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결국에는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자급자족을 합니다
* 프로 격투 선수로 격투 하는 캇뎈
* 우선은 티져를 겸해 토막글
* 약수위 주의해주세요 u///u


BGM / Ohana Bam <Blow Your Mind> (2017 
Royal Rumble Theme)>


https://youtu.be/A0tZnjap718







HARD BLOW
@ruka_tea







제한시간은 30분. 규정도, 반칙도 없다. 심판의 휘슬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두 다리로 서있을 수 있는 사람이 그 판의 승자가 된다. 디매치(D-Match)는 그런 곳이었다.

[세미파이널라운드에 올라가면 패자는 거의 시체가 되어 나오지만 말이죠. 그야말로 21세기판 배틀로얄 아닙니까?]
[배틀로얄이란 표현은 너무 낡지 않았나요, 미스터 마이크? 저는 그보다는 혁명이라 불러주고 싶어요. 격투의 혁명, 인간한계의 혁명… 그야말로 예술이지 않나요? 인간이 가진 모든 근육과 능력을 동원해서 상대를 제압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아…!]
[예, 마운트 레이디가 잠시 흥분한 것 같죠, 여러분? 자, 아직 흥분하긴 일러요! 2038 디매치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Yeah, 모두 소리 질러!]
[어머, 참. 미스터 마이크. 여긴 중계석이라구요.]

사람들은 먹고 살만하면 보다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필연적이다. 매일 빈 자리가 없었다는 콜로세움에서 로마의 귀족들은 사자에게 물어 뜯겨 죽어가는 검투사를 보며 축배를 들었고, 그 시절 로마는 꽤나 살만 했다. 냉전시대의 경제부흥기 때는 전세계적으로 레슬링이 가장 인기 있었다.
2038년의 일본도 얼추 비슷했다. 먹고 살만 했고, 즐길 여유가 있었다. 사람들은 상대가 완전히 쓰러질 때까지 30분동안 치고 받는 이 원시적인 격투기에 최고로 흥분했다. TV 화면 속에서 금발머리칼의 마운트 레이디가 격양된 얼굴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상반신을 탈의한 근육질의 남자들이 30분동안 목숨을 걸고 맨몸으로 결투를 한다… 이것만큼 섹시한 포르노가 있겠어요?]

디매치는 모든 것이 직관적이고 간편했다. 명심해야할 규칙은 딱 다섯 가지 뿐이었다. 첫째, 맨손으로 결투하며 둘째, 몰래 흉기를 숨겨 들어올 수 없도록 상의는 모두 탈의한다. 셋째, 남성만이 출전 가능하며 넷째, 기술 제한은 없다. 30분이 지났을 때 두 다리로 서있는 자를 승자로 간주한다. 이게 마지막 규칙이다.
경기는 천장까지 철망으로 모두 감싼 디매치 전용 링에서 벌어진다. 선수들은 30분동안 지름크기가 10미터 밖에 되지 않는 좁은 링 안에서 상대가 두 발로 설 수 없을 상태가 될 때까지 싸워야 한다. 피할 곳도, 달아날 곳도 없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결투는 언제나 격렬했다. 본선 무대인 세미 파이널 라운드에 올라가면 그 정도가 더욱 치열해져, 이따금은 경기 중에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도중에 사망을 했다고 해서 선수가 살인자로 비난 받는 경우는 없다. 관중들은 그런 시시한 법정 싸움으로 이 격렬한 격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하지만 목숨을 걸 가치가 있죠, 디매치는.]

화면 속에서 프레젠트 마이크가 카메라를 향해 찡긋 윙크를 했다.

[그 죽음의 전장을 헤쳐 나올 수만 있다면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거든요. 그래요,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우리의 챔피언처럼!]

