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십걸 두번째 일러스트 때문에 생각난 캇데쿠
* 그러니까 간만에 판타지au
* 가볍게 읽어주세요 U///U








직업이 용사인데 검을 잃어버렸습니다
@ruka_tea












올마이트가 사라졌다. 일단 이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대륙을 통일한 대호걸은 이름 없는 용병으로 첫번째 전장에 나타났던 것처럼 사라질 때도 홀연했다. 올마이트의 소식을 아는 자도, 들은 이도 없었다. 심지어 아끼던 제자조차 그의 행방을 몰랐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석 달 전에 저와 여행을 다녀오실 때만 하더라도 그런 기미는 전혀 없으셨거든요.”


미도리야 이즈쿠는 오늘도 손님의 노크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이렇게 노크를 두드리며 무작정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번 주에만도 열 명이 넘었다. 석달이 지났는데도 모두 올마이트의 행방을 알고 싶어했다. 어디로 사라졌느냐, 언지가 없었느냐, 제자면서 왜 몰랐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미도리야는 주근깨가 흩어진 뺨을 긁적거리면서 상투적인 대답들만 줄줄 늘어놓았다.


“모르겠어요. 고향으로 내려가신 게 아닐까요? 저에겐 어떤 언지도 주지 않으셨어요. 3년 전이면 모를까, 용사학교를 졸업한 후부터는 스승님의 댁을 떠나 저는 줄곧 혼자 지내고 있는 걸요. 여행 때 별다른 얘기는 없었느냐고요? 흠, 글쎄요...... 죄송해요. 굴도마뱀 구이를 유난히 잘 한다는 맛집에 절 데려가주신 것 말고는 기억이 안나서, 흐. 아, 그런데 그 집은 정말 맛있더라구요. 주소를 알려드릴까요?”


영주의 근위병들도, 용병길드의 사람들도, 도둑길드를 이끄는 암흑의 형제들도, 심지어 황제의 전령조차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이 도마뱀 구이 대목에서 인내심이 폭발하고는 했다. 영주의 근위병은 미도리야의 멱살을 잡았고, 용병길드의 사람들은 검을 뽑았다. 황제의 전령은, 무려 불경스럽게도, 황제가 직접 날인한 두루마리를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그래도 왜 그렇게까지 올마이트가 간절한지, 어차피 은둔중이었던 퇴역 용사를 왜 그렇게들 찾아와 안부를 묻고 있으며, 올마이트가 사라진 게 왜 그토록 큰일인지 설명해준 사람은 황제의 전령 뿐이었다.


“그래도 자네는 올마이트의 성검을 물려 받았을 것이 아닌가, 미도리야 제군!”


아, 역시. 서글서글한 숲색 눈이 쓰게 웃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난감해하며 미도리야는 눈을 들어 앞에서 콧김을 씩씩 뿜고 있는 황제의 전령을 바라보았다. 똑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당장 황제의 전령이라는 권한으로 이 작은 산촌을 그대로 불태워버리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그 좁쌀 같은 눈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질문엔 거짓말을 하면 안 되겠지? 나머진 다 속였지만 하나 정도는 정직해져야 할 것 같았다. 이것까지 거짓으로 대답한다면 목숨이 문제가 아니라 양심에 찔려서 며칠은 두 발 뻗고 잘 수 없을 것만 같아 그랬다.


“어떡하죠. 그 검이라면...”


미도리야가 버릇처럼 볼을 긁적거렸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잃어버렸거든요.”
“잃어버리다니, 제군!”


기어이 뒷목을 잡은 전령이 거품을 물었다. 곧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전령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탓에 미도리야는 사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과 진배 없단 소리를 하지 않았다. 하기야, 그렇죠. 숲색 눈이 소리없이 웃었다. 제가 생각해도 이건 좀 어이가 없으니까.


“마왕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검을 도둑 맞았다는 소린가, 지금!?!!”


때는 황국력 450년, 서쪽 황혼의 땅에 500년간 봉인 되었던 마족들이 다시 국경으로 모여들고 있다던 그때였다.







#

태초에 신과 마족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태어났다.

