 연주가 아예 안 되잖아.”
“피아노도 마찬가지거든, 멍청아.”
“그럼 잘 됐다. 캇쨩, 우리 서로 오늘은 무리하지 않는 걸로…”


바쿠고가 제 손에 얽혀있던 미도리야의 손을 제 입가로 힘껏 끌어당겼다. 무슨 말을 못하겠다. 눈을 맞추며 바쿠고가 물집이 앉은 미도리야의 손가락에 가볍게 입술을 떨궜다.
무리 안해, 멍청아. 속삭이며 스르륵 밀려나온 혀가 손가락의 상처를 할짝였다. 뜨거웠고 동시에 따끔했다. 반사적으로 흠칫 어깨를 좁히는 미도리야를 뚫어보며 바쿠고가 손가락 틈을 깊게 핥으며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낮고 탁했다.


“그럼 오늘은 데쿠새끼가 힘 내면 되겠네.”


아, 설마. 숲색 눈이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미도리야의 손을 당긴 바쿠고가 소파 반대쪽에 벌렁 드러누웠다. 씩 밀린 입매가 짧게 덧붙였다.


“위로 올라와.”


역시. 숲색 눈이 쓰게 웃었다. 달아나고 피할 틈도 없이 바쿠고가 미도리야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곤 번쩍 들어올렸다. 숲색 눈이 기겁을 했다. 무리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하지만 그 어깨를 마냥 떠밀고 벗어나기엔 이 밤이 너무 아쉬웠다. 두 눈을 꾹 감은 미도리야가 바쿠고의 입술에 냅다 입술을 겹쳤다. 키스는 이내 깊어졌다. 토도로키군한테 부탁 받은 거 얘기해야하는데… 혀를 얽으면서 미도리야는 잠시 생각해보다, 이내 말았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색 밝은 머리 뒤로 펼쳐진 창문 가득 걸려있던 깊고 어두운 밤의 풍경처럼.











*

자장가로 유난히 자주 추천되는 곡들이 있다. 브람스의 자장가, 말러의 교향곡 3번,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그리고 쇼팽의 녹턴 작품 9 제 2번.

의 정경을 그려낸 음악 형태를 흔히 녹턴이라고 부른다. 번역하자면 야상곡夜想曲, 밤의 노래가 된다. 이 장르를 특히나 사랑했던 쇼팽은 평생에 걸쳐 총 21개의 녹턴을 작곡했다. 그리고 연습곡인 에튀드, 발라드와 더불어 쇼팽의 피아노를 대표하는 레퍼토리 시리즈가 되었다.
쇼팽이 작곡한 21개의 녹턴에는 저마다 다양한 모습의 밤이 그려져 있다. 어떤 밤은 쓸쓸하고, 어떤 밤은 우울하며, 어떤 밤은 폭풍우가 치는 듯 격정적이고 어떤 밤은 다정하다. 9-2번은 그 중에서도 가장 편안한 밤 풍경을 그리고 있다. 자장가로 자주 추천되는 것도 그 이유일지 모른다. 미도리야에게도 녹턴은 그렇게 기억되고는 했다. 자장가, 어릴 적 가장 편안했던 시간, 가장 소중했던 순간들.


「여보, 이것 봐요. 잠들었어요.」
「우리 이즈쿠는 이 곡이 좋은가보구나. 자, 당신도 그만 눕혀놓고 이리 와요.」


아빠가 해외지사로 발령받기 전, 집에는 늘 쇼팽의 음반이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라던 쇼팽을 역시 아빠도 좋아했다. 어린 미도리야가 잠을 이루지 못해 칭얼거릴 때마다 아빠는 자장가 대신 루빈스타인이 연주한 쇼팽의 녹턴 실황 앨범을 들려줬었다.
후에 창문을 넘어 들려오던 어떤 꼬마의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던 것도, 그 꼬마와 친구가 될 수 있던 것도 어쩌면 그 덕인지 모른다. 그때도 똑같은 곡이 들렸었다. 쇼팽의 녹턴 중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가졌다던, 녹턴 작품 9 제 2번.

네 살 때, 그 소리에 이끌려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그때도 쇼팽을 기가 막히도록 잘 쳤던 색 밝은 머리칼의 꼬마에게.