대기실 한가운데에서 무심히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던 숲색 머리가 우뚝 동작을 멈췄다. 머리까지 덮어 쓰고 있던 후드를 끌어내리면서 숲색 눈이 처음으로 멋대로 켜져 있던 TV를 돌아보았다. 한때 전세계 수많은 남성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었다는 여성격투리그의 전 챔피언이 입을 틀어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어머, 세상에. 바쿠고 카츠키의 얘기를 할 때가 되었나요, 벌써?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디매치 챔피언의 이야기를 할 타이밍인 건가요? 제가 정말 팬이랍니다. 아, 그 남자는 정말이지…!]
[예, 마운트 레이디가 또 흥분을 해버리고 말았는데요! 그럴만한 가치가 있죠?]
[그럼요! 디매치 최초로 3년 연속 1인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챔피언이 또 있겠어요?]
[올해로 이 대회도 벌써 20년을 맞고 있는데 말이죠. 바쿠고처럼 압도적으로 강한 선수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거든요! 작년 파이널 라운드 때는 질 뻔! 했었지만! 정말로 강력한 상대를 만났었죠?]
[아, 어떡하지…! 그 선수도 너무 좋은데!]

매년 디매치가 시작되는 3월이면 어느 채널을 틀어도 같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경기 화면으로 넘어간 TV 안에서 색이 밝은 머리칼의 선수가 링에 기대 비스듬히 서있었다. 아, 이건 재작년 파이널이구나… 화면을 바라보던 숲색 눈의 남자가 버릇처럼 흐 웃었다. 이 경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제 곧 어떤 일이 벌어질 지에 대해 남자는 모두 알고 있었다. 남자가 입 안으로 가만히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여기에서 니킥Knee-kick.”

링 밖에 있던 심판이 삑, 휘슬을 불었다. 동시에 비스듬히 링 벽에 기대 서있던 색이 밝은 머리칼이 바닥을 박차며 순식간에 화면에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의 얼굴을 무릎으로 힘껏 찍어 올리고, 선수는 넘어가던 상대의 가슴팍을 그대로 걷어찼다. 단숨에 반대편 허공에 떠오른 상대선수의 몸이 링의 철망을 요란하게 흔들었다. 왈칵 피를 토하는 상대가 무릎을 펼 틈도 주지 않고 선수는 곧바로 상대의 뒷목을 움켜잡으며 그 몸을 힘껏 바닥에 내동댕이치듯 찍고 그대로 정신이 없는 상대의 허리에 올라타며 턱 밑을 쳤다. 상대는 이미 반격할 기력과 의지를 잃고 무차별적인 구타에 무력한 얼굴로 축 늘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순식간에 이어지는 그 모든 동작에 딜레이도, 군더더기도 없었다. 저 선수의 특기 중 하나였다. 연속된 발차기에서 제압까지 이어지는 이 동작을 사람들은 흔히, 챔피언 액션 Champion Action이라고 불렀다.

[예, 챔피언 액션 나왔죠! 3년간 바쿠고 카츠키를 챔피언으로 들어 온 연속기 아닙니까! 과거 스승이었던 올마이트도 비슷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공격적인 것이 바쿠고 카츠키의 챔피언 액션인데요! 자, 마운트 레이디. 전직 격투 여신이 보시기엔 지금 이 동작은 어떤…]
[아, 조용히 좀 해봐요. 이제 가장 중요한 장면인데!]

TV 속의 목소리들이 비명처럼 흥분했다. 무슨 장면을 기다리고 있는지 남자는 알고 있었다. 맞아, 여기. 남자가 유독 크고 둥근 숲색 눈을 깊게 감았다 떴다. 화면 안에서 마지막 펀치를 상대의 얼굴에 찔러넣은 선수가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타이트하게 클로즈업된 화면 속에서 유독 꼬리가 길고 사납던 선홍색 눈이 픽, 웃었다. 승리자의 얼굴처럼.
아, 역시 이 얼굴이 가장 좋아. 숲색 눈이 흐, 웃었다. 노크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급한 모양인지 대답을 기다리지 못한 안경을 쓴 성실한 인상의 남자가 문을 열었다. 화면 안에선 이제 거의 반쯤 울고 있는 마운트 레이디의 절규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저거라구요. 저 섹시한 얼굴을 보라구요! 아, 어떻게 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어요? 아, 하지만 지기 직전의 얼굴도 너무 좋아… 작년 파이널라운드는 정말, 아, 정말…!]
[명승부였죠. 드디어 바쿠고 카츠키의 챔피언 타이틀을 위협할 라이벌이 나타났는데요! 이 선수 별명이 참 특이하단 말이죠. DEKU라는 이름을 쓰는데…]
“첫 라운드는 1시간 뒤로 잡혔다, 미도리야.”
“아, 응. 알겠어. 항상 고마워, 이이다군.”

