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다락, 둥굴레차! BBS

* 손 풀 겸 스삭스삭 두드려보는 건찬
* 원작바탕. 사신강림 후 1년 뒤의 이야기
* 역시나 별 것은 없는 토막입니다 (mm...


* BGM / 동화 <달빛>


http://youtu.be/MQe1fKxzIE4






화서華胥야, 어여쁜 화서야. 햇무리 같은 나의 화서야.

오랜 적부터 사람들은 너의 이름을 본 딴 낙원을 꿈꾸었단다. 너는 해였더란다. 해처럼 붉고 찬란하게 태어나 빛을 머금고 하늘을 닦으며 너는 자랐지. 시간과 질서 위를 수레처럼 구르며 너는 조금씩 성장했단다. 엄마의 품에 안겨 처음 배냇짓을 하던 너, 아빠를 향해 와르르 웃음을 터뜨리던 너. 너는 어찌 어릴 적부터 우는 법을 몰랐을까. 항상 방싯방싯 웃고 있는 아이가 예쁘고 고와서 간호사 누나들도 너를 퍽 예뻐했었지. 너는 그토록 빛이었단다. 찬란한 빛, 아름다운 빛. 그리하여 동으로부터 떠올라 북을 등에 업고 서쪽으로 저물, 너는 그리 햇살이었지. 참으로 꽃이었다.

하지만 화서야. 해는 반드시 그림자를 만들고, 열흘 넘게 붉은 꽃은 없단다. 너희 엄마는 출산 후 몸을 채 추스르지도 못하고 갓난 너를 안은 채 병원을 도망쳤지. 너희 아빠가 낡은 중고 승용차에 너를 싣고 무작정 도로를 달렸더란다. 편한 고속도로 대신 국도의 먼 길을 구불구불 달려 이 땅의 중심에서야 차는 멈췄겠지. 그곳에서 너는 자랐단다. 외할머니의 얼굴도, 이모의 얼굴도 모르는 채 너는 자랐어.

허나 물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듯 운명이란 결국 낙숫물처럼 똑똑 떨어져 판판한 바위 위에 옴폭한 흠을 만든단다. 그리하여 너는 끝내 운명처럼 깨달았겠지. 너의 머리가 붉은 이유, 엄마가 이따금씩 하얀 옷을 입은 어린 소녀의 사진을 붙잡고 우는 이유. 소녀의 머리는 꼭 너처럼 붉었고, 너인 듯 입술 밑에 별 같은 점이 하나 놓여 있었단다. 낯선 사람들이 대전 외지의 아파트로 찾아왔을 때 엄마는 너를 끌어안고 목을 놓아 울었지. 사람들은 너를 데려가려 했고, 엄마는 끝내 너에게 운명을 가르치는 것으로 타협을 했단다. 그 뒤부터 엄마는 너를 향해 웃어주지 않았지. 물론 화서야. 오랜 기억이라 너는 전부 잊었을 거야. 혹은 잊은 체를 했거나. 너는 그때 고작 돌을 갓 지났을 뿐이었단다.

화서야, 붉고 어여쁜 화서야. 너는 주작의 일곱 번째 별이며, 머지않아 하늘에 올라 남방의 하늘을 짊어질 사신의 후예란다.

주작은 너를 가지고, 세상은 너를 통해 태평성대를 누릴 것이다. 너는 동에서 태어나 북을 등에 지고 마침내 서편에서 사라지겠지. 태양이란 그런 것이다. 긴 하늘을 가로질러 결국 서편에서 저물어 사라지는 것. 나는 너에 대해 모두 알고 있지. 왜냐면 아가, 나는 네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너와 함께였으니까.

허니 화서야. 웃어라. 울지도 화내지도 말아라. 너에게 벗을 소개해줄 참이란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서울로 나들이를 가자꾸나. 어디로 향하는지 알 거 없단다. 운명이 이끄는 데로 향하렴. 너의 삶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걸어가렴. 그리하여 길을 헤매는 너를 위해 누나가 손을 내밀면 너는 잠자코 내 뒤를 따라 오려무나. 자, 새 벗을 보러 가자. 참으로 근사한, 달처럼 노란 눈을 가진 아이란다. 그 아이의 이름이 무엇이냐면…




@ruka_tea






* 화서 華胥 ; 황제가 꿈꾸었던 상상 속의 낙원.
  ≪列子(열자)≫ 黃帝篇(황제편)







언젠가 백건은 두 눈을 잃은 사내를 만난 적이 있다. 사내는 한때 백호의 후계였다고 했다. 백건의 할아버지보다도 십수 세 정도 나이가 많던, 초로의 노인이었다.

