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다락, 둥굴레차! BBS

* 에드 시런 노래 듣다가 뜬금없이 이런 토막이 생각나서 그만 폰으로 대충 급조한 글(mm
* 오랜만에 살짝 건찬하고 훈찬한 백호샌드

* 이 노래를 들으면서 썼습니두앙




https://youtu.be/ajNOOwkwdF8








Grade 8
@ruka_tea


노랑은 경고, 빨강은 위험. 여자가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는다. 교차로는 한산하다. 붉은 마세라티는 정확히 하얀 선 안쪽에 멈춘다. 여자가 운전석의 콘솔을 연다. 교차로의 신호가 제법 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룸미러에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고 콘솔에서 익숙한 연장들을 몇 개 꺼낸다. 립 컬러는 핏빛, 라이너의 색은 버건디. 여자는 섀도 팔레트를 열고 눈화장을 고친다. 손끝으로 섀도를 펴바르고 라이너를 덧칠하는 동작은 넥타이를 고쳐 묶는  출근길만큼 익숙하다. 마스카라는 뭉칠 수 있으니 덧바르지 않는다. 핏빛 립스틱을 얇게 한 번 펴발라 주고 여자는 룸미러를 향해 몇 번 입술을 바끔거리는 것으로 수정을 마무리 짓는다. 때마침 신호가 바뀐다. 여자가 잠깐 룸미러를 흘깃 거리다 천천히 핸들을 꺾는다. 붉은 입술 밑에 매달려 있던 색점 탓이다. 컨실러를 쓸 걸 그랬나. 고민하다 여자는 이내 만다. 사실 그 점을 여자는 꽤 좋아했다.
차는 좁은 도로 위를 유려하게 미끄러진다. 구불구불 굽어진 길을 따라 늘어진 익숙한 브랜드의 샵들은 이미 모두 불을 껐다. 옷을 살 때가 됐는데. 여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은 오른손으로 잠시 입고 있던 칵테일 드레스의 매무새를 정돈한다. 구불구불 굽이치는 여자의 머리칼처럼 드레스는 선명히 붉다. 악세사리는 일부러 심플하게 골랐다. 핀 타입의 하얀 진주 귀걸이는 알이 작다. 목걸이는 하지 않았다. 속도를 줄이며 여자는 잠시 제 가슴께를 내려본다. 드레스의 넥은 유독 골이 깊다. 봉긋 부푼 가슴 위, 쇄골의 경계엔 작은 점이 찍혀있다. 이 점 역시 여자의 오랜 자랑이었다. 여태 만난 모든 남자들이 여자의 입술 밑에 찍힌 점만큼 이 점을 좋아했고, 누구라도 이 근처에 이를 세우고 싶어 안달이었다. 일주일 전에도 누군가 여자의 쇄골에 거멓게 이를 세웠었다. 남았을까. 여자가 잠시 거울에 쇄골께를 비춰본다. 멍은 다행스럽게도 흔적없이 사라져 있다. 여자는 안도한다. 차가 한 번 더 오른쪽을 향해 방향을 꺾는다. 오래지 않아 호텔의 입구가 나타난다. 목적지다. 내비게이션이 알람을 멈춘다.
여자는 잠시 로비 앞에 차를 세운다. 저만치에 서 있던 검은 수트차림의 남자가 여자의 차를 알아보고 벨보이보다 더 빨리 이 편을 향해 걸어온다. 여자는 일부러 여유를 부린다. 클러치 백을 챙겨들고 천천히 자켓을 어깨에 걸친다. 다가온 남자가 똑똑 운전석의 차창을 두드린다. 여자가 문을 열고 그제야 차에서 내린다. 남자가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한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대답 대신 가벼운 웃음으로 화답한다. 걸친 드레스와 클러치처럼 여자의 처세는 몸에 벤 듯 자연스럽다. 남자를 따라 여자는 호텔로 들어선다. 하이힐의 굽이 또각또각 대리석 바닥 위를 가볍게 두드린다. 엘리베이터에 먼저 오른 남자는 가장 맨 위에 있는 버튼을 누른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서서히 상승한다. 두 사람 뿐이다. 남자가 다시 입을 연다. 수트만큼 딱딱하고 건조한 억양이다. 퍽 재미는 없는 성격이겠다고, 여자는 잠시 생각한다.
“아무도 없을 겁니다.” 남자는 먼저 그 점을 강조한다.