그때는 지금보다 어설프고 서툴렀을 것이다. 그래도 종종 생각이 났다. 바쿠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사줬다던 그 별장을 처음 보았을 때 녹턴을 연주하고 싶었던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 모른다.
피아니스트에게 쇼팽은 숙명이다. 그가 평생 작곡한 200여개의 피아노곡을 연주하지 않고서는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다. 폴로네이즈를 포함해 지금껏 미도리야는 바쿠고가 연주하는 수없이 많은 쇼팽의 곡들을 들었다. 그래도 바쿠고의 쇼팽을 생각하면 항상 녹턴 9-2번이 먼저 떠올랐다. 첫사랑처럼.
처음이라서, 너의 피아노를 처음으로 듣게 된 게 그 곡이라서.


그날처럼 이번에도 미도리야는 그 곡을 떠올렸다. 쇼팽, 녹턴 9-2번. 잔잔한 밤 어둠을 닮아 있는 그 곡.


“캇쨩… 아, 더… 응, 좋아… 기분 좋, 읏…”


격일제로 집안일을 봐주는 고용인은 본인이 깨끗하게 정리해둔 소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다리 위에 억지로 앉혀졌던 몸이 달아오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쉼 없이 입술을 부딪치고 혀를 섞는 동안 누구랄 것도 없이 손에 걸리는 옷을 헤집고 서로를 헐벗겼다.
드러난 맨살갗을 비벼대다 촉감이 우습고 간지러워 미도리야는 와르르 웃음을 터뜨리다 그만 넘어갈 뻔 했고,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미도리야의 등을 감싼 바쿠고의 손끝이 은근하게 척추를 타고 올랐다.
거칠게 비벼지고 움켜잡힐 때와는 전혀 다른 느른함이 감각을 휘저었다. 손을 무의식적으로 신경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 오늘따라 바쿠고의 손끝이 달았다. 미칠 것 같아. 진짜, 죽을 것 같아. 안달이 나기 시작한 미도리야가 제 몸을 타고 오르던 손끝을 거칠게 떼어냈다. 하. 바쿠고가 입 끝을 가볍게 말았다.


“데쿠새끼 과격한데.”
“캇쨩이 날… 너무 봐주니까.”
“신경 써줘도 지랄이네. 내일 아침 수업 있다며, 멍청아.”
“안 써줘도 되는데, 흐.”


이제 이 정도론 만족이 안 된다는 걸 몸이 알아버렸다. 그럼 별 수 없잖아. 부스스 웃음을 흐린 미도리야가 흔들리던 허리를 똑바로 폈다. 그리고 슬며시 뻗어온 손이 바쿠고의 가슴 근육 위를 스르륵 미끄러졌다.


“오늘은… 내가 연주할 거니까,”


물기를 띤 숲색눈이 흐 웃었다. 그대로 가슴팍을 짚고 미도리야가 허리를 천천히 앞뒤로 흔들었다.


“서툴다고, 읏, 놀리지마.”
“놀리겠냐, 멍청아. 이렇게 꼴리는데.”
“그니까… 오늘은 내가 흔들, 잠, 허리 찍지 말라니까, 아으,ㅅ…!”


퍽, 허리를 놀렸더니 자세가 무너진 미도리야가 허겁지겁 양손으로 바쿠고의 가슴팍을 짚으며 버텼다. 손은 안 대주고 있잖아, 멍청아. 이런 소릴 하면서도 선홍색 눈은 희미하게 휘어져 있었다. 그대로 살갗이 비벼지는 소리가 밤의 고요를 흔들었다. 물소리가 철벅였다. 그날, 호숫가에서 떠올렸던 녹턴 9-2처럼.


“데쿠새끼, 하, 이렇게 야해빠져서 이제 첼로 어떻게 켜냐.”
“이건, 흐… 첼로랑은 관계가, 하으ㅅ, 응,”
“관계없긴, 멍청아. 자꾸 야한 소리 나는데.”