인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땅에 나타나게 됐는지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보수적인 신학자들과 교회에선 인간이 창세신이 흘린 눈물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눈물이 인간만 창조한 것은 아니다. 생명 하나 없이 황폐한 땅을 슬픈 눈으로 굽어보던 창세신이 뚝뚝 흘러 떨어진 눈물은 대륙에 떨어져 강물이 되었고,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나간 물줄기는 흙을 운반하고 매만지면서 수많은 산과 산맥들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식물이 자라나고 나무가 우거지며 숲이 되었다. 그리고 최초의 눈물이 떨어진 곳에서 기적처럼 인간이 태어났다. 인간이 흘린 눈물이 짠 것도 그 탓이라고 한다. 창세신의 눈물은 바다처럼 짜디 짠 것이기에.

대륙에 태어난 아이들은 대부분 이 전설을 정설로 배우며 자란다. 도처에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20명이나 되는 수많은 신들의 숫자처럼 교회마다 섬기는 신은 달랐지만, 창세신만큼은 모든 교회에서 섬기며 가르친다. 어찌 되었건 미도리야 역시 이 전설을 들으면서 자랐다. 인간은 눈물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 그래서 인간의 생은 마냥 달콤하지 않다는 것. 하기야. 부자건 가난뱅이건 울지 않는 자는 없다. 인간의 삶은 창세신의 눈물처럼 짜디짠 것이기에.

그중에서도 미도리야의 삶은 눈물 중의 눈물, 소금 중의 소금이었다.

수도가 있는 중부에서도 한 달은 말을 달려야 하는 서쪽. 마족들이 봉인된 장벽 앞을 굽어보는 자그마한 산골 마을에서 미도리야는 태어났다. 한때는 마법석을 캐는 광산 덕분에 서쪽치고는 꽤나 부유한 마을이었다. 마을에는 늘 마법석을 거래하러 찾아온 도매상들과 보다 좋은 양질의 마법석을 직접 구매하러 온 마법사들로 득실득실했었다. 그때는 미도리야도 마법사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마법석을 실어다주는 대가로 금화 몇 골드를 용돈으로 벌기도 했다.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다. 무분별한 개발로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던 광맥은 미도리야가 열 살이 되던 무렵에 아예 씨가 말랐다. 마법사들과 도매상들이 떠났고, 일자리를 잃은 광부들이 하나둘씩 짐을 챙겨 가족과 함께 고향을 등졌다. 한 동네에서 태어나 함께 어울려 놀던 소꿉친구를 잃어버린 것도 그 즈음이었다.

열다섯 살이 될 때 벌이를 위해 용병이 된 아버지가 목숨을 잃었다. 지키던 귀족을 대신 해 살인 누명을 뒤집어 썼다고 했다.

그때부터는 가난해진 삶에 살인자의 아들이란 수식어까지 덧붙었다. 어릴 적부터 막연히 용사가 되고 싶었지만 용사학교에선 미도리야를 받아주지 않았다. 신입생들을 담당하는 학교의 교학사들은 입학금이 부족하다는 말을 했지만, 실상 엄마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마련해온 돈주머니는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도리야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저보다 더 속이 상한 엄마의 등을 쓸어주며 돌아서던 길에 미도리야는 교학사들이 수군거리던 소리를 똑똑히 들었었다.


「살인자의 아들이 용사는 무슨.」


아버지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 뿐이고, 자신은 살인자의 아들이 아니며, 용사가 되는 데엔 관계가 없다는 말을 일일이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열다섯 살 그해는 미도리야에게 너무 길고 아팠다. 용사는 내 길이 아닌 걸까? 용사가 되어선 안 되는 걸까? 어쩌면 운명의 신은 미도리야를 위해 다른 길을 내정해두고 있는데, 그 답을 찾지 못해 엉뚱한 것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난 뭐가 되어야 할까. 장사꾼? 광부? 진작 폐쇄되어 아무도 오지 않는 광산 앞에 쪼그려 앉아 앞으로의 장래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숲색 눈에선 설운 눈물이 뚝뚝 흘러 나왔다. 그래도 용사가 되고 싶었다. 안 된다고 해도 하고 싶었다. 잔뜩 젖은 코를 훌쩍 들이켜며 미도리야가 서럽게 울었다.


「캇쨩이랑 약속했는데...」


저는 대체 뭐가 되면 좋을까요?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금성을 향해 미도리야는 몇 번이나 물었다. 초승달 곁에서 반짝이는 금성은 운명의 신이 운명을 점칠 때 쓰는 황금공이라서, 인생에 의문을 느낄 때 저 별을 향해 소원을 빌면 대답이 돌아온다고 했다. 마법사들을 따라다니며 잔심부름을 하던 다섯 살 꼬마 이즈쿠는 그 말을 믿었었다. 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마을의 몰락, 아버지의 죽음과 누명, 용사가 될 수 없다는 선언 뿐이다. 게다가 함께 용사가 되겠노라 약속했던 소꿉친구마저 잃어버렸다.