별말을. 남자가, 이이다가 안경 끝을 밀어 올리며 가볍게 말을 받았다. 식사는. 이이다가 물었다. 미도리야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반응을 본 이이다의 얼굴이 자못 심각해졌다. 시합을 앞두고 끼니를 거르겠다는 소속 선수의 대답이 트레이너에게 당연히 반가울 리가 없었다.

“이제 겨우 예선이 시작된다고 하지만 끼니를 거르면 몸을 망칠지도 모른다. 가급적 식사는 거르지 않는 게 좋을 텐데.”
“괜찮아. 너무 배가 부르면 오히려 몸이 잘 안 풀리니까, 흐… 1시간 뒤니까 시간도 애매하잖아.”
“……”
“그보다는 러닝을 좀 하고 싶은데… 이 경기장 안에 달릴만한 장소가 있을까?”

돌아오는 대답에는 납득을 한 모양인지 이이다의 얼굴에서 걱정의 빛이 조금 가셨다. 하긴, 1시간은 애매한 시간이지. 혼잣말을 삼킨 이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건물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 이이다는 이미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러닝 트랙이라면 옥상 쪽에 있을 거야. 여기서 3개층을 더 올라가면 된다. 이온음료 급수대는 함께 있는 탈의실 안에 비치되어 있으니 마음대로 사용해도 상관없다더군. 아마 지금 이용 중인 다른 선수는 없을 거야. 트랙을 사용할 거라면 지금 쓰는 게 가장 좋을 거다.”
“아, 진짜? 진작 거기로 가볼 걸 그랬네, 흐… 고마워. 그럼 나는 잠깐 가서 달리고 올게. 시간이 되면 호출해줘.”
“그건 문제가 아니다만… 식사는 정말로 괜찮은가.”
“응, 체할까봐 걱정되기도 하고… 오늘은 이상하게 자꾸 긴장이 되네, 하하.”

아니, 긴장되는 건 시합 때문이 아닐 거야. 네 얼굴을 보면 나는 언제나 그랬었어. 생각을 삼키며 미도리야는 TV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화면 안에선 익숙한 얼굴들이, 익숙한 패턴의 킥과 기술을 보이며 익숙한 함성 속에 엉켜 있었다. 작년 파이널 라운드다. 화면 안에서 선홍색 눈의 챔피언이 미도리야가, 아니, DEKU가 날린 발목을 눈앞에서 움켜잡고 있었다.
이길 수 있었는데… 쓴 웃음을 삼키고 미도리야는 그대로 화면에서 눈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는 잠시 길게 기지개를 켜고 입고 있던 후드 셔츠를 그대로 훌렁 벗어던졌다. 언더셔츠도 받쳐 입지 않은 맨몸에 바람막이 트레이닝 자켓을 걸쳐 입고 손가락에 다시 테이핑을 감는 동안에도 이이다가 잠시 걱정스러운 눈길로 미도리야를 쳐다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눈길에 미도리야는 그저 흐, 웃었다. 마음의 방향을 오래 전에 잃어버린 사람처럼, 그리운 모든 것들을 아주 먼 과거에 묻어두고 와버린 사람처럼.

“다녀올게, 이이다군.”
“그래, 몸조심해라.”
“응.”

화면 안에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가까스로 서있던 선홍색 눈의 챔피언이 오른 주먹을 하늘을 향해 높게 치켜들었다.










*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살아남아야 했었다. 5년 전, 미도리야 이즈쿠를 움직이던 명제는 오로지 그 두 가지 문장뿐이었다.

