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BBS

* 너무도 오랜만에 이 글을 씁니다...
* 마왕x인간으로 캇뎈
* 마왕후계자 바쿠고가 인간세계에서 사회경험 쌓다가 인간 소꿉친구 만나면서 인생 설계 꼬이는 이야기





지옥에서 왔습니다

@ruka_tea







中2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언젠가 데쿠 녀석이 그렇게 물었었다. 나는 대답했다. 지옥.

아마 여섯 살 그 무렵의 언제였을 것이다. 그날 우리는 면식도 없던 검은 개의 사체를 놀이터 화단에 묻고 있었다. 이런 건 구청 청소과에 전화해서 해결하면 될 일이라고, 어른들이 해결해줄 일이라고 몇 번이나 얘기를 해줘봤자 데쿠 녀석은 듣지 않았다. 꼼짝도 않는 강아지 사체를 묵묵히 노려보고 있던 숲색 눈은 이 개를 두 손으로 묻어주지 않는 한 영영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을 기세였었다. 결국 나는 놀이터 앞 수퍼마켓에서 삽 한 자루를 빌려왔다. 내 몸에는 너무 큰 삽을 들고 낑낑 거리며 땅을 파고 있던 사이에도 데쿠 녀석은 개의 사체를 가만히 바라보며 기독교식인지 불교식인지 출처도 알 수 없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냐고 나는 물었고, 데쿠 녀석은 말했다. 좋은 데로 가라고.

‘어른들이 죽은 동물들은 성불을 시켜줘야 한다고 했어. 그래야 좋은 데로 간다고 그랬어.’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여섯 살 미도리야 이즈쿠는 훨씬 더 상상력이 풍부했다. 나는 기가 찼다. 하고 싶은 말이 혀 밑까지 치밀었었다. 죽으면 아무 것도 없다고. 게다가 살아남은 자들이 명복을 빌어봤자 그 망자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지옥에 가는 것도, 천국에 가는 것도 그냥 그 망자의 팔자다.
그래도 녀석은 가끔 그 ‘좋은 데’를 제 나름대로 상상해보고는 했다. 나는 늘 그냥 내버려뒀다.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녀석의 색 깊은 눈이 유난히 더 반짝거려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천국도, 지옥도 모두 별 같은 게 아닐까? 죽으면 다 자기만의 별이 생기는 거야. 그리고 그 별까지 열심히 가는 거지. 맞아, 우주여행처럼! 우주는 진짜 진짜 넓으니까 어딘가에 죽은 사람들만 모여 사는 별도 있지 않을까?’
‘……’
‘나는 죽으면 캇쨩이랑 꼭 같은 별에 가야지.’

어린왕자에 은하철도 999를 섞어놓은 듯한 녀석의 상상은 사후세계의 실체를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선 정말 얼토당토않았다. 그래도 뭐, 맥락은 비슷하긴 했다. 지옥이나, 별이나 죽은 자들만 모여 사는 건 맞으니까.
녀석에게 죽음은 별을 건너가는 일이었다. 사람은 죽으면 모두 자기만의 행성으로 간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을 위해 밤마다 그 별에 하나뿐인 등대에다 불을 붙이며 소식을 알린다고 했다. 반짝이는 별빛은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피워올린 등대의 빛이라고, 나는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당신도 행복하라는 기원의 빛이라고.

그날, 눈을 뜨지 않던 너의 머리 위에서도 별이 빛나고 있었다.

구급차에서 내리자마자 녀석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던 건 나였고, 20분도 채 되지 않아 병원으로 도착한 어머니는 의사의 얘기를 전해 듣자마자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말을 정신없이 물으면서도 기도하듯 달라붙은 양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가망이 없을 거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의사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지옥에 갓 도착한 망자들이 흔히 그런 얼굴을 했다. 어쩌면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은 표정조차 망자를 닮아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길고 긴 수술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도, 나도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내내 문 앞에 반쯤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나는 어쩐지 데쿠 녀석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녀석도 종종 나를 보며 그런 얼굴을 했었다. 뭔가를 간절히 원하는 듯한, 바라는 듯한. 그러나 그 말이 너무 벅차 꺼낼 수도 없다는 듯한 얼굴로 입을 꼭 다물고 돌아서던 데쿠 녀석의 얼굴, 그런 얼굴, 그 엿 같은 얼굴. 그 얼굴이 겹쳐 보였을 때 나는 엄마가 말한 인간적인 감각을 처음으로 느꼈다. 후회.

