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다락, 둥굴레차! BBS

* 10년 전에 썼던 글 중 한 장면이 너무나 건찬이라 로컬라이징 해서 새로 써봅니다..
* 일단은 간만에 원작 건찬

* 그냥 별 거 없는 토막입니다^_ㅠ







건찬이_소꿉친구_작살내는_이야기.short
@ruka_tea



(…)

“병신이냐? 멋대로 억측하고, 상처받고, 질질 짜라고 누가 그랬는데. 말해. 누가 그랬냐고. 그게  왜 내 탓인데. 씨발, 너는!…”
“……”
“너 혼자 앓고 자빠지라고 누가 그랬는데. 너 혼자 입 닥치고 있으라고 누가 그랬는데, 대체!”
“그럼 어떻게 말해?!”


목소리가 커졌다. 흥분하던 선이 끊어진 건 그 탓이다. 상상도 못 했다. 주은찬이 화를 낸다니, 그것도 나한테 화를 내고 있다니. 노려보는 시선에서 원망이 뚝뚝 떨어졌다. 아니. 그보다는 서러웠다. 네게도 이런 얼굴이 있을 거라고 나는 8년동안 단 한 번도 짐작하지 못 했었다. 코끝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둥그런 눈을 울컥 구기던 네 어깨가 잘게 떨었다. 순간 뒷머리가 얼얼했다. 아팠다. 숨이 막혔다. 태어나 그렇게 가슴이 아파본 건 처음이었다. 하, 씨발. 젖은 네 눈을 바라보면서 나는 소리없이  짓씹었다. 나란 새끼, 이 한심한 새끼.
왜 울렸어.


“말하면, 어떻게 되는데?”


주은찬이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 했다. 젖은 눈이 프 웃었다.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기적인 새끼야.


“넌 나랑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어?”
“……”
“나랑 친구라고 할 수 있어? 지난 8년처럼 내일도 병신아, 등신아… 그렇게 지낼 수 있어? 자신 있어? 넌 그래?”
“주은찬.”
“친구라며. 백건 나랑 친구라면서. 개새끼야, 너 나랑 친구랬잖아.”
“……”
“친구라서 괜찮아? 친구끼리 이러는 게… 당연해? 쉬워? 너는 그냥, 장난 같아? 다?”
“야, 내가 언제 그렇게까지…”
“것봐, 너는 또 그래. 네 생각 밖에 안 하지.”


둥그런 눈이 흠뻑 웃었다. 네 눈 끝을 타고 눈물이 툭 굴러 떨어질 때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동시에 분했다. 씨발, 너만 힘드냐. 나는 지금 어디 벽에다 콱 머리라도 찍어 박고 죽어버리고 싶은데. 속도 모르고 너는 자꾸만 웃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지, 욕을 하는 건지, 혹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면서 넌 자꾸 울었다. 그때마다 나는 속이 찢겼다.


“하하, 백건 진짜… 못 됐다. 어떻게 나랑 계속 친구를 하자는 소릴 하지?”


주은찬은…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웃든가, 울든가, 욕을 하든가, 한 대 치든가. 그런 쉬운 소리조차 하지 못 했던 건 미안해서였다. 그랬다. 미안했다. 그보다는 죄에 가까웠다. 동시에 억울하고 분했다. 나는 개새끼여도 너는 개새끼면 안 되지. 나는 등신천치여도 너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솔직히. 주먹이 꽉 쥐어졌다. 볼 안쪽을 한 번 질근 씹고 나는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흡 들이킨 들숨이 빠져 나갈 때 나는 실수를 하나 했다. 잡지 못한 말이 입술을 툭 비집었다. 주은찬.


“…등신이냐?”


붉은 눈이 나를 올려봤다. 둥그렇게 웃던 눈이 울컥 일그러졌다. 저런 얼굴도 처음이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주은찬이 나를 저렇게 노려볼 때도 다 있다니. 그래봤자 고작 18년 살아봤지만.
나는 딱히 선수는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쪽으론 좀 소질이 없다. 누구 말마따나 연애를 만화로 배워서, 실전에 약해서, 정말로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어서 나는 잔뜩 서툴렀다. 인정한다. 그래서 젖은 네 눈가를 닦아주지도 못 했다. 그런 건 우리 사이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안 하던 짓은 난 죽어도 못 하겠다. 이 기분이 뭔지도 나는 잘 모른다. 그래, 씨발. 니 말마따나 난 이기적이니까, 이런 순간에도 내 생각 밖에는 못 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확인은 하고 싶었다. 이 엿 같은 기분이 대체 뭔지. 후계자로 순탄하게 잘 살아오다가 발목을 잡히는 이 기분이 뭔지. 지겹도록 익숙한 네가 왜 지겹지만은 못한 건지. 왜 네 우는 얼굴에 속이 뒤집히고, 이 따위 밖에 못하는 내가 미운 건지.
그래서 물었다. 그뿐이었다.


“너 왜, 나한테 거짓말 했어.”