「올마이트의 제자 중 하나는 디매치 프로 선수로 데뷔해서 잘 먹고 잘 살고, 또 한 제자는 이딴 투기장을 돌아다니면서 하루하루 먹고 사느라 바쁘고…」

오래 전, 사춘기의 열병과 함께 도망치듯 스승의 체육관을 떠난 이후로 미도리야는 돈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도쿄에서 격투 외엔 취미조차 없던 십대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다. 불법 사설 도박이 벌어지는 투기장에서 말이 되어 죽지 않기 위해 상대와 싸우는 것… 애초에 사람 사귀는 재주가 서툴러 경호 일을 하기에는 붙임성이 없던 미도리야가 그나마 어린 나이에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불안정한 사업인만큼 투기장은 자주 단속 때문에 문을 닫거나 망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오너들이 미도리야의 주인이 되었다.
오너들은 무엇을 요구해도 순순히 따르는 미도리야를 좋아했다. 사실 순순하다기보다는 체념에 가까웠다. 언제나 포기는 빨랐었다. 그 ‘손님’이 찾아왔을 때에도 미도리야는 가학 취미가 있던 오너의 명령으로 복서 팬츠 한 장만 입고 목에 개에게나 채우는 목줄을 달고 트레이닝 룸에 앉아 디매치 중계를 보고 있었다.

너도 디매치 프로가 되고 싶니? 그것이 ‘손님’이 걸어온 첫 번째 말이었다. 입술에 남은 깊은 흉터와 재색 머리칼을 가진 남자였다. 시가라키 토무라라는 이름이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

목줄에 묶여 바닥에 웅크려 앉아 있던 미도리야의 머리끝부터 한 뼘 밖에 되지 않는 복서팬츠의 앞섶까지 천천히 시선으로 훑어보며 남자는, 시가라키는 중얼거렸다. 네가 나를 따라오면, 내 말을 잘 듣겠다고 하면. 그리고 대답 없는 미도리야의 턱을 움켜잡고 들어 올리면서 턱짓으로 TV 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나오는 저 새끼를 링 안에서 때려죽일 수 있다면.」

화면 안에서 색이 밝은 머리칼의 신인 선수가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바쿠고 카츠키… 자막에 박혀있던 이름을 시가라키는 탁한 목소리로 몇 번이고 우물거렸다. 저 새끼, 저 재수 없는 녀석 말이야.

「아, 진짜 죽이란 뜻은 아니고… 저건 우리 선생이 올마이트에게서 훔쳐온 보물이거든. 잘 생겼지? 싸움은 더 끝내줘. 저 새끼는 앞으로 챔피언을 세 번쯤은 해먹을 것 같거든. 분명 투자한 돈의 10배는 벌어올 거야. 근데 또 그런 합법적인 것만으론 돈을 벌 수 없거든. 우린 그것보다 더 큰 돈을 벌고 싶고, 또 네가 도와준다면 벌 수도 있고…」
「……」
「저 새끼가 챔피언이 됐을 때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서 저 챔피언을 묵사발로 만들어줄 그런 다크호스가 우린 필요하거든…」

예컨대 도박을 위한 패였다. 공식적으로 디매치는 티켓과 상금, TV 중계료 이외의 수익을 인정하지 않는다. 허나 뒤에서는 알음알음 손이 큰 자들이 모여 디매치의 결과를 두고 도박이 벌어진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시가라키는, 정확히 시가라키가 모시고 있는 ‘선생’이 가진 도박장은 그중에서도 가장 판돈이 컸다. 경기의 승패부터 선수가 무슨 손을 썼으며 경기가 몇 분내로 끝났는지 같은 디테일한 항목에 사람들은 돈을 걸었고, 선수의 몸짓 하나로 사람들은 수억 엔의 돈을 잃었다. 사람들은 왜 돈을 잃는 줄도 모르면서 돈을 잃었다. 그 돈은 모두 ‘선생’에게 흘러 들어갔고, ‘선생’은 언제나 욕심이 많았다.

「바쿠고는 이기는 패지. 너는 지는 패가 되는 거야, 미도리야. 원래 도박은 ‘져야’ 돈을 벌거든.」

미도리야의 가슴팍을 미끄러진 손이 복서 팬츠의 앞섶을 꾹, 눌렀다. 그리고 천천히 주무르며 귓가에 다가온 습한 입술이 낮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하자, 다크호스.