그러지 말았어야 했었다.

시간을 2시간 전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나는 너를 두드려 패서라도 혼자서 달려나가지 못하게 만들었을 텐데. 이윽고 의사가 문을 열었을 때 끓어오르던 침묵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의사가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죄송합니다. 오열하는 어머니를 두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나는 지금 내가 뭘 해야하는지 알고 있었다.

여섯 살 데쿠는 죽음이 우주여행 같은 거라고 했었다. 멍청아, 그딴 건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라고. 현실은 언제나 상상보다 시시하다. 거기에 저승사자나 사신 같은 건 없다. 인간은 살아서도 혼자 살고, 죽어서도 홀로 저승에 간다. 죽으면 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을 떠나고,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차원의 경계를 지나 망각의 강에 도착한다. 내가 처음 지옥을 떠나 인간 세상에 태어날 때처럼.

옥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을 넘으면서 나는 두꺼운 철문을 크게 열었다. 머리 위로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속도 없이 반짝거렸다. 헛웃음이 났다.

“그러니까 등신아, 별은 왜 보자고 해서.”

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마 지금쯤이면 망각의 강 앞에 줄을 선 대열들과 합류했을지도 모른다. 그 강 앞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말했지만, 지구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니까. 망각의 강을 지나 지옥까지 들어가는 데엔 짧아도 하루, 길면 열흘까지 걸리기도 한다.
그래도 그 강을 건너뛰고 지옥에 들어갈 수는 없다. 지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살아있을 때의 모든 기억을 잊어야 한다. 뱃사공이 젓는 배에 올라 강 저편으로 건너가다 보면 기억은 하나둘씩 사라져 강물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그럼에도 잊혀지지 않는 딱 한 가지 기억이 있다고, 엄마는 말했었다.
가끔 길을 잃은 망자들이, 당신들이 귀신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반복하는 기이한 행동은 이 남겨진 딱 한 가지 기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기억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아니기도 하다. 아빠와 엄마는 망자에게 남겨진 이 유일한 기억을 토대로 재판을 해 그 혼을 어디로 보낼지 판가름한다. 외할아버지가 있는 천국으로 보낼 것인지, 혹은 엄마가 다스리며 108가지 종류의 다양한 체벌이 준비되어 있는 지옥으로 보낼 것인지.

그렇다면 데쿠새끼는 어디로 가게 될까.

어릴 때 죽으면 대부분 천국에 간다. 20세 이전에 목숨을 거뒀다고 해서 모두가 다 선한 것은 아니지만, 어른이 되어 짓는 죄에 비한다면야 아무 것도 아니다. 절차가 너무 빨라 망각의 강을 이미 건넜다면, 그래서 그 새끼가 이미 천국에 있으면 어떡하지. 그럼 망할 외할아버지를 찾아가야 하나. 외갓집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이딴 생각들을 하며 심각해지다 나는 기어이 헛웃었다. 하긴, 이딴 것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그래도 아직 갈 때는 아니잖아, 멍청아.
되고 싶은 것도 많은 주제에.

너는 나쁜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되고 싶어 했었다. 등신아, 하늘을 날아다니고 악당들을 신기한 기술로 현혹시키는 영웅 같은 건 영화 속에나 있는 거라고. 녀석이 영웅이 되고 싶다고 할 때마다 나는 이딴 소리를 잘난 듯이 해댔었다. 하지 말 걸 그랬다. 그래도 경찰이라든가 소방관이라든가 구급대원처럼 영웅이 될 수 있는 직업은 많잖아. 될 수 있는 게 이렇게 많은데 그 중 한 가지도 못해보고 가버리는 게 말이 되냐, 멍청아.
아. 어쩐지 자꾸 눈가가 시큰거렸다. 망할 두 눈에 고드름이라도 그렁그렁 달려있는 건지 이상하게 축축하고 무거워서, 나는 괜히 아닌 척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20층 저 아래에 펼쳐진 화단이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올라오니 씨발 무섭기는 하네.”