“부사장님께서 신분을 보증해주셨으니 터치하지 말라고 제가 경호원들에겐 일러뒀습니다. 도련님은 스위트룸의 가장 안쪽 방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주치의가 수면제를 처방한 게 1시간 전이지만 이제 곧 일어나실 겁니다. 아가씨는,”

정면을 향하고 있던 남자가 여자를 돌아본다. “시키는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남자는 함께 내리지 않는다. 복도 끝 방입니다, 1시간 뒤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덧붙이고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남자는 인사한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여자는 잠자코 복도를 걷는다. 붉은 카펫이 촘촘하게 깔린 복도는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걸어도 소리가 없다. 단단한 대리석보다 이런 곳이 여자에겐 좀 더 어렵다. 여자는 또래의 여자치고는 키가 꽤, 크다. 여자의 발목에 꽉 힘이 들어간다. 복도에 주욱 늘어서 있던 남자들은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휘청거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여자는 걷는다.  괜찮아, 익숙해. 내색 없이 숨을 가다듬으며 여자는 이윽고 복도 끝에서 걸음을 멈춘다. 문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말없이 도어의 패드에 카드키를 긁어준다. 문의 잠금이 풀린다. 눈짓으로 짧게 인사하고 여자는 문 안으로 들어선다. 문이 닫힌다. 그제야 들고 있던 클러치를 꽈악 움켜쥐며 여자가 후 숨을 가다듬는다. 이제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표적' 외에는.
먼저 힐을 벗는다. 현관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여자는 스타킹뿐인 맨발로 사뿐사뿐 넓은 방을 가로지른다. 방은 홀로 묵기엔 꽤 넓다. 거실을 지나 여자는 안쪽을 향해 걷는다. 붉게 색을 입힌 대리석 테이블에는 빈 물잔과 하얀 약봉지들이 흩어져 있다. 남자는 이 방의 주인이 1시간 전에 수면제를 먹었을 것이고, 이제 곧 깨어날 것이라고 했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 방의 주인이 왜 수면제를 먹는지, 왜 수면제를 먹고도 푹 잠들지 못하는 지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이유를 이미 알고 있는 탓이다. 이 방 주인의 가문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이 호텔의 스위트룸에 매일 같이 새로운 여자들이 드나드는 이유를, 그 여자들이 1시간동안 머물렀다 또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이유를 여자는 알고 있었다.
잠들 수 없어 그렇겠지. 생각을 삼키며 여자는 침실로 향하는 복도를 따라 걷는다. 침실은 닫혀 있다. 하얗게 색을 입힌 문 앞에서 여자는 멈춰선다. 문 안쪽에선 아직 기척이 없다. 여자가 천천히 손을 들어 제 머리에 씌워져 있던 긴 머리칼을, 길고 탐스럽던 머리칼을 스르륵 벗겨 낸다. 머리칼은 짧고, 가발의 색처럼 붉다. 가발이 마른 발목 곁으로 툭 떨어진다. 거의 됐다. 그제야 여자는, 남자는 웃는다. 소리를 죽여 남자는 문 안쪽을 향해 인사한다. 초대해주셔서 고마워요, 백건 도련님.
이제 곧 죽을 테지만.



***

주은찬을 처음 골라낸 건 백훈, 그러니까 백호그룹의 부사장이었다. 백훈은 은찬을 종종 이처럼 평하고는 했다. 그래도 살려둘만한 가치가 있는, Grade 8.

「사실이야. 8급(Grade 8)들은 길에서 맞아 죽어도 절대 죄를 묻지 않거든. 뭐, 그런 풍조야 네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 너는 그 중에 가장 쓸 만 했어. 독했거든. 근데 그 독한 티가 안 나. 그건 정말 값진 재산이지.」