「우린 널 꽁꽁 숨겨 놓고 있다 2년 후에 데뷔시킬 거야. 네가 할 일은 뭐… 어려울 건 없어. 그쯤엔 바쿠고가 챔피언이 되어 있겠지? 그럼 그 녀석이랑 붙으면서 열 번 중에 한 번만 이겨주면 돼. 그래야 그 녀석에게 돈을 건 자들이 돈을 잃거든. 그리고 다음에도 또 돈을 걸지. 멍청이들처럼.」
「……」
「그 올마이트에게서 함께 배운 사이잖아, 너희.」

앞을 주무르던 손은 너무나 차가워서 제대로 발기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미도리야에겐 별로 없었다. 이 남자를 따라가면 데뷔를 할 수 있다. 더 이상 언제 망할지 모를 투기장의 말이 되어 개싸움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남을 죽도록 패야지만 물건이 서는 변태 같은 오너가 휘두르는 채찍에 스팽킹을 당하거나 무차별적인 폭력을 참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제대로 된 트레이너, 제대로 된 체육관, 또 제대로 된 거처를 가질 수 있다. 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디매치의 상금이 라운드마다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선 미도리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이름이 가장 구미가 당겼다. 바쿠고 카츠키.

「할게요.」

대답하며 미도리야가 제 앞을 주무르던 시가라키의 손목을 잡았다. 금세라도 부러뜨릴 것처럼 힘껏 힘을 주면서 미도리야는 덧붙였다. 그러니까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전 매춘부가 아니에요.」

재색 눈동자가 비릿하게 웃었다.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래, 매춘부는 아니지. 너는 ‘상품’이야. 질 상품, 져줄 상품, 아주 죽여주게 패배해줄 상품… 그리고는 미도리야의 목을 짓누르며 그대로 바닥에 힘껏 깔아 눕혔다. 시가라키의 손 안에 잡힌 목줄의 사슬들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덜그럭 거렸다.

「너는 오늘부터 딱 한 남자한테만 다리를 벌리면 돼. 바쿠고 카츠키. 네 그 빌어먹을 소꿉친구. 그 새끼는 주근깨 있는 놈들한테 밖에 안 서거든.」
「……」
「둘이 뭐…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열다섯 살 때.」

그 말에는 미도리야도 대답할 수 없었다.









*

옥상에 있을게.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오르면서 미도리야는 핸드폰 메시지창에 그렇게 적다, 어쩐지 부족한 것 같아 한 단어를 더 덧붙였다. 탈의실. 그리고 전송했다.
이이다의 말대로 경기장 옥상은 거대한 러닝 트랙이었다.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을 덮어두긴 했지만 하늘을 보라는 배려인지 천장은 모두 투명한 아크릴이었다. 트랙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것 역시 이이다의 짐작대로였다.

“날씨 진짜 좋다…”

미도리야가 테이핑이 된 양손을 하늘 위로 뻗으며 기지개를 쭉 켰다. 이런 곳에서 달리기를 하면 기분이 끝내줄 텐데… 하지만 운동화 끈을 다시 조이는 대신 미도리야는 입구 쪽에 붙어 있던 탈의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차피 달리러 온 건 아니었다. 이이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하긴, 거짓말이라면 1년 전부터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이이다는 전혀 모를 거다. 자신이 매일 체육관 옥상에서 뭘 하는지,

그 옥상에서 누굴 만나 무엇을 하는지.

문을 떠밀려던 순간, 계단 쪽에서 누군가 걸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도, 그제도 체육관 옥상에서 똑같은 박자로 걸어오는 소리를 들었었다. 미도리야가 눈을 감으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너는 언제나 딱 세 박자였다.

하나, 둘, 셋.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아, 역시. 미도리야가 천천히 뒤를 향해 돌았다. 오늘도 표정 없는 선홍색 눈이 거기 있었다. TV보다는 역시 실물이 좋아. 생각하며 미도리야가 그 눈을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한때는 망령 같았던, 이제는 아예 뿌리를 내려버린 것처럼 혀 밑에 붙어버린 유일한 이름이었다.

“안녕, 캇쨩.”

이 이름에 떠밀려서 나는 여기까지 왔어. 미도리야가 잠시 입술 끝을 짓이기듯 질근거렸다. 이 이름을 좇아서 난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아직은 굴러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곧 굴러 떨어질 날도 오겠지. 표정 없던 선홍색 눈이 날카롭게 일그러졌다. 동시에 발길을 박찬 바쿠고가 순식간에 걸음을 좁히며 다가와 미도리야의 멱살을 힘껏 틀어잡았다.