절로 비실비실 웃음이 샜다. 망할 병원, 옥상 한 번 더럽게 높게 지어 놨다. 그래도 이 방법 밖에 없었다. 내가 널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엄마만 신났겠네. 말을 삼키면서 나는 가볍게 옥상의 난간을 걷어찼다. 잠시 중력을 떠나 허공으로 뛰어든 몸이 그대로 곧장 아래를 향해 수직으로 낙하했다. 존나 무섭다. 솔직히 그래서, 난 기어이 두 눈을 꽉 감았다. 그 뒤부터는 기억 대신 흐릿한 소리만이 빠른 속도로 이어졌다. 뭔가가 퍽 부딪쳐 깨지는 소리, 부러지는 소리, 발밑이 우르르 떨리던 소리, 바람소리, 또다시 오랫동안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내 몸이 이윽고 강물 속으로 풍덩 떨어지는 소리, 물소리, 그리고 어쩐지 익숙하던 웃음소리…
어서와. 웃음소리가 말했다.

실패를 축하해, 아들.

엄마였다.












*

땅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지옥에 오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다. 죽는 것.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다. 죽은 자들의 세계이니 당연히 죽어서만 올 수 있겠지. 여기서 말하는 ‘죽음’이란 물론 육신의 죽음이다. 영혼에는 죽는다는 개념이 없다. 영혼은 천국이건 지옥이건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지만, 인간들의 땅에서 살아가려면 육신이 필요하다. 인간 세상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육신은 영혼을 붙들어 두는 그릇이다. 그릇이 깨진다고 해서 거기 담겨 있던 내용물이 어딘가로 사라지는 게 아니듯 육신이 죽는다고 해서 영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육신을 잃어버린 영혼은 망각의 강을 건너 어디로 갈지 재판을 받은 후에 천국이나 지옥에 머물거나, 혹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다시 인간 세상에서 태어난다. 어느 쪽이건 이전 생의 기억은 지워진다. 마치 컴퓨터를 새로 쓰기 위해서 포맷을 한 번 해야 하는 것처럼.

하지만 왜 백업하지 못한 중요한 파일은 포맷을 하고 난 후에야 생각나는 것일까.

그날, 길고 긴 터널 안으로 떨어지면서 나는 데쿠 녀석을 찾아 복잡한 미로를 헤매는 꿈을 꾸었다. 아마도 엄마 목소리를 들었을 쯤부터 정신을 잃어버렸던 것 같지만, 아무튼 이상한 꿈이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미로를 통과하며 나는 몇 번이나 데쿠 녀석을 발견했지만 뒤돌아 앉아 있는 녀석은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나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성질이 나서 어깨를 흔들면 녀석은 그제야 나를 돌아보며 그 커다란 눈을 꿈벅거리며 이런 멍청한 소리를 해댔었다. 누구세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명치가 서늘했다. 꿈인데도 그랬었다. 그리고 무서웠다. 이 지옥에서 당연히 누구나 한 번은 지나가게 되는 과정을 나는 너무 쉽게 잊고 있었다.

이 새끼가 나를 잊어 버렸으면 어떡하지.

눈이 번쩍 열린 건 녀석이 꿈속에서 다섯 번쯤 나를 못 알아보고 난 직후였다. 뭔가 축축한 것이 내 뺨을 핥고 있었다. 개였다.
어떻게 다시 돌아온 고향인데 나를 처음 맞아주는 존재가 씨발.

“개라니…”

17년 전하고 변한 게 하나도 없이 붉게 칠해진 천장 밑으로 내 얼굴을 핥고 있던 개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덩치도 작고 대가리가 셋으로 갈라지지 않은 걸 보니 케르베로스 녀석은 아니었다. 지옥에는 개가 많다. 물론 인간만 죽는 것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특히나 개가 많이 보이는 것은 이 녀석들 대부분이 주인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존재들이 단 한 가지 기억만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이미 앞서 설명했다. 개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기억은 대부분 주인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지옥의 개들은 수없이 많은 망자들 틈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생전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주인을 찾아다닌다.
이 녀석도 마찬가지겠지. 생각하니 쓸데없이 코끝이 찡해서 나는 스르륵 몸을 들고 일어나 녀석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녀석이 혀를 헥헥 빼물고는 좋다고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어댔다.
근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 개.