「그날은… 그러니까 아침부터 날이 흐렸어. 천둥이 쳤지. 하, 어쩐지 조짐이 좋지 않았었네. 현무와 청룡은 이미 강림의 절차를 모두 끝낸 참이었지. 남은 것은 나와 주작… 그래. 우리 둘 뿐이었어. 내 손은 비어 있었네. 전통적인 절차에 맞춰 나는 맨주먹을 움켜쥐고 자리로 나섰네. 사신문은 이미 열렸고, 문을 통해 내려온 신선이… 그래, 넷이었지. 그들이 등을 떠밀며 내게 말했네. 젊고 어린 백호의 후계여, 서둘러라. 그리 지체하다간 문이 닫혀버리고 만다. 얼른 서둘러라, 서둘러라…」

일곱 번째 생일이 갓 지났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날, 아빠는 아침부터 말수가 적었다. 백건에게 반절은 놀려가며 꼬박꼬박 전수해주었던 무술 수련도 그날은 없었다. 오늘은 수련이 없느냔 말에 아빠는 대답 대신 백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탔고, 꽤 오랜 시간동안 도로 위를 달렸던 것으로 백건은 기억한다. 어디엘 가느냐 물어도 아빠는 말이 없었다. 너른 들판과 커다란 강과 굽이치는 도로를 지나 인적도 없는 산의 입구에 이르러서야 택시는 멈췄다. 해가 지고 있었고,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은 벌써 온통 붉었다. 앞서 걷던 아빠는 어느 커다란 대문 앞에서 비로소 걸음을 멈추고 백건의 손을 움켜잡았다. 대궐 같은 한옥집의 대청에는 커다란 백호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단 한 번도 직접 가보지 못했던 백호가의 본가라는 사실을 백건은 그때 처음 알았다.

「그게 내 업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망설였지. 백호의 후계라면 응당 거칠 관례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잘 안 됐네. 아무리 강철처럼 수련을 한다고 마음까지 쇠붙이가 되겠는가. 긴 머리를 올려 묶고 잠자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선 초연히 나를 올려보는데… 그래, 돌이켜보면 그 눈이 너무 예뻤네. 참으로 고왔어. 내 아직도 그 눈길이 생생하네. 어찌 그 눈을 꿈엔들 잊겠는가. 어찌 내가… 그 얼굴을 잊겠는가.」

백호가의 사람들이 골방의 자물쇠를 열어 주었을 때, 사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방 구석 어둠 속으로 도망을 쳤다. 백건은 그런 자를 처음 보았다. 마치 유령인 것 같았다. 그보다는 송장인 듯 했다. 파리하게 마른 체구, 굽은 등, 새카만 머리칼. 남자의 눈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파인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듯 했다. 주름이 자글자글 앉은 얼굴로 사내는 연거푸 고개를 저었다. 내 입을 열면 안 되는데, 내 이렇게 저 어린 후대님에게 겁을 주어선 안 되는데… 방을 안내해준 백호가의 사람이 한참 설득을 한 후에야 사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시종 침묵을 지켰다. 백건은 아버지가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를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후계가 강림에 실패하게 되면 말이네… 먼저 머리의 색이 달라지지. 그리고 눈동자의 빛이 흐려지며 천천히, 조금씩 눈이 멀게 된다네.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지다 마침내 깊고 깊은 어둠이 찾아오면 그때부터는 눈의 흔적이 사라져 버려. 나도 한때는 이 자리에 눈이라는 것이 있었지. 백호 후계의 증표라는 그 달 같은 황금색 눈동자가 나에게도 있었네. 헌데 소용이 없어. 후계의 삶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우린 사신을 업기 위해 태어나 후대의 후계가 태어나면 자리를 물려주고 세상에서 사라지면 그만이네. 강림에 실패한 후계의 삶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허나 죽을 수도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우주의 질서를 해치는 일 아닌가. 후계로 태어난 우리는… 그래, 그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 허허, 늙은이가 어린 후대의 기를 너무 죽이는 게 아닌가 걱정이네만.」