오늘은 어디부터 때려올까. 미도리야가 생각들로 어지러워진 눈을 버릇처럼 일그러뜨렸다. 얼굴?

아니, 너나 나나 시합이 코앞인데 카메라 앞에 설 상대를 두고 넌 그런 귀찮은 짓은 하지 않는다. 아예 턱으로 어퍼컷을 찔러서 내 정신을 날려놓고 시작하거나, 네 특기 중 하나인 삼단 가격으로 나를 일단 바닥으로 깔아 눕히거나.
짐작이 무엇이건 코앞에 닥친 선홍색 눈은 한참동안 미도리야를 뚫어 보았다. 폭풍전 고요 같은 잠시간의 침묵이 지난 후에야 바쿠고의 몸이 움직였다. 오른쪽 턱 밑으로 치고 들어오는 잽이었다. 아, 역시. 짐작했던 코스였지만 미도리야는 피하는 대신 그 한 대를 일부러 맞았다. 턱 밑을 갈기는 둔탁한 탁음이 퍽, 울린 것과 동시에 미도리야의 몸이 우당탕 바닥을 굴렀다. 다음엔 킥이 날아올 거야. 그건 맞으면 진짜 갈비뼈가 나갈 텐데… 생각에 황급히 땅을 짚고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미도리야의 몸 위로 올라 탄 바쿠고가 체중을 실으며 그대로 미도리야의 양손목을 우레탄 바닥 위에 찍어 눌렀다.
그제야 비로소 목소리를 들었다. 눈길처럼 날카로운 입매를 씩 밀며 바쿠고가 툭 입을 열었다. 하, 등신 새끼.

“일부러 맞았지, 씨발 새끼야.”
“그런 취미는, 흐… 별로 없는, 윽,”

허리를 타고 있던 바쿠고의 무릎이 그대로 복부를 찍어 눌렀다. 신음이 절로 컥 터져 나왔다. 그 아픔이 미도리야는 약간 억울했다. 일부러 맞은 건 사실이지만 맞는다고 발기하는 취미는 없어. 마조히스트가 아니니까. 그래도 다음에 바쿠고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솔직히 기대하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점심을 굶고 러닝을 하겠다며 오늘도 이이다에게 거짓말을 했다.

“야, 데쿠.”

바쿠고가 바닥에 널부러지듯 놓여있던 미도리야의 뒷목을 움켜잡으며 제 다리 앞으로 잡아끌었다. 역시 시합이 코앞인 탓인지 저처럼 트레이닝 져지 상의와 복서 팬츠만 걸쳐 입은 바쿠고도 속옷은 입지 않았을 것이다. 시합 직전에는 여기에 보호대를 찬다. 보호대도 없는 앞섶은 얇은 복서팬츠 너머로도 그 열기를 인지할 수 있을만큼 이미 불편하게 부풀어 있었다. 꽉, 제 손 안에 잡힌 미도리야의 머리칼을 잡아 찢을 것처럼 힘을 주며 바쿠고가 남은 말을 무심히 툭 밀어냈다.

“빨아.”

아, 역시. 쓴 웃음을 삼킨 미도리야가 긴장으로 굳은 입술을 주춤주춤 바쿠고의 앞섶 위로 가져갔다. 조금 전에 턱을 맞을 때 빗나간 주먹이 입술이라도 친 모양인지 벌어지는 입술 끝이 쓰리고 아팠다. 그래도 지금 입으로 제대로 해놓지 않는다면 이 이후는 얼마나 더 괴로울지에 대해서 미도리야는 잘 알고 있었다. 벌어진 입술이 부풀어 있던 앞을 천천히 흡, 머금었다. 머리 위로 낮은 웃음소리가 떨어졌다. 등신 새끼.

“어떻게 된 게 씨발, 하, 1년을 해대도 늘지를 않지.”
“읍, 후으… 흐,”
“뒷정리 할 시간 없으니 다 삼켜라. 어? 흘리면 죽는다.”