그때 뭔가가 섬광처럼 뒷통수를 훅 치고 지나갔다. 이딴 개새끼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씨발, 어딨어.”

방문 앞에 쳐져 있던 커튼을 걷고 튀어 나왔을 때 다행히 엄마는 내 방 앞에 앉아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적어놓은 인간 세상의 신화집을 읽고 있었다. 내 천년간의 기억을 걸고 맹세컨대 우리 엄마는 저 책을 지금까지 5억번도 넘게 읽었다. 우리 엄마는 지옥의 마왕이니 지옥의 지배자 이야기를 다룬 저 로맨스는 말하자면 연예인이 자기를 주인공으로 쓴 팬픽을 읽고 자빠진 것과 다름없다.
아, 인간 세상에 가 있을 때 인터넷에다 저 책 내용 죄다 뻥이라고 얘기해줬어야 했는데. 그러나 역시 지금은 엄마가 5억 번도 넘게 읽은 저 망할 책이 뭐건 간에 별로 중요하진 않았다. 입술이 멋대로 열렸다. 그때도 이름 모를 멍멍이는 내 다리에 검은 몸뚱이를 문지르며 아양을 부리고 있었다.

“어딨냐고, 씨발.”

엄마가 펼쳐진 책을 탁 덮으며 그제야 나를 돌아보았다. 오늘도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한 블랙 투피스 차림처럼 엄마는 우아한 얼굴로 두 눈을 깜박깜박 했다. 저 얼굴을 인간식으로 해석하자면 이렇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고 싶은 얼굴, 그래서 아들 엿 먹이고 싶은 얼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카츠키. 뭘 잃어버렸니? 엄마는 결국 인내심 없는 내 아들이 20년도 못 채우고 다시 지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밖엔 모르는데.”

이것 보라고. 다 봤으면서 이러잖아. 절로 이가 우드득 갈렸다. 나는 지금 이 마왕의 말장난에 놀아나줄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웃기지마. 장난할 기분 아니니까.”
“……”
“데쿠 새끼 어디에 있냐고.”
“데쿠? 데쿠가 누구였… 아. 이즈쿠?”

친구 이름은 똑바로 말해야지, 누군지 모르겠잖아. 나랑 똑같은 선홍색 눈이 생글생글 웃었다. 이럴 때는 유전의 법칙이라는 걸 만들어 둔 외할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그래도 엄마에게 마왕다운 장점이 한 가지 있다면, 분위기를 잘 읽는다는 점이다. 그 이상 나를 괴롭히거나 말을 돌리는 대신 엄마는 곁에 다가온 검은 개의 털을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말투만큼이나 담담한 얼굴이었다.

“다시 지옥으로 돌아오면서까지 지켜주고 싶은 존재가 생겼다니, 인간으로 살아본 17년도 아예 쓸데없진 않았네.”
“누가 씨발 지켜주고 싶다고…”
“지금 영혼의 숲에 있을 거야. 그쪽으로 보냈거든.”

혀 밑까지 치밀었던 온갖 욕이 물을 맞은 먼지처럼 서서히 가라앉았다. 영혼의 숲은 여러 이유에서 낙원에도, 천국에도 갈 수 없는 망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런 경우는 한 가지뿐이다. 울대가 절로 느리게 울렁거렸다.

“왜.”

되묻는 목소리가 멍청이처럼 갈라졌다. 엄마가 가볍게 대꾸했다. 어느 정도 짐작하고는 있던 말이었다.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으니까.”
“……”
“대단해. 망각의 강을 건너오면서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망자는 2천년 만에 처음이야. 영혼의 숲에 머물게 되는 망자가 또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후후… 잊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망각의 힘을 이겼어.”
“그러니까 씨발 대체 어떻게…”
“그건 캇쨩이라는 애칭을 가진 존재가 직접 가서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닐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
“그 아이, 떨어지면서부터도 계속 그 이름만 불렀거든.”