하지만 운명은 언제나 변덕스러운 것임을 미도리야는 몰랐었다.


「저게 갑자기 무슨... 으억...!?!」


밤 어둠을 가르며 날아온 대검 한 자루가 미도리야의 가랑이 앞으로 매섭게 꽂혔다. 재빠르게 두 발을 들고 몸을 물리지 않았다면 용사가 되고 싶다는 꿈은 물론이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마저 영원히 물거품이 될 뻔 했다. 저도 모르게 양다리를 활짝 벌린 미도리야가 눈 앞에 꽂힌 대검을 향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 몸만한 대검은 누가 보아도 사람이 들고 다닐 것이 아니었다. 이게 대체 어디에서... 둥글게 열린 눈만 꿈벅거리던 미도리야의 귀에 껄껄 웃는 황한 웃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았더니 거기 있었구나, 베이비!」


베... 베이비? 숲색 눈이 끔벅끔벅 했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자 구름에 가려진 달그림자 밑으로 육중한 그림자가 먼저 눈에 보였다. 역광 속에서도 그 근육의 짜임을 짐작할 수 있을만큼 남자의 풍채는 매우 좋았다. 곧이어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다시 세상에 드리워졌을 때 미도리야는 턱이 빠져라 입을 열었다.


「많이 놀랐겠군. 미안하게 생각하네. 우리 베이비가 제 의지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20년만에 처음이군. 나를 처음 주인으로 선택할 때도 멋대로 날아와 내 가랑이를 갈라버릴 뻔 했었지, 하하!」


얼떨떨한 얼굴로 굳어있는 미도리야에게 다가와 어깨를 팡팡 두드려준 금발의 근육질 남자가 한 손만으로 대검을 쑥 뽑아냈다. 누가 보아도 이런 무지막지한 대검을 휘두르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인상의 남자였다. 대검을 다시 제 등에 걸린 검집에 찔러넣는 남자를 보면서도 미도리야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 놀라서 그랬다. 첫째, 미도리야는 그 풍채 좋은 남자를 알고 있었다.


「오오오오올마이트!?!」
「오. 나를 아는가, 소년! 영광이군! 은퇴한 이후로 이젠 술집에서도 나를 수상한 사람으로 여기고 경계하는데 말이야.」


아니, 이 대륙에서 서쪽 장벽을 최초로 넘어가서 살아돌아온 영웅 올마이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도리야는 그의 활약상을 기록한 책을 30번도 넘게 읽고 또 읽으며 처음으로 영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용수철처럼 벌떡 몸을 일으킨 미도리야가 남자의 손을 저도 모르게 양손으로 덥썩 잡으며 흔들었다. 팬이었다, 만나고 싶었다, 얼마나 기쁜지 당신은 모르실 것이라며 미도리야는 종막엔 저도 모르게 다짜고짜 몸을 돌리며 등판을 내밀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엄숙해진 숲색 눈동자가 올마이트를 쳐다보았다.


「싸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싸인? 하하, 이거 참 오랜만이군. 그래, 싸인도 좋지만 내가 지금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어서...」
「아, 망할 영감탱이, 검을 어디까지 찾으러 갔냐고!」


그때 미도리야는 두번째로 놀라움을 느꼈다. 둘째,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구름이 완전히 걷힌 광산 앞 공터 저편에서 누군가 투덜투덜 거리면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뾰족뾰족 솟아오른 머리칼은 올마이트처럼 금발이었고, 목덜미에서 단단히 여며놓은 망토가 붉게 나부꼈다.

누구지? 미도리야가 눈을 좁히며 생각했다.

체구나 목소리를 보아선 제 또래임에 분명했다. 어쩐지 그 느낌이 익숙한 것도 같았다. 저렇게 터벅터벅 귀찮은 듯 걸어오는 껄렁한 걸음걸이라든가 뾰족뾰족 곤두선 색이 밝은 머리칼이라든가 하얀 얼굴이라든가... 아, 내 제자일세. 올마이트가 목소리를 죽여 낮게 덧붙였다. 그리고 손을 흔들던 올마이트 앞으로 보다 가까워진 소년의 얼굴이 뚜렷이 드러났을 때 미도리야는 마지막으로 선홍색으로 빛나던 눈을 똑똑히 봤다.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앞선 두 개의 놀라움은 이 마지막 놀라움에 비견할 바가 아니었다.