인류의 8등급 중에서도 8급은 가장 가치가 떨어진다. 돈을 받고 되팔수도 없는 8급은 이 나라에서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매춘사업의 창부들보다도 급이 낮았다. 사형으로도 씻을 수 없는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등급이다. 8급 낙인이 찍히면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모든 공적인 작업과 상거래가 금지된다. 취직을 하기는 커녕 재산을 축적할 수도 없고, 평범하게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는 일도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쓰레기였다. 8급으로 살 바엔 차라리 죽는 편이 더 행복하다고 사람들은 즐겨 떠들었다. 상거래조차 되지 않을만큼 가치가 없으니 대부분의 8급은 뒷골목을 중심으로 숨어 살았다. 허나 다른 계급, 특히 1급의 상위 계급자들 중에서는 이따금 이 8급을 유용하게 소모하는 부류들이 더러 있었다. 간편히 욕정을 처리하거나 혹은 귀찮은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청부업자로 길러 내거나. 은찬은 그 둘 모두를 경험한 유일한 8급이었다. 동시에 백훈이 키우던 8급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존재이기도 했다.
처음 백훈의 '우리'에 들어왔을 때 은찬에게 밥을 나눠주었던 할아버지는 은찬이 떠먹여준 밥 한 술을 뜨고 죽었다. 갇혀 있던 8급들 중 마지막 열 번째 희생자였다. 그날 처음으로 우리에 내려왔던 백훈은 자신이 데려온 8급들 중 가장 어리고 체구가 작았던 붉은 머리의 소년이 살아남은 사실을 퍽 재미있어 했다. 은찬은 그 길로 우리를 나왔다. 씻고, 이발을 했고, 백훈과 나란히 앉은 저녁 식탁에선 수프 한 수저 떠보지 못 했다. 탁자가 흔들렸고, 접시와 물잔들이 대리석 바닥 위에서 박살났다. 엎드린 채로 은찬은 제 손목을 피가 배여 나올 정도로 있는 힘껏 깨물었다. 그 점이 백훈의 마음에 꼭 들었다. 이건 정말, 물건이 되겠어. 그리고는 축 늘어진 소년을 안아 들고는 침실로 향했다. 8급은 함부로 들이는 것이 아니라며 만류하던 집사와 고용인들에게 백훈은 담담히 말했다. 상관없어.
내가 ‘이걸’ 키울 거니까.

「애완동물 같은 것처럼 말이지, 은찬아. 개나 고양이처럼.」

은찬은 말을 잘 들었다. 또 자주 웃었다. 백훈은 그런 은찬을 몹시 총애했다. 나는 네게 신이야. 은찬이 백훈의 명으로 누군가의 숨을 끊고 돌아오면, 백훈은 은찬을 품에 안곤 그런 소리를 즐겨 했었다. 달게 떠는 소년의, 그보다 더 자라 청년이 된 마른 뼈대를 쓰다듬으며 백훈은 버릇처럼 덧붙였다. 내가 널 그 지옥에서 구원했거든.
정말로 은찬에게 백훈은 신이었다. 백훈은 1급 중에서도 1급이었다. 백호그룹 3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지만 이미 집안의 누구보다도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지분이 높았다. 사람들은 모두 백훈이 그룹을 이어 받을 것이라고 했다. 감히 닿을 수도 없었고, 동시에 감히 넘볼 수도 없었다. 백훈은 은찬을 세상에서 철저히 격리시켰다. 어차피 삭제된 존재를 좀 더 유용하게 쓰는 것뿐이지. 백훈은 은찬에게 그렇게 말했다. 좀 더 유용해지기 위해 은찬은 백훈이 바라는 건 무엇이건 했다. 총의 잠금을 푸는 법도 몰랐었던 열여덟 살 소년은 스물여덟 살이 되는동안 열 세 개의 위조 신분증과 함께 사람의 두 개골은 그렇게 간단히 뚫리지 않는다는 지식을 얻게 됐다. 스무 명 이후부터는 얼마를 죽였는지에 대해서도 잊어 버렸다. 처세를 배웠고, 잠입을 배웠고, 그밖에 여러 이로운 것들을 몸으로 직접 익혔다. 이게 네가 사는 법이야. 은찬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가만히 달게 머금으면서 백훈은 속삭였다. 그 손가락에선 언제나 화약 냄새가 났을 것이다. 그래도 백훈은 언제나 이 말을 잊지 않았다. 넌 참 예뻐, 은찬아.
완전한 비호였다. 은찬의 삶은 백훈이라는 방호를 만나며 견고해졌다. 그 안에서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저, 누군가를 죽이면 된다. 시체를 처리하는 것도, 은찬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도 모두 백훈의 몫이었다. 백훈은 그야말로 그 자신의 말마따나 신이었다. 그러나 은찬도 백훈을 위해 죽을 자신만큼은 없었다. 기왕 이렇게 연명하게 된 삶을 어떻게든 살아야했다. 은찬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로지 그뿐이었다.
그리고 어제, 백훈이 오랜만에 ‘우리’의 저택에 찾아왔다. 강아지처럼 제 무르팍에 엎드리는 은찬의 붉은 머리칼을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며 백훈은 말했다. 죽여줄 사람이 있단다. 부드러운 저음이 은찬의 귓가에 실바람처럼 후 속삭였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사람.
표적의 이름은 백건이었다. 은찬은 그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백훈이 가장 아끼던 조카였다.