믿기지가 않았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인간이 씨발, 어떻게 망각의 힘을 이기냐고. 나조차도 다른 망자들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강을 건넜다면 인간 생에서의 17년은 물론이고, 지난 천 년 동안 이 지옥에서 살아온 기억조차 잊어버렸을 것이다. 말문이 막혔다. 그보다 어떤 거대한 돌 같은 것이 가슴에 걸려있는 것 같았다. 마치 거인 시지프스가 영원토록 밀고 있다는 그 거대한 돌이 가슴에 박혀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틀어막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돌의 이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가 내 쪽을 보며 눈을 찡긋 했다.

“뭐,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옥상에서 뛰어내려 이 저승에 그 아일 찾으러 올만큼 소중하게 생각한 쪽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게 생각 안 했어, 망할 엄마.”
“그래그래. 이제 넌 영원히 마왕은 될 수 없게 되었지만.”
“……”
“후회는 안 하잖아?”
“…어.”

절대로. 다시 같은 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해도 나는 이 선택을 번복하진 않을 것이다. 존나 시지프스 같네. 어차피 굴러 떨어질 돌을 다시 밀어 올리고, 또 밀어 올리던 시지프스가 전에는 멍청하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엄마가 내린 형벌이 아니었다. 그 돌을 밀어 올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편해질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멍청한 거인은 그 무거운 돌을 미련하게 밀어 올린다. 나는 이제 그 거인에게도, 죽은 연인을 데리러 내려왔다던 오르페우스란 음유시인에게도 멍청하다고 말할 자격이 없었다.
데쿠 새끼 존나. 입꼬리가 절로 픽 밀려 올라갔다. 멍청이처럼 자꾸 웃음이 났다. 넌 벌써 이런 데 올 팔자가 아니라고, 멍청아.

“내가 반드시 데리고 돌아갈 거니까.”

엄마가 인중을 당겼다. 별 꼴을 다 본다는 것처럼.










나는 달렸다.

망자들이 북적거리는 망각의 강변을 따라, 나를 향해 반갑게 꼬리를 흔드는 케르베로스의 앞을 지나, 시지프스의 언덕을 돌아 좁고 습한 길을 오래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인간의 몸을 벗어났으니 달리는 속도는 분명히 빨라졌을 텐데도 돌부리가 걸리고 길이 굽이칠 때마다 짜증이 났다.
그 먼 길을 달리는 동안 이름도 모를 검은 개는 나를 잘도 따라왔다. 망자의 골짜기를 지나갈 땐 어느 틈엔가 녀석이 나를 추월해 있었다. 숨이 벅차 잠시 멈춰 헉헉 밭은 호흡을 몰아내고 있는 내 다리에 뾰족한 주둥이를 쿡쿡 찍어가며 녀석은 나를 향해 눈짓을 했다. 땀을 훔치면서 나는 그제야 눈을 들고 앞을 보았다. 열 걸음 앞에 끝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이 지옥의 높다란 천장까지 닿을 듯 길게 뻗어 있었다. 영혼의 숲이었다.

이곳에 데쿠 녀석이 있을 거라고, 엄마는 말했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숲은 키가 낮은 덤불에 파묻혀 길도 똑바로 보이지 않았다. 더러는 내 키만큼 큰 덤불과 거대한 나무의 뿌리 위를 휘청휘청 걷고 헤쳐 가며 나는 숲 안으로 무작정 걸어 들어갔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만약에 엄마가 거짓말을 한 거면 어떡하지. 뒤늦게 망각의 강이 힘을 발휘해서 그 녀석이 나를 새카맣게 다 잊어버렸으면 어떡하지.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씨발, 잊으면 어떠냐고. 날 못 알아보고서 또 그 큰 눈에 겁을 가득 먹고 있으면 멱살을 잡아다가 다시 엄마 앞에 끌고 오면 된다. 이 새끼를 어떻게든 다시 돌려보내라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의 입구를 열어 달라고 부탁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우리 엄마는 대가 없이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럼 씨발, 내 영혼이라도 저당 잡히든가.

어떻게 해서든 돌려보낼 거다. 그것 외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를 제치고 앞서 걷던 멍멍이 녀석이 돌연 어딘가를 보고 컹컹 짖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기서부터는 공터인 모양인지 무성한 덤불도, 키가 높은 나무들도 보이지 않았다. 꼬리를 흔드는 검은 개를 지나쳐 나는 마지막 덤불을 걷어내며 키가 낮은 잔디 위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 천천히 시간이 멈췄다.