「얼마 전 드래곤의 둥지를 털어서 꽤 유명인사가 됐는데 말이다. 저 녀석 이름이...」
「아, 망할 영감 또 뭘 쪽팔리게 떠들어!」
「...알아요.」


제자를 자랑하던 스승의 흐뭇한 얼굴이, 왁 소리를 지르던 어린 제자의 서툰 얼굴이 동시에 미도리야를 돌아보았다. 달그림자 밑에 비스듬히 드러난 얼굴을 미도리야는 확인하듯 잠시 쳐다봤다. 틀림없었다. 굳게 다물린 입술이 툭 떨어졌다. 올마이트가 알려주고 싶었을, 제자의 이름 넉 자는 분명 아니었다.

「캇쨩.」
「...」
「캇쨩 맞지? 그치? 캇쨩이지?」


아, 존나. 선홍색 눈이 잔뜩 일그러졌다. 맞다고는 하지 않았다. 인사나 대답도 없었다. 스승을 향해 일그러진 얼굴이 기어이 꽥 소리를 질렀다.


「이러니까 이 동네 오기 싫었댔잖아, 내가!」


그날, 운명의 신은 처음으로 미도리야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돌려주었다. 평생을 따르게 될 스승이자 영웅, 제 멋대로 날아왔던 스승의 보검, 그리고 다시 돌아온 소꿉친구. 창세신의 눈물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보다도 더욱 기이한 우연이었다.
아는 사이였다니. 어색하게 웃는 미도리야와 그쪽은 쳐다도 보지 않는 바쿠고의 등을 팡팡 두드려주며 올마이트는 또 한 번 호탕하게 웃었다. 잘 됐어. 껄껄 웃음소리가 밤 어둠을 흔들었다.


「내 검이 선택한 소년이 내 수제자의 헤어진 소꿉친구라니, 운명의 신이시여.」
「...」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구나, 소년이여. 내 제자가 되어주지 않겠나?」


아. 미도리야가 볼 안쪽을 꽉 씹었다. 이 대답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기는 할까? 운명의 신이 준 기회였다. 놓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미도리야가 눈을 빛내며 올마이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이름은?」


올마이트가 물었다. 하지만 대답한 건 미도리야가 아니었다.


「데쿠.」


달 밑 깊은 어둠 쪽을 막연히 쳐다보고 있던 선홍색 눈이 툭 입을 열었다. 데쿠...라니, 그게 진짜 이 아이 이름이냐? 올마이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그때 처음으로 바쿠고의 입매가 희미하게 비틀렸다. 꼭 웃는 것처럼.


「이즈쿠라고, 미도리야 이즈쿠.」
「...」
「맹한 건 여전하네, 데쿠새끼.」

그래도 역시 그 많은 우연과 필연 중에서 너를 다시 만난 게 그날 가장 기뻤다.







#

신이 내린 성검 올마이트에겐 두 제자가 있었다. 불의 바쿠고 카츠키, 힘의 미도리야 이즈쿠.

언제부터 저희 둘에게까지 그런 이상한 별칭이 붙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워낙 용사들이 넘쳐나는 시대다보니, 사람들은 용사들의 개성을 구분하기 위해 별칭을 붙여 부르곤 했다. 바쿠고는 불 같은 그 성질머리 탓도 있겠지만 (성질 더럽단 소리다), 저 홀로 동쪽산의 레드 드래곤을 제압한 후부터 그런 별명을 달고 다니게 됐다.

그땐 참 멋있었지. 미도리야가 쓰게 웃었다. 나한테는 대체 왜 힘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생각을 삼킨 미도리야가 눈앞에 서있는 문고리에 열쇠를 꽂아넣고 절그럭절그럭 열쇠를 돌렸다. 오늘따라 이 문이 왜 이렇게 안 열리는지 모르겠다. 자물쇠를 바꿨나?  물론 산중턱에 있어 중부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는 이 전망 좋은 전원 주택이 미도리야의 집이란 뜻은 아니다. 이 열쇠는 세 번째 울타리 아래 쪽에 묻힌 것을 파낸 것이었다. 당연히 몰래.


“돌아오기 전에 조용히 들어갔다 와야하는... 힉,?!”