바쿠고를 뚫어보던 숲색 눈이 가늘어졌다. 그건 캇쨩 때문이잖아. 그 말을 하기도 전에 붙잡힌 허리가 그대로 소파 반대쪽에 밀어붙여지며 자세가 뒤집혔다. 엎드린 채로 허리가 맹렬히 겹쳐올 때마다 달아오른 호흡이 잔뜩 헐떡였다. 이윽고 미도리야가 턱을 젖히고 난 후에야 길고 오랜 연주가 끝났다. 깊고 평온한 침묵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녹턴의 밤처럼.


“캇쨩은… 왜 할 때마다 실력이 자꾸 느는 걸까…?”


바쿠고가 소파를 떠난 이후에도 미도리야는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멍하니 저런 소리를 우물거렸더니 식탁 쪽에 서있던 색 밝은 머리가 버릇처럼 입끝을 하, 비틀었다. 미도리야가 들고 온 쇼핑백을 그제야 열어보면서 바쿠고가 가볍게 대꾸했다. 뭘 그딴 걸 물어보느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내가 존나 천재라서.”
“그러게… 천재라서 좋겠어요. 이제 곧 독주회도 하고…”
“……”
“기대된다, 캇쨩 독주회…”


학교 행사를 제외한다면, 미도리야는 단 한 번도 바쿠고의 피아노를 공식적인 무대에서 본 적이 없었다. 바쿠고가 한참 연주회 투어를 다닐 때엔 티켓을 받거나 직접 꽃다발을 들고 찾아갈만큼 가깝지 못했다. 대신 영상으로만 실컷 봤다. 특히나 에튀드 10-12번이나 폴로네이즈 53번 같은 경우는 어느 대목에서 바쿠고의 손가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훤히 그릴 수 있었다. 하도 봐서.
기대는 무슨. 불퉁거리면서 바쿠고가 쇼핑백 안에 담겨 있던 것들을 거칠게 끄집어냈다. 그래도 그 입에 걸려있던 희미한 미소까지는 다 감추지 못했다.


“처음도 아니고 뭐가 대단해, 그딴 게.”
“그래도 캇쨩 이름을 걸고 하는 연주회잖아. 것도 3년만에 열리는 거고…”
“……”
“부럽다… 나는 언제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흐.”


음악 하는 사람의 첫 번째 꿈은 전문적인 솔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자기 이름을 건 독주회를 열고 싶지 않은 음악가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아직은 스스로 생각해도 꿈이 너무 멀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협주 이후로 전보다 개성이 더해졌다는 평은 곧잘 듣게 됐지만, 어떻게 보면 그때는 바쿠고가 있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흐 웃던 숲색 눈끝이 버릇처럼 가라앉았다. 참지 못한 진심이 툭 흘러나왔다. 기분이 어두웠다.


“나도 오스트리아 가서 공부하고 싶다… 빈 음악원 가고 싶어. 그럼 올마이트도 매일 볼 수 있을 텐데.”


그 탓에 미도리야는 보지 못했다. 쇼핑백을 열던 바쿠고의 손이 우뚝 멈췄었다.


“근데 빈 음악원 입학료가 한두 푼도 아니고, 흐. 국가 장학생이라도 뽑히면 모르지만 나랑은 완전 인연도 없고…”
“……”
“그치만 오스트리아 가면 캇쨩을 못 보네, 흐. 그냥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살아야…”
“어, 가지마.”


툭 끼어든 목소리가 말허리를 잘라냈다.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낮았다. 조금 전과 달리 옅게 일그러져 있던 그 선홍색 눈처럼.


“유학 같은 거 왜 가. 그딴 거 안 가도, 씨발, 여기서 다 할 수 있어. 여기서 해.”
“어…? 어, 그건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긴 한데…”
“……”
“캇쨩, 뭐 안 좋은 일 있어?”


어릴 적부터 늘 둔하고 늦됐다. 그래도 이상하게 바쿠고의 기분만큼은 귀신 같이 알아차렸다. 이유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 숲색 눈이 데굴데굴 굴러가다 돌연 크게 열렸다. 설마 우리 엄마가 캇쨩이 못 먹는 거 넣어준 거야?! 그 기겁한 목소리에 바쿠고가 미간을 좁혔다. 어이가 없어서.