숲색 눈이 울컥 일그러졌다. 이대로 확 물어버릴까.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잠깐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이내 잊어 버렸다. 대화는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낮은 호흡, 젖은 살결을 비비는 물소리가 천천히 뒤얽혔다. 고개를 앞뒤로 저으면서 미도리야는 잠시 눈길을 흘깃 들어 바쿠고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말없이 입을 꾹 닫고 일그러진 선홍색 눈 사이가 딱히 나쁜 얼굴은 아니었다. 기분 좋은가보다. 왠지 모를 만족감에 흐, 소리 없이 웃으면서 미도리야는 울대를 느리게 밀며 입안에 고여 있던 것들을 식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넌 오늘 질 거야, 캇쨩.

언제나처럼 오늘 아침에도 시가라키에게 문자가 왔다. 대략적인 것들이다. 오늘 내가 이겨야 할 시합은 무엇이고, 져야할 시합은 무엇인지. 내가 무슨 동작을 취해야하며, 질 때는 또 어느 쪽을 먼저 뻗어야 하는지. 원칙적으로 디매치의 예선전은 시합 직전까지 어떤 상대와 맞붙는지 알 수가 없다. 허나 미도리야는 다르다. 어디에서 들어오는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가라키는 언제나 아침마다 미도리야가 누구와 붙게 되는 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전달했고,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오늘 마지막 시합의 상대는 바쿠고였다.

“제대로 안 빨고 딴 생각 하지.”

잠깐 혀 놀림이 느려지기가 무섭게 뒷머리를 잡아당기던 힘에 턱이 들렸다. 그 바람에 잠시 머금고 있던 것을 놓쳐버린 미도리야가 흐물흐물 웃었다. 미안… 그리고는 잠자코 입술을 붙이며 이젠 제법 단단해진 것을 다시 입 안에 머금었다. 딴 생각하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진짜 귀신이다… 그런 생각들을 삼켜보다 미도리야는 이내 또 머릿속을 흐려 버렸다.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내 일이 이거잖아. 돈을 벌라고 여기 있는 거잖아. 그뿐이다. 너와 시합을 해서, 시가라키의 말대로 너를 이기면 된다. 작년 파이널 라운드에서 시가라키의 말대로 내가 일부러 네게 졌던 것처럼.
별 거 아닐 거야. 미도리야는 생각했다. 그뿐이었다.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시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으로 널 이기게 될지. 귓가까지 내려온 손으로 미도리야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바쿠고가 낮은 호흡을 잇새로 사납게 밀어냈다. 사정감이 치미는지 잔뜩 괴롭게 일그러진 선홍색 눈이 미도리야를 뚫어보며 꽉 이를 악물었다.

나는 오늘은 절대로 안질 거니까. 바쿠고가 말했다.

“데쿠새끼 입에서 가면 늘 이기거든.”

그때 너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





결국에는 또 이렇게 욕망을 참지 못하고 질러버리는 자급자족......... 흑흑 저는 왜 또 회사에서 이러고 있는지ㅠ.ㅠ.ㅠ.ㅠ.ㅠ.ㅠ.... 그래도 보고 싶었던 것을 썼으니 후련한 기분으로 이제 일을 하러 갑니다.... 이 글은 언젠가 여력이 닿으면 풀버전 들고 오겠습니다u////u

+ 너무나 감사한 선물을 받아서 허락 받고 슬그머니 가져와봅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안경님께서 그려주신 캇뎈 https://twitter.com/meganeo__o/status/973552073252880384

은 너무 좋아서 오조오억번 울부짖어 버린 것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흑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저와 함께 천국 가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


?
  • OOP 2018.03.13 17:17 SECRET

    "비밀글입니다."

  • 달군씨 2018.03.13 19:03
    안녕하세요ㅠㅠ 진짜 너무 오랜만에 댓글 씁니다.. 진짜 너무 오랜만에 와서 읽었는데 어쩜 글이 여전히, 아니 전보다 더 아름다운지ㅣㅣㅠㅠ 어떻게 복싱으로 이런거 진자ㅠ ㅠㅠㅠ ㅠ ㅠ ㅠ ㅠ ㅠ ㅠ 자급자족 너무 감사해요ㅠ 보는 저는 맨날 박수박쑤!!!!!
  • Deku 2018.03.13 23:06 SECRET

    "비밀글입니다."

  • ㅇㅇ 2018.03.15 02:11 SECRET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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