끼긱끼긱 쇳소리를 내면서 억지로 돌아가던 열쇠가 문 안쪽에서 뚝, 소리를 냈다. 설마. 미도리야가 제 손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손바닥 안엔 뚝 부러진 열쇠 손잡이만 남아 있었다. 하하... 숲색 눈이 쓰게 웃었다. 난 죽었다. 우라라카군한테 붙여달라고 하면 붙여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용사학교에서 기초교양수리마법 시간에 좀 더 열심히 공부할 걸. 그래도 어디 숨겨놓으면 모르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던 그때였다.


“야.”


어깨가 잡혔다. 동시에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차마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마른침만 꼴깍 삼키는 미도리야의 귓가에 슥 다가온 입술이 하, 웃었다. 숲색 눈이 본능적으로 질끈 감겼다 떠졌다. 나는 진짜 죽었다.


“너 뭐하냐, 내 집에서.”
“...”
“설마 열쇠 또 부러뜨린 건 아니겠지.”
“하하, 설마! 내가 어떻게 캇쨩한테 그런 짓을!”


어색하게 웃으면서 몸을 돌린 것과 동시에 뚝 부러진 열쇠 반쪽이 두 청년의 발 사이로 툭 떨어졌다. 하. 바쿠고가 입끝을 비틀었고, 미도리야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됐다. 다음은 예상한 대로였다. 벼락같이 잡힌 멱살이 그대로 문쪽으로 밀어 붙여졌다.


“아주 뒤져 버리고 싶지, 어!?!!!”
“아니, 캇쨩, 어! 여기에는 내 나름대로 깊고도 신중한 사연이 있는데, 내가 캇쨩 집에 몰래 숨어 들어와서 빈집털이를 하려고 하던 게 아니라...!”


바쿠고는 일언반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대로 미도리야를 멱살채 들어올린 바쿠고가 오른발로 현관문을 걷어찼다. ...처음부터 잠겨있지 않았구나. 어쩐지. 멱살을 잡혀 질질 끌려가면서 미도리야는 생각에 잠시 허망해졌다. 이젠 어떻게 될까. 지난 번에 이 집을 몰래 열고 들어왔을 때는 화덕에서 끓고 있던 달토끼 스튜의 향기에 유혹당해 결국 세 그릇을 퍼먹고 있다 걸렸었고, 그때도 이렇게 멱살을 잡혀 침대에 메다꽂혔다. 그리고 그후에 뭘 당했는지는 운명의 신만이 아실 터였다. 영원히 그래야했다.


“그래도 내 말은 좀 들어주면 안될까, 캇쨩? 이번엔 진짜, 일이 있어서... 윽,!”


말을 다 맺기도 전에 멱살을 잡힌 몸이 그대로 던져졌다. 이번엔 다행히 침대가 아니라 소파였다. 적어도 여기라면 양손발을 결박시킬 기둥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소파 양쪽을 바삐 눈으로 훑어보기가 무섭게 그대로 다가온 바쿠고의 발이 미도리야의 복부를 힘껏 눌렀다. 또 한 번 컥 소리가 절로 터졌다. 선홍색 눈이 잔뜩 일그러진 숲색 눈을 차갑게 뚫어보았다.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랬지.”
“...”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일주일동안 네 발로 기어다니게 만들어버릴 거라고 했지, 씨발새끼야.”
“그러니까 이번엔 진짜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내가 말... 캇쨩. 설마 아직도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올마이트가 사라져버린 게?”


사납게 좁아지던 선홍색 눈이 일순 움찔 했다. 것봐. 미도리야가 짧게 헛숨을 들이켰다. 이런 점은 열 살 때나, 다시 재회한 열다섯 살 때나, 스물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바쿠고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남을 속일 바엔 입을 다물어버릴 만큼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었다. 그래도 이 점에 대해선 미도리야도 할 말이 있었다. 표정을 지운 숲색 눈이 바쿠고를 또렷이 노려보았다.