원망처럼 일그러졌던 눈이 일순 둥그렇게 열렸다. 움찔 떨었다. 그 기척에도 나는 절망했다. 씨발, 내 촉은 진짜 왜 이렇게 좋은 거지.


“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거 아니잖아. 주술서가 지 멋대로 주술 부려놓고 펑 사라진 것도 아니잖아. 아무도 손 대지 않았는데 주술서 혼자 그 난리를 쳐서 너나 내가 기억을 잃어버린 건 아니잖아. 아니, 백보 양보해서 그랬다고 치자. 아무도 펼친 적이 없는데 주술서 혼자 발동해선 니 기억, 내 기억 싹 지워놓고 아침 되니 펑 하니 사라져버렸다고 쳐.”
“그게 아니…”
“어, 그래. 한 번은 속아줄 테니까. 근데.”
“……”
“넌 왜 모르는데. 네 몸에 벌어진 일을 넌 왜 모르는 건데.”
“……”
“박던 쪽도 그 감각을 전부 기억하는데, 씨발, 너는 왜, 모르냐고. 왜 기억을 못 하냐고. 니 몸인데. 니 몸을 내가, 찍어서, 억지로, 열었는데.”
“……”
“주은찬만 그걸 몰라. 왜.”


마른 어깨가 흠칫 떨었다. 천천히, 잘게 진동했다. 둥그런 눈이 나를 다시 힘껏 노려보았다. 말을 안 해도 기분은 대충 짐작이 갔다. 어, 알아. 개새끼지, 나. 너무한 것도 안다. 하면 안 되는 말이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후벼 파지 않으면 우린 결국 아무 것도 아니다. 뭐, 괜찮기야 하겠지. 너나 나나 싹 까먹은 척, 8년을 그래왔던 것처럼 가장 가까운 친구로 대충 지내면 그만이다. 그리고 너는 영영 입을 다물겠지. 주은찬은 그렇다. 그래서 나는 후벼내는 것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영 네 마음을 모를까봐. 나는 네 말대로 더럽게 눈치가 없어서, 연애를 만화로만 배워서, 이기적인 새끼라서 이런 방법 밖엔 모른다. 네가 입을 다물면 나는 또 모르는 척 지나가버릴 것이다. 네가 어디가 아파 이러는지, 네가 가장 아픈 이름이 누구인지, 누가 네 가슴에 멍처럼 앉아 있는지. 그게 내가 아니어도 나는 곤란하다. 아니, 싫다. 너는 자꾸만 흔들렸다. 답지 않게 혼란스러워 하는 네 눈에 나는 숨이 막혔다. 울지마. 그런 말 대신 나는 괜히 손을 뻗어 네 눈가를 엄지 끝으로 슥 문질렀다. 욕이라도 하고 싶었다. 씨발.
사실 울고 싶은 건 난데.


“그렇게 ‘친구’가 좋냐, 넌?”


만약 네가 유나비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난 네 거짓말을 믿었을 것이다. 네가 좋아 참질 못 하는 그 솔직하고 순수한 아이를 네가 받아줬다면, 내가 등을 떠밀었을 때 못 이기는 척 유나비와 사귀었다면, 그래서 이민 가는 유나비를 보내지 않았다면 나는 또 속아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 자꾸만 유나비를 어물쩍 피하면서 거리를 둔 건 너였다. 그래서 나는 믿지 않았다. 차라리 네가 평범히 여자친구라도 있었다면, 발랑 까졌다고 너를 갈궜어도 속아는 줬을 텐데.
닦아도 닦아도 네 눈가는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 터진 둑처럼 너는 자꾸 울었다. 이런 주은찬이 나는 낯설다. 너는 뭘 그렇게 참고 있었을까. 얼마를 참았을까. 적어도 하루이틀은 아닐 것이다. 네 눈이 울컥 일그러졌다. 코를 훌쩍이며 너는 말했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주은찬이 웃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처음이었다.


“그게 어디가 나빠?”


답 없이 나는 입술을 질근거렸다. 나빠. 너무 나쁘고 잔인하다, 너는.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해. 기분 나쁘다고 말해. 왜 속였냐고 욕을 해, 개자식아.”


그렇게 억측하고, 상처받고, 그래도 참고, 아닌 척 웃으면서 혼자 또 어딘가에 처박혀 울겠지, 넌. 멋대로 오해하고, 멋대로 상처받고.


“그래, 빽건. 미안해. 그렇게 해서라도 잘난 친구 하고 싶었던 내가 미안해. 내가 다 잘못 했어.”
“주은찬.”
“니 말 맞아. 난 등신이야. 거짓말쟁이야. 지지리도 못나서, 어, 그래서… 그래서 그래.”
“……”
“이런 친구라서 미안해. 진짜 싫겠다, 하하… 그래. 어차피 하늘 올라가면 서로 보지도 못할 텐데, 관두자. 나같은 게 친구라고 있어봐야 뭐해. 근데, 어… 근데…”
“……”
“잊을 거잖아.”
“……”
“이렇게라도 안 하면… 이렇게, 친구라도 아니면 너랑 나랑 아무 것도 아닌데.”
“……”
“그러니까 그만하자, 빽건. 응? 나 이제 좀 힘든 것 같아, 하하… 너랑 이렇게 친구 하는 것도 지겨우니까…”
“어, 관두자.”