「뭐, 나야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일이 틀어졌으니 수가 있나.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몰랐지.

경영에 관심이 없던 조카가 귀국을 한 것은 순전히 그룹의 총수였던 백 회장이 숨을 거둔 탓이었다. 백건은 그 길로 귀국을 했고, 할아버지의 장례가 모두 끝난 후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측근의 말을 빌려 유언장에 명시된 맏손자 도련님, 즉 백건이 물려받은 그룹의 지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백훈으로 확실시 되던 후계자 구도에 백건이 끼어들게 된 양상이었다. 나는 그 녀석을 정말로 귀여워했는데. 백훈이 농담처럼 푸념했다. 그래도 은찬에게 던진 전언을 철회하는 일은 없었다.
드레스를 골라. 백훈이 말했다. 남자인 네 눈에도 가장 육감적이고 아름다운, 하지만 천박하지는 않은 그런 드레스.

「악세사리는 단순한 게 좋겠어. 하지만 드레스의 선은 깊어야지. 그래, 은찬아. 깊게, 좀 더… 깊게. 옳지.」

백훈은 은찬의 판판한 가슴골을, 무엇보다 쇄골께를 좋아했다. 자신이 남긴 잇자국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백훈은 말했다. 그 녀석은 만성적인 불면이야. 아마도 트라우마의 일종일지 모른다고, 백훈은 혼잣말조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은찬을 향해 고개를 들며 백훈은 근사하게 웃었다. 은찬은 둥그렇게 휘어지던 황금색 눈동자에서 아직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백건을 짐작했다. 그 역시도 아마 이렇게 웃지 않을까. 당신을 닮지 않았을까. 백훈이 소리를 죽였다. 명심해. 바싹 다가온 입술이 달콤하게 속삭였다. 은찬아, 절대로,

「반하지는 마.」
「……」
「그땐 내가 그 녀석을 죽이게 될 테니까.」

처음으로 듣는 경고였다.




* * *

침대 위에서 하얀 등이 뒤척인다.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다. 은찬이 등 뒤로 손을 뻗어 조용히 열려있던 문을 끌어 닫는다. 클러치 백의 잠금을 열면서 은찬은 침실을 사뿐히 걷는다. 표적이 다시 뒤척거리며 모로 눕는다. 뒤척거리는 모양을 보니 오래지 않아 깰 게 분명하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불 틈으로 밀려나온 색 밝은 머리칼, 침대 바깥으로 뻗어있는 발이 전부다. 발은 꽤 크다. 키도, 체격도 제법 있다. 우선 그 점은 표적의 삼촌과 닮았다. 동시에 색이 밝은 머리칼도, 눈인 듯 하얀 피부도 닮았다. 그리고 은찬의 짐작이 맞다면 눈동자의 색도 같을 것이다.
어떤 얼굴일까. 클러치 속에서 꺼낸 총을 조립하면서 은찬은 생각한다. 잘 생겼겠지? 수갑을 꺼내고 빈 클러치는 한쪽으로 밀치면서 은찬은 짐작해본다. 잘 생긴 사람이라면 지금껏 질리도록 봤다. 잘나간다는 아이돌, 모델, 배우. 혹은 그냥 잘 생긴 일반인들. 백훈이 가끔 연습이나 하라면서 밀어 넣어준 상대들의 외모는 언제나 수준이 높았다. 이런 평은 그저 가십 같은 것이다. 별 생각 없겠지, 이번에도. 총구의 끝에 소음기를 돌려 끼우면서 은찬은 프 웃는다. 그래도 이상하긴 하겠다. 아저씨랑 닮았으면.
침대에서 다시 한 번 표적이 뒤척인다. 은찬이 가만히 다가간다. 이불 속에 반쯤 파묻힌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수갑을 열면서 은찬은 잠시 고민한다. 묶을까, 아니면 그냥 둘까. 이 체격이라면 몸싸움이 벌어졌을 때 불리한 건 나야. 백훈은 절대 실패하지 말라고 했다. 아니, 그보다는…
생각할 때였다.