사내는 허탈하게 웃었다. 눈이 사라진 고개를 백건에게 조아리며 사내는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백건은 그 자리가 불편했다. 낯설고 멀었고, 무서웠다. 강림에 실패하면 눈을 잃는다. 아니, 모든 것을 잃는다. 삶도, 죽음도 내 것이 아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가문의 골방에 갇혀서 하루하루 끼니나 겨우 때우며 죽을 날만 손꼽아 헤아리고 있을 것이다. 어린 백건은 사내가 무서웠다. 그보다는 사내의 모습이, 사내가 보여주는 어떤 미래에 겁을 먹었을 것이다. 눈이 없는 사내는 주춤 물러서는 백건을 향해 입 끝으로 웃었다. 백건이 작은 주먹을 꾹 움켜쥐며 물었다. 왜 실패하셨는데요. 사내가 눈이 없는 얼굴로 쓰게 웃었다. 망설였기 때문에. 그때 백건은 어쩐지 사내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이 참으로 후회스럽네. 자네는 그리 말어.」
「……」
「아무 것도 망설이지 말게.」

그로부터 한 달 후, 사내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가 왔다. 장례에는 가족을 대표해 아버지만 홀로 다녀왔다. 백건은 오래지 않아 사내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다. 그래도 종종 불현 듯 사내의 얼굴이 떠오르고는 했었다. 새카만 머리카락, 말라버린 육체, 사라져 버린 눈. 하지만 사내가 무엇 때문에 강림에 실패했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알 수 없었다.




*    *    *


스무 살의 겨울은 퍽 시시했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것, 그리하여 성인이 된다는 것은 정말로 멋진 일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누나였다. 할 수 없던 것들을 하게 되고, 이룰 수 없던 것들을 이루게 된다는 것. 그건 정말 기적 같은 경험이라며 누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었나. 현실은 누나의 말처럼 드라마틱하지는 못 했다. 12월 31일에 그랬던 것처럼 1월 1일에도 사람들은 만나고, 어울리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다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바깥에 나가보면 좀 다를까. 글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외출 했던 것은 한 달 전의 일이다. 한 달동안 백건은 꼬박 집에 있었다. 취향이 좀 바뀌었다. 소설책을 예전보다 많이 읽게 됐고, TV를 자주 보게 됐다. 여전히 누나가 나오면 슬그머니 채널을 바꾸거나 영상을 뒤로 돌려버리고는 했지만 그래도 전보단 꽤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핸드폰이 없어진 대신 방에는 TV와 노트북이 있었지만 인터넷은 따로 연결하지 않았다. 엄마는 1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백건을 볼 때마다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핸드폰 사줄까, 카드 다시 가져갈래, 저녁에 외식할까 등등. 이제는 됐다는 대답조차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백건은 그때마다 잠자코 방문을 닫아버렸다. 그래도 엄마는 화를 내지 않았다. 아빠도, 엄마도, 가끔 집에 들르는 누나도 백건에게 화를 내거나 혼내는 법이 없었다. 식탁에서는 대화와 함께 웃음이 사라졌다. 누나는 들를 때마다 백건의 방문을 끈질기게 두드리다 제 풀에 지쳐 그만두고는 했다. 그런 날이면 누나가 훌쩍훌쩍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방문 틈을 비집고 흘러들어왔다. 그때마다 백건은 헤드폰을 뒤집어쓰고 영상의 볼륨을 키웠다. 다 지지리 청승이다. 그래도 백건은 짜증조차 낼 수 없었다. 방문을 열고 나갈 용기가 아주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것처럼.