아니. 지금은 다행이었다. 데쿠새끼가 둔해서, 눈치가 없어서.


“그딴 거 아냐, 멍청아. 가서 씻기나 해. 파스타 할 거니까.”
“어? 야식? 진짜?”


우울해할 땐 언제고 저 말에 또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금방 씻고 오겠다며, 서둘러 바지부터 다리에 끼워 넣다가 기어이 소파에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와 함께 바쿠고가 반사적으로 미도리야를 쳐다봤지만 다행히 손이 깔리진 않았다. 민망함에 흐, 웃음을 흐린 미도리야가 비틀비틀 욕실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건너 보고 있다 문득 생각이 났다.


“야, 데쿠.”
“어?”
“나한테 부탁할 거 있다면서, 등신아.”


욕실을 열고 있던 숲색 눈이 크게 열렸다. 맞다.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바쿠고를 향해 돌아선 미도리야가 주근깨가 앉은 볼을 긁적거렸다.


“어, 캇쨩. 이번에 우리 기말고사 협연 과제 말인데…”












*

국제공항 진입로에 들어선 검은 아우디가 부드럽게 속도를 줄였다. 오스트리아, 빈이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풍채 좋은 남자는 출발할 때부터 계속 창밖을 보고 있었다. 평일 늦은 오후라 그런지 진입로는 주말과 달리 한산했다. 하늘은 흐렸지만 비가 오지는 않았다. 오스트리아에서 이런 흐린 날은 매우 흔했다. 비행기들이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남자가 흥얼흥얼 익숙한 선율로 허밍을 했다. 쇼팽의 녹턴, 9-2번이었다.


“Sie sehen heute glücklich aus, Maestro.”


운전대를 잡고 있던 기사가 기분이 좋아보인다며 한 마디를 건네자, 남자가 껄껄 웃었다. 나무랄 데 없는 독일어로 남자가 가볍게 말을 받았다.


“Ja. Es ist, weil ich meine Schüler nach einer langen Zeit treffen werde.”


몇 년만이지? 남자는 잠시 시간을 헤아려봤다. 둘 다 얼굴을 못 본 지는 1년이 넘었다. 그 사이에 실력들은 늘었을까. 이번에는 또 어떤 변화로 나를 놀라게 해줄까. 흐뭇하게 입매를 당기던 남자가 진동이 울리는 걸 알아채고 수트 자켓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상단에 찍힌 시계는 오후 4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번호는 오스트리아와 달리 복잡하고 낯설었다. 하지만 남자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전화를 받는 남자의 얼굴에 인상만큼 유쾌한 미소가 한껏 걸려 있었다.


“오, 아이자와군.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아, 일본은 지금 밤 11시가 넘었을 텐데. 아, 그래. 지금 공항에 가고 있던 길이지. 8시 비행기야. 일본 도착 시간? …그런 건 안 알려줄 걸세. 알게 되면 자네가 또 이른 아침부터 날 데리러 나오지 않겠나, 하하!”


아, 데리러 나오는 게 아니야? 남자가 잠시 서운한 얼굴을 했다. 오래 가지는 않았다. 전화 너머의 상대는 남자에게 평생 그런 존재였다. 가장 서운하게 만드는, 하지만 가장 신뢰하는.


“그래, 자네 덕분이지. 유에이 음대 정기 연주회에 심사위원장으로 초대해준 덕에 이렇게 오랜만에 고향에도 가고 말이야, 하하. 아, 그래. 곡을 미리 알려준다면 나야 고맙지. 역시 엔지의 아들이 선정했겠군. 그래, 그 소년 이름이 토도로키 쇼토였나.”


거의 도착했는지 창에 비치는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세단이 출국장이 있는 쪽으로 부드럽게 방향을 틀었다. 그때도 남자는 오랜만에 걸려온 지인의 전화를 쉽게 끊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곡명이 들려왔을 때 남자의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이라고? 내 조카가 그 곡을 연주한다니, 허 참.”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남자가 선이 진한 눈썹 사이를 깊게 좁혔다. 아니면 혹시 극복했나. 남자가 입매를 쓰게 당겼다. 통화는 거기까지였다.