“……”

표적이 뒤척거린다. 눈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남자가, 백건이 눈을 연다. 귀찮은 듯 얼굴을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며 백건은 짜증스럽게 우물거린다. 하, 씨발, 머리 아파. 괴로운 듯 눈썹을 울컥 모으던 눈길이 문득 곁에 선 은찬을 올려다본다. 눈이 마주친다. 예상대로 황금색 눈동자다. 그리고 닮았다. 아니, 닮지 않았다.
어쩌지. 숨이 막힌다. 가슴에 불이 인다. 천천히 꿰뚫린다. 그 감각이 낯설어서 은찬은 순간 갈피를 잃는다. 진짜 어쩌지. 은찬이 볼 안쪽을 거듭 씹으며 생각한다. 나는 아저씨한테 죽을 거야.
잠이 덜 깬 노란 눈길은 잔뜩 탁하다. 흐린 목소리로 백건은 묻는다. 뭐야. 은찬이 대답 없이 입술을 꽉 짓씹는다. 스르륵 눈꼬리를 접으며 웃는다. 되묻는다. 나? 그리고 순식간에 훌쩍 침대 위로 오른다. 틈이 급하게 벌어진 칵테일 드레스가 부욱 찢기는 소리를 낸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오른 손목에 수갑이 걸린다. 아직 잠이 덜 깬 눈길이 은찬을 다 쫓기도 전에 은찬은 이미 단단한 가슴 팍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붉게 덧바른 입술을 제 손으로 슥 문지른다. 립스틱이 붉게 번진다. 그 채로 은찬이 백건의 입술 위에 제 손등을 꾹 찍어 누른다. 붉게 번진 입술이 그제야 대답을 속삭인다.

“…네 ‘여자’.”

이미 망가진 칵테일 드레스를 양손으로 잡으며 힘껏 찢는다. 수갑이 걸린 손목이 덜그럭 크게 흔들린다. 흐렸던 노란 눈길이 조금씩 또렷해진다. 천천히 일렁이고 흔들리는 그 눈길을 빤히 바라보며 은찬은 가만히 입술을 겹친다. 슬며시 아랫입술을 물다 놓으며 은찬은 속삭인다. 안녕, 자기야.

“우린 오늘 정말, 끝내주는 밤을 보낼 거야.”

왜냐면 나는 널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숙이며, 은찬은 달게 속삭인다. 잔뜩 굳었던 노란 눈길이 그제야 조금 풀어진다. 아, 난 또. 은찬은 그 말의 의미를 더 묻지 않는다. 말 대신 가만히 품을 파고들면서 천천히 웅크린다. 침대 밑에 떨어진 총은 아마 오늘은 발사 되지 않을 것이다. 백건이 잠깐 눈살을 구긴다. 수갑에 묶이지 않은 손이 다급히 마른 팔목을 잡는다. 이름. 백건이 연거푸 묻는다. 넌 이름이 뭔데. 은찬은 대답하지 않는다. 또 한 번 입술이 부딪친다.
나는 내일 죽을 거야. 턱을 크게 젖히면서 은찬은 생각한다. 넌 그냥 나를 대충 ‘선물’ 정도로 생각하고 말겠지.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 흡 숨을 삼키며 은찬은 백건이 귓가에 속삭인다. 자기야, 천천히 밀어 넣어줄래? 저처럼 꼭 같은 색으로 붉어진 입술이 잠시 웃는다. 수갑에 묶이지 않은 손이 붉은 머리를 울컥 헤집는다. 이름이 뭐냐니까. 백건이 거푸 묻는다. 어쩌지. 흔들며, 춤추며, 은찬이 벽에 걸린 시계를 잠시 올려본다. 시간이 부족하다. 은찬의 유일한 문제는 그것뿐이다.

“내 이름이 그렇게 궁금해?”

정말로 그것뿐이었다.




(*)



이건 대체 뭐하자는 글인지 영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대체 왜 이 노래를 들으며 이런 얘기가 생각난 것이며 대충 폰으로 휘갈겼더니 퀄 따위 전혀 존중되지 않는 허허허ᅟᅥᇂ.... 저는 그저 여장 떡이 보고 싶었을 뿐(mm... 그래도 여장 떡 좋습니다 여장 떡 너무 좋은 ㅠㅠㅠㅠㅠㅠ 어째 뒤가 있을 것 같지만 우선은 여기에서 끊고 저는 언 손을 녹이러 장판 속으로 (mm...

?
  • 몽구 2016.02.03 12:29
    허윽ㅠㅠㅠ사랑합니다 루카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정말 소재취적에다가 글도취적인ㅠㅠㅠㅠㅠㅠㅠㅠㅠ완전 숨참으면서봤어요ㅠㅠㅠ루카사마는 어디서이런 소재들을 퍼다나르시는지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둥굴레차! 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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