마음 단단히 먹어. 1년 전, 집으로 돌아온 백건은 가장 먼저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렇게 말했었다. 이제 가호가 사라질 테니까.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연예계에는 어리고 예쁜 배우들이 매년 얼굴을 들이밀었다. 10여개월 전에 종영된 메밀차가 백은의 마지막 주연작이었다. 인터넷에선 모두들 백은이 전 같지 않다고 떠드는 모양이었다. 얼굴은 예쁜데 연기에 매력이 없다, 이젠 신선함이 떨어진다, 열심히 하는데 잘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평이었다. 잘난 듯이 떠들어대는 꼴이 보기 싫어서 백건은 아예 인터넷도 보지 않았다. 인터넷을 보지 않고 외출도 하지 않으니 마음은 일단 편했다. 평안을 찾을 때마다 바깥과의 벽은 조금씩 더 두터워졌다.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누군가와 마주치는 것도 백건은 이제 극도로 불편했다. 그래도 가족 중 누구도 백건을 억지로 끌어내지는 않았다. 말수는 점점 더 적어졌고, 외출하는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상담을 겸해 아버지의 친구에게 찾아가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백건이 눈을 들어 달력을 올려보았다. 서너 걸음 앞에 걸려 있는 달력의 글씨가 어쩐지 흐렸다. 습관처럼 눈을 좁혔다. 콧잔등에 울컥 주름이 잡혔다. 그제야 흐리게 퍼져 있던 글씨가 또렷해졌다. 1월 18일, 상담, 오후 3시. 오늘이다. 백건이 인상을 썼다. 콧잔등에 그어진 실금들이 깊어졌다.

“아, 귀찮게.”

널려있던 책을 발끝으로 밀면서 백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로 떠드는 TV를 내버려둔 채로 방에 딸려 있던 욕실을 열었다. 치약이 없었다. 새 치약을 꺼낸다고 열어젖힌 찬장 속에서 백건은 몇 번 손을 헛디뎠다. 칫솔을 꺼내다 손등을 부딪쳤고, 샤워기의 밸브를 열다가 발밑에 있던 슬리퍼를 실수로 밟고 넘어질 뻔 했다. 엉망진창이다. 욕지기가 치미는 것을 백건은 가까스로 꾸욱 눌러 참았다. 샤워기를 틀어둔 채로 백건은 거울 앞에 서서 이를 닦았다. 거울을 보다 거칠고 성급하게 문지르던 칫솔이 천천히 멈췄다. 색이 사라진 까만 머리칼이 거기 서 있었다. 까만 머리칼, 그리고 까만 눈동자.
그래도 잘 생겼네. 실없는 소리를 툭 던졌다. 웃었다. 그러다 콧잔등이 울컥 일그러졌다. 칫솔이 바닥 타일 위로 툭 떨어졌다. 오른손으로 얼굴을 훔치면서, 왼손으로 세면대를 움켜잡은 채로 백건은 주저앉았다. 젠장. 얼굴을 쓸면서 백건은 몇 번이고 욕을 했다. 씨발, 씨발, 아, 씨발, 존나, 좆같은.
하얀 뺨을 타고 눈물이 소리 없이 굴러 떨어졌다. 어깨가 소리 없이 떨었다. 호흡을 끅끅 삼키다 백건은 끝내 무릎을 꺾었다. 그래도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차마 부를 수는 없었다.

“……”

오늘은 너를 죽인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    *    *



「혹시 화서華胥라고 들어봤어?」

그날은 상당히 추웠다. 그 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을 것이다. 수도관이 얼어붙었고, 덕분에 아침부터 얼어붙은 관을 녹인다고 드라이어를 죄다 가지고 마당으로 나와 한참동안 씨름을 했었다. 성질 급한 청가람이 여의주를 부르려다 현우에게 저지당했고, 상황을 마무리하겠다고 나섰던 건 주은찬이었다. 금찬은 먹히지 않았고 삼매진화는 안타깝게도 수도관을 몽땅 녹여버렸다. 청가람이 주은찬을 살리느니 마느니 목을 졸라대는 걸 말려주는 대신 백건은 잠자코 철물점에 전화를 걸었다. 새 수도관으로 교체하며 소동은 끝이 났다. 기분이 좋아진 청가람이 갈비찜을 해야겠다면서 장을 보러 나갔고, 현우가 짐꾼과 속세구경을 겸해 멋대로 그 뒤를 따랐다. 잠옷차림으로 맨발에 슬리퍼만 끌고 나와 있었던 두 소년은 그제야 발가락이 얼어붙는 감각을 느끼고 부리나케 거실과 식당을 겸하는 별채로 뛰어 올랐다. 전기요를 이불 삼아 나눠 덮고, 백건과 주은찬은 사이 좋게 귤을 까먹었다. 그 즈음에 주은찬이 아마도 그런 말을 했었다. 화서라고 했다. 백건은 아마 콧잔등을 먼저 구겼을 것이다. 새삼스럽고 빤한 질문이었다.