“내 조카는, 그러니까 바쿠고 소년은 그 곡을 치지 않을 텐데. 아, 자네는 모를지도 모르겠군. 쇼팽 국제 콩쿠르 때 말일세. 결선에서…”
“Wir kamen am Flughafen an, Maestro.”
“아, 벌써? Ja. Du hast gute Arbeit geleistet. 일단 자세한 얘기는 가서 하지, 아이자와군. 나중에 보세.”


기사가 도착했음을 알리자 남자가 수고했다는 인사와 함께 통화를 마무리했다. 바쿠고 카츠키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치겠다니. 허락했을 리가 없을 텐데.
의아한 듯 눈을 구겨보다 남자는 이내 생각을 지웠다. 차문을 열자 먼저 내린 기사가 조수석에서 꺼낸 과르넬리 첼로케이스를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첼로케이스에는 남자의 이름 넉자가 모국어로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바쿠고 카츠키의 외삼촌이자 미도리야 이즈쿠를 직접 지도했던 세계적인 첼리스트, 야기 토시노리八木俊典.


“Vielen Dank.”


모두 그를 올마이트라고 불렀다.










*


선홍색 눈이 크게 흔들렸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몇 번을 다시 들어도 그 이름이었다.


“2학기 기말 주제가 피아노 협주곡이잖아. 그럼 토도로키군이 아예 제대로 피아노가 두드러지는 협주곡을 연주해보자고 했거든. 그럼 당연히 쇼팽이잖아.”


욕실에서 주방까지는 거리가 있었고, 그 탓에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바쿠고가 소리 없이 볼 안쪽을 힘껏 씹었다. 순간 얼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쇼팽 국제 콩쿠르 결선 무대 이후로 두 번 다시 그 곡을 연주할 기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연주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캇쨩이랑 하고 싶어 하니까, 모두들.”


바쿠고의 표정을 전혀 읽지 못한 숲색 눈이 흐 웃었다. 그 악의 없는 말이 또 한 번 가슴을 흔들었다.


“캇쨩만큼 쇼팽을 완벽하게 해석하는 피아니스트는 없으니까.”


쇼팽 국제 콩쿠르에 와본 적도 없고, 그저 영상 클립으로만 돌려본 저 녀석은 전혀 모른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왜 바쿠고 카츠키가 우승자 없는 2위를 수상해야 했는지. 아시아에서 첫번째 우승자가 나올 것이라며 언론에선 매일 같이 호들갑을 떨어댔었지만 바쿠고는 우승을 하지 못했다. 어차피 우승자가 없는 2위니 1위나 다름없는 것이 아니다. 못 받은 거다. 우승을 할 수 없었던 거다.
심사위원장은 바쿠고에게 우승을 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었다. 결선 무대의 딱 한 곡을 이기적으로 해석했다는 이유 하나로.


“그러니까 아마 다음 주부터 연습을… 캇쨩?”
“……”
“캇쨩, 왜 그래?”


연거푸 들려온 목소리에 선홍색 눈이 드물게 크게 열렸다, 이내 일그러졌다. 이내 평소와 다름없는 귀찮은 말투가 덧붙었다. 그냥. 하지만 오늘따라 미도리야는 예리했다. 제 문제에 대해선 언제나 눈치가 빨랐던 것처럼.


“캇쨩, 오늘 이상해. 혹시 뭐… 숨기는 일 있어?”


바쿠고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녹턴 9-2번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머릿속에는 그날의 자신이 쳤던 피아노 소리가 왕왕 울려 퍼지고 있었다. 스무 살 쇼팽이 폴란드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조국에 헌정하고 갔다던, 초연에서 직접 연주했다던, 쇼팽 국제 콩쿠르 결선의 마지막 레퍼토리.
바쿠고 카츠키가 연주할 수 없는 쇼팽의 유일한 곡이었다. (*)









이렇게 해서 다음 턴은 저 문제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이어지는 것.....