우물우물 멋대로 떠들던 네 입술이 우뚝 굳었다. 네 눈이 다시 둥그렇게 열렸다. 음조차 소거된 목소리로 너는 내게 되물었다. 어? 네 눈가를 문질러 닦던 손을 나는 훌쩍 떼어냈다. 하얗게 드러난 네 눈가가 온통 울긋불긋 했다. 그래서 나는 저질렀다. 그 얼굴을 참아줄 수가 없어서, 내 이 엿 같은 기분을 인내할 수 있을만큼 난 어른이 아니라서, 너만큼 의젓하질 못 해서.
심장소리가 컸다. 커도 너무 컸다. 네가 움찔 떨었다. 네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나는 보지 못 했다. 내 품에 훌쩍 끌려왔던 너를 나는 그저 힘껏 끌어안았다. 백건?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되받아치던 내 목소리가 덩달아 볼썽사납게 갈라졌다. 시끄러워, 못 생긴 게.


“친구 하지마. 안 해. 안 한다고, 씨발.”


울지마. 너를 부술 듯이 끌어안으며 나는 계속 그렇게 빌었다. 울지말라고. 울라고 하는 말이 아닌데. 상처 주려고 하는 말인데 자꾸 울어, 병신이. 그만 울어라, 정말. 울지마. 울지 말라고. 울지 말라니까. 그래도 너는 울었다. 네 어깨가 그렇게 좁았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야 겨우 알았다. 어쩐지 자꾸 목이 멨다. 그래도 참지는 않았다. 도망치지는 않았었다, 나는.


“사귀자.”


혹시라도 못 들을까봐, 또 모르는 척 할까봐 나는 일부러 네 귀에 바싹 입을 붙였다. 뺨이 당겼다. 천천히 젖어드는 뺨을 네 머리칼에 문지르면서 나는 힘껏 말했다.


“잘해줄게.”

 
너는 프 웃었다. 뻥치지마. 웃으며, 너는 자꾸 울었다. 흐물흐물 말꼬리를 흐리며 나는 자꾸만 같은 말을 더듬었다. 거짓말이야, 이런 거 다 뻥이야. 네 어깨를 몇 번이고 당겨안으면서 나는 대답했다. 진심이야. 네 머리칼에 나는 입술을 문질렀다. 동그랗게 드러난 이마에 입을 맞출 땐 조금 떨렸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아서 나는 어지러웠다. 너는 자꾸만 버둥거렸다. 놔줘, 하지마, 놔. 버둥거리는 네가, 눈을 피하는 네가 미워서 나는 네 양뺨을 움켜 잡았다. 코에, 뺨에, 그리고 피할 듯 잽싸게 돌아서던 입술에 나는 연거푸 입을 맞췄다. 쪽, 소리를 내며 입술이 떨어질 때에야 너는 나를 돌아봤다. 이마를 콩 마주 찧으면서 나는 말했다. 멍청아.


“이 정도면 충분히 사랑이거든.”


8년짜리라고. 네 눈이 둥그렇게 열렸다. 그제야 웃으며 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진짜 지겹게, 하하…”
“어, 징그럽게.”


사랑이었다. (*)





한 10년 전쯤에 썼던 글을 후르륵 살펴보다가 너무 건찬 같은 장면이 있어서 결국 이렇게 로컬라이징을 해버리고 말아버린 것입니다...... ㅠ 그러기엔 넘 토막이긴 하지만ㅋㅋㅋ큐ㅠㅠㅠㅠㅠ
무튼 이 글의 풀버전은 아마도 (가능하다면) (여력이 된다면) 은찬온에서 돌발 배포본으로 쇽 나올....지도 모릅니다... ^_ㅠ... 안 된다면 언젠가 웹으로.....

?
  • 오하 2016.09.01 15:02
    루카님 안녕하세요 평소 웹툰을 안보는데 우연히 루카님 글을 읽고 둥굴레차 야금야금 정주행중인 트잉여입니다ㅠㅠㅠ 으아 루카님 글 너무 좋아요ㅠㅠ 딱 제가 생각했던 백건과 은찬이의 쌍방향 삽질 같아서 (물론 루카님 의도는 그게 아닐테지만) 가슴이 설레다가ㅏ도 먹먹히다가고 결국 울면서 그래 행쇼해! 를 외쳤습니다 흡 힘든 목요일에 단비같은 건찬 소설 정말 감사합니다
  • 홀롤롱 2017.06.29 00:50
    사실 루카님덕에 둥차 입덕했습니다!! 후하후하 인생의 즐거움이 하나 더 늘어나서 행복해여ㅛㅠㅠㅠㅠㅠ루카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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