「허, 사신 후계가 화서를 왜 몰라. ‘하늘’이잖아. 신선들이 사는 하늘. 중국 황제가 꿈에서 봤다던 환상의 나라.」
「거야, 하하… 빽건은 음양오행도 잘 모르니까.」
「난 누구처럼 주술사가 아니라서.」

음양오뎅이라고 말한 건 어디의 붉은 머리 주술사셨더라. 말하면서 백건은 귤 반쪽을 한 번에 삼켜 넣었다. 은찬이 눈을 접으며 놀리듯 말했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한참동안 같은 화제에 대해 떠들었다. 화서라고 했다.

「맞아. 고사성어도 있잖아. 화서지몽. 고대 중국의 황제가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지상낙원을 찾아가는 꿈을 꿨고, 그 나라의 이름이 화서였다고. 지배자가 없고, 자연 그대로의 나라. 욕심도 없고, 이기심도 없고, 남을 멀리 하지도 않는 나라. 사랑도 미움도 없는 나라. 신선들이 지배하는 하늘. 우리가 올라가야 할 ‘하늘’.」
「……」
「내가 어렸을 때 누군가 나를 화서라고 불렀었어.」

백건이 노란 눈을 둥그렇게 떴다. 화서? 니가 하늘이라고? 되받아치는 투가 아무래도 놀리는 듯 했다. 은찬이 둥그런 눈을 부슬부슬 접었다. 아니, 그냥 누가 날 그렇게 불렀었다고. 하지만 은찬은 그게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 했다. 사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백건이 기억하는 그날은 그뿐이었다. 얼어붙은 맨발을 맞대야만 했던 좁은 전기요, 유난히 달착지근했던 귤. 그리고 어쩐지 눈썹 끝을 자주 떨어뜨리던 너의 얼굴, 곤란한 듯 나를 올려보던 너의 눈.
건아. 은찬은 그렇게 불렀다. 성을 떼줄 때마다 익숙하게 그랬던 것처럼 백건은 가볍게 대꾸했었다. 왜, 은찬아. 은찬이 프 웃었다.

「우리는 곧 하늘에 올라가겠지?」
「뭐, 그렇겠지. 왜.」
「아니, 그냥. 얼마 안 남았구나 싶어서.」
「……」
「넌 아무 것도 망설이지마.」
「……」
「아무 것도, 진짜 아무 것도.」

그 말이 기억에 남았던 것은 기시감 때문이었다. 그런 말을 어디에선가 들었던 것 같았다. 아득히 먼 예전에 분명이 들었었다. 은찬은 오래지 않아 이불을 밀어내며 자리를 털었다. 멍걸이 산책이나 시켜줘야겠다면서 기지개를 켜고 나가는 붉은 머리를 백건은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그래도 끝내 그 말을 어디에서 들었었는지에 대해선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날은 사신문이 열리던 날이었다.






(*)



이것이 끝인지 컨티뉴인지 애매모호한 지점에서 자르는 이유는 일단 맛보기용 토막이기 때문입니다ㅠ..... 사실 전부터 너무너무너무 쓰고 싶었던 글이기도 한데ㅠㅠㅠㅠㅠ이걸 저는 아마 책으로 낼 예정이라ㅜ ㅜ... 웹온 부스 신청에 성공한다면 아마도 5월 즈음을 예상하고 있습니다ㅎㅎㅠㅠㅠㅠ 건찬 엠티 때 쨍님과 함께 달렸던 그 썰을 바탕으로 또닥또닥 정리한ㅠ///ㅠ 그러므로 이 영광은 쨍님께 돌려보겠습니다 (?ㅠㅠㅠㅠㅠ
무튼! 우선은 요기까지만 읽어주셔요. 또 잠깐 충전하고, 열심히 준비해서 돈 아깝지 않은 책 내도록 하겠습니다ㅠ ㅠ////// 아마도 굉장히 시리어스일 듯 합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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