뒷얘기 계속 쓰고 싶었는데 2년이나 걸렸네요ㅠㅠ 그것도 피협 1번으로 바로 잇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야기가 너무 넘칠 것 같아 중간에 슬쩍 다른 단편을 하나 이렇게 끼워 봅니동... 제대로 된 뒷얘기인 쇼팽 피협 1번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단편일 듯.
피아노 협주곡 본편은 쓰는 데 약간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ㅜ_ㅜ 지금 한참 연재 중인 알오버스 캇뎈이 완결까지 또 몇 편 안 남아서.. 일단 이걸 완결낸 후에, 사장비서썰까지 정리한 후에 본편 들고 오도록 하겠습니당//// 그때까지 부디 이 단편을 즐겨주시옵길 바라며, 읽어주신 분들 오늘도 감사합니다. 음대 시리즈 아껴주는 분들이 많아서 결국 이렇게 쓰게 되는 매직... 흑흑 항상 감사해요ㅜ.ㅜㅜ.ㅜ.ㅜ.ㅜ.ㅜ.ㅜ


+
바이올리니스트와 비올리스트는 턱이, 첼리스트는 손(특히 손끝)이, 피아니스트는 손목이 자주 아픈 것은 팩트입니다.
실제로 피아니스트들은 굳이 아픈 게 아니어도 평소에 손목을 보호하려고 아대를 쓰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대요. 조ㅅ성ㅇ진이 싸인회를 할 때 오른손목에 아대 착용한다는 게 단적인 예... 제 최애 피아니스트 되시는 랑랑은 건초염 때문에 7개월동안 음반은 커녕 피아노를 아예 못 쳤습니동 ㅠㅠ 작중에서 바쿠고도 그랬지만, 피아니스트는 진짜 정형외과 단골이라고ㅋㅋㅋㅠㅠㅠㅠ
그리고 첼리스트는 손끝으로 현을 잡고 버티면서 연주를 해야하기 때문에 손끝이 남아날 일이 없습니동. 첼로도 덩치가 큰 악기고, 그만큼 줄도 길어 통제가 힘들기 때문에 현 꽉 누르면서 운지할 때마다 힘이 진짜 상상이상으로 엄청 든대요. 기타 코드 잡는 거하곤 비교할 게 아니라고ㅠㅠ 연주하다 현을 놓치거나, 줄에 쓸려서 손등에 상처 남는 일도 잦다고. 여러 음악 전공 중에서 실제 원작 속 미도리야의 손 상처가 남을 확률이 제일 높은 악기도 첼로랑 콘트라베이스입니동. 그게 제가 미도리야한테 첼로를 준 이유 중 하나...


+
오늘 쓰인 곡의 링크를 스스사삭 남겨 봅니다. 먼저 쇼팽의 녹턴 9-2번
https://youtu.be/cGzuJQFu0NQ
은 들으시면 다 아실 것ㅋㅋㅋㅋ 쇼팽 곡 중엔 단연코 이 곡이 제일 유명합니다. 본래 피아노곡이지만 첼로랑 피아노가 같이 연주한 버전으로 슥

쇼팽 에튀드 10-12
https://youtu.be/c2i_QmgAJn0
이건 트위터에 잠깐 올린 토막에서도 나온 곡이지만 설정집에서도 올렸던 키ㅅ신 연주 영상으로U_U... 참고로 쇼팽의 에튀드는 피아노 연습을 위한 곡들입니다. 손목 쓰는 스킬과 완급 연습에는 쇼팽의 에튀드만한 게 없는 것..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소나타 2번
https://youtu.be/C_lOOYSzoBc

슈만 - 환상곡 17번
https://youtu.be/XZ7hE4lQAYs



+
중간에 올마이트랑 기사의 독일어 대화는 정말 별 거 없지만(번역기 돌렸어요<) 대충 이런 내용인 듯 합니다.

- 오늘 기분이 좋아보이십니다, 마에스트로.
- 오랜만에 제자들을 만나러 가니까.
-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마에스트로.
- 응. 수고했네.

?
  • ㅠㅠㅠㅠ 2019.05.24 17:58 SECRET

    "비밀글입니다."

  • 솔기 2019.05.24 22:42 SECRET

    "비밀글입니다."

  • 구름 2019.05.25 18:01 SECRET

    "비밀글입니다."

  • 루카님 홈 열려서 행복한 덕후ㅜ 2019.06.04 23:51 SECRET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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