듬성듬성 어깨를 맞댄 잎새 그림자 밑으로 부연 햇살이 커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둥그렇게 떨어지던 그 햇살을 올려다보던 하얀 얼굴이 놀랍도록 낯이 익어서 쓸데없이 코가 시큰거렸다. 주근깨도, 덤불 같은 그 멍청한 머리도, 울 때는 유난히 더 맑게 일렁거리던 그 빌어먹을 색 깊은 눈도 여전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녀석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녀석이 유난히 둥글고 서글서글하던 그 눈으로 흐, 웃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괜히 꽃잎들을 한 번씩 흔들고 스르르 지나가는 봄바람처럼.

“캇쨩…”

너는 그렇게 나를 불렀다. 망각의 강을 지났어도 너는 여전히 나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눈을 둥그렇게 열던 네가 곧바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상하다는 얼굴이었다.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데, 캇쨩이.

“희한하다. 계속 보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꿈을 꾸나봐, 흐… 나는 죽었는데.”

어, 멍청아. 너는 죽었어. 너는 진짜 내 손에 죽었어. 왜 이딴 데 와 있냐고. 너희 어머니 얼마나 울고 계시는지 알고 있냐, 이 불효자 새끼야. 온갖 말들이 혀 밑에서 해일처럼 일렁거렸다. 그러나 말보다도 발이 더 먼저 움직였었다.

“캇쨩, 아무래도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것 같은데 나 좀 한 대 때려주면… 캇쨩?”
“……”
“캇쨩.”
“……”
“저기, 일단 꿈이 아닌 건 알겠으니까 이 팔 좀… 내가 지금 숨이 막,”
“닥쳐, 등신 새끼야.”

꽉 씹은 입술이 아팠다. 볼이 이상하게 따끔거렸다. 그보다 딱 붙어 있던 가슴팍에서 뭔가가 요란하게 쿵쾅거렸다. 그게 내 팔 안에서 버둥거리던 네 심장의 소리는 아니었을 거다. 너는 죽었으니까, 원래부터 여기가 고향이었던 나하고는 다르니까. 하, 존나. 자꾸 입꼬리 끝이 떨려서 나는 있는 힘껏 너를 끌어안았다. 그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것말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외할아버지에게 감사하고 싶었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돌아가자, 멍청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정쩡하게 내 품에 안겨있던 네 등을 깊게 쓸어내리면서 나는 말했다. 네 귓불에, 네 뺨에 멋대로 입술을 문지르던 내 뺨이 자꾸만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래도 기뻐서, 나는 기어이 마지막 말을 네 귓가에 툭 밀어냈다.

“집으로.”

너와 내가 살고 있던 그 세계로.






(계속)





이 글을 이제야 다시 이어놓다니, 해가 바뀌고 난 후에야 이 글을 쓸 생각을 하다니....ㅠ.ㅠ.ㅠ.ㅠ.ㅠ.ㅠ.ㅠ.ㅠ 본래 12월 중에 끝낼 생각이었는데 제 개인적인 이유와 여러 일들로 죽음 이야기를 하는 게 좀 힘들고 벅차서, 결국 이렇게 해를 넘겨 오게 되었네요ㅠ.ㅠ.ㅠ.ㅠ.ㅠ.ㅠ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져서 이챠이챠 힘을 내어 이어 봅니당//// 사실 이 편의 이 이야기를 꼭 쓰고 싶어서 시작한 시리즈였는데 이제라도 써서 다행이고ㅠ.ㅠ.ㅠ.ㅠ.ㅠ.ㅠ
아마 다음 편이 마지막일 것 같아요. 올해 목표는 역시나 완결을 잘 내자는 것이기에() 우선 이 글부터 매조지 한 후에 다른 글로 넘어가도록 하겠읍니당//// 읽어주시는 분들, 감상 주시는 분들 늘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 덕분에 잊지 않고 힘내서 썼습니둥 ㅠ.ㅠ.ㅠ.ㅠ.ㅠ 감상은 저의 힘 저의 보배... (대놓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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