“내 탓 아냐.”
“지랄한다. 그럼 씨발, 내 탓이냐!?”
“내 탓도, 캇쨩 탓도 아냐. 누구 탓도 아닌 문제야. 왜 그걸 인정을 안 해? 그러니까 우리 사이도 잘 될 리가... 아냐. 됐어. 이런 얘기 하려고 온 거 아냐.”
“...”
“다리 치워. 밟지마. 오늘은 키스하면 입술을 물어 뜯을 거야.”
“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미쳤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핏대를 빡 올리는 목이 벌갰다. 내가 미쳤다고 이딴 새끼랑. 툴툴 거리면서 바쿠고가 더러운 걸 밟았다는 듯이 미간을 구기면서 다리를 치웠다. 어이가 없었다. 이딴 새끼랑 멱살잡이 하다가 석 달 전에 앞을 세운 사람이 할 소린 아니잖아. 스튜 먹다가 침대까지 끌려 들어갔던 그날, 미도리야는 사흘동안 이 집 밖을 나가지 못했었다. 걸을 힘이 없어서. 하기야, 흥분해서 먼저 입술 찍었던 건 내 쪽이니까 여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였고, 일에는 우선 순위가 있는 법이다. 오늘 열쇠까지 부러뜨리면서 바쿠고의 집에 들어오고 싶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몰래 처리하려던 건 이미 들킨 순간 끝났다. 미도리야가 깊게 심호흡을 했다. 황제의 전령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툭 입술을 비집었다.


“성검이 사라졌어.”


짜증스럽게 머리를 헝클이던 바쿠고의 손이 우뚝 멈췄다. 선홍색 눈이 미도리야를 말없이 돌아봤다. 하. 낮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기지마.”
“농담할 거면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았어.”
“그 망할 검이 선택한 게 넌데 갑자기 사라지긴 씨발 왜 사라져.”
“맞아. 그 검은 나를 선택했지. 난 그걸 지키지 못한 거고. 무책임한 등신이고.”
“...”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면 나중에 해. 얼마든지 욕해도 괜찮아. 지금은 아닌 것 같아.”
“...”
“네가 필요해. 네가 나를 도와줘야 해, 캇쨩.”


 바쿠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존재는 이 세계에 오로지 너 밖에 없을 테니까. 나와 함께 자란, 올마이트의 밑에서 함께 공부한. 우리가 나눈 것은 서로의 체액 뿐만이 아니었다.
 
 
 “캇쨩은 알고 있지? 올마이트가 그 검을 찾았던 곳, 그 검이 태어난 곳. 그 검이 돌아갈만한 곳.”
 “...”
 “그 길을 다녀오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캇쨩 밖에 없잖아.”
 
 
 얼음 속에서 긴긴 잠을 자고 있던 마족의 왕이 눈을 뜨던 그때, 전쟁의 불온한 기운이 서쪽 벽을 서서히 물들이던 그때였다.
 
 
 (*)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올마이트가 사라졌고
 2.마왕이 다시 깨어나는데
 3.마왕을 벨 수 있는 것은 올마이트의 성검 뿐이건만
 4.성검도 사라져버렸고
 5.성검이 선택한 주인은 미도리야인데
 6.성검을 찾을 수 있는 존재는 바쿠고 뿐
 
 이라는 그런 류의 설정인 듯 합니다...... 십걸 두번째 일러 진짜 검 나눠가진 캇뎈 보고 너무 뽐뿌 심하게 와서 며칠동안 앓다가 결국 이 야밤에 저지레를 하고....ㅠ.ㅠ.ㅠ.ㅠ.ㅠ 십걸로는 이미 라자를 쓰고 있긴 하지만 가벼운 판타지로 함 쓰고 싶었어요... 아마도 이 이야기도 언젠가 길게 써야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ㅎㅎㅎ 마왕은 아마도 토도로키일 것....
 
 무튼 간만에 판타지 쓰니까 재밌고 좋네요ㅠ.ㅠ.ㅠ.ㅠ.ㅠ.ㅠ.ㅠ 덕분에 간만에 라자 생각도 나고ㅠ.ㅠ.ㅠ.ㅠ.ㅠ 조만간 라자도 이어 쓰겠다 다짐을 하며,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당 ///////

?
  • OOP 2019.02.02 00:31 SECRET

    "비밀글입니다."

  • 꼬마어른 2019.02.02 00:44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ㅜㅜㅜㅜㅜㅜ
    십걸au 두번째 일러 진짜 보배로운데 그걸 더 갈고 닦아주시다니 제 목숨을 가지시옵소서(넙죽)
  • 루카님 존경합니다!! 2019.02.02 13:00
    오랜만의 판타지 진짜 사랑합니다!! 항상 눈팅만 했었는데 이렇게 댓 달게 되어 너무 감격(?)스럽네요!!
  • bbb 2019.03.20 21:55
    크으 십걸 일러에 이런 갓연성을.... 진짜 감탄하고 갑니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히로아카 2차 소설 BBS. 캇데쿠 중심으로 달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공지에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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