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고전에_알오버스로_캇데쿠
* 알파 귀족 x 오메가 황태자 이야기
* 약수위 주의해주세요



http://youtu.be/2-9CnV_cLsE









모두가 하늘의 뜻이라고 말했다. 양인인지, 음인인지. 그리하여 자신의 기질이 해인지, 달인지.

‘해와 달이 서로에게 끌리는 것처럼 이 역시 순리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그 누구도 자신의 아이가 어찌 태어날 지 알 수가 없단다.’

해와 달의 탄신에 대해 얘기하던 야기의 말투가 조심스러웠던 연유는 분명 미도리야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때 미도리야는 열 살이었다. 그 누구도 미도리야에게 왜 이 별궁에 기거하게 되었으며 어찌 아버지는 하루도 들러주지 않는지에 대해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으나 그쯤 미도리야는 이미 눈치로 다 짐작하고 있었다.
열 살은 그리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야기는 언제나 이 이야기를 할 적에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때도 미도리야의 곁에는 바쿠고가 함께 앉아 있었다. 나란히 자신을 올려보며 또랑또랑 눈을 빛내는 두 어린 제자를 야기는 몹시 아꼈었다. 수의관의 신분에서 대외 의관이 되어 바다 건너 나라에 의술을 전하러 넘어가기 전까지 야기는 오랫동안 미도리야와 더불어 바쿠고의 가장 존경받는 스승이었다.

‘양인도, 음인도, 중인도 마찬가지지. 태어나고도 열다섯 살이 되어 발현을 해야 그 기질을 정확히 알 수 있단다. 생각해보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가 양인이고 음인이고 중인인 것을 알게 되면 어찌 되겠니?’
‘……’
‘음인인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게 되겠지.’

누구나 강한 것을 좋아한다. 양과 음으로 갈라져 있는 세계에서 음인은 중인보다 못한 존재였다. 미도리야 황가가 각지에 흩어져 야만을 일삼던 지역 영주들을 평정하고 이 자리에 통일 국가를 세우기 전에는 음인은 그저 씨를 배기 위한 존재로 취급을 받았다. 그때는 음인으로 판정 받은 아이를 유곽에 파는 일도 허다했다.
초대 황제가 음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천년이 흐른 지금엔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 안에 뿌리 내린 정서까지 막을 수는 없었을 터다. 이 나라 주요 요직은 대부분 양인과 중인들의 것이었고, 음인의 신분으로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공직은 오로지 황궁의 일을 도맡는 내관과 그 수장인 내관장 뿐이었다. 도읍과 떨어진 지방의 귀족들은 아이가 음인으로 태어나면 중인인 체 하며 그 기질을 숨겼다.
허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야기는 언제나 그렇게 가르쳤다.

‘기실 그렇게 태어난 것뿐 아무 죄도 없는 이를 기질만으로 판단하고 혐오해선 결코 안 되는 것이다. 그 상대가 선택해 태어난 삶도 아니지 않느냐. 그것은 그저 기질일 뿐이지. 너희의 눈동자색이 숲처럼 짙고, 불길처럼 붉은 것과 다르지 않아. 세상에는 회임 중인 아이의 기질을 바꿔놓는 탕약도 있다곤 하지만… 지금은 그 약물도 모두 금지되었지. 그것은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며 자칫하면 산모의 목숨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것이다.’
‘……’
‘아무리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그런 죄는… 하늘은 알고 있겠지.’

가끔 야기는 뜬구름을 잡는 것처럼 불현듯 그런 혼잣말을 하다 말꼬리를 흐려버리고는 했다. 지금까지도 미도리야는 야기가 한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시간은 미도리야에게 늘 소중했다. 야기는 자신에게 깍듯하게 경어를 쓰면서도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별궁의 내관들과 확연히 달랐다. 가장 좋은 스승, 그리고 가장 좋아하던 소꿉동무… 어쩌면 그 시절이 지금껏 미도리야를 버티게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야기는 바쿠고와 미도리야가 발현을 하기도 훨씬 전, 열두 살 어린 나이였을 적에 이 나라를 떠났다. 황태자의 스승 역을 스스로 자처했다고는 하나 야기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수의관이었다.

‘더 큰 업을 이루라고 다녀오라 하니 녹을 먹는 관리는 그저 따라야지. 아직 의술이 미약한 나라에 의술을 전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 또한 가치 있는 일 아니겠나, 하하.’

아쉬움에 엉엉 우는 미도리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야기는 호방한 얼굴로 작별 인사를 했다. 곁에 앉아 있던 바쿠고는 이미 코가 발갛게 물들고, 눈이 그렁그렁 한데도 이를 악물며 눈물을 참았다. 그 얼굴이 귀엽고 대견했는지 야기는 바쿠고를 보며 그저 웃었다. 그리고 저를 꼭 끌어안고서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미도리야를 슬그머니 떼어놓으며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절을 했다. 미도리야를 항상 아끼는 제자로만 대해왔던 야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황가의 후계자에게 예를 갖춰 드리는 인사였다.

‘전하께서는 필경 좋은 황제가 되실 것입니다. 저는 그때 폐하를 뵈러 돌아오겠습니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전하.’
‘……’
‘허니 너도 얼른 자라거라, 카츠키. 네가 곁에서 전하의 힘이 되어 드려야 한다.’

어떠한 순간에도, 설령 그 어떤 구름이 해와 달의 사이를 갈라놓아도, 그 사이를 기어코 찢어 놓으려 사악한 칼을 들이대는 순간에도.

그때도 바쿠고는 그저 불퉁거렸다. 그딴 건 말 안 해도 알아.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입술을 꽉 악무는 게 우습고 재밌어서, 엉엉 울고 있던 것도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미도리야는 그만 픕 웃음을 터뜨렸다 바쿠고에게 엉덩이를 한 대 걷어차였다. 스승은 그저 투닥거리는 어린 동무들을 온화한 얼굴로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하늘이시여, 부디 이 아이들을 지켜주시길.

아직 바쿠고와 미도리야가 해와 달임을 모르던 그 시절, 열두 살 어느 겨울이었다.









를 보았다
@ruka_tea



09









태자가 돌아왔다.

언제 나섰는지를 별궁에서조차 몰랐던 것처럼 돌아올 때도 태자를 직접적으로 목격한 이는 없었다. 대부분은 태자가 해의 날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것조차 몰랐다. 야밤에 몰래 나섰던 것처럼 미도리야는 해의 날이 다 저물 무렵에야 검은 장옷을 머리까지 덮어쓰고 쪽문을 넘어 조용히 별궁으로 돌아왔다.
혼자는 아니었다. 입구를 지키던 초병은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황태자를 부축해 걷던 색이 밝은 머리와 마주쳤으나 그가 주머니에 찔러 넣어준 금전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밖에는 궁의 사위四位를 지키는 초병들도, 출입을 관리하는 초소의 무위들도 누구 하나 태자를 보지 못했다.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간밤에 태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가 별궁에 다녀갔는지, 또 태자가 누구와 함께 사라졌는지.

별궁이 입을 다물었다. 태휘전 역시 침묵했다. 놀라우리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하께서 무탈하셨으면 되었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얼른 쉬시지요. 자리를 봐두겠습니다.”

내관장은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쩔쩔 매던 미도리야의 앞에 그저 묵묵히 절을 올리고 물러났다. 그뿐이었다.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누구와 함께 계셨는지 책을 잡거나 캐묻지 않았다. 다행이야. 미도리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이 일로 캇쨩이 책잡히진 않을 테니 잘 되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어쩐지 석연치 않았다. 그것은 눈치나 기지가 아니라 지금껏 감옥과 다름없는 이런 별궁에서 평생을 갇혀 지낸 채 살아온 삶이 알려주는, 일종의 감인지도 몰랐다.

무겁고 불길한 침묵이 별궁에 내려앉고 있었다.

내관장은 미도리야가 돌아온 날 이후부터 방에만 틀어박힌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매일 아침저녁마다 미도리야의 처소에 들러 용태를 살피던 일도 더 이상은 없었다. 게다가 미도리야의 맥을 짚고, 탕약을 처방해 올리던 수의관도 보이지 않았다. 내관들은 이를 두고 내관장이 드디어 힘을 잃었노라며 수군거렸다. 아마도 미도리야가 자리를 비웠던 동안 별궁에 들른 황제가 내관장을 대할 때 태도가 유독 차가웠던 것이 그 소문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확실하다니까. 드디어 황제폐하 눈 밖에 난 거지. 기실 이 내궁에서 내관장 어른만큼 힘이 센 자가 있기나 했어? 헌데도 폐하께서 우리 같은 놈들 앞에서도 그리 무안을 줬으니, 쯧쯧…”
“나 같아도 창피해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지. 나라 안을 다 살펴봐라. 음인 중에 이만큼 출세한 자가 있었는지. 헌데 노골적으로 내쳐졌으니 배신감이 오죽하겠냐고.”
“수의관 어른도 내관장 어른이 밀어줬다지? 내가 내의부內醫府 녀석들한테 전해 들었는데, 내관장 어른이 수의관으로 만들어준다고 꼬드겨서 태자전하를 모시겠다고 별궁에 자처해 왔다잖아. 그래서 중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그렇게 큰 소리를 탕탕 친 게지.”
“헌데 중인으로 만드는 일에도 실패한 데다 설상가상으로 태자전하가 수의관이 처방한 탕약 탓에 안 와도 되는 발정까지 왔으니…”
“게다가 태자전하께서 허락 없이 구금령도 어기고 밤나들이까지 다녀오셨으니… 목숨이 붙어 있는 게 다행이라니까.”

자업자득, 자승자박이었다. 지금 권력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다 화를 불러 황제폐하의 눈에 났노라며, 내관들은 유달리 더 즐거운 얼굴로 시시덕거렸다. 평소에도 내관장은 그 엄격한 성격 탓에 내관들에게 그리 존경받는 인물은 아니었다. 이 별궁 안에서 음인으로 태어난 황태자가 아닌 존재가 소문의 주인공이 된 적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터였다.
허나 입이 가벼운 내관들도 어째서 허락 없이 구금령을 어긴 황태자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는지에 대해선 짐작하지 못했다. 그저 막연한 추측으로 한 사람을 지목했을 뿐이었다.

“정위가 손을 쓴 게 아닐까? 그래도 공주마마의 아들이고 황가의 일원이니 힘이 있잖아.”
“무슨 손을 썼기에 황제께서 잠잠하시지… 그게 통 짐작이 가질 않는단 말이야. 게다가 밤놀이에 데리고 간 장본인이잖아?”
“모르지. 어쩌면 정위가 엮여 있어서 참으신 것인지도? 공주마마랑 워낙 우애가 좋으셔서 그 자식인 바쿠고 정위도 매우 아끼셨잖아. 게다가 외모도 꼭 닮았고, 양인이고, 문과에 장원급제한 자랑스러운 조카고 말이야.”
“헌데 얼굴을 내밀 줄 알았는데 한 번을 찾아오질 않네.”
“그러게. 태자전하만 안됐지, 뭐.”

내관들의 말마따나 밤놀이 이후로 바쿠고는 별궁에 발길을 딱 끊었다. 이미 3년동안 발길을 끊었었다고는 하나 이 일에 저와 관련이 있는 것을 알았으니 한 번쯤은 들러서 황태자의 용태를 살펴보거나 대화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날 이후로 바쿠고는 다시 지난 3년간 그리 했던 것처럼 단 한 번도 별궁에 들르지 않았다.
뭐, 소꿉동무란 것도 옛말이지 본래도 가깝게 지내진 않았으니까. 내관들은 그렇게들 생각했다. 허나 내의부에서도 가장 어리고 젊어 궂은일을 모두 도맡고 있다던 키리시마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

밤놀이를 함께 다녀온 소꿉동무가 열흘 째 얼굴 한 번 비춰주지 않는데도 태자전하의 얼굴은 왜 그리 밝은 것인지.

밤놀이 이후로 열흘이 지나는동안 미도리야는 부쩍 아침잠이 많아졌다. 좌천된 수의관을 대신해 진맥을 떠맡게 된 키리시마가 처소에 찾아와도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잠들어 있기 일쑤였다. 게다가 전과 달리 미도리야는 아침 진맥마다 키리시마에게 제 손목 내미는 것을 주저하고는 했다. 주저하는 손목을 잡아 진맥을 하고 있으면 숲색 눈은 시선 둘 데를 잃고 불안하게 떨렸다. 그 모습이 옷소매 밑에 남에게 들켜서는 안 될 것이라도 숨겨놓은 아이 같아서, 키리시마는 차마 입이 비뚤어져도 자신이 이미 다 짐작하고 있노라며 고할 수가 없었다.

전하께서 밤마다 남 몰래 어디엘 나가시는지, 남들의 눈을 피해 별궁 쪽문 옆 담벼락 옆에서 누구를 만나시는지.

흔적이라면 오늘 아침에도 이미 보았다. 아침잠이 많아진 태자전하의 옷섶은 벌어져 있었고, 그 가슴팍에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닌 붉고 푸른 멍들이 잇자국처럼 흩어져 있었다.
허나 키리시마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손 안에 쥐여진 미도리야의 맥이 옅게 두근거렸다. 요즘 들어 미도리야는 보얀 뺨에 떠오르는 혈색만큼 맥도 좋았다.

“오늘도 기를 보전하는 탕약은 거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전하. 맥도 혈색도 제가 본 중에 가장 좋으십니다.”

정말? 미도리야가 반색을 하다 이내 우물거렸다. 허나 수의관께서 탕약은 셋 중 무엇도 거르지 말라고 했는데… 키리시마가 잡고 있던 손목을 공손히 놓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쾌차하셨는데 굳이 기가 허할 때를 위한 탕약을 드실 필요는 없지요. 다음 주면 보름이지만 아직까진 기의 흐름도, 맥도 좋으시니 염려 놓으셔도 될 듯 합니다, 태자전하. 게다가 수의관께서도 파면 조치로 자리를 비우셔서…”
“수의관 어른이 파면되셨어?”

돌연 되돌아온 목소리에 키리시마가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괜한 소리를 했다. 내 입은 어쩌자고 이렇게 가벼운지… 솔직히 얘기할까. 키리시마는 잠시 망설였다. 수의관이 어떤 연유로 황제의 진노를 사 파면되었는지는 자신이나 내의부의 의관들 뿐 아니라 이 별궁에 있는 모든 이가 다 알고 있었다. 오로지 미도리야만 이유를 몰랐다. 누구도 먼저 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귀찮은 일에 휘말릴 지 모른다며 일부러 태자에게만 입들을 다물었을 테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너무 했잖아… 안타까움에 키리시마가 망설이던 입술을 열었다. 아무리 구금된 황태자라 하여도 이 별궁의 주인이었다. 알 것은 알아야 한다. 키리시마는 그리 생각했다.

“전하께 갑자기 이유 없는 발정이 닥친 것이 아마… 기질을 중화시키는 탕약을 과하게 처방한 부작용으로 보고 계셔서요. 그 책임을 물어 파면되신 듯 합니다.”
“그래, 그렇구나.”
“아, 허나 태자전하. 전하의 잘못이나 책임인 것이 아니라…”
“내가 양인으로 태어났으면 그럴 일도 없었겠지.”
“……”
“내가 괜한 선택을 했어. 타고난 기질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흐. 중인이 된다고 하지 말걸.”

그 쓸쓸한 웃음결에도 키리시마는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얼굴을 뵈려 한 것이 아니었는데. 이 태자는 본래 그랬다. 이런 곳에 갇혀서도, 이런 처지가 되어서도 단 한 번도 주변을 원망하거나 미워한 적이 없었다.
양인으로 나셨다면 문제없이 보위 승계를 인정받고, 진작부터 황제가 되기 위한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을 터다. 그래도 키리시마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아침잠이 많아진 미도리야의 벌어진 앞섶에 흩어져 있는 흔적을 모르는 체 해주는 것, 밤중에 고요히 별궁 문을 열고 밀회를 하러 나서는 태자의 모습을 못 본 체 눈길을 돌려주는 것…
외려 먼저 웃은 것은 미도리야 쪽이었다. 괜한 소리를 했구나, 내가.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 미도리야는 키리시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게으름 그만 피우고 일어나야지. 내관을 불러줘, 키리시마군.”
“예, 조식을 함께 준비해달라고 이를까요?”
“아니, 흐. 그전에 의복을 갈아입고 잠시 정원을 보고 싶어.”
“……”
“오늘도 해를 볼래.”

흐 웃음결을 삼키는 숲색 눈이 반짝거렸다. 그 얼굴이 해를 만난 달 같아서, 기다리는 정인의 품에서 밤새도록 사랑받은 연인의 얼굴이라서 키리시마는 가벼운 입을 잠자코 다물며 그저 따라 웃었다. 그래도 그 어느 때보다 요즘 미도리야는 웃음이 많았다.
사랑을 하고 계신 것이지. 속으로만 짐작을 삼키며 키리시마는 가만히 그 앞에 엎드렸다. 예, 전하.

“분부대로 그리하겠습니다.”

오늘 밤에도 이 처소에 마지막 탕약을 들고 오는 것은 자신이 될 터였다. 그때도 문은 걸어 잠그지 않을 생각이었다. 차가운 별궁에 갇힌 달님이 사뿐사뿐 밤 어둠을 따라 담장을 넘을 수 있길, 그리하여 그리운 해를 만나 그 품에서 밤이 저물도록 사랑하며 행복한 꿈을 꾸시기를. 키리시마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뿐이었다.












*

쥐죽은 듯 닫혀있던 별궁의 문이 천천히 떠밀렸다. 자시子時, 11:30~1:30였다.

오늘도 미도리야는 편히 신는 가죽신을 꿰어 신고, 얇은 야장의 위에 옥색 겉옷만 가볍게 걸쳐 입었다. 벌써 열흘을 매일 같이 하고 있는 일인데도 정원으로 나설 때면 언제나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제 이듬 주면 올해도 저물고, 겨울 중 가장 춥다는 신년의 1월이 시작되는 탓인지 뺨을 스치는 바람결은 어제보다도 찼다. 분명 옷을 얇게 입었다고 타박할 거야. 짐작을 해보던 미도리야는 저도 모르게 입매를 밀며 슬그머니 웃다, 이내 잰걸음을 재촉해 빈 정원을 가로질렀다. 반달도, 보름달도 아닌 어중간하게 차오른 달이 미도리야가 걷는 길을 어제보다 환히 비춰주었다.

어제처럼 쪽문 앞에 기대선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검은 장옷을 걸쳐입은 색이 밝은 머리칼이 칼바람결에 천천히 나부끼고 있었다.

걸음을 좁혀 다가서기가 무섭게 미도리야의 옷태를 보고 바쿠고가 노골적으로 눈매를 좁혔다. 옷 이따위로 입고 오지 말라고 그랬지, 멍청한 황태자야. 짐작했던 타박이 우스워서 슬그머니 웃다가, 미도리야는 차가워진 제 양손을 잠자코 포개 잡는 뜨거운 체온에 잠시 흠칫 어깨를 좁혔다. 버릇처럼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어제처럼 오늘도 별궁의 후미진 담벼락 곁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런 시간에, 이런 곳까지 들여다볼 초병은 없었다. 알면서도 마음이 불안해 주변을 훑어보고 난 후에야 미도리야는 겨우 제 앞에 선 이의 얼굴을 또렷이 마주 보았다. 달빛 탓인지 유독 하얗게 빛나보이던 그 준수한 얼굴의 코가 어쩐지 불긋했다. 그 얼굴만으로도 얼마나 여기에 오래도록 기다렸을지 짐작할 수 있어서, 미도리야는 괜히 코끝이 찡했다. 더불어 설렜다. 기뻐서, 좋아서 그랬었다.

네 인생에 과연 이만큼 기다려온 존재가 나 외에 또 있을까.

“미안… 많이 기다렸어?”
“아니, 방금 왔거든. 미쳤다고 너같은 걸 기다리냐, 내가.”

거짓말이야. 추위도 별로 안타는 양인이 코가 발긋해질 정도라면 넌 대체 얼마나 오래도록 여기서 나를 기다렸을까. 미안함에 미도리야는 어떤 말도 선뜻 꺼낼 수가 없었다. 그 얼굴색을 읽은 모양인지 바쿠고가 잠자코 양팔을 벌리며 미도리야를 끌어안았다.
또, 또 쓸데없는 얼굴 하지. 귓가에 붙은 입술이 농처럼 웃었다. 그 소리가 좋았다. 등을 안고 쓸어주는 그 단단하고 뜨거운 손의 기척이 좋았다. 아니, 난 너라면 뭐든 다 좋았을 거야. 생각을 삼키며 품에서 얼굴을 떼어낸 미도리야가 바쿠고를 가만히 뚫어 보았다. 오늘도 종일 그리워했던 얼굴이 기울어진 달그림자 아래서 환히 빛났다.

“입 맞춰도 돼?”
“……”
“아니, 어! 내 말은 그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아니, 물론 해주면 좋겠지만 딱히 다른 맘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캇쨩이 그게 서약이라고 했으니까…!”
“……”
“서약은… 매일 새로 남겨야 하잖아. 그래야 지워지지 않잖아.”

아냐, 이런 건 다 핑계야. 너와 닿고 싶어 그래. 너와 입을 맞추고 싶어서 난 억지일 게 빤한 이런 말들을 변명처럼 늘어놓는다. 너무 하고 싶어서… 미도리야가 울대를 밀며 말을 삼켰다. 너무 좋아서, 캇쨩이 좋아서. 어쩐지 말 한 마디를 선뜻 내놓는 것조차 어려웠다. 벅차서, 아득해서 그리 했다. 네가 그리 벅차서 나는 그리 했어.
미도리야의 얼굴을 또렷이 가두고 있던 선홍색 눈이 흔들렸다. 못하는 소리가 없네, 황태자 주제에. 바쿠고가 기가 막힌 듯이 입매를 픽 비틀었다. 그 목소리의 결도 자신처럼 떨리고 있었다.

“사람 맘에 함부로 불을 지르는 게 아니라고 말했었지.”

기울어온 그림자가 미도리야를 품 안으로 난폭하게 끌어안으며 앞을 더듬어 허리끈을 익숙하게 풀어냈다. 어젯밤처럼 오늘도 하얗게 드러난 마른 어깨가 파르르 떨었다.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님을 안다. 기대를 하는 거야, 나는. 미도리야가 바쿠고의 목덜미에 제 이마를 기울이며 뭉개진 입술로 달게 떨었다. 어쩐지 가만 둘 수가 없어 급히 바쿠고의 가슴팍을 더듬던 미도리야의 양손이 벌어진 장옷 틈을 스르륵 파고들었다. 하. 가볍게 웃은 바쿠고가 제 가슴팍을 떠돌던 마른 손목을 움켜잡았다.

“뭐하냐.”
“캇쨩을 벗기려고…”
“위를 벗겨 어쩌려고, 등신아.”

네 놈이 진짜 가지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닐 텐데. 미도리야의 손목을 잡은 바쿠고의 손가락들이 단단한 흉근과 복근을 지나쳐 이미 반쯤은 풀어진 허릿대의 매듭으로 이끌었다. 귓가로 다가온 입술이 낮게 귓속질을 했다. 풀어.
지금껏 단 한번도 남의 것을 수음해보거나 매만져 본 일이 없었다. 그 탓에 기껏 허리춤을 풀어내는 손길은 굼뜨고 서툴렀지만 미도리야는 물러서거나 관두지 않았다. 옷 위로도 느껴질만큼 생생하고 단단한 열기가 난폭한 촉감으로 미도리야의 손바닥 밑을 비벼왔다.
뜨거워. 미도리야가 멍한 투로 우물거렸다. 어, 화가 단단히 났거든. 바싹 붙은 바쿠고의 입술이 미도리야의 귓불을 습하게 머금었다 물러났다. 흠칫 떨던 어깨를 가만히 움켜안으며 바쿠고는 미도리야의 시선을 제 아래쪽으로 가만히 짓눌렀다.

“세워.”

캇쨩만큼 잘하진 못할 텐데. 흐 웃음을 삼킨 미도리야가 가만히 자세를 낮추며 바쿠고의 앞섶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급히 풀어헤쳐진 허리춤으로 숲색 머리가 망설임도 없이 기울었다. 하, 존나. 잇매를 질근 씹은 바쿠고가 미도리야의 머리칼을 허겁지겁 움켜 잡았다. 젖은 물소리가 반달 그림자 밑에 겹쳐진 별궁의 담벼락을 고요히 흔들었다. 존나, 못하잖아. 농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바쿠고는 그런 말을 신음처럼 뱉어냈다. 거짓말이라는 걸 미도리야는 알고 있었다. 알 것 같아서 몸이 떨렸다. 머금고 있는 것만으로도 두 무릎 사이가 불편하게 달아올랐다. 젖은 제 앞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미도리야는 양무릎을 단단히 모으며 턱을 좁혔다. 저 멀리 달이 부옇게 빛나고 있었다.

달은 아직 다 차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 이리 숨이 막힐까.

기분 존나 끝내주네. 하늘을 향해 턱을 젖힌 바쿠고가 낮은 신음을 잇새로 밀어냈다. 그 호흡에도 아랫배가 저릿거렸다. 너로 인해 벌써 몇번이고 헤집어진 자리들이 욱신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미도리야의 머리칼을 움켜잡은 손에 꽉 힘이 실렸다.

“적당히, 조이시지요. 이대로 전하의 입 안에서 도달할 맘이 저는 전혀, 하, 없는데 말입니다.”
“웁, 흐우, 흐,ㅅ”
“그리 좋으십니까. 지금 눈이 풀렸는데요.”
“후으, 웁, 으웁, ㅎ…”
“허면 어디 얼마나 좋으신지 확인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태자전하.”

아니… 미도리야를 내려다 본 바쿠고가 하 입매를 비틀었다. 대답 하실 필요 없습니다. 낮은 말이 탁하게 갈라진 것과 동시에 바쿠고가 제 허리춤에 파묻혀 있던 미도리야의 머리칼을 움켜쥔 채로 그 몸을 힘껏 들어올렸다. 더불어 다시 품 안으로 끌려들어간 숲색 머리칼이 벌어져 있던 바쿠고의 흉근 안으로 파묻혔다. 가슴이 뛰었다. 그 체취를, 그 존재감을 미도리야는 이번에도 참지 못했다. 색이 흐려진 숲색눈이 유독 붉음이 짙던 선홍색 눈을 올려보았다.
갖고 싶어. 미도리야가 울음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 가장 깊은 안에 널 가두고 싶어. 그리하여 빠져 나가지 않도록 이 밤 내내 너를 조이고 싶어. 가장 난폭하고 강한 너를 내 안에 품고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리하면 나는 영원히 네 조각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우린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텐데.

죽음조차, 해와 달조차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텐데.

“캇쨩, 얼른… 그, 아…!”

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황제의 사저에 올라 아버지와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바쿠고는 끝내 미도리야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를 꾸지라지 말아달라고 그랬겠지. 미도리야는 그리 짐작했다.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벌을 받기 위해 발정이 아닌 때에도 별채에 갇혀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아버지라면 그리 했을 거야. 헌데 네가 날 지켜준 거야. 분명히 그런 거야. 담벼락에 기대 반쯤 주저앉아 제 안을 가르는 열기에 떠밀리고 흔들리며 미도리야는 잠시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울음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미도리야가 바쿠고의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내 햇님. 바쿠고의 귓가로 다가온 입술이 헐떡이며 속삭였다. 해를 보게 해줘. 너의 해를 내가 가지게 해줘.

“난 차라리… 네게 불타 죽을래.”

하늘이 해와 달을 갈라놓은 데엔 연유가 있다고, 야기도 그랬었다. 해는 달을 태운다. 네 불길은 그 어떤 해보다도 찬란하고 뜨겁겠지. 미도리야가 턱을 젖혔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차라리 불타 죽어도 좋을만큼, 너의 손에 기꺼이 죽을 수도 있을만큼.
하. 바쿠고가 입매를 비틀었다. 웃기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등신 같은 황태자가.

“누가 얌전히 죽게 둔 댔냐, 멍청아.
“……”
“저승에서도 건져올 거라고.”

아, 별 소릴 다하네. 뱉어놓고도 쑥스러운지 허리를 멈춘 바쿠고가 괜히 불긋해진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그 얼굴이 좋았다. 난 너라면 뭐든지 다 좋았어. 사랑스러움을 도무지 참을 길이 없어서 미도리야는 끌어안은 얼굴을 당기며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떨어질 때 선홍색 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아주 죽고 싶다 이거지. 그 말에 아니라고 고개를 저을 틈도 없이 멈췄던 허리가 다시 추삽을 시작했다. 제 틈을 힘껏 갈라오는 힘을 느끼며 미도리야는 가만히 흐릿해진 눈길을 감았다.
이 순간이 영원하다면 좋을 텐데. 미도리야는 그저 그렇게 바랐었다. 저 먼 하늘에서 천천히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

그 밤, 키리시마의 걸음을 잡아 세운 것은 내관장의 방 안에서 들려오던 수의관의 목소리였다.

“어르신, 저를 살려 주셔야 합니다. 저희는 한 배를 탄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대로 저는 죽습니다.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어찌 어르신께서…”
“쉿! 자네 목소리가 너무 크네. 경솔한 사람 같으니.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나!”

일부러 엿들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밤이 깊어 별궁의 다른 의관들과 내관들은 모두 잠들었고, 키리시마는 잠자리에 누워 이불까지 덮었다가 내일 태자전하께 올려드릴 탕약의 약재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이 떠올랐을 뿐이다. 내관장의 처소는 수의관이 쓰던 방과 함께 탕약방 바로 곁에 있었다. 듣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좌천되어 여기 있을 이유가 없는 수의관의 목소리가 들렸어도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모르는 척 해야 했었다. 허나 호기심은 기어코 그 인상처럼 혈기왕성한 젊은 의관을 그쪽으로 떠밀었다.
어릴 적부터 키리시마는 눈치만큼 듣는 귀도 좋았다. 내관장이 아무리 소리를 낮추라 윽박질러도 속살거리는 목소리나 수의관의 우는 소리까지 전부 가릴 수는 없었다.

“내관장께서 제게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황제폐하께서 저더러 파직하고 고향에 내려가라는 뜻이 무엇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어르신, 죽습니다. 죽어요.”
“자네가 죽긴 왜 죽나. 폐하께서도 면이 있어 자네더러 내려가라 하신 것이니…”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어르신이 저를 희생시키고 자리보전하려고 하시는 걸 제가 모르는 줄 아십니까? 태자전하의 발정이 갑작스럽게 시작된 것도, 중인이 되려다 실패한 것도 필경 제가 처방한 탕약 때문이라 그리 고하셨겠지요. 예, 저는 다 압니다. 어르신께서 이르신 것 아닙니까. 19년 전에도 아직 신입이라 뭣도 모르던 저에게 일러 회임한 황비 마마께 탕약을…”

문간에 아예 바싹 귀를 붙이고 있던 키리시마의 눈동자가 소리 없이 커졌다. 문 안에서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조금 전처럼 소리를 죽이던 것과 달리 저 복도 너머에서 잠들어 있을 다른 내관과 의관들에게도 들릴만큼 크고 요란했다.
자네, 그 입을 조심하라 내가 일렀을 텐데. 이를 악문 듯 낮아진 내관장의 목소리가 서슬 퍼렇게 문틈을 비집었다. 대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키리시마는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황비마마라 함은 분명, 현 황태자인 미도리야 이즈쿠의 친모인 인코님을 일컫는 것일 테다. 헌데 19년 전은 무엇이고 회임 이야기는 무엇일까. 토막 난 기억을 이어볼 틈도 없이 문 너머에서 한숨을 삼킨 내관장이 이윽고 낮게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황제께서도 전처럼 나를 신뢰하지 않으시지. 죽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세. 자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이 말일세.”
“……”
“허나 방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네만… 자네가 도와야 할 수 있는 일이지.”

그 말만큼은 듣지 말았어야 했다. 어렵게 의관 시험에 붙어 이제 태자전하를 열심히 모셔 출세가도를 달려야 하는 젊은 내의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말이었다.

“태자를 죽이면 되는 것 아닌가.”

키리시마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한 제 입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그래, 그 수밖엔 없지… 내관장이 낮고 탁한 목소리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허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태자께선 지금 무사히 보위에 오를 수나 있을지도 모를…”
“아니, 폐하께서 약조를 하시었네. 정위… 그래, 공주마마의 아드님에게 말일세. 바라는 것으로 그 정위가 황제폐하께 태자전하를 황제로 즉위시키라 청했으니 폐하께서도 거절하지 않으시겠지. 그것이 이 황가의 도리 아닌가.”
“……”
“어디 감히 천민 음인의 씨가 감히, 양인의 천년 황가에서 우리 같은 가신들을 누르고 황제가 되어 통치를 하겠다고, 허.”

허니 자네는 약을 구해오게. 내관장이 취한 듯한 목소리로 우물거렸다. 약, 태자전하를 죽은 듯이 잠들게 할 수 있는 약…

“지금 태자는 아무 위협이 되지 않지. 헌데 태자가 즉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 아는가. 현재 국외에 나가 있는 야기를 불러들일 걸세. 스승이 아니던가. 야기를 어찌 국외의 말직으로 파견 나가도록 손을 썼는지 자네도 잊은 것은 아니겠지. 야기 수의관은… 양인의 가문인 미도리야 황가에서 어찌 이즈쿠 태자만이 중인도 아닌 음인으로 태어났는지 의심하던 유일한 인물일세.”
“그리하여 야기 전 수의관님이 혹 제가 인코님께 전해드린 약재의 목록이라도 들춰보게 된다면…”
“자네와 나는 모두 죽는 것이네. 허니 손을 써야하지 않겠는가. 그래, 투구꽃이 좋겠지. 아무리 금지된 약초라 하나 자네는 구할 수 있지 않은가. 잘 건조시켜 말리면 어디서 진상된 귀한 찻잎처럼 보이겠지. 그것을 차에 섞어 올리는 것일세. 태자전하가 가장 귀히 여기는 손님이 들를 때, 누가 보아도 이상하지 않을만치 태자께서 가장 의지하는 손님이 들를 때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겠지요. 그 손님이 태자 전하 다음으로 황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인물이라면. 허나 황가의 일원이기에 처형 당하지 않는 인물이라면…”
“그래, 후에 일이 잘 풀려 그가 이즈쿠 태자를 대신해 황위에 오르더라도 평생 지금의 황제처럼 힘을 발휘할 수는 없겠지. 사촌을 독살하고 얻은 황위라는 불명예가 따라 다닐 것이고.”
“……”
“우리는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양인 황제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 어르신의 지혜에 정말 탄복할 지경입니다.”

조금 전까지 살려 달라며 내관장에게 애걸복걸하던 목소리는 온데 간 데 없었다. 문 안쪽에서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키리시마는 힘이 풀려버린 다리를 천천히 일으켰다. 숨이 막혔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어지러웠다. 그래도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 밖에는 없었다. 알려야 한다.
창이 없는 별궁 위로 봉긋하게 부푼 달이 구름 속에 숨었다. 곧 보름이었다.





(계속)




썼다................... 이번 편은 생각보다 너무 늦었네요 흑흑 ㅠㅠㅠㅠㅠㅠㅠ 정신도 없이 바빴던 데다 얘기가 좀 안 풀려서ㅠ.ㅠ.ㅠ.ㅠ 이제 막힌 혈도 뚫었고, 이번 주의 급한 업무도 지나가서 냅다 이렇게 들고 옵니다////
이 글은 처음 예상과는 다르게 15편, 16편쯤에 끝날 듯... 이제 절반 지났네요 허허... 무튼 10편도 이챠이챠 힘내서 들고 오겠습니당! 항상 즐겁게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해요ㅠ_ㅠ 피드백 계속 재독삼독사독 하면서 엄청 힘내고 있습니다 흑흑 ...

?
  • 루카님사랑합니다.... 2018.02.23 17:30 SECRET

    "비밀글입니다."

  • 마루 2018.02.23 18:02 SEC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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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카님 나의 사랑♥♥ 2018.02.23 19:01 SECRET

    "비밀글입니다."

  • 지나가던복받은독자 2018.02.23 20:07 SECRET

    "비밀글입니다."

  • 넘나 좋은것 2018.02.24 01:50 SECRET

    "비밀글입니다."

  • 싸뢍해요 2018.02.24 08:58 SECRET

    "비밀글입니다."

  • rio 2018.02.24 19:48 SEC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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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OP 2018.02.25 12:49